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찾아서

세례 _ 1998년의 편지

B. by 비디/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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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차가운 바닷바람이 작게 일렁이던 담배를 끝내 붉게 태웠다. 바다조차 잠든 고요한 새벽에 피우는 담배는 특히 맛이 달았다. 중독성 물질이 폐부에 차오르며 남기는 짙은 단맛은 어린 시절 처음 먹었던 동그란 사탕과 닮았다. 섬을 횡단하는 동안 레이먼드는 총 세 갑의 담배를 태웠다. 신선한 음식 재료가 똑 떨어져, 굳은 빵과 치즈로 연명하는 동안 비참한 식단을 향해 욕설을 퍼붓지 않을 유흥이 필요했다. 라임 조각을 씹어 삼킬 힘도 없었다. 동료는 그런 레이먼드에게 향이 좋은 담배를 추천해 줬다. 도전정신을 중요시하는 그로서는 달가운 제안이었다. 순수하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독을 내밀고, 아무렇지 않게 독을 피운다. 해적질하는 놈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몸이 망가지라 뻑뻑 피워대지.

동료의 추천이 없었어도 결국 찾아 피웠을 걸 생각하면, 모험정신 자체가 레이먼드의 독이었다.

…계속 피우다간 큰일 난단다, 들은 기억조차 없는 잔소리가 멋대로 재생되었다. 귓가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레이먼드는 두 번째 담배를 꺼내며 구겨진 웃음을 지었다. 세리아, 이 담배 냄새는 싫어해? 어쩌지. 브랜드를 바꿀까. 혼잣말을 콧노래처럼 흥얼거리는 그에게 능청스러운 여유가 묻어났다. 뇌의 착각으로 만들어진 환청 따위가 뭐가 좋다고, 곱게 말을 들어줄 리 없었다. 보란 듯이 마지막 성냥을 성냥갑에 긁었다. 뜨거운 재가 갑판에 떨어질 때마다, 옆에 없는 사람의 빈자리를 체감했다. 1998년의 바다는 처량하다.

[졸업 축하해.]

단출한 인사로 시작해 같은 말로 마무리 지은 한 문장의 편지를 바라봤다. 편지 모서리에 난잡하게 튄 자국을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손톱으로 갉작이다가, 담배를 지져 태워버렸다. 레이먼드는 구부러진 담배를 손에 쥔 채 편지를 코끝에 두어 한참 동안 냄새를 맡았다. 익숙한 향기였다. 바닷물에 젖은 옷을 말릴 때 나는 비린 내음, 청록과 파랑이 섞인 박하 사이의 이질적인 혈향. 담뱃재에 점점 흐려진다. 레이먼드는 황급하게 편지에 묻은 재를 털어내고는 혈흔 자국이 머물렀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둥근 시가 모양의 구멍 사이로 별이 수없이 박힌 하늘이 보이자, 가슴이 뻐근하게 아려왔다. 몇 살을 먹어도 빌어먹을 인내심은 바닥이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니까. 뒤늦게 편지를 태운 담배가 원망스러워진다.

“축하해.”

“…거짓말.”

“아니야. 고마워. 축하해야지.”

진심으로 축하하는 거 맞지, 한참 홀로 대화를 이어가던 레이먼드는 굳은 표정으로 편지를 갑판 구석에 던졌다. 더는 바닥날 것도 없는 인내심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고작 1파운드의 보석이 탐이나 바다에 몸을 던진 옛 선원을 이해해 버리기 전에 억지로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편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세 번째 담배를 꺼냈지만 마땅히 불을 붙일 게 없다. 그는 차갑고 텁텁한 담배를 입에 물고, 편지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숨을 골랐다.

진심이면 와서 말해줘, 꽃다발 같은 선물 들고. 졸업 기념으로 여행도 가자 권유하고, 배에 태워준다고 자랑도 하고, 고래를 찾아서,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보러 가자고… 젠장. 편지를 치워도 똑같잖아. 레이먼드는 자신의 의도적인 제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생각의 파도를 어찌할 수 없어 아하하, 소리 내 웃었다. 위험과 낭만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바다, 그사이를 채운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보아도 그보다 더한 그리움이 있단 걸 깨닫고 만다. 무작정 돌아가고픈 충동이 일었다. 목적지를 몰라도 상관없었다. 길잡이 별을 향해 영영 찾아가면 되었다.

“…답장을 적자.”

하지만 좁은 창 너머로 깊은 잠에 빠진 선원의 그림자를 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먼드는 담배를 잘근잘근 씹어 두동강 냈다. 관측자 베이슨이 ‘캡틴, 이것만큼은 남겨줘야 합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종이를 꺼내 뱃머리에 올렸다. 다음 섬에 도착하면 고급진 종이를 비상식량으로 먹어도 될 만큼 사주겠다며 속으로 사과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모험하다 죽을 것처럼 작별 인사를 한 주제에 절절한 시를 적어 보내면 퍽이나 볼만할 것이다. 그리고 들으란 듯 벌게진 얼굴로 자신을 비난했다. 미쳤지. 편지로 청혼이라도 하게? …레이먼드는 담백하게 편지를 열었다. 어떻게 지내.

새벽의 바다는 기묘할 정도로 조용했다. 종이에 잉크가 긁히는 소리만 선명하게 레이먼드를 자극했다. 널찍한 갑판 위는 촛불이 하나도 없어 고고한 달빛에 조명을 의지한 채였다. 그조차도 구름에 가려지면 답이 없다. 암흑에 덩그러니 버려진, 유령선에 올라탄 감각. 편지를 적는 내내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먼 곳에서 우웅- 우우웅- 고래 울음소리가 들렸다. 세리아, 왜 불러. 기다려 봐. 적고 있으니까. 레이먼드는 고래의 대답을 듣고자 잠시 기다렸으나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하네, 진짜. 허탈하게 웃고서는 마지막 인사를 남겨둔 11줄의 편지를 바라봤다. 레이먼드는 숨을 짧게 연속으로 내뱉어 긴장을 해소했다.

돌아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줘. 맺음말 옆에 이마를 묻고 눈웃음을 지었다. 동이 트는 바다의 수평선을 반으로 가르며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부탁할게, 그리운.

“…나의.”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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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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