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시간
너도 알고, 쟤도 알고, 걔도 알고, 좆같지만 나도 아는 이야기. 아, 더럽다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라 상황적 맥락에다 잘 끼워 맞춰서 판단해야 하는 것 정도는 전제 조건으로 삼고. 그러니까 이게 다 무슨 말이냐면 출신이 더럽다 이꼬르 기호 넣고 너 되게 안 어울리는 일 한다, 라고 적으면 된단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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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서 일하되 지향은 양지에 둔다. 이 표현이 중의성을 갖는다는 건 평생 몰랐으면 좋을 법한 앎이다. 형, 나도 학교 그만 다니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랬지. 아니, 형. 끝까지 들어 봐. 빨리 공부나 해. 숙제 다 했어? 말단에서부터 차곡차곡 올라갔다던 아버지는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를 신화 속 존재였으니 이런 얘기 툭 까놓고 내뱉을 사람은 형(이래봤자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버지 비서였지만)뿐이었다. 뭐, 형도 들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아무튼 간 그게 계기다. 안 되는 거 없이 살았던 나름 뒷세계 도련님이 아무리 졸라도 뚫리지 않는 벽을 마주했을 때. 이틀을 앓아누울 만큼 처맞고 선택한 건 청현고등학교 입학이다. 요즘 유행하는 유전자 만능론에 근거하면 당연한 선택이긴 했다. 애초에 유전자에 각인 된 게 '두 발은 음지에 이상은 양지에' 였으니. 물론 생부에 비추어 보자면 음지는 뒷세계 조직이고 양지는 자본주의의 가치 수호(대충 돈 많이 버는 게 최고라는 뜻)이지만.
그리고 여기서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이 선택으로 인생은 거짓말의 연속이 되었다. 국정원에 믿을 만한 첩보원 하나 있으면 조직인지 기업인지 아버지 사업인지 아무튼 더 좋지 않겠어요? 이건 대내용 포부. 그러니까, 아버지를 비롯한 조직 사람들에게 기특한 생각이라며 칭찬 받았던 지원 동기. 어려서부터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능력주의를 표방한다 할지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구저쩌구 이하 생략. 이건 청현고등학교에 합격할 때 얘기했던 지원 동기.
사실 둘 중 어느 게 진심인지는 본인조차 모른다는 게 아까 말한 너도 알고, 쟤도 알고, 걔도 아는 이야기. 출신이 더럽다는 건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재정의된다. 그러니까 당신이 키우는 게 국가의 충실한 개가 될지 늑대 새끼가 될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소리다. 뭐가 됐든 도망칠 길이 있는 인간은 간절하지 않은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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