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맼인표] nailless 中 2
보건교사안은영 매켄지 x 홍인표
홍인표가 침대 아래 넘어져 있었다.
혼자서는 침대 위로 제대로 올라갈 수가 없겠는지 몇 번 매트리스 위로 팔을 내어 버둥이던 인표가 자꾸만 미끄러 떨어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표의 왼쪽 다리는 눈에 띄게 말랐고, 오금을 세로지르는 기다란 흉터가 있었으며,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았다.
매켄지는 홍인표의 하지 보조기를 부숴버렸다.
"얌전히 있어야지."
- ... ...
"그렇게 보지 말고."
사람 무섭게. 전혀 겁먹지 않은 말투로 중얼인 매켄지가 인표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넣고는 가뿐히 몸을 들어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 아마 벗겨둔 옷을 찾아 내려왔던 모양인데, 팬티 한 장 못 찾은데다 다시 올라가지도 못 한 상태로 버둥거리고 있어서는. 푹신한 이불 위에 웅크린 인표가 얼굴을 찡그리곤 입을 뻐끔였다. Okay, Okay. 눈이 따가울 정도로 거센 무음의 항의를 외면한 매켄지가 홀로 욕실로 들어선다. 플라스틱 조각 두어 개와 약간의 고무밴드가 사라졌다고 한 발자국도 제대로 걷지를 못 하는 꼴이라니. 하자투성이 젤리를 피실 비웃던 얼굴은 세면대의 거울을 마주하자 곧장 조용해졌다. Hey, you idiot. 누가 누굴 보고 웃을 때야.
솔직하게, 제 스스로 생각해도 기이한 집착이었다. 물론 홍인표의 보호막은 젤리이터라면 누구나 흥분할만한 젤리가 맞다. 그런 보호막을 흉내내는 네일리스? 다들 저 보호막이 붙은 손가락 젤리 한 토막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든 내밀걸. 보호막을 잃을 수 없다는 욕심 정도야 없는 게 이상하지. 하지만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캡처를 하면 그만이다. 씨앗 안에 갇힌 젤리는 바스러지지도 않고 얌전히 고여있을 테니까. 네일리스의 신체와 들러붙어버린 보호막과 항상 접촉하고 싶은 거라면 그 말랑한 몸을 토막낸 뒤 젤리 박제 전문가를 불러다 보존처리를 하는 것도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성공만 한다면 그쪽이 더 돈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 네일리스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드는 건, 글자 그대로 손에 움켜 쥐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 쉬운 방법을 내버려두고 네일리스의 보조기를 부숴버린 건 명백히 어딘가 비틀린 행동이었고. 미적지근한 물이 나오는 수도를 돌리자 순식간에 기분이 나쁠 정도로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얼음장 같은 물에 몇 번이고 얼굴을 닦아내던 매켄지가 아예 물을 머금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쭉 쓸어넘겼다. 축축해진 머리칼이 이마를 훤히 드러내며 두피에 들러 붙었다.
지금 매켄지는 네일리스가 도망을 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하급 중의 하급, 가장 쓸모없는 젤리를.
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매켄지가 다급히 욕실 밖으로 나섰다. 멍청한 네일리스가 방금 전과 똑같이 침대 아래에 넘어져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할아버지 같은 흰색 트렁크를 입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지. 아마 침대 밑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걸 찾아낸 것 같다. 허연 팬티를 입은 허연 홍인표는 목덜미만 조금 붉었다. 넘어진 게 아팠거나, 또 넘어진 걸 들킨 게 민망했거나. 아니면 제게 또 짜증이 났거나. 매켄지에게서 헛웃음이 터졌다.
"어차피 벗길 건데 왜 자꾸 입냐고."
- ... ... ...!
"Okay, Okay. 차암 잘 어울리네. 꼭 입고 있어."
또 잔소리. 삿대질을 하는 검지를 매켄지가 콱 깨물자, 숨을 들이켰는지 인표의 가슴이 훅 부풀었다. 목소리 하나 없이도 홍인표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걸 느끼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했다. 이것도 일종의 재능 아닐까. 아예 손목을 붙들은 채로 온통 말랑거리기만 하는 손끝을 잘근거리다 혀를 내어 핥으면, 입안에서 보호막의 단내가 진동을 했다. 그대로 시선을 들자 꾹 다문 홍인표의 입술이 우스꽝스럽게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간지러운데 아직 삐진 게 안 풀려서 억지로 참고 있나 보지. 일부러 혀를 더 진득하게 굴리자 인표의 입술이 아주 요동을 쳤다. 지켜보는 매켄지에게서 기어이 커다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을 만큼, 진짜 바보같이.
"바보 같아."
- ...! ...!!
"이리 와. 역시 그건 다시 벗자."
- ...!!
"옳지, 엉덩이 들고."
물을 먹여 죽여놨던 머리칼은 그새 다시 탱탱하게 컬을 살려 구불거리고 있었다. 원래 파마머리가 그렇다. 물을 묻혀 죽이려 들면 더 곱슬거렸다. 매켄지는 그걸 몰랐다.
목련고의 한문 선생은 영 웃지를 않았다. 아예 웃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복도에서 가끔 과하게 밝은 톤으로 인사하는 아이들을 만나거나, 급식에 새우튀김이 나오거나, 안은영에게 무언가 조잘조잘 얘기할 때면 잠깐 입꼬리를 올리곤 했다. 따지자면 하루에 두어 번은 웃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밝은 톤으로 인사를 건네는 원어민 선생에게만 빼고.
홍인표는 가벼운 목례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매켄지에게 말조차 붙이질 않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저를 보며 눈밑살이 볼록해지도록 웃는 네일리스와는 영 다른 사람처럼.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저를 보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홍인표를 마주할 때마다 매켄지는 어떤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홍인표'를 똑바로 주시한 적은 없었다. 중요한 건 그를 둘러싼 보호막이었고, 속에 든 인간은 웃든지 울든지 알 바가 아니었으므로. 그런데 요즈음 매켄지가 진짜 홍인표를 보며 드는 감정은, 뭐라고 할까. 보호막에 대한 감상보다는. 약간... 짜증이 난다고 할까. 교무실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뒤적이는 인표를 파티션 너머로 빤히 바라보던 매켄지가 몸을 일으켰다.
"홍쌤."
"네? 아... 매켄지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홍쌤은 어떤 음식 좋아해요?"
"...지금 그걸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성감대가 어디예요? 라고 물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 방어적인 태도로 나올 필요가 있나. 물론 그런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매켄지는 홍인표 스스로도 모르고 있을 성감대 위치를 모조리 꿰고 있었으니까. 이 한문 선생은 후배위를 할 때 제 허리 골 한가운데를 엄지로 눌러 비벼 주면 온몸을 파드득거릴 정도로 껌뻑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서글거리는 웃음을 씌운 눈이 슬쩍 홍인표의 허리춤을 내려보다 다시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홍인표는 여전히 책상을 향해 허리를 꼿꼿이 세워서는 매켄지를 향해 몸조차 제대로 돌리지 않고 있었다.
"회식 메뉴, 다음부터 돌림판으로 한대요.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음식 넣고 랜덤으로. 수학 선생님이 저보고 조사해달라고 해서요."
"아... 전 다 괜찮아요. 그냥 삼겹살이면 돼요."
"삼겹살이 홍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회식 메뉴 조사하시는 거 아녜요?"
공적인 업무로 물은 질문이라는 걸 깨닫자 경계심이 조금 풀린 건지 의자에 앉은 홍인표의 몸이 약간 돌아가긴 했지만, 연달은 질문에는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저 얼굴을 분명히 봤는데. 언제였더라. 손가락을 빨아 줄 때였나. 넘실거리는 보호막의 빛 탓에 얼굴이 조금 뭉그러져 보여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저 큼직한 보호막 안으로 머리를 비집어 넣어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는다면 똑바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네일리스가 아닌 진짜 홍인표의 얼굴을 그렇게 잡았다간 난리가 날 것이므로, 매켄지는 뺨을 붙드는 대신 홀로 팔짱을 꼈다.
"네. 근데 좋아하는 회식 메뉴 아니고 좋아하는 음식 물어봤잖아요. 전 홍쌤 Favorit 궁금한데."
"굳이 그걸 알 필요는 없으신 거 같은데..."
"에이, 좀 알려 줘요~"
응? please~ 실실 웃는 얼굴과 달리, 매켄지의 머릿속은 어쩐지 침침해졌다. 삼겹살? 그래요. 길어봐야 30초면 끝났을 대화였다. 안은영 덕에 단순한 씨앗으로는 보호막 캡처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제 와서 홍인표와 친분이 필요해진 것도 아니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정보를 이렇게 살살 꼬셔내는 이유가 뭔지. 그리고 고작 그런 것도 말해 주지 않는 이유는 뭔지. 홍인표에 대한 쓸데없는 정보 백스물세 가지 정도는 네일리스 덕에 이미 차고 넘치게 알고 있는데.
그렇지만 네일리스는 홍인표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말할 수 없지.
Fuck.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불퉁한 짜증이 울컥 솟는 탓에, 매켄지는 눈주름이 푹 패이도록 부러 더 크게 웃었다. 그래도 여전히 홍인표가 좋아하는 음식은 궁금했다. Fuck, Fuck. 젤리와 너무 많이 붙어먹어서 뇌에 젤리가 끼기라도 한 걸까. 과도한 스마일이 다소 기괴하게 보였던 탓인지, 한문 선생은 대관절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거 좀 알려 준다고 큰일 나요?"
"그건 아닌데요."
"Then what's the matter? 빨리 알려 줘요. 다른 선생님도 물어봐야 해요."
"아니..."
"쌔앰."
"...올갱이요."
올갱이된장국.
올갱이가 뭔지 아세요? 그러니까, 다슬기인데요. 저희 집에서 일하신 아주머님이 충청도 분이라서 올갱이된장국이라 하셨거든요. 근데 그분이 요리를 진짜 잘하세요. 그렇게 경계를 하더니, 막상 입이 터지자 제가 좋아하는 걸 이야기하는 게 신이 났는지 홍인표는 조잘조잘 길게도 올갱이된장국을 설명했다. 그렇게 한참을 된장국 속에 가득한 올갱이를 한술 가득 떠먹는 만족감이며 국 속에 아욱이 푹 녹아있는 게 얼마나 맛있는지 설명하던 인표가 뒤늦게야 멋쩍은 기분이 들었는지 말을 뚝 멈추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원어민 선생에게만 보여 주지 않던, 입꼬리가 올라가는 짧은 웃음을. 순간 매켄지는 머릿속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올, 뭐요? 진짜 상상도 못 한 대답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그런 괴상한 이름의 된장국이라니. 바스락거리는 흰색 트렁크가 연달아 떠오른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어쩜 이리도 한결같이 할아버지스러운 취향을 가졌을까. 올-갱-이? 한 음절 음절을 나눠 따라 읊는 매켄지가 저를 놀린다고 생각한 건지 인표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아, 궁금하다면서요! 삼겹살로 해요 그냥. 빠끔거리는 입술 밖으로 흐르는 목소리가 퍽 억울하게 들려서, 매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분명 그게 이유였을 것이다. 올갱이가 웃기고 목소리가 웃겨서. 얼굴이 온통 벌개진 홍인표는 다시 책상을 향해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아 가시라고요. 매켄지가 배를 잡고 웃으며 변명했다.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홍쌤.
그놈의 올갱이가 계속 웃겼다. 한겨울에 식곤증이 뭐가 그리들 심한지 절반이나 되는 학생들이 잠들어버린 오후 수업에도 한껏 입꼬리가 올라갔고, 교무실 책상 위에 올려 둔 허브 화분이 또 멋대로 뜯겨져 있는 걸 보고도 어깨 한 번 으쓱이고 말았으며, 캡처해 넘긴 문어젤리 수가 좀 적은 거 아니냐며 시비를 거는 업자의 문자에도 딱히 짜증이 나질 않았다. 헐렁한 트렁크를 입은 홍인표가 우물쭈물 올갱이된장국을 말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자꾸만 그려져서. 물론 엄밀히 따졌을 때 팬티만 입은 모습은 네일리스고, 올갱이된장국을 말한 건 한문 선생이지만 말이다. 말랑한 몸뚱이를 가지고 애처럼 웃는 주제에 그런 취향을 가져서는. 알면 알수록 웃겼다, 홍인표가.
전면창 너머로 꽤 따가운 햇빛이 쏟아졌다. 보충도 동아리 수업도 없는 이른 퇴근날이라 해가 짧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하늘이 꽤 밝았다. 차창을 다 닫았는데도 저 멀찍이서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작게 번졌다. 느긋한 오후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풍경을 가만히 내다보던 매켄지가 차 시트에 등을 푹 기댔다. 그러고보니 네일리스를 집에 들인 이후로는 퇴근 후에 곧장 호텔로 향하기만 했던 거 같다. 오늘은 유난히 해가 좋았고, 아직도 올갱이가 조금 웃겼다. 톡. 톡. 핸들 위에 올려진 손끝을 까딱이던 매켄지가 네비게이션을 눌렀다.
"올갱이해장국 이 인분 포장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켄지의 충동은 실패였다. 올갱이라는 단어만 쳐서 도착한 식당은, 사실 매켄지는 올챙이와 오갱이를 먼저 쳐본 뒤에야 올갱이가 알맞은 단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된장국은 취급하지 않았다. 홍인표가 말하는 된장국도 사실상 집밥에 가까운 느낌이었으니 그럴만도 했지만. 포장은 이 인분부터 가능하다는 종업원의 말에 시키는대로 주문을 하긴 했지만 제가 생각해도 멍청한 충동이었다. 일단 매켄지는 올갱이인지 다슬기인지를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한식이 그렇게 취향이지도 않았다. 아마 이 해장국은 쓰레기통에 처박힐 가능성이 높단 말이다. 그런데도 왜 사버린 걸까.
하얀 봉다리에 담긴 뜨끈한 올갱이해장국을 조수석에 앉힌 채로 매켄지가 핸들을 붙들었다. 그새 해는 내려앉아서 하늘이 온통 주황빛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면 밤이겠네. 네일리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홀딱 벗긴 채로 나오긴 했는데, 또 꾸역꾸역 옷을 찾아 입고 있을까. 현관 앞에 앉아있던 적도 있었지. 이거 올갱이해장국이야. 묵직한 봉지를 내밀면,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을까. 네일리스는 밥 같은 거 먹지도 못 하는데. 주차를 마치고 엘레베이터를 올라타는 매켄지의 입에서 느릿한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드키를 꽂고 문을 열자 익숙한 침묵이 매켄지를 맞이했다. 품 안의 해장국은 여전히 뜨끈했다.
방안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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