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 」
엘벳 _ 관계란
달칵, 하고 찻잔을 내려두는 소리가 났다. 익숙한 소음으로 인해 눈을 뜨면 보이는 풍경은 비상식적이다. 2년 전, 작별을 고하고 떠나온 저택의 가장 안쪽 방과 똑같았다. 그 벽지 틈에 파인 나이프 자국도 그대로였다. 뒤이어서 쓰게 우린 홍차향이 희미한 혈향과 함께 코를 스쳐 지나갔다. 엘리, 홍차에 설탕은 우리 취향이 아니잖아, 그렇지? 바닥에 쪼그려 앉은 몸 위로 섬뜩한 환청이 굴러갔다. 고개를 들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더욱 휩쓸리지 않겠단 다짐으로 엎드린 채 눈동자만 굴려 제 처지를 살폈다. 묶인 꼬라지가 무지에 가까웠다면 상황 파악에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이미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엘리였다. 또, 뭐가 불만이었을까. 우리 형은. 방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본 시선을 정리하기까지는 대략 5분이 걸렸다.
단단히 결박된 팔과 다리는 한 사람의 외로움을 표출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두껍고 차가운 사슬로 묶여있었다. 엘리는 손가락을 움직여 금속의 물질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음을 먹고 힘을 주면 풀려버릴, 8자 모양의 사슬은 악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설픈 솜씨였다. 그 비정상적인 꼬임에서 엘리는 에버렛의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스스로 풀지 말라고 명령하고 앉았어, 뱉지 못할 불만이 흐리게 삼켜졌다. 그 끝에 연결된 아름다운 손은 상대의 동요에는 하등 관심도 없단 듯, 손아귀에 쥔 쇠줄을 당겼다가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익숙한 손모양이 하나도 반갑지 않기는 또 처음이구나. 다시는 볼 일 없겠다며 떠난 게 흐릿할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는 눈을 감았다.
3분, 그리고 5분. 문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굳게 다물린 입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에버렛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쇠줄의 섬뜩한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눈만 마주치면 쉴 틈 없이 입을 나불대던 사람이 침묵하니 그것대로 오싹했다. 형, 하고 간결하게 불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눈썹을 찡그리는 걸 보니 말도 못 들을 상태는 아니구나 싶어, 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내 죽어버린 듯 벌어지지 않는 입술을 바라보던 엘리는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내기로 했다. 나중에 한 소리 들을까 봐, 너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냐면서.
“형. …”
“넌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봐?”
에버렛이 쇠줄을 잡아당겼다. 팽팽하게 목을 조여오는 느낌에 엘리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어. 조금만 망설이면 바로 내 탓을 한다니까, 하고 가볍게 그를 책망하며 눈을 마주치자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다정한 목소리가 피부에 박히듯 들려왔다. 엘리, 대답해야지.
“… ….”
어떤 목소리는 귀가 아닌 뇌 속에서 울린다.
감정, 말을 고르는 순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조차 손아귀에 두겠단 태도로 들어오는 거북한 말을 어떻게 흘려보내야 할까. 엘리는 7학년의 겨울에 눈두덩이를 헤집어 영원한 상처를 만들고, 머리를 쥐어 잡아 기어이 백색으로 물들인 사건이 어쩌면 오늘을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겠냐는 의심을 했다. 거울을 보면 형이 떠올랐고, 물웅덩이에 비친 백색이 탁했고, 당연히 그 목소리를 잊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이 원래 어떤 프로세스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힘, 지배욕. …19년 동안 버둥거렸는데도 한 번도 이겨낼 수 없다.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머리를 숙이자, 에버렛이 사슬을 힘껏 당겨 엘리를 바로 눈앞까지 억지로 끌고 왔다. 대답을 채근하는 눈동자가 괴이하게 번들거렸다.
대답으로 누그러지지 않을 긴장감 속에서 엘리는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지. 늘.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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