단편글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대

August8ight by Ros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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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아, 그거 알아?

말하지마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대

알고 싶지 않아

만약에 내가 먼저 죽으면

그만해

저기 비어있는 하늘에서 빛날 거야

제발

그러니까 너무 걱정마

안돼

나 다녀올게!

가지마

맑고 깊은 눈동자와 예쁘게 휘어지는 눈꼬리, 호선을 그리는 입매와 웃음기 가득하던 얼굴.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그 아이가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투철한 정의감이 아닌 그저 순수한 선의만으로 세상을 구하던 사람. 모든걸 태워버릴듯 강렬한 불길 속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그 순간까지도 바보같이 착해서는, 열기에 사람들이 다칠까 능력을 쥐어짜내며 마지막 물줄기를 뿌려주었다. 그 아이의 사랑과 선의는 열기를 머금고 따듯하게 비처럼 내렸다.

오지마, 동혁아

제 파트너도 구하지 못한 못난 놈이 뭐가 예쁘다고 물을 뿌려주는지. 행여나 다칠까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는지. 불길이 사그라들고 열기가 식어갈 때까지 그 아이를 지켜보기밖에 할 수 없었던 동혁은, 제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든걸 적시고 화기마저 잠재운 그 아이의 물이, 타들어가듯 아픈 제 심장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는 것. 그뿐이었다.

하늘로 치솟는 불길과 섣불리 다가갈 수조차 없는 열기, 그리고 그 속에서 저를 향해 웃어주는 그 아이의 얼굴과 마지막으로 저를 향해 속삭이던 한마디. 그 아이의 마지막은 그날의 불꽃보다 강렬하게 동혁을 불태웠다. 눈을 감으면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귀를 막아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잠이라도 들면 그날의 기억이 마치 현실인듯 눈앞에 펼쳐져, 몇번이고 그 아이의 죽음을 봐야만 했다.

뜨거웠을텐데. 많이 아팠을텐데. 불 다루는걸 유난히도 어려워해서 계란 프라이도 못하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런 아이를 홀로 불속에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미안했다. 마지막일줄 알았다면 한번만 더 사랑한다고 해줄걸. 한번이라도 가지말라고 해볼걸. 후회는 동혁을 좀먹었고, 끝도 없는 무력감과 죄책감은 그를 잠식시켰다. 이제는 꿈에서 밖에 볼 수 없는 그 아이에게, 꿈에서라도 가지말라고 붙잡고 애원해보지만, 꿈에서조차 그 아이는 웃으며 저를 떠나간다. 돌이킬 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이미 늦었다는걸 알면서도, 동혁은 여전히 그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채로 보낸게 며칠째인지. 햇살 한줌 들어오지 않도록 암막커튼을 꼭꼭 닫아두고, 침대에 웅크려 시간을 죽였다. 온 집안이 그 아이의 흔적으로 가득한데 감히 돌아다닐 수 있을리가. 그 아이의 물건을 치우지조차 못했는데 그걸 견뎌낼 수 있을리가. 동혁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아이의 향기를 맡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너를 따라갈까. 지금이라도 열심히 뛰어가면 너를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동혁, 제발 정신 좀 차려!!"

몽롱한 정신이 조금이지만 다잡아진다. 그 아이일까 싶어 눈을 뜨지만, 눈앞에 있는건 인준이었다. 아, 그래. 네가 우리 담당이었지. 동혁은 억지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인준을 바라봤고, 인준은 입술을 꾹 다물고 동혁을 마주봤다. 원래도 마른 애가 그날 이후 내리 굶은건지 비쩍 말라서는 산송장이 따로 없었다. 망할 보고서만 아니었어도 애가 이렇게 될때까지 혼자 두진 않았을 거야. 힘들어하는 친구를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한 자신이 한심했지만, 숨을 깊게 들이쉬곤 떨쳐냈다. 이제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 되니까. 그저 제가 너무 늦은게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인준은 일단 동혁을 어두컴컴한 방에서 끄집어내고, 집안의 모든 창문을 다 열어 환기를 시켰다. 햇볕이 들고 답답한 공기가 갈아치워지는 동안에도 동혁은 또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인준은 그런 동혁을 욕실에 구겨넣고 박박 씻겨주기까지 했다. 니는 진짜 나같은 친구 둔걸 다행으로 여겨라. 좀 끔찍하리만치 싫었지만 며칠새 비쩍 말라버린 친구의 등짝이 안쓰럽기도 해서, 그냥 닥치고 씻겨줬다. 다 씻긴 뒤에는 먹기 싫다는거 억지로 입에 들이부어 죽도 먹이고, 센터에서 지원하는 싸구려 말고 사비로 비싼 수액도 사다가 링거 한대 맞춰줬다. 기절하듯 잠든 동혁을 보면서 인준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적당히 사랑했어야지.. 말도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동혁을 씻기기 위해 따듯한 물을 몸에 뿌렸을때, 동혁은 발작을 일으켰다. 몸을 덜덜 떨면서 안된다고, 가지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은, 정말 정신이 나간 것만 같았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해 거의 혼절하려던걸 급하게 물을 끄고 물기를 닦아내 겨우 진정시켰다. 아마 그 아이를 잃은 날, 온몸으로 맞았던 뜨거운 물줄기가 트라우마가 되어 거부반응이 일어난 거겠지.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였다. 그날 이후 아무도 만나지 않았기에 아무도 몰랐고, 심지어는 이동혁 본인조차 몰랐을 사실. 힘들어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힘들어할 줄이야. 아마 알았더라면 보고서고 뭐고 당장 달려왔을텐데.. 담당 연구원이기 이전에 동혁의 오랜 친구이던 인준은 마음이 좀 쓰렸다.

동혁의 상태를 확인한 인준은 이틀에 한번씩 동혁의 집을 찾아왔다. 인준에게는 동혁의 담당으로서 그를 케어해야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동혁이 다시 재기하여 다른 센티넬과 파트너를 맺을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게 연구원 황인준의 역할이었다. 물론 그런 비즈니스적인 이유보다는 친구 황인준으로서 동혁마저 잘못될까 걱정되는 마음이 더 크긴 했다.

그런 인준의 지극정성 케어 덕분에 동혁은 점차 회복되는듯 보였다.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제 방에서 보내긴 했지만 인준이 집에 오는 날이면 거실까지는 나왔고, 제 방을 제외한 다른 창문들은 커튼이 살짝 걷어졌다. 불조차 켜지 않은 집안은 어두컴컴했지만 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충분히 희망을 나타내고 있었다.

두달여만에 얼핏 보이는 희망에 인준은 동혁을 억지로 집 밖으로 끌고 나가기도 했다. 물론 나오고 얼마 안되어 동혁이 코피를 쏟아 곧장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코피 조금 흘렸다고 얼굴이 사색이 된 동혁을 보며 인준은 제가 성급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센티넬과 가이드 간의 파트너 협약에는 암묵적안 약속이 있었다. 절대 서로를 사랑하지 말 것.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파트너는 대부분 그 끝이 좋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스킨십을 하고,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사이인데 어떻게 감정이 안생기겠나. 불구덩이라는걸 알면서도 뛰어들게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게다가 동혁과 그 아이는 유별나게도 서로을 사랑하는 사이였다. 맨날 투닥거리는듯 하면서 떨어지질 않았고, 안맞는듯 하면서 잘 통했다. 그래, 마치 불꽃과도 같은 사랑이었다. 친구인듯 연인인듯 함께 살림까지 차렸으니, 인준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제발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둘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고, 의지했는지 다 아는 인준은 동혁이 그 상처를 이겨내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인준은 둘의 담당이었고, 또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윗선에서는 그런 사정까지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동혁 케어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윗선에서는 언제 회복되냐며 쪼아대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동혁을 몰아붙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인지하는 순간, 동혁에게는 미안했고 센터에는 화가 났다. 동혁과 그 아이가 미친 케미를 보여주면서 센터의 간판스타였던건 알겠는데 아픈 사람한테 너무한거 아니냐고.

인준은 제 대가리를 깨기 전에 연구원이고 뭐고 때려치고 윗선들 대가리 깨고 싶은걸 겨우 참았다. 만약 자신이 못참고 저질러버리면 동혁은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지 못한채 다시 복귀해야할테니까. 센터에서 이동혁이라는 가이드를 놔줄리 없으니까. 인준은 마음을 다잡았다. 니는 진짜 나한테 고마워해야돼. 평생 갚아라.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동혁은 이제 방 밖으로 나왔다. 인준이 집에 오는 날이 아니어도 거실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커튼은 반이 넘게 걷혀있다. 집안은 지독하리만치 고요하지만, 그만큼 또 평화롭다. 동혁은 소파에 누워 햇볕에 반짝거리는 먼지들을 보았다. 나풀대며 날아다니는 먼지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저 멍하니. 그렇게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몸과 마음은 물을 잔뜩 먹은 솜이불마냥 축축 늘어진다. 인준이 그렇게 개고생을 하면서 반쯤 죽어가던 동혁을 살려놨는데, 동혁은 여전히 이따금씩 그 아이를 따라가고 싶어진다. 그래, 지금처럼.

그 아이와 행복했던 순간. 즐거웠던 순간. 설렜던 순간. 기뻤던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와 동혁을 지독하게 괴롭힌다. 어쩌면 스스로 그 아이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걸지도 모르지. 그 기억 속에서 그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기에 동혁은 그 아이의 기억을 그저 온전히 받아들이며 깊은 물에 잠기다가,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한다. 아주아주 차가운 물이 닿아야 뜨겁던 기억을 식힐 수 있을테니.

"야, 너 겨울에는 찬물로 씻지 말랬지?"

갑자기 연락이 안되는 동혁 때문에 부리나케 달려온 인준이 질책하자 동혁은 씨익 웃어보였다. 열이 펄펄 끓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아프다고 징징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인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3년동안 개고생해서 살려놨더니 뻑하면 감기 걸리고 앉아있네. 새액새액 거친 숨을 뱉는 친구놈을 찰싹 때려주고는 약과 죽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방을 나갔다. 하여튼 못난 새끼.

동혁은 인준이 나간 후, 약기운에 잠깐 선잠에 들었다가 그 아이의 꿈을 꾸었다. 거대한 불길과 열기, 그 아이의 얼굴과 마지막 한마디. 후회와 그리움에 먹먹한 마음으로 잠에서 깨면, 동혁은 이불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숨죽여 눈물을 삼킨다. 마치 행복만을 기억하지 말라는 듯이 행복한 기억 뒤에 따라붙는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은, 여전히 마음을 짓이기듯 아프게 만든다. 하지만 오히려 동혁은 그 고통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너무 크고 깊은 상처는 아무리 아물고 새살이 돋아도 흉터가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한번 남은 흉터는 이따금씩 아파오기도 하고 저려오기도 하지만 이게 너를 기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면, 나는 그걸 전부 감수할게. 동혁은 이제 그 아이의 꿈을 꾸며 울지 않는다.

마음을 추스른 후,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여명조차 없는 서늘한 새벽.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운 공터에 주저앉아 검푸른 하늘을 가득 눈에 담았다. 그 아이가 가리켰던 빈 하늘에 혹시라도 그 아이가 떠올라 빛나고 있을까봐. 별이 된 자신을 찾지 못했다며 서운해 할까봐. 너는 무사히 별이 되었을까. 아니면 아직 마음껏 날며 세상을 구경하고 있을까. 어떤 것이든 동혁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별이 되어 비어있는 밤하늘에 떠오를 그날을.

해가 떠오를 무렵, 동혁은 비어있는 하늘을 향해 소원을 하나 빌었다. 기왕이면 파란색 별이 되어 빛나게 해주길. 그 아이는 파란색을 좋아하니까.

"도,와.. 주...세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때, 근처 골목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미약한 한마디에 동혁은 망설일 것도 없이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근방은 가로등이 없고 좁은 골목이 많아 치안이 별로 좋지 않는 곳이니까. 그렇다고해서 동혁을 움직이게 한 것이 정의감이나 봉사정신 같은 숭고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 아이처럼 깨끗한 선의도 아니었다. 그저 그 아이가 지키고자 했던 신념을 지키고, 돕고자 했던 이들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면 위선적이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게 동혁이 알 바는 아니니까.

마지막 기력을 도와달라는 한마디에 다 쓴듯 앓는 소리만 내는 사람을 찾아내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복잡한 곳이었으니. 그렇게 조금 헤매다가 그 사람을 발견했을때, 동혁은 순간 정신이 멍했다. 푸른 머리칼에 별모양 타투.. 그 아이가 좋아하던 푸른색을 머리에 담고, 그 아이가 바라던 별을 목에 새긴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 아이가 이렇게 제게 다시 돌아와준 걸까. 동혁은 손이 덜덜 떨려와 주먹을 꽉 쥐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잠시만, 어..?"

이미 기절한 남자는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많고 옷도 엉망인게 무뢰배들에게 털린게 분명했는데, 상처를 살피기 위해 손을 갖다대니 가이딩이 되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물고, 미약하던 호흡이 안정된다. 이 사람 센티넬이구나. 동혁은 센터에 긴급출동 콜을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고 인준에게 잠깐 와달라며 연락을 남겼다. 근방의 기척을 봐서는 위험한 센티넬은 없는 것 같으니까 콜은 안해도 되겠지. 그리고는 인준이 올 때까지 가만히 남자의 곁에 앉아 손을 잡아주며 가이딩을 해줬다.

동혁의 난데없는 호출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봐 헐레벌떡 달려온 인준은, 웬 남자를 쪼물딱거리고 있는 동혁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 3년동안 가이딩은 일절 거부하던 그 이동혁이 누군가를 가이딩 하고 있었으니까. 무슨 상황이냐고, 누구냐고, 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인준에게 집까지 옮기는거 도와주면 말해주겠다고 하고는 남자를 집으로 옮겼다. 물론 호리호리한 외모와는 달리 코어와 근력이 단단한 인준이 혼자 들쳐업고 척척 동혁의 집까지 옮겨준 거였다.

남자를 침대에 잘 눕혀두고 거실로 나온 인준은 동혁에게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퍼부었다.

"뭐? 모르는 사람이라고? 근데 니가 가이딩을 왜 해주고 있어? 꼴은 또 왜 저런데?"

"나도 몰라. 그냥.. 그냥 해주고 싶었어."

"...너 설마"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니야."

"...그래"

동혁은 굳이 인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저 남자가 그 아이와 닮아서 그런 거냐고 묻고 싶겠지.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맞았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아이가 떠올랐으니까. 다만 인준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 아이를 잊지 못해서 그런건 아니었다. 그저, 그 아이의 신념을 지킬 뿐. 더 나아가서는 그 아이와 닮은 남자가 그대로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건 아마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한 이동혁의 죄책감과 후회가 남자를 향하게 된 것일테지. 그러니 이 사실을 인준에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인준이 지난 3년동안 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니까.

동혁이 순순히 털어놓을 것 같지 않으니 인준도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이렇게라도 다시 가이딩을 시작하고, 이를 시작으로 현장에 복귀하면 담당 연구원으로서는 환영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침부터 일 시킨 대가로 아침이라도 차려오라고 대화 주제를 바꿨다. 물론 동혁이 아침을 차려주기도 전에 호출되어 센터로 가야 했지만 말이다.

인준이 떠난 후, 동혁은 제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옆에 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생김새가 그 아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니 닮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그래, 그 아이일리가 없지. 아쉬운 마음에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방에서 나갔다. 괜찮아. 그 아이는 별이 될테니까.

"아, 저.. 감사합니다.."

"네, 뭐.."

남자는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동혁에게 기척도 없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게 어찌나 어색하던지. 이 집에 인준 이외의 사람이 들어와있다는 것도 어색하긴 했는데, 그 남자의 행동이 더 어색했다. 어찌나 어색해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지, 보는 사람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정말이지 사교성 좋고 사근사근하던 그 아이와는 정반대의 사람.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없어 처음에 어떻게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저는 이동혁. 스물넷이에요."

"네? 아, 저는 박지성이구요. 스물 둘이에요."

어정쩡하게 서있는 남자, 아니 지성을 소파에 앉히곤 인준이 놓고간 과자를 꺼내와 내어주었다. 소심하게 하나 집어먹는게 약간 겁먹은 소동물 같기도 해서 속으로 좀 웃었다. 저렇게 큰 사람보고 소동물이라니. 동혁은 남자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이 없는데. 얘기를 좀 나눠보니 더더욱 닮은데가 없는데. 왜 자꾸만 그 아이와 겹쳐보이는 걸까. 동혁의 시선이 길어질수록 남자는 어색해 하면서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려댔다. 표정을 잘 못숨기네. 귀엽긴.

그날 이후, 며칠 새에 동혁과 지성은 부쩍 가까워졌다. 바로 그날 번호를 따낸 동혁이 시도때도없이 지성에게 연락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저 이동혁의 뜬금없는 호기심과 근본을 알 수 없는 호감 때문이었지만 그덕에 몇번 밥도 먹었다. 이상하게도 둘이 뭘 먹으러 나가면 식당이 죄다 영업을 안하고 있어서 얼떨결에 산책을 한적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맨날 저기요, 하던 지성이 어색하게 형이라고 불렀을땐 마음이 간질거리는 것도 같았다.

음식 취향도, 옷 스타일도, 생활 패턴까지도 맞는게 하나도 없는 이동혁과 박지성. 동혁은 그런 지성의 어떤 점이 제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아이와 닮아서 눈길이 갔던 것뿐인데. 조금만 세세히 보면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쩌면 그 아이와 닮은 부분을 찾으려고 지성이를 너무 세세히 본 걸지도 모른다. 웃을 때 조금 더 길어지는 눈꼬리나 살짝 더 올라가는 왼쪽 입꼬리, 뺨에 작게 찍혀있는 점이나 손을 들때 살짝 구부러지는 새끼손가락 같은거. 그런 작은 부분들이 동혁의 마음에 점을 찍어 조금씩조금씩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그래서 동혁이 제 마음을 알아챘을땐, 이미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던 걸지도.

"나 복귀할게."

"진짜?!"

매번 저를 뜬금없이 불러대는 동혁 때문에 이번에도 별 생각없이 집에 찾아갔더니 대뜸 복귀선언을 했다. 담당 연구원으로서 얼마나 기다려왔던 한마디였던가. 인준은 그동안 저를 쪼아대던 윗선들의 갈굼에서 해방된다는 소식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동혁은 A급 가이드인데다 파장이 완만해 대부분의 센티넬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능력 좋아, 센스 좋아, 상황 판단까지 잘하는 인재니 센터 입장에선 썩혀두기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담당 연구원인 인준을 그렇게 갈궈댔던 거고. 그래서 동혁이 복귀만 한다면, 어떤 조건이든 다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하필 원하는게 박지성과 파트너를 맺는 거라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파장이 맞는 상대를 센터에서 선정해서 파트너를 맺어야 했다. 하지만 동혁은 파장이 잘 맞는 상대가 여럿이었으니 선택권이 있었고, 파장만 맞는다면 누구와든 파트너를 맺을 수 있었다. 그래, 파장이 맞는다면 말이다.

인준은 동혁과 지성이 처음 만난 그날, 센티넬 박지성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았다. A급에 수(水)속성 센티넬. 이외에 뭐 별다른 점은 없었으나, 인준의 눈에만 보이는 특이점이 하나 있었다. 박지성의 파장이 이동혁의 파장과 상극이라는 것. 파트너간의 파장이라는건 중요한 요소였다. 서로가 내뿜는 파장이 잘 어우러져 공명이 일어나야 가이딩이 잘 되니까. 동혁과 지성처럼 접점이 거의 없어 공명을 이루지 못하면 파트너를 맺는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이동혁도 알고 있겠지. 직접 가이딩을 해봤으니까. 그럼에도 동혁은 박지성을 원했다.

인준은 그건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할 거라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동혁은 알았다며 인준을 배웅했다. 아마 인준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상부를 설득할 것이다. 그는 제 하나 남은 친구이니까. 그리고 동혁은 지성과 파트너를 맺을 수 있다면 센터의 조건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자, 오늘부터 파트너로 활동하게 될 A급 센티넬 박지성, A급 가이드 이동혁이야. 서로 아는 사이지?"

인준의 호출로 아주 오랜만에 찾은 센터는 새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중간부에 커다란 전광판을 달아 센티넬들의 활약상을 전시하는 마케팅. 전에는 저와 그 아이의 모습이 나오던 전광판에서는 다른 이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 이렇게나 선명한데. 세상은 이미 그 아이를 모두 잊은 것만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 스스로를 태워 모두를 살려냈건만. 동혁은 눈을 꾹 감고 전광판을 지나쳤다. 이런 감상에 너무 빠지진 말자.

인준의 연구실에 들어선 동혁은, 이미 와서 앉아있는 지성에게 눈인사를 했다. 동혁이야 이미 인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지성을 보고도 그러려니 했지만, 지성은 동혁이 들어오는걸 보고 좀 놀란듯 싶었다. 뭐, 애초에 지성이랑 파트너 하게 해달라고 인준을 쪼아댄게 이동혁 본인이었으니 파트너 선정 결과를 보고 놀라는게 더 이상하지.

파트너가 되기 위한 서류 처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협약서와 계약서, 어쩌구저쩌구.. 온갖 서류에 서명만 하면 끝이긴 했으니까. 그렇게 이동혁과 박지성은 공식적으로 파트너가 되었다. 이제 바빠지는건 둘의 담당 연구원 인준 뿐이었다. 이 극악의 파트너 선정도 윗선 설득하느라 죽는줄 알았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스케줄 관리부터 체력 관리, 가이딩 수치 모니터링 등등.. 심지어 동혁은 과거의 스타 페어였기 때문에 복귀 기자회견이 잡혀있었고, 화보와 인터뷰까지 요청이 밀려들어온 상태였다. 이동혁 요 망할 친구놈이 일더미를 떠안겨 준 것이다. 그래도 인준은 지성을 향해 웃고 있는 동혁을 보면서 작게 웃어보였다. 역시 죽상인 것보단 웃는 얼굴인게 보기 좋네.

지성과 파트너가 된 이후, 동혁은 (인준만큼은 아니지만)바쁜 스케줄을 따라야 했다. 호출 콜이 울리면 지성이랑 현장에 나가서 지성이를 백업해야 했고, 다른 호출 콜이 울리면 홀로 센터가 지정해준 좌표로 가서 또 백업을 해야했다. 파트너로서 현장에 가는건 크게 부담이 없었다. 애초에 지성이가 일을 하는 동안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를 엄호하고, 일이 끝나면 가볍게 가이딩만 해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혼자 가야하는 현장은.. 그래, 솔직히 끔찍했다.

센티넬들은 보통 파트너가 존재하기 때문에 백업 가이드를 또 불러내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 동혁 같은 A급 가이드를 백업으로 부를 정도면, 그 상황이 어떻겠는가. 센티넬들은 거의 폭주 직전까지 능력을 몰아쓴 상태이고, 가이드들은 전멸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에서 동혁은 방사 가이딩으로 모든 센티넬들의 폭주를 막아야했고, 부상 정도가 심한 이들은 접촉 가이딩을 해서 목숨을 살려야 했으며, 미처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들을 안전지대로 인솔해야 했다. 그래서 이런 대규모 현장에 한번 나갔다 오면 진이 다 빠져버리곤 했다.

그나마 작은 위로라고 한다면, 일이 다 끝난 후 저를 토닥여주는 지성이의 큼지막한 손이랄까. 기진맥진해서는 지성의 방에 찾아가면, 지성이는 항상 저를 반겨주며 안아주었다. 센티넬이면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서로를 꼭 끌어안는거. 따끈한 손으로 등을 쓸어내리다가 작게 토닥여주는거. 동혁이 얼굴을 부비작거리면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는거. 가이딩이 되는건 아니지만, 동혁은 이러한 행위로 인해 위로 받았다.

"형, 그거 알아?"

"뭐를?"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대."

"..뭐?"

"만약에 내가 먼저 죽으면,"

"말하지마."

"어?"

"말하지 말라고."

네가 그 말을 어떻게 아는 거야.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동혁은 쿵쿵대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지성의 손을 꼭 잡았다. 불안한 기색의 동혁에게 손을 뻗으려던 찰나, 지성의 호출 콜이 울렸고 뒤이어 저 멀리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그날과 너무도 똑같은 상황. 그날도 그 아이는 제게 별 이야기를 했고, 뒤이어 폭발음이 들렸으며, 출동한 현장에서.. 동혁은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심장소리에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형, 나.."

"가지마"

"....."

"가지마, 제발.."

손을 벌벌 떨면서 저를 붙잡아오는 동혁을 지성은 가만히 안아주었다. 과거에 동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워낙에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인준에게 전해듣기도 했으니 말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날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혁이 이리도 불안해 하는 이유가 그날 때문인건 어렴풋이 알 정도였다.

"형, 있잖아.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대."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지금 가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별이 될 거야."

"....."

"나 다녀올게"

나긋나긋하게 전해지는 지성의 말에 동혁은 손의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나는 또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걸까. 이대로 또 지성이마저 잃게 되면 어떡하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지성을 찾아나섰다. 하늘까지 치솟은 불길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그 현장에 다다랐을 때, 동혁은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빗방울을 맞았다.

"형!"

모든걸 집어삼키던 불길은 빗방울에 금새 사그라든다. 지옥과도 같았던 그날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 떨어지는 빗방울은 따듯하지 않으며 지성이는 불길이 아닌 빗방울 속에서 저를 향해 웃어준다는 것.

박지성 (A급)

수(水)속성 센티넬

특기 : 소나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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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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