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피노키오
범죄자 소재 주의
"이게 마지막이죠?"
"어어, 얼른 놓고 나가자고. 하여튼.. 소름끼쳐 죽겠네."
대한민국 범죄 수사 역사상 기록적인 정확도를 가진 '피노키오 프로젝트'는 완전 폐기됐다.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이 완벽하게 구현된 거짓말 탐지 안드로이드 '피노키오'는 참고인 조사 또는 피의자 심문 과정에서 그들의 거짓을 분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심박수 측정을 위해 손을 맞대고, 동공 반응 확인을 위해 눈을 맞추는 등 일련의 행동들로 조사실의 긴장감을 완화하여 온건한 방식으로 진술 혹은 자백을 받아내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던 피노키오들은, 이제 정부 관리구역 지하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유능했던 피노키오의 정확성 하락이었다. 거짓 판별률 100%를 자랑하던 피노키오 해찬의 정확도가 20%대로 떨어진건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이런 피노키오를 더이상 생산/보급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판단, 범죄 수사에 유용하게 쓰이던 피노키오들은 전량 폐기 처분이 내려졌다.
"그런데 왜 폐기시키지 않고 이렇게 모아놓는 걸까요?"
"높으신 분들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수천개의 안드로이드가 셧다운 상태로 줄줄이 세워진 이곳은 N-825 지하 창고. 사람과 너무 유사한 외형 탓에 완전 폐기를 두고 파가 갈렸다. 사람과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기계는 기계일 뿐이니 폐기시켜야 한다는 파와 사람과 구분할 수 없고, 범죄 수사에 상당한 공헌을 한 것을 인정하여 용도를 변경하여 재활용해야 한다는 파로 나뉜 것이었다. 이 논쟁은 쉽사리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전국에 보급된 피노키오가 전량 N-825 지하 창고로 다시 모이게 된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피노키오들은 의미없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20XX년 XX월 XX일 수요일. 한치의 얼룩도 없이 깨끗하던 지성의 백발은 검붉은 피가 튀어 붉으스름하게 젖어있었다. 그는 사방에 피가 낭자한 방 한가운데에 칼을 들고 서있던 탓에 단숨에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들이닥친 그 순간부터, 연행되어 구치소에 수감되는 순간까지 지성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한 모습이었다. 이런 그의 행동들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칼에 남은 지문이며, 모든 정황들이 지성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어서 자백해. 자백하는게 형량 줄이기에도 좋을테니까."
"미안하지만 저는 자백할게 없어요."
지성은 취조를 받을 때마다 여유로운 모습을 취했다. 정황으로만 따지자면 바로 교도소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증거라고는 지성이 손에 쥐고 있던 칼의 지문 뿐이었고, 지성에게 단 한건의 전과도 없다는 점과 직접적인 살해 동기가 없다는 점이 경찰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직 재판을 받기 전이기에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 지성을 범죄자로 대할 수도 없었다. 차라리 지성이 자백이라도 하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을텐데, 지성은 범행에 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저는 아무 죄도 없다는 듯 굴었다.
"와, 이게 그 유명한 피노키오인가, 그건가?"
그래서 수사관들은 해찬을 투입시키기로 했다. 조사실에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지성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해찬을 보고 눈을 빛냈다. 해찬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지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저는 거짓말 탐지 안드로이드, 해찬입니다. 심박수 측정을 위해 손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동공 반응 확인을 위해 대화 시, 반드시 눈을 맞춰야 하며, 시선 회피 동작이 있을 경우,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해찬이 입력된 사전 안내사항을 얘기하고 손을 내밀자, 지성은 그 손을 부드럽게 맞잡았다.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살결이 진짜 사람 같아서 지성은 더욱 흥미로운 눈을 했다.
"구치소 생활은 어떠신가요."
"뭐, 나쁘진 않아요."
거짓.
"지난주 수요일에 무엇을 하셨나요?"
"수요일? 그때 내가 뭘 했더라.. 그냥 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요?"
거짓.
"평소 부모님과 사이가 어땠나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나는 집에서 버린 자식이었고, 나도 부모님한테 큰 애착은 없었거든요."
거짓.
"부모님이 살해된 현장에 계셨는데, 그 당시 상황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가니까, 집이 그랬고.. 바닥에 칼이 떨어져 있길래 주웠어요. 그때 집에 경찰이 왔고, 다음은 알죠?"
거짓.
해찬은 살짝 웃는 얼굴로 지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지성 역시 해찬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지성은 해찬과 대화하는 것이 정말 재밌기라도 한듯 의자를 끌어다 더욱 가까이 붙어 앉았다. 조금의 동요도 없는 평온한 모습에, 밖에서 지켜보던 수사관들은 해찬의 분석 결과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곧이어 해찬이 조사실을 나왔다.
"용의자 박지성, 분석 결과 보고 올립니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용의자 박지성의 진술 중 98%가 거짓으로 판별됩니다."
수사관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그리고 해찬은 지성이 있는 조사실을 흘끔대다가, 피노키오 숙소로 돌아갔다. 그가 말했던 무수한 거짓 중에, 단 한가지 섞여있던 진실이 해찬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거짓말 탐지는 수사 중에 한번만 한다던데. 나는 예외인가봐요?"
지성은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소환된 조사실에서, 제 맞은편에 앉은 해찬을 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있었고, 입가에도 미소가 걸쳐져있었다. 해찬은 별다른 말 없이 손을 내밀었고, 지성은 또 그 손을 맞잡았다. 두근두근하는 작은 맥박이 데이터가 되어 해찬의 머릿속에 입력됐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일정한 맥박. 그리고 한치의 떨림도 없는 눈동자. 뇌파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걸 알아챌 수 없었을 터였다. 해찬은 가만히 지성을 바라보다가, 입을 떼었다.
"지난번 거짓말 탐지 조사는 98%의 거짓이 판별되어, 심층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98%밖에 안됐어요? 뭘 진짜로 말했지. 100%일줄 알았는데."
정말 아쉬워 보이는 지성의 모습에, 해찬은 눈썹을 한번 까딱였다.
"이번 심문은 사건 수사에 전혀 관계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번 들어는 보구요. 사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믿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해찬은 인정한다는듯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지성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해찬을 믿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가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이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해도, 안드로이드는 안드로이드일 뿐이고, 그의 소속은 경찰 측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해찬의 독단적 심문 요청이었고, 해찬은 여기서 나눈 대화를 수사관들에게 전달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납득할 수 없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것이었다.
"지난번 심문 때, 본인이 진실을 말한게 어떤 건지 알고 있나요?"
"모르겠어요. 다 거짓으로 말하려고 했는데."
진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슬펐나요?"
"당연하죠. 부모님인걸요."
진실.
해찬은 지난번과 똑같은 판별에 인상을 구겼다. 모든 정황이 지성을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살인범이 슬픈 감정을 느낀다니. 지금껏 많은 수사에 참여해왔지만, 이런 케이스는 흔치 않다보니 해찬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지성의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해본 결과, 지성과 그의 부모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앞선 심문에서 지성이 말한 것처럼, 지성은 부모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애정을 받지 못한채 자랐고, 지성 역시 부모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지성의 진술은 거짓으로 판별이 되었다. 해찬은 지성의 속사정이 알고 싶어졌다.
지난 심문에서 지성이 말한 수많은 거짓 중에 단 하나 있는 진실이 이것이라는게 밝혀지면 수사에 혼란이 생길 수 있기에, 일단 해찬은 분석 결과만 보고했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판별이 잘못됐을 경우를 대비하여 재심문을 요청하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지성 역시 똑같이 대답하고, 똑같이 진실로 판별되었다. 해찬은 지성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해소하고자 했던 의문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채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게 진실이었나 보네요?"
해찬은 지성의 여유로운 표정을 분석할 수 없었다. 심박수와 동공 반응, 심지어 뇌파까지도 그가 평온한 상태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해찬은 지금껏 평온하던 얼굴을 살짝 구겼다. 이에 지성은 재밌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피노키오도 그런 표정이 있구나? 지성의 말에, 해찬은 평소처럼 살짝 웃는 얼굴을 했다.
"웃는 얼굴도 잘생기긴 했는데, 방금 인상 좀 찌푸린거 진짜 잘생겼네요. 약간 곰돌이 닮았다는 얘기 자주 듣지 않아요?"
조금 흥분된 심박수가 감지됐다. 신이 나거나 즐거울 때의 반응. 해찬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정말 이런 아이가 부모를 죽였다고? 직접 보고 판단한 지성은, 결코 그런 일을 벌일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데이터가 너무 축적되다보니 처리에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해찬은 서둘러 심문을 종료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오래된 데이터를 추출하고, 잡다한 데이터는 비우면 좀 나아지겠지 싶었다.
해찬이 조사실을 나가고, 지성은 혼자 조사실에 앉아있었다. 담당 수사관이 올 때까지 개인행동은 금물이었다.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며 지성은 작게 웃었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좋았고.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으려나. 곧이어 담당 수사관이 들어와 지성을 데리고 나갔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구치소에서 지내야 하는 지성은, 해찬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했다.
"피노키오님은 저를 너무 좋아하는거 아니에요?"
지성과 해찬의 만남은 근시일내에 이루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경찰이 다시 거짓말 탐지를 해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지성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해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찬은 지성이 내민 손을 맞잡고, 그와 눈을 맞췄다. 오늘도 그는 지나치게 평온했다.
"그냥 해찬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러죠, 뭐."
"구치소 생활은 어떠신가요."
"뭐.. 이번엔 솔직히 말해줄까요? 좀 힘들죠, 아무래도. 집이랑은 다르니까."
진실.
해찬은 눈썹을 까딱였다. 웬일로 순순히 진실을 말하지? 해찬의 표정에, 지성은 작게 또 웃었다. 눈썹 까딱이는게 버릇인가봐. 해찬의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관찰하는게 지성의 소소한 재미였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수요일에 무엇을 하셨나요?"
"그때 잠깐 밖에 나갔어요. 왜 나갔는지는 비밀."
진실
"평소 부모님과 사이가 어땠나요?"
"엄청 나빴죠. 외동인데도 부모님한테 사랑을 못받았거든요. 너무 미워서.. 반항 좀 하니까 무슨 벌레 취급하던데. 그래도 사랑하긴 했어요. 어쨌거나 가족이니까. 약간 뭐, 애증? 그런거?"
진실.
"..심문 마치도록 하죠."
해찬은 더이상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오늘 지성이 말한 모든 것이 진실이었음에도, 차마 묻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 내가 죽였다는 말이 나올까 두려웠다. 지금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조사실의 문을 여는 순간, 해찬은 평소의 미소가 걸친 표정을 했다. 해찬이 조사실에서 나오자, 수사관들은 왜 질문을 마저 하지 않았냐며 따졌다.
"지난번과 답변은 달랐지만, 모두.. 거짓으로 판별되었습니다. 더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 심문 종료하였습니다."
해찬은 처음으로 수사관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해찬의 말에, 수사관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맞는데, 마땅한 증거가 없었다. 물론 그가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과 흉기에 지문이 묻어있었던 것을 증거로 재판에 넘기고, 유죄를 주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찾아내지 못한 다른 용의자가 있는 거라면? 이대로 지성을 재판에 넘기기엔 찝찝한 구석이 많았다. 꽤 복잡해진 상황에 수사관들은 심란해했다. 해찬은 그런 수사관들을 뒤로한채 숙소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심란한 이는 해찬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십시오."
"박지성이랑 좀 붙어다녀 보라고. 조사실이라는 공간이 좀 경직되어 있다보니까 각잡고 거짓말 하려면 할 수 있는 곳이잖아. 좀 편한 분위기면 진실을 말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네가 전담해서 붙어있어봐. 진실 판별 나면 바로 보고하고."
"..네."
경찰서를 나온 해찬은 답답함에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미 지성은 진실을 말했다. 아마 그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면, 이 사건은 해결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해찬은 그러질 못했다. 왜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자 답은 없었다. 그때, 해찬의 앞에 경찰 승합차가 한대 멈추고, 그 안에서 지성이 내렸다.
"이렇게 밖에서 보니까 또 반갑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지성이 악수를 청하자, 해찬은 그 손을 맞잡았다. 작게 느껴지는 심박수는 이번에도 평온했다. 해찬은 지성을 데리고 따로 마련된 숙소로 향했다. 경찰서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에 들어서면서, 지성은 소파에 벌렁 몸을 누였다. 해찬은 그런 지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아 후, 한숨을 내쉬었다. 안그래도 지성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이제 같이 살기까지 해야한다니. 마음이 심란했다.
"해찬, 혹시 밥 같은 것도 먹어요?"
"먹습니다. 음식물을 분해하면서 에너지를 얻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럼 우리 밥 먹어요."
문틈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말하는 모습이 꼭 미어캣 같았다. 해찬은 심란한 마음을 한 구석에 미뤄두기로 하고, 방을 나섰다. 어차피 같이 살게 되었으니, 무엇이든 해결할 수는 있을 터였다. 그게 이 사건이든, 제 마음이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아직도 진실 판별이 안나왔어?"
"..경계가 심한 것인지 아직까지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부분에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친밀감을 쌓고 있는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나가봐."
해찬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왔다. 지성과 동거를 시작한지 벌써 일주일. 해찬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다. 지성을 경찰에 넘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보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해찬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성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을. 구치소나 조사실이 아닌, 집이라는 안정감이 그의 진실을 끄집어냈다. 해찬이 스치듯 던진 질문에, 지성은 진실만을 답했다. 부모에 대한 애증이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하지만 해찬은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지성을 경찰에 넘기지 않았다.
- 해찬! 오늘 저녁은 마라탕 어때요?
"안돼. 이틀 전에도 먹었잖아."
- 아앙, 그럼 피자?
"그건 어제 먹어서 더 안돼. 오늘은 밥 먹어. 밥 해줄게."
- 치.. 알았어요. 언제와요?
"금방 갈게."
해찬은 경찰서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서 내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면, 다 누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고, 저를 와락 끌어안는 지성이 있다. 해찬은 익숙하게 지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안은채로 집안에 들어섰다. 역시 그를 보낼 수는 없었다.
동거를 시작한 이후, 한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지성은 생각보다 애정이 많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적어도 한끼는 같이 먹어야 했고, 거실에 앉을 때면 꼭 나란히 붙어않는걸 좋아했다. 직접적으로 손을 잡아오거나 하진 않았지만, 작은 터치가 많았고, 포옹을 좋아했다. 집에 돌아오면 매번 현관에 서서 맞이해줬고, 집을 나설 때 역시 매일 배웅을 해줬다. 해찬은 지성의 그런 행동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제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해찬은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욕심이 생겨났다. 지성이 언제까지나 제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욕심이.
"박지성은 재판으로 넘길 거야. 이제 숙소로 돌아오도록 해."
해찬은 평소처럼 웃는 낯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잇살을 깨물고 있었다. 수사관의 표정은 짜증이 살짝 섞여있었다. 워낙 유능한 탓에 수많은 수사에 투입되던 해찬이 박지성 사건에 고정 투입된 상태라 모든 진행상황이 엉망이었다. 그렇다고 해찬이 박지성 사건에 그렇다 할 성과를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경찰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박지성 사건이 존속 살인 혐의라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기야 했지만, 그래봤자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이 순간에도 범죄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곳에도 해찬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사관들은 박지성 사건을 재판으로 넘기고, 케이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물적 증거라고는 지문 뿐이고, 나머지는 정황 증거일뿐이지만, 밀어붙여볼만했다.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피고인 박지성은, 존속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재판장에는 탄식이 가득 찼다. 사람들은 야유를 쏟아냈으나, 지성은 웃으며 유유히 재판장을 벗어날 뿐이었다. 온갖 매스컴에서는 이 케이스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경찰은 정황과 지문 정도의 증거만으로 지성을 재판에 넘긴 것이 자신들의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인정했다. 지성은 물밀듯이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을 전부 거절하고,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단 한명, 해찬만을 제외하고. 지성은 해찬이 마련해준 집에 머물면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저 세상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조금 따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성은 언제나 지루하고 따분한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성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해찬이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하나뿐인 안드로이드. 지성은 그런 해찬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어떠한 방법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몇달이 지나고, 세상이 지성의 일을 점차 잊어갔을 무렵, 경찰청이 발칵 뒤집히는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분기당 한번씩 받는 정확도 테스트에서 해찬의 정확도가 20%대로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피노키오 연구원들은 그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다른 피노키오들도 대대적으로 검사를 해본 결과, 대부분의 피노키오의 정확도가 대체적으로 낮아져, 거짓을 정확히 분별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게 언제부터 떨어진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점이 큰 문제를 야기시켰다. 만약, 박지성 사건 때부터 정확도가 떨어졌던 것이라면? 이미 무죄로 판결이 난 상황인지라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전체적인 정확도가 너무 떨어졌어요. 폐기시켜야 합니다."
"수리를 하면 정확도는 다시 올릴 수 있어요. 피노키오들이 수사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아시잖습니까?"
"정확도가 떨어질 때마다 수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비용은 누가 댈 것이며, 다시 올라간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세금으로 수리를 계속했다가는 국민들의 여론이 안좋게 형성될 겁니다."
"이번이 특별한 케이스일 뿐, 수리를 이렇게 대대적으로 해야할 일은 잘 생기지 않습니다. 수리비용 또한 데이터를 초기화시키는 것뿐이라 그렇게 비싸지 않구요. 그들이 수사에 도움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비싼 값도 아닙니다."
피노키오의 존폐 여부를 두고, 갑논을박이 이어졌다. 적절한 타협점이 잡히지 않아, 피노키오들은 모든 수사를 중단하고 잠정 대기 상태로 남았다. 그렇게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숙소에서 대기하던 피노키오들은 셧다운 시킨 뒤, 창고로 옮기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아무리 대기 상태라고 해도 그들의 전원이 켜져있는 이상, 유지비가 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정에, 대부분의 피노키오들은 제 발로 지정된 창고로 향했다. 하지만 몇몇 피노키오들은 창고에 가둬지는 것에 거세게 반발하여 개중에는 도망치는 피노키오도 있었다.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이 완벽히 구현된 외형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들기에도 적절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내장된 GPS로 위치를 알아낸 뒤, 강제 셧다운을 시키고 창고로 옮겨졌다.
"..미안해."
"해찬이 미안해할 일 아니잖아요. 아직 폐기 결정난 거 아니니까.. 기다릴게요."
현관에 서서 해찬과 지성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인사를 나눴다. 해찬은 지성을 두고 떠나는게 못내 미안한 눈치였다. 지성은 작게 웃어보이며, 해찬을 끌어안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지성의 말에 해찬은 더욱 세게 그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낱 안드로이드였던 제게 이런 사랑을 알려준 지성에게 고마웠다. 밖에서 어서 나오라는 재촉이 들려왔다. 해찬은 그제야 지성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집을 나섰다. 해찬은 구속구를 손목에 차고, 담당자를 따라 걸었다. 까맣게 썬팅된 차는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N-825에 도착해서는 관리자에게 인계되어 사무실에 들어갔다. 전원을 종료하기 전, 데이터를 백업하고 초기화시켜야 했다. 해찬은 의자에 얌전히 앉아 데이터 추출을 했다. 지성과의 기억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최초의 데이터가 모두 빠져나가고, 관리자가 다가왔다. 해찬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제 정말 끝이었다.
"이게 마지막이죠?"
"어어, 얼른 놓고 나가자고. 하여튼.. 소름끼쳐 죽겠네."
"그런데 왜 폐기시키지 않고 이렇게 모아놓는 걸까요?"
"높으신 분들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끼익—, 쾅. 전국에 남아있던 마지막 피노키오가 N-825 지하 창고 가장 끝자리에 세워졌다. 관리자들이 나간 뒤의 창고는 지독하게도 고요했다.
"음음—, 허술하네."
어둠만이 짙게 깔려있던 창고 한켠에 숨어있던 지성이 손전등을 켜 내부를 밝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수천개의 피노키오들 사이에서 지성이 찾는건 해찬이었다. 지성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마 피노키오들은 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지성은 모든 피노키오가 회수되기만을 기다려왔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으나, 오늘로써 모든 피노키오가 한 자리에 모였다. 지성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해찬을 찾았다. 그의 한손에는 손전등을, 다른 한손에는 기름통이 들려있었다.
"아, 여기있다."
지성은 눈을 감고 있는 해찬을 보고, 그를 꼭 껴안았다. 사랑하는 나의 피노키오. 지성은 기름통을 내려놓고,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는 해찬을 업고 유유히 출구로 향했다. 창고를 나서면서, 지성은 담배에 불을 붙여 던졌다.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있던 기름은, 담배의 작은 불씨에 반응하여 거센 불길을 일으켰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 창고는 알아서 불길을 잡을테지만, 안에 있던 수천개의 피노키오들은 모두 타버릴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성은 해찬을 충전시키면서, 메인보드를 꺼내 프로그램을 재설정했다. 아무리 초기화를 했더라도 더스트 데이터는 남기 마련이었고, 지성은 더스트 데이터만으로도 기존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었다. 지성은 작게 허밍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다른 기억은 모두 지우고, 자신과의 기억만 되살릴 계획이었다. 첫만남도 조금 낭만적으로 바꾸면 좋겠지. 아예 이름도 바꿔볼까.
프로그래밍을 마친 후, 지성은 이전에 넣어둔 칩을 빼냈다. 테스트 시기에 맞춰 해찬 모르게 넣어둔 칩은, 해찬의 정확도를 떨어트리는 용도가 아니었다. 정확성 테스트를 받을 때, 해찬과 연결될 PC의 정확도를 떨어트리는 용도였다. 멍청한 연구원들은 본인들이 만든 안드로이드는 의심하면서, 그를 측정하는 테스트 프로그램은 의심하질 않았다. 사실 내가 죽인거 맞아. 지성이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래, 이름은 동혁이 좋겠다. 동혁이 형."
지성이 이름을 부르자, 동혁이 반짝 눈을 뜨고 지성을 바라봤다.
"어, 어.. 내가 뭐 하고 있었지?"
"우리 이제 저녁 먹어요."
"어어.."
동혁은 조금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마지막 기억은.. 현관에서 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조금 부정확한 기억에 동혁은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이내 지성의 부름에 부엌으로 향한 동혁은 익숙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준비했다. 지성은 식탁에 앉아 그런 동혁을 바라봤다.
거실에 틀어져있는 TV에서는 N-825 지하 창고의 화재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충분히 방화의 흔적이 있었으나, 시설이 노후되어 있었고, CCTV와 보안시설이 모두 모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관리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동혁은 본인이 피노키오였다는 사실을 앞으로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설령 알게 되더라도 괜찮았다. 그때 또 다시 설정하면 되니까. 지성은 소리없이 웃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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