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투드 _ 대학생 AU

B. by 비디/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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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리드는 기분이 좋았다. 엔간해선 무너지는 법이 없던 일정한 높이의 입꼬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저절로 툭 풀어진다. 무언가 단단히 저를 위한 망상을 끊임없이 하는 표정이었다. 유치하고, 단순한 감정. 작은 움직임에도 헤프게 웃는 아이가 따로 없다. 아벨은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상대가 고개를 들어 그의 움직임을 쫓아오자, 어리석은 충족감이 차올라 마신 거라고는 커피뿐인 배가 불러왔다. 상대, 즉. 세드릭과 눈이 마주치자 예전부터 ‘귀여운 맛이 있다.’고 숱하게 칭찬받았던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봤자, 남들에게 들은 칭찬이지만. 남에게 먹힌 웃음은 네게도 먹힐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저 썩 내세울 만한 얼굴에서 조금만 더 보고 싶어지는 얼굴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웃는 얼굴이 좋단 말은 안 해줬지만, 좋아하겠지. 안 그럼 봐줄 리 없잖아.

그렇게 생각한 아벨은 얼음밖에 남지 않은 커피잔을 들어 얼음 하나를 씹어먹었다. 아는 얼굴이 보였는데 착각이었나 봐요, 한참을 서서 입안을 세운 차가운 감촉이 사라진 후에야,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었다. 기분이 날아갈 만큼 좋아 강아지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는 차마 말할 순 없었다. 누구를 찾고 있었냐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주문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흥미 없이 바라보았다. 지구에서 커피집이 멸종하는 일은 없겠네.

“그렇군요.”

세드릭은 흠칫하고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뻐근한 목을 마사지하기 위해 올려진 팔 사이로 셔츠가 흘러내렸고, 손목의 은색 시계가 빛났다.

“…그렇군요?”

아벨은 빠듯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게 끝, 기대감이 한참 못 미치는 대답에 기분이 한순간에 다운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천국 한 가운데를 맨발로 부드럽게 걷고 있던 아벨은 땅바닥에 처박혔다. 하늘이 무너졌단 표현이 어울렸으며, 다시는 그딴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하게 만들었다. …잔에 남은 얼음 중 마지막 조각을 아득바득 씹었다. 요즘 게임 한다고 잠을 덜 자서 머리가 망가졌나. 어깨 위에 머리 대신 하트 모양 풍선을 달아둔 것 같다.

무엇보다 세드릭의 시선이 다른 쪽을 향한 게 불쾌했다. 얼음이 목에 걸린 척해볼까. 냉정하게 밀어내면서도 정 많은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다고, 곧장 걱정을 눈에 담고 봐줄 게 분명했다. 잘하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단호하고 행복한 잔소리를 해주겠지. 불편한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으면서 억지를 내치지도 않는 미련함을 이용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이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괜찮습니까? 그 한마디만 들어도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겠지. 감정선을 헤집어놓은 범인의 정체를 알 리 없는 세드릭은, 화난 얼굴로 다시는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낼 것이다. 어떻게 친해졌는데 미움받을 일 있나. 아벨은 아쉬운 표정으로 보잘것없는 망상을 이어 나갔다. 허리를 숙여 정수리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다가 얼굴이 맞닿으면 실수인 척 가정해 볼에 입술을 문지르고 싶었다. 반응은 어떨까. …뭐 하는 짓이냐며 밀어내겠지, 아무래도 상처받겠는데. 그래도 일주일이나 떨어져 있었잖아. 외로움을 애정이라 착각하고 받아줄지 누가 알아. 놀라겠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지금은 닿지 않는 시선이 나를 담아서…

아벨의 얼굴이 열로 들끓었다. 그 선명하게 검은 눈동자를 털어내고자 남아있지도 않은 얼음을 찾았다. 홧홧한 감정이 휘몰아쳐 한동안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망가져도 완전히, 재활용도 못 하게 망가졌어. 이내 잔을 테이블에 탁 소리 나게 내려두자, 눈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 쓰이면 이쪽을 볼 것이지.

찌그러진 미간, 또렷하게 비친 실핏줄로 충혈된 눈, 도톰하게 올라온 쌍꺼풀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짙은 다크써클, 뚱한 인상, 아슬아슬하게 사납지 않은 눈 모양… 객관적으로 볼품없었다. 하지만 아벨은 구질구질하게 저것이 저를 향하길 바라고 있다. 몇번을 꼬셔도 금방 돌아가 버리고 마는 시선. 5분 이상 머물러만 준다면, 열 번 정도는 데이트 요청을 거절당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벨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세드릭의 머리카락을 살살 만졌다.

“…계속 서있으실 겁니까?”

세드릭이 어색하게 잠금화면에 뜬 시계를 확인하며 물었다. 결국 가장 나은 방법은 자리에 다시 앉아주는 거다. 아벨은 냉큼 자리에 앉았다.

“완전히 착각이었어요. 아예 모르는 사람. 갑자기 일어나서 놀라셨죠?”

“아뇨. 뭐.”

“그래서 뭐였죠. 요즘 바빴냐고요?”

다시 눈이 마주치자 손등으로 볼을 누르며 곱다랗게 웃었다. 기분은 수치를 모르고 언제 우울했냐는 듯 행복을 향해 수직 상승한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은 집요하게 한 사람을 담았다. 과제가 밀리긴 했었네요, 작게 숨을 들이며 눈썹을 아래로 내렸다. 안 바빴다. 바쁘긴커녕 따라갈 사람이 없어서 외톨이처럼 집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했다. 술자리에 꼬시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전부 내키지 않았다. 오늘도 60레벨 퀘스트를 하던 도중에 ‘카페에서 뵐 수 있을까요.’ 라고, 정갈하게 온 문자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왔으니까. 인생을 통틀어 가장 지루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최악인 하루하루를 넘겼다. 그런데 왜 아벨은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까.

“… …확인받고 싶었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힘없이 중얼거렸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괴롭히고 마는 나쁜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주제에 효과를 보긴 본 상황이 순수하게 기뻤다. 아벨 리드, 왜 이렇게 못돼먹었어? …다음엔 이 주 정도 잠수타볼까. 아니다. 못 버틸 거다. 잠시 고개를 돌렸단 이유로 짜증이 솟구치는 꼬락서니거늘 충동을 억누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보고 싶어서, 외로울 게 뻔해서.

답이 정해진 공식을 준비하는 목소리가 다정하게 가라앉는다. 어리광 부리듯 물었다. 나는 그랬거든, 일주일 전에도. 지금도. 좀 안 봐준다고 치기 어린 짝사랑을 하던 때로 돌아간 바보 같은 기분이거든요.

그러니까, 너도. 혹시.

“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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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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