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프란츠 카페에

EP.1 [60알 에스프레소 한 잔, 페어랭어터 한 잔, 스팀우유 한 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정직원을 구하다

아마 신장개업한 카페가 개업 초반 한 달 동안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날은 개업 첫 날일 것이다. 하이든 본인도 딱히 플러스 매출을 기대하고 연 카페는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어쨌든 개업 첫날은, 정상적인 카페라면 엄청나게 바쁠 것을 예상하게 된다. 그리고 예상 그대로 하이든의 손목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카페를 흑자로 유지하려면 하루에 100잔의 커피를 내려야 한다. 요즘 커피 한 잔은 거의 다가 투샷으로 내리고 있으니, 200샷의 커피를 내려야 하고, 상당히 묵직한 무게가 나가는 필터를 200번씩 머신에 끼우고 탬핑과 폴리싱까지 한다고 생각하면 손목이 아작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아무도 고용을 안 했다. 설거지도 전부 본인 몫이고 계산도 전부 본인 몫이었다. 다른 걸 다 계산해 놓고 인건비 생각을 안 했다. 어차피 사람 별로 안 오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탓이었다.

그리고 하이든이 또 고려하지 못한 것 한 가지는, 하이든 자신은 (생각보다) 인싸였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이든은 지난 삼십오년도 넘게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매년 담임을 맡았던 건 아니지만,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수만 해도 천 명 가까이가 됐다. 거기에 교직 동료들, 가족친지들까지 합하니 오픈날에 오겠다고 한 사람 수만 해도 이백이 넘었다. (그 중 백오십명 정도가 제자들이었다.) 아침나절 내내 백오십잔의 커피를 내리니 (거짓말이 아니다.) 팔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 달달 떨렸다. 손목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히 오후 시간대는 상대적으로 한적했다. 두시쯤 반차내고 찾아온 지인들의 러쉬가 끝난 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열댓 남짓이었다.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커피 한 잔만 사서 열 시간 가까이 죽치고 앉아 있는 조그맣고 통통한 청년 한 명이 중간중간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게 약간 신경이 쓰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와서 가만 원두 어떤 걸 썼냐고 물어보는 게...

누군가가 들어오는 바람에 더 길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하이든은 등 뒤에서 손목을 주무르며 반쯤 기계적인 미소를 짓는다.

"어서오세요!"

"쳇, 늙다리 영감탱 뒈지지도 않고 이런 거나 하고 있어."

마흔 언저리쯤 되어 보이는 이 인간은 누구인가, 이런 패륜적인 놈을 다 봤나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들이라 해도 이런 소리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싶을지도 모른다. 뭐 중학교 교사 하면서 이런 소리 한두번 들어 보나, 하이든은 사람좋게 생글생글 웃으며 욕쟁이의 손에서 박스를 넘겨받는다.

"아직도 욕 없이는 말을 못하니?"

"무슨 개소리야! 나 대학 갔다고!"

으음, 하이든 자신이 이 녀석에게 고등학교를 가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만서도 가끔 이 녀석이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이 놈이 대학을 졸업한 게 15년 전인데도 말이다.

"그래그래 알았다. 잘 알았으니까 주문은?"

"에스프레소. 60알. 아, 그리고 페어랭어터 한 잔. 모차르트 그 새끼가 자기 거 미리미리 시켜놓으랬어."

열다섯에 처음 만났던 녀석도 이제 마흔을 다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 욕쟁이의 이름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 무례함과 작곡 실력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짧게 배경설명을 하자면, 하이든이 담임을 맡을 당시 가정폭력과 아르바이트, 학업부진으로 진지하게 자퇴를 고민할 정도였던 문제아였다. 요즘 말로 금쪽이라고 하나. 근데 유독 이 녀석이 음악 시간에만은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길래, 야, 너 예고 가볼 생각 없니? 한마디를 했던 게 이렇게 된 것이다.

"아이고 그래. 살리에리는 뭐 시키라든?"

"뭐야!? 같이 온 건 어떻게 알았는데?"

"너희는 다 내 손바닥 안이에요. 쌤이 너네를 몇 년을 봤는데 다 알지."

살리에리, 모차르트, 베토벤 셋 모두 하이든 아래에서 배웠었다. 개중 살리에리는 또 교직으로 진출해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학교를 다닐 적에 교생으로 와서 천둥벌거숭이 베토벤의 입시를 도와주기도 했고 말이다. 하이든이 뭔가 한다, 하이든이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주는 제자 셋이었다. (무슨 3인조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이름이 마땅찮았다.)

"씁, 쌤은 자기 커피 안마신다고 물이나 한잔 달라던데. 혹시 여기 1인 1음료야?"

"예끼이눔아, 나이로만 따지면 내가 살리에리보다 나이가 많은데 왜 나는 영감탱이고 살리에리는 쌤이야."

베토벤은 '흥' 하며 콧방귀를 뀌지만 사실 개업날에 찾아와주고 우산꽂이 같은 선물까지 들고와줄 정도로 정이 있는 녀석이라는 건 하이든도 이미 안다.

"아니-돈없으면 둘이서 음료 한잔이라도 나눠마시라고 1인 1음료 안했다. 그래도 너네 돈 있는 거 뻔히 아니까 살리에리한테도 웬만하면 하나 시키라고 하지?"

베토벤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귀청 떨어질 만한 음량으로 살리에리에게 음료를 시키라고 빽빽거린다. 전화 너머로 모차르트가 외친다.

"파파! 안토니오가 그린티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 샷 추가에 자바칩 반은 갈고 반은 올리고 휘핑크림이랑 초코드리즐 올려달래요!"

"여기 스타벅스 아니야 이녀석아!"

삑삑거리는 후진 경고음이 몇 번 들리고, 통화 너머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살리에리가 전화를 넘겨받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모차르트 이놈이 또... 음, 그냥 스팀우유나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이든은 주문을 접수하고 주문을 한잔 한잔 만들기 시작한다. 스팀우유는 60도에서 70도 사이의 온도로 만든다. 바로 나가면 너무 뜨겁고 늦게 나가면 거품의 질감이 다 죽는다. 에스프레소는 가장 빠르게 추출된다. 이 중에서는 그나마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아메리카노, 그러니까 페어랭어터를 먼저 만들어 두는 게 맞겠다 싶었다. 에스프레소를 투샷으로 추출하면 약 60ml 정도가 나오고 여기에 맞춰 막 끓인 온수를 90ml 가량 붓는다. 잔은 미리 데워 놓았지만 모차르트가 올 때쯤이면 살짝 식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에스프레소. 원두를 도징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베토벤이 눈을 찌푸렸다.

"아 기계 소리 더럽게 시끄럽네!"

"네 커피야, 네 커피."

그 정도로 소리가 큰가? 베토벤은 아마 큰 소리에 워낙 예민하니까 저리 말하는 것이겠지만 객관적인 음량도 한 번 점검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두를 (60알이라고 해도 어떻게 60알을 정확히 맞추겠는가? 대충 무게 보고 맞추는 거지!) 갈고, 필터의 무게를 재 본 뒤 머신에 끼워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하나당 30mg, 추출 속도는 24초 정도다. 살짝 빠른 감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겠지, 하고 내린 에스프레소를 베토벤에게 건네준다. 베토벤은 홀짝여보더니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걸 던져야 해 말아야 해?' 하는 표정이었다.

"왜. 맛 없니?"

"아니, 뭐 스타벅스보다야 낫지."

짜식 선생님한테 립서비스 한 번을 해줄 생각을 안한다. 근데 또 커피 하면 이녀석 미각만큼 정확한 게 없어서 눈물나지만 수용해야 하는 피드백이었다.

"시니? 아니면 써?"

베토벤은 '에에, 글쎄.' 하고 그냥 커피를 마저 홀짝인다. 열심히 내린 커피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어딘가 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베토벤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지폐를 몇 장 더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한 잔만 다시."

하이든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아까의 과정을 똑같이 반복한다. 그런데 탬핑을 하려 하는 순간,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에서 탬퍼를 놓쳐버리고 (발까지 찧은) 하이든은 아야야, 하며 손목을 주무른다.

"영감 괜찮아?"

"어어, 아침에 커피를 좀 많이 내렸더니... 살리에리 곧 올 테니까 우유 만든 다음에 만들어 줄게."

하이든은 한숨을 내쉰다. 직원을 찾아야 한다. 빨리. 가능하다면 오늘 내로.

우유에 공기를 주입하는 소리에 베토벤은 또 귀를 막았지만 더 이상 불평을 하진 않았고, 하이든은 거품이 부드럽게 난 우유를 잔에 담는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다시 한 번 가게 문이 열린다.

"파파-! 제2의 인생 축하!"

"개업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이 상반된 인상의 두 사람은 각각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늘 티격태격하고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보면 질렸다는 표정을 짓지만 또 나름 잘 붙어다니고 있다. 둘이서 카페에 가 블랙 커피 하나와 달달한 음료를 하나 시키면 꼭 살리에리 앞에 블랙 커피가 나온다고 하는데. 뭐 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각자에게 알맞는 음료를 서빙하는 것. 모차르트는 아주 폭죽을 터뜨리고 부부젤라를 불어대고 있었지만 말이다... (정말 놀라겠지만 모차르트는 드라마 음향작가라는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나이도 무려 서른 아홉으로 베토벤과 동갑이다.)

모차르트는 웬 바보같이 생긴 (그리고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토끼 인형을 하이든의 눈앞에 흔든다.

"귀엽죠!"

"귀엽네. 집에 조심히 잘 보관하고 있으마."

차마 저런 걸 카페에 놓을 순 없었다. 하이든이 꿈꾸는 카페는 트렌디하고 젊은 카페가 아니라 그 소통의 감성이 여전히 담긴, 뭐랄까, 인테리어도 나무나무한 카페란 말이다. 저 녀석은 늘 자기가 좋아할 걸 남들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사온다니까, 하이든은 속으로 궁시렁거린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자연스럽게 베토벤이 자리잡아둔 테이블로 향한다. 시커먼 남정네 셋이서 이리 앉아 있는 것도 뭐랄까 좀 웃긴 비주얼이었지만 구태여 더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손목이 왜 이렇게 아프지? 하이든은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와 잠깐 손목에 올린다. 파스라도 붙여야 할까 싶었다. 예순셋의 나이로 하루에 커피를 이백잔씩 내리고 있으면 손목이 나가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생각하자 살짝 울고 싶은 마음이 됐다.

"선생님, 어디 아프십니까?"

살리에리의 걱정 어린 질문이었다. 하이든은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하고 손을 저어본다.

"그냥 손목이. 자세를 잘못 하고 있었나 봐."

"아니, 안토니오도 진짜! 이럴 것 같아서 선물 사온 거 아니었어요?!"

살리에리는 조용히 좀 있어, 라며 모차르트의 입을 단속한다. 살리에리가 가방에서 선물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을 때, 구석에서 누군가가 소심하게 손을 들어올린다. 열시간째 죽치고 있는 젊은 청년이었다. 청년은 하이든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며 쭈뼛쭈뼛거린다.

"저기..."

"아, 네?"

하이든은 바로 얼음주머니를 놓고 주문을 입력하려 준비한다.

"아, 아뇨...추가주문은 아닌데...그, 손목이 아프신 거면, 제가 대신 내려드릴 수 있...어서요..."

청년은 계속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하이든을 올려다봤다. 살리에리, 모차르트, 베토벤의 시선이 모두 청년을 향했다. 그때 살리에리가 엄청나게 놀란 표정이 된다.

"아니 프란츠! 프란츠가 왜 여기에 있어요?!"

"어?!"

'프란츠' 라고 불린 청년도 놀란 표정이 된다. 그것 참 우연의 일치네. 내 이름도 프란츠인데. 물론 요제프라고 더 많이 불리긴 했지만... 하이든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본다. 살리에리는 '프란츠' 의 팔을 잡아끌고 카운터 앞으로 데리고 온다.

"선생님, 이쪽은 제 제자입니다. 요즘 뭐하고 사나 궁금했는데 이러고 있었네요. 몇 년 전부터 연락이 끊겼는데 선생님이랑 같은 동네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프란츠, 이쪽은 제-그러니까 선생님의 선생님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선생님이십니다. 인사하세요."

'프란츠' 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안경이 중력에 의해 잠깐 미끄러졌다가 다시 고개를 홱 치켜들며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안녕하세요...! 프란츠 슈베르트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갑작스러운 전개였다. 하지만 (위에서도 서술했듯) 생각보다 인싸인 하이든은 이 만남을 달갑게 받아들였다. 즐기지 않을 것 없지 않은가? 이런 예상치 못한 만남이 카페의 묘미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슈베르트 씨. 그럼... 혹시 직업이...?"

'바리스타? 카페 알바생?' 이라는 뜻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슈베르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다.

"지, 지금은..."

아, 무직이구나. 괜히 물어본 게 미안해진 하이든은, 그럼 신세지겠다는 말과 함께 황급히 슈베르트에게 주방을 넘겨준다. 그리고 의자를 한 개 더 끌고 와서 살리에리, 모차르트, 베토벤의 테이블에 합류한다.

"아참, 아까 드리려던 선물은 이거였습니다."

살리에리는 한 팔 길이 정도 되는 상자를 꺼내든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까딱여 하이든에게 선물을 열어보라 신호를 보낸다. 천천히 박스를 연 하이든은, 선물이 구급상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토니오! 어쩜 이렇게 센스있는 선물을."

하이든은 기뻐하며 손목을 테이핑한다. 찜질도 했고 약간의 압박감도 돌아오며 살아나는 기분이 됐다. 하이든은 다시 한 번 고마워하며 구급상자를 옆으로 밀어둔다. 모든 업소에 하나쯤 있어야 하긴 하는데 정작 생각해내기는 쉽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나저나 나 정말 놀랐어, 파파가 갑자기 카페를 한대서."

"그냥 은퇴해서 평화롭게 사실 줄 알았지..."

베토벤의 말에 살리에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홀짝인다. 뒤에서 그라인더가 원두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60알을 맞출 수 있었을까?)

"정말 왜 카페였어요?"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달까... 재밌어 보이잖니."

씩 웃자 제자 셋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애들이 '이거 꼭 해야 해요?' 하면 늘 나오는 하이든의 전매특허 답변 '재밌잖니' 가 떠오른 것일 테다. 하이든은 핫초코를 한 모금 홀짝한다.

"카페는 괜찮은 것 같아. 그리 시끄럽지도 않고. 저 망할 기계 소리 빼면 말야."

베토벤은 신경질적으로 에스프레소 머신 쪽에 삿대질을 한다. (졸지에 잘 커피를 내리고 있던 슈베르트만 삿대질당하는 꼴이 됐다.)

"조용한 에스프레소 머신 같은 건 없어, 루."

"알 바야?"

같은 중학교 출신에 같이 명문고로 진학한 동창 둘, 게다가 업계에서 알아주는 둘이었지만 하이든 눈에는 여전히 그 중학교 교복 입고 뽈뽈거리던 애기들에 불과했다. 실실 웃고 있으니 베토벤이 '그런 눈깔로 쳐다보지 마' 라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그나저나 커피는 언제 나오는 거야?! 느리잖아!"

베토벤은 괜히 슈베르트에게 화를 낸다. 슈베르트도 엄연한 손님이었고 지금은 선의로 도와주고 있는 것이기까지 했는데 베토벤의 윽박을 듣게 되다니. 진심을 담은 사과를 전하고 싶었다.

"에스프레소 적정 추출 시간은 25초에서 30초입니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죠."

갑자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슈베르트가 대꾸했다. 베토벤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어 다시 콧방귀를 뀐다.

"...무튼 영감, 직원은 진짜 고용해야 해. 이왕이면 커피 잘 내리는 사람으로. 전문 바리스타 아니잖아."

"알아, 알아. 혼자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거 혼자 하니까 죽을 맛이네."

"인건비 아까운 거 알겠지만 그러다가 카페가 망하기 전에 그쪽이 먼저 죽어."

가감없는 드립을 치는 베토벤이었다. 살리에리가 그런 드립 치지 말라고 베토벤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지만 하이든은 괜찮다 말해준다.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진짜 걱정을 하는 것을 알기에... 표현이 저따위일 뿐이지.

"커피 나왔습니다."

슈베르트가 커피를 들고 돌아온다. 어디서 일 해 본 적이 있는 폼이었다. 베토벤은 깔끔한 잔을 받아들고 '미심쩍은 외지인이 만든 커피' 를 노려본다. 하지만 하이든이 봐도 딱히 흠잡을 곳 없었다. 크레마는 부드러운 호피무늬를 만들었고 색상도 커피에 비해 연한 갈색, 하지만 하얗다고는 할 수 없는 갈색이었다. 향도, 죽여줬다. 약간의 신맛과 쓴맛이 동시에 올라오는 향이었다.

"60알 아니기만 해 봐..."

예전부터 베토벤의 집착이었다. 교무실에 와서 믹스커피를 먹어 본 뒤 커피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 믹스커피는 커피가 아니라고 난리를 치더니 결국 지금은 핸드드립 설비를 집에 갖춰놓을 지경이 됐으니 말이다. 그 덕에 길러진 예민한 혀가 찾아낸 최적의 무게는 커피콩 60알이었고, 이제 체인점에 가면 '이건 40알밖에 안 되겠다!' 하고 외치고 뛰쳐나오는 일이 예사였다.

살리에리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슈베르트를 바라본다. 여차하면 카운터 뒤로 몸을 숙이라고 하는 눈짓이었다. 베토벤에게 최소한의 염치까지는 있어서, 못 만든 커피일지라도 스승이었던 하이든에게 커피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슈베르트에게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살리에리의 걱정과 반면 모차르트는 '던지나?!' 하는 표정이었다. 가끔 베토벤과 함께 있을 때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모차르트는 아이처럼 즐거워하곤 했다...

베토벤은 향을 살살 맡아보다가, 한 모금을 입으로 넘긴다.

"씨발!"

베토벤을 제외한 모두가 숨을 죽인다. '씨발' 한마디로는 대체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씨발...!"

두 번째 모금이 넘어갔는데도 욕설만 나오고 커피잔이 날아가지 않자 하이든과 살리에리는 긴장을 푼다.

"아니 씨발 커피가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베토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얀 에스프레소 잔을 살살 돌린다.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남은 컵을 바라보는 베토벤은 경이롭다는 표정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이제 이 커피 말고 못 마셔."

"나도 한 모금."

모차르트가 빨리, 하고 테이블을 탁탁 친다. 베토벤은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유유자적하게 커피를 들이킨다. 마치 세상을 처음 본 듯한 아기의 경이로움을 담은 눈이 된 베토벤이었다. 예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후로 저런 표정은 하이든도 처음이었다. 모차르트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카드를 탕,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 커피 나도 맛 좀 봐야겠어! 여기 페어랭어터 한 잔 더!"

"아니, 슈베르트 씨는 손님이라고."

하지만 하이든의 항변은 살리에리를 빼면 누구의 귀에도 와닿지 않은 것 같았다.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앞다투어 커피 주문을 시키려 하고 있었다. 대체 맛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 건지 궁금해진 하이든도 진지하게 한 잔 돈 주고 사먹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가 이렇게 깔끔한 커피는 처음 먹어 봐! 에스프레소 한 잔 더!"

"난 한 잔도 못 마셔 봤다고! 내 것부터 해줘 바리스타!"

살리에리는 잠깐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작게 하이든에게 속삭인다.

"그냥 프란츠를 고용하시면 어떨까요?"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그리고 그날부로 프란츠 카페는 프란츠x프란츠 카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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