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uz by 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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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년 전. 자신 있어? 아니. 그럼 왜 해준다고 했어?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서. 어? 낭만적이지? 이건 태이한이 제 형(다시 또 피는 안 섞였는데 법적으로 진짜 형은 맞는 어떤 사람)과 나눈 대화다. 그리고 나서 한 건 이번 학기 기말고사 시험지 빼돌리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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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굴렸다, 그것도 아주 어설프게. 아닌가, 이건 머리를 굴렸다고 하기에도 애매한데. 형. 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부르고 걔를 빤히 쳐다봤다. 좋댄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헤실대길래 물었다. 그, 제가 기말고사 준비 중인데 잘 모르겠어서…. 또 빤히 쳐다봤다, 도와주겠다는 답이 나올 때까지. 대충 삼 초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답은 일 초만에 나왔다. 아, 좀 도와줄까?

(이하는 자기소개 겸 그 형 소개) 도와주긴 개뿔. 저 새끼 성적 겨우 넘겨서 붙어 있는 거 빤히 아는데. 속으로 조소를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 뒤로 옆자리에 달라붙어 앉아서는 이것저것 물어봤다. 수업을 듣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텅 비어있는 대가리에 잠시 감탄하다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형, 내가 사실 1학년 기말고사 시험지를 구했어. 그냥, 뭐…. 별로 안 어렵던데? 컴퓨터 몇 번 두드리니까 되더라고. 형도 해줄까? 고민하길래 덧붙였다. 내가 중간고사 때도 했었거든. 근데 안 걸리더라고. 개구라다. 근데 걔는 넘어왔다.

나름 최선을 다하는 척도 해줬다. 물론 실제로 한 건 보안에 걸리게 침입 흔적만 남기는 게 다였지만. 그 뒤로는 예상과 똑같이 흘러갔다. 그 당시의 나는 1학년, 형은 2학년. 나는 알파, 형은 오메가. 난 억울함을 피력했다. 선배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그건 먹혀 들어간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했냐고 물으면… 글쎄, 그냥 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라고 하면, 글쎄… 제 아버지도 아니면서 딱 달라붙어 일 배우는 꼴이 보기 싫어서. 퇴학당하면 미운털 좀 박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완벽한 계획에 간과한 게 하나 있다면 키운 정은 낳은 정을 못 이기고 사회적 약자의 결속력은 강자의 질투심을 상회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죄책감에서 기인한 책임감은 자식을 향한 사랑을 능가한다는 거다.

형이 퇴학 당하던 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난 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열심히 종알거렸다. 여전히 대꾸는 없었다. 난 그게 서운했다. 그 형이 아버지를 지키려다 죽은 친구의 아들이란 것도 모르고. 우리 아버지가 오메가라는 사실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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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어려운 거냐? 뭔 소리야. 지금 네 인생이 바둑이(학교 건물 뒷그늘에 맨날 누워 있는 팔자 좋은 개)보다 쉬워 보여. 야, 그래도 개새끼랑 비교는 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지랄 좀만 성의있게 해 주라. 나 상처 받기 직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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