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프란츠 카페에

Prelude-아메리카노 한 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첫출근하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는 카페가 몇 개나 있는가? 천 개? 이천 개? 참고로, 파리에는 5천여 곳의 카페가 있으며 빈에는 2,500여 곳, 뉴욕에는 3,500여 곳, 그리고 서울에는 무려 18,000여곳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그 레드 오션에 또 한 사람이 발을 담굴 날이 밝아왔다. 이곳은 유럽의 어느 도시인데, 어디라고는 단언할 수 없는 동네로, 시 단위로 따졌을 때 약 30제곱킬로미터에 인구 수는 오만 명 정도의 도시였다. 인구 오만 명! 간신히 소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치를 넘긴 이 곳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네였다. 노후를 즐기고자 하는 온후한 노년의 신사부터, 사업을 말아먹고 저렴한 집값을 찾아 굴러들어온 중년 사업가, 썩 좋다고 말할 수 없는 회사에 다니는 우울한 신혼부부, 대학을 잘못 지원해버린 대학생, 상술된 사람들의 자녀들까지 온갖 인간군상이 모여든 일종의 극장 같은 곳이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이 이 곳에 이사를 온 것은 3년 정도 전이었다. 예순 셋의 이 노인은 예순, 정년을 꽉꽉 채워 명예롭게 은퇴한 전직 음악교사였다. 모 김나지움은 이 노신사 덕분에 평판이 대단히 높아졌다더라-하는 풍문도 있을 정도로 명예롭게 은퇴했으며 은퇴식에는 그 아래서 공부한 학생이 백 명 단위로 왔다는 풍문도 있었다. 다만 가정사적으로는 썩 행복하지 못했던 하이든은 현재 이혼 절차를 밟으며, 연금만 타먹고 살면서 가족이 없는 자신을 돌봐줄 사람을 찾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제 2의 삶을 준비중이었다.

왜 하필 카페냐, 카페보다 훨씬 덜 레드 오션인 직종도 많을 텐데, 라고 물어도 아마 하이든은 절대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남의 의견이 맞다면 그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의 그는 잘 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확고한 자신감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답게,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그런' 제자들을 길러낸 그 답게 하이든은 전혀 3년간 준비해온 이 카페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에 칼같이 울리는 알람을 끄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씻은 하이든은 거울을 보며 하얀 셔츠를 차려입는다. 신문을 꺼내 테이블 위에 토스트에,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리고 집의 난방과 불을 모두 끄자 다시금 자신이 출근을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커피의 쓴맛!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커피의 각성 효과인가? 익숙한 향내가 고소하고 쓰디쓰게 코를 간질이며 뇌까지 올라가는 혈관을 뚫는 기분이었다.

자그마치 3년 만의 출근이자 두 번째 첫 출근이었다. 아직 바깥은 어둑어둑했다. 하이든은 수위의 인사를 받으며 예순셋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건강하고 잽싼 발걸음으로 거리에 나선다. 좁은 거리에는 죽은 눈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뿐이었다. 하이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낡은 손목시계로 '다섯 시 반' 임을 확인한다. 아직 간판을 얻지 못한 건물 앞에 선 하이든은 심호흡을 하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악!' 하고 소리지른 뒤 열쇠로 문을 연다.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다. 그 험난한 김나지움에서도 살아 나온 몸이다. 카페 진상들이 올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다. 나는 준비되어 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이다. 교무실에서 사십 년 가까이 이 커피 냄새와 함께 썩어온 몸이다! 평생 해오던 일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나는 이 카페를 일 년 넘게 가게 할 것이다!

"할 수 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하이든은 시원시원하게 원두 봉지를 열고 커피머신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원두 한 알 한 알이 마치 이 곳에 오게 될 손님들의 이야기처럼 쏟아져나오며 작은 첫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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