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투
NTR 주의
박지성은 어려서부터 가족이며 형들에게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란 덕에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만큼 애정을 독차지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몫을 받지 못하면 질투를 하곤 했다. 남들 생각보다 굉장한 질투쟁이인 지성에게는 질투 게이지가 있었는데, 사소한 일들로 게이지가 채워져서 100%를 달성하면 어마무시한 일이 일어났다. 스스로조차도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분노의 질투'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이 뜬금없는 얘기를 왜 하느냐면, 지금 지성이 '분노의 질투'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성을 이 상태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아닌 천러였다. 쪼꼬미 시절부터 연습생 생활을 같이 하고, 나이 차이도 1살, 아니 3개월 정도밖에 나지 않아서 거의 친구로 지내는 그 종천러. 지성은 그런 천러에게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수많은 형들 사이에서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인 천러는 지성에게 제일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자, 썸 이상 연인 미만의 인물이었다. 여기서 애매하게 자리를 꿰차고 있는 '썸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타이틀이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20%
앨범을 발표하고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무대에 서기도 체력이 후달리는데 예능이며, 자체 컨텐츠, 라디오와 각종 인터뷰까지 스케줄이 가득했다. 여기서 지성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멤버를 한명 골라야하는 질문이었다. 쉴 때 누구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냐던지, 무인도에 간다면 같이 가고 싶은 멤버가 누구냐던지. 질문은 다양했으나 결국 묻는건 똑같았다.
누구와 가장 친한가?
지성은 그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질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기 보다는 천러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게 맞는 표현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성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천러를 말하곤 했는데, 천러는 매번 마크라던지, 다른 멤버를 말했다. 그럴 때마다 지성은 애써 괜찮은척 해봤지만 어느 누가 봐도 질투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토라져 있으면 천러가 와서 달래주고, 나중에 또 토라지고, 달래주고. 이렇게 반복되어 채워진 게이지가 20%. 아직은 귀여운 단계였다.
50%
한번 활동을 시작하면, 새벽부터 새벽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잠깐의 여가시간이 정말 귀했다. 지성은 그 귀한 시간을 천러와 보내고 싶어했는데, 천러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활동기간에 수면이 부족한건 모든 멤버가 해당하는 사항이니, 잠을 자는 것까지는 지성도 이해했다. 하지만 매번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지 여가시간이 생기면 천러 얼굴 보기가 참 어려웠다. 한참을 천러를 찾아다니다가 포기하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으면, 천러는 어디선가 스르륵 나타났다. 그것도 다른 멤버와 함께 말이다. 여기서 지성이 뾰로퉁해지는 이유는 또 마크가 껴있어서였다. 천러가 마크를 귀여워하는 것까지는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기와 썸(?)을 타고 있으면서도 항상 마크를 옆에 두는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채워진 게이지가 50%. 이제 슬슬 다른 멤버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여기서 지성의 TMI를 한가지 더 말해보자면, 지성은 모태솔로였다. 이 얘기는 또 왜 꺼내느냐 묻는다면, 지성의 연애관이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지성과 천러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썸 비슷한 걸 타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썸 이상 연인 미만' 말이다. 물론 지성이 느끼기에 그랬다는 것이지, 천러의 입장은 잘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지성은 천러와 볼꼴 못볼꼴 다 본 사이였다. 뽀뽀나 포옹은 옛날에 해치웠고, 간혹 섹스까지 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성이 천러와의 관계를 연인으로 구분짓지 않은 이유는, 다름아닌 키스를 안해서였다. 지성의 특별한 연애관에서 키스는 연인끼리만 하는 약간 성스러운 행위였고, 천러는 다른 짓은 다 해도 키스만큼은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성은 천러를 연인으로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다른 멤버들이야 둘이 사귀는 사이인줄 알기 때문에 지성의 질투 게이지가 50%쯤 채워졌을 때, 자연스럽게 지성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80%
활동을 끝내고나면, 하루 이틀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완전한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그룹 스케줄은 물론이거니와 개별 스케줄까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휴식말이다. 지성은 무대에 오르고, 수많은 스케줄을 하며 팬분들과 만나는 시간을 좋아했지만, 이렇게 푹 쉴 수 있는 시간도 손꼽아 기다려왔다. 스케줄에 지쳐있을 때면 천러와 꽁냥거리면서 휴식기동안 가고 싶은 곳을 여기저기 리스트로 만들어놨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창 설레여야 할 지성은 지금 상당히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분명 같이 나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천러가 돌연 잠수 아닌 잠수를 타버린 탓이었다. 휴대폰 속에서 화면에 띄워진 채팅방에는 지성이 보낸 말풍선에 1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몇시간 전까지 같이 스케줄 끝내고, 지성은 숙소로, 천러는 집으로 갔었는데, 천러가 연락이 없었다. 그것도 지성에게만. 개인 채팅방을 띄워놓은 화면 위쪽으로 드림 단체 채팅방의 알림들이 연달아 울려대고 있었다. 제일 말을 많이 하는게 그 종천러였다.
지성은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화면을 잠갔다. 단체 채팅방에서 얘기를 하느라 못본 것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딘가 울컥하는 마음에 지성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잠이라도 자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이렇게 채워진 게이지가 80%. 서서히 핀트가 어긋나는 단계였다.
100% 분노의 질투 ON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음에도 이른 아침에 또 눈이 반짝 뜨였다. 얼굴에 피곤을 덕지덕지 붙이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채팅방 알림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다. 지성은 조금 기대하는 마음으로 알림을 확인했으나, 대부분이 단체 채팅방이었고 나머지는 천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지성은 크게 실망하고는 알림을 모두 지웠다. 아침부터 기분이 영 꿀꿀했다.
천러에게 다시 선톡을 보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서, 지성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쉬는 날인데도 일찍 일어난 벌이라도 받는건지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도 천러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슬슬 게임도 지겨워졌을 무렵, 방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기에 지성이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형, 어디 가요?"
"아, 천러네 집에 잠깐—.."
현관에서 신발끈을 묶으며 답하던 마크가 눈치를 보며 뒤를 돌아봤다. 지성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마크는 서둘러 신발끈을 묶어버리고는 슬며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올게..! 그냥 숙소를 나서면서 하는 인삿말에 불과했는데 지성은 그 말이 상당히 거슬렸다. 물론 마크가 잘못한건 아니니 그에게 화살을 돌릴 수는 없었다. 이 모든 일의 잘못은 천러에게 있었다. 어제 제가 보낸 카톡을 읽씹하고는 이제껏 연락 한통 없었으면서, 마크형은 집으로 불러? 지성은 알 수 없는 스위치가 딸깍 켜지는 기분이었다.
지성은 차갑게 식은 머리를 굴렸다. 재민과 제노는 운동을 갔고, 런쥔은 하루종일 잔다고 했으니, 남은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고민도 없이 동혁의 방문 앞에 섰다. 똑똑,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성은 결의에 찬 얼굴로 동혁의 방에 들어섰다.
"형, 오늘 저랑 바다 보러 가요!"
상당히 뜬금없는 소리에 동혁이 휴대폰을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지성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결의에 차다 못해 이글거리는 지성의 눈을 보곤 흠칫했다. 하지만 동혁은 흔쾌하게 그러자고 답했다. 동혁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간단하게 나갈 채비를 하고, 카 셰어링으로 차도 빌렸다. 동혁은 오랜만에 지성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어 상당히 즐거운 마음이었다. 그에 반해 지성은 아직까지도 복수심 비슷한 것에 사로잡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동혁이 목적지를 묻자 지성은 말없이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유명한 프라이빗 해변이었다. 예약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서 비밀 데이트 장소로 많이 가는 곳. 동혁은 흥미로운 눈으로 지성을 바라봤다. 천러랑 가려고 한 곳을 나랑 같이 갔다고 하면 천러도 꽤나 배 아프겠네 싶었다.
외곽도로를 1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바다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본인확인을 철저히 하더니만, 작은 해변 안에 지성과 동혁, 둘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래도 나름 구색을 맞춰 천막과 돗자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어디서 전기를 끌어다 쓰는지, 냉장고가 뜬금없이 있었고, 그 안엔 음료와 다과가 몇개 들어있었다. 동혁과 지성은 음료를 하나씩 꺼내어 마시면서 해변을 걸었다. 애초에 짐은 간소하게 왔으니, 돗자리에 휴대폰과 지갑 같은걸 올려두고는 신발까지 벗어두고 부드러운 모래를 밟았다.
"천러가 이 모습을 보면 질투를 할까요?"
해변 산책을 끝내고 돗자리에 앉아서 바다를 보던 중에, 지성이 약간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썸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생각이 박혀있어서 그런지, 지성은 천러에게 질투가 날 때마다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고민스러워 했다. 물론 그렇다고 질투가 안나는건 아니었지만 일단은 그랬다. 동혁은 약간 풀이 죽어있는 지성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글쎄—. 천러는 잘 모르겠고, 일단 나는 질투 나는데."
"..무슨 뜻이에요?"
지성이 바닥에 꽂혀있던 시선을 동혁에게로 옮겼다.
"무슨 뜻인지 알잖아."
"..몰라요. 말로 안하면 모른다구요."
동혁이 몸을 움직여 지성의 옆에 바짝 붙어앉았다. 그리고는 허리에 팔을 둘러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지성이 흡,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천러만 보지말고 형도 좀 봐주라. 형도 지성이 좋아해."
동혁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자 지성의 눈동자가 조금 떨려왔다.
"..그럼.. 키스해줘요."
지성의 말에 동혁이 살짝 놀라며 지성을 바라봤다. 천러와 갈데까지 간 사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키스를 가볍게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성에게 있어, 키스는 최대의 반항이자 일탈이었지만, 동혁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놓칠만큼 어리석지는 않았기에, 동혁은 작게 웃고는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다.
동혁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오자 지성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게 훤히 보여서 동혁은 비싯 웃음이 났다. 어떻게 된 건지 알 것만 같았다. 섹스는 해도 키스는 안했다,. 이거지? 동혁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지성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볐다. 지성의 첫경험을 모두 천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퍽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도톰한 입술을 한참동안 물고 빨다가 살짝 벌어진 틈으로 혀를 쑥 집어넣으니 지성이 파드득 놀라는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기에 동혁은 도망가지 못하게 팔에 힘을 단단히 줬다. 혀가 진득하게 섞였다. 미약하게 느껴지던 숨결이 거의 느껴지지 않기에, 동혁이 살며시 입술을 떼었다.
"지성아, 숨 쉬어야지."
지성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크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첫키스라는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지성은 서툴렀다. 동혁은 그런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다시 입술에 쪽쪽 입을 맞췄다. 간지러운 느낌에 지성이 푸스스 웃었다. 키스라는거 되게 이상하네. 지성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동혁은 얼굴 여기저기에 쪽쪽 입을 맞추더니만 점점 밑으로 내려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이로 살짝 깨물었다가 쪼옥, 하고 자욱을 남겼다. 지성이 화들짝 놀라며 뭐하냐고 묻자, 동혁은 입술을 떼어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답했다.
"이 정도는 해야 천러가 질투를 하지 않겠어?"
동혁의 말에 지성은 수긍하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런 뻔한 수법에 넘어가다니, 동혁은 어딘가 순수해빠진 지성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나름 데이트라고 예쁘게 차려입은 브이넥 언저리로 붉은 자욱이 보였다. 얼핏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을테지만, 글쎄.. 종천러라면 알아챌 듯 싶었다.
동혁은 천러에게 보낼 사진을 찍자며 카메라를 켰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얼굴 아래로 제가 남긴 자욱을 달고 있는게 마음에 쏙 들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장 찍고는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를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자고로 질투란, 남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을 때 드는 감정이었다. 동혁이 보낸 사진을 기점으로 말풍선이 연달아 주르륵 생겨났다.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이니 사진이 화면에서 사라지는건 순식간이었다.
지성은 몇마디 답을 해주더니만 이내 화면을 잠그고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실 이제와서 든 생각이지만, 동혁과 키스를 했으니, 이제 어떤 사이가 된 건지 고민해야했다. 형은 나를 좋아한댔다. 나는 형을 어떻게 생각하지? 눈앞의 천러만 바라보느라 동혁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지성은 머리를 싸맸다. 동혁도 그런 지성을 아주 잘 알았기에,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고, 대답을 기다리는 수밖에. 천러에게만 흐르던 감정의 줄기를, 아주 작게라도 저를 향하게 만들었다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종천러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이 아이를 방치하는 동안, 그 작은 줄기는 무섭게 몸집을 불려갈 테니까. 동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지성에게 손을 뻗었다.
"이제 슬슬 갈까? 저녁 먹어야지."
지성이 그 손을 살며시 잡고는 몸을 일으켰다.
한편, 천러는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화면 속에는 지성과 동혁이 바다에서 찍은 셀카가 떡하니 있었다. 천러는 수줍게 웃고있는 지성을 보면서, 이를 뿌득 갈았다. 목덜미에 제가 남긴 것이 아닌 붉은 자욱이 얼핏 보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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