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리뷰

<괴물> 이해의 필요가 없는 순수함

영화 <괴물> 후기

*강한 스포일러 포함. 영화를 감상 후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영화를 프로파간다적인 메세지가 담긴 이야기일 것이라고 단단히 오해하고 영화를 봤다. 실제로도 중후반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전반부에 담긴 '이해'왜 '오해'에 대한 메세지는 감독이 의도한 바 있는 부분일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처음, 초등학생 남자아이 무기노 미나토(이하 미나토)의 엄마인 사오리의 시점.

두 번째는 미나토의 학교 선생인 호리 미치토시(이하 호리 선생)의 시점.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미나토의 시점이다.

이 3막의 짜임은 영화의 주제를 이해하는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또한 일부러 영화의 주제성을 마지막까지 감추는 치밀한 구성이다.

영화의 시작, 엄마인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에게서 학교 폭력의 흔적을 발견한다. 미나토는 사춘기 아이답게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듯이 보이고 엄마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시작된다.

결국  미나토가 사라져 찾으러 간 산에서 미나토를 발견하고 데려오는 길에 미나토는 갑작스럽게 차에서 뛰어내리는 짓을 벌인다. 엄마 사오리는 미나토가 분명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추궁하고 미나토는 여기에서 호리 선생의 이름을 댄다.

사오리는 학교로 찾아가 교장 선생과 여타 학교의 선생님들, 그리고 호리 선생을 만나 면담한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인간'이 가지고 있음직한 인간성이라는 것이 결여된 듯이 보인다. 전부 '죽은 눈을 하고 있다.' 고 사오리는 말한다. 미나토가 호리 선생이 자신에게 돼지의 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느냐? 인간인 게 맞느냐고 묻는다. 죽은 눈을 하고 있는 교장 선생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대답에서 그 어떤 인간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죽은 것처럼, 그래서 인간성을 잃은 것처럼.

여기에서 교장 선생의 이야기가 잠시 비춰진다. 교장 선생은 얼마 전 손녀를 사고로 잃었다고 한다. 교장 선생의 남편이 차를 주차하려다 손녀를 차로 치어 잃었다고. 그러나 소문이 있다. 손녀를 차로 친 것이 교장 선생의 남편이 아니라 교장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교장 선생의 인간성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또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죽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교장 선생은 이 영화의 주제인 인간성, 이해와 오해, 사랑과 순수에서 인간성을 담당하고 있다. 교장 선생은 엄마인 사오리가 면담으로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죽은 소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잘 보이도록 배치하는 등의 무정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어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편으로 호리 선생은 자신이 미나토를 구타하고 팔을 세게 잡아당겨 비틀고(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다.) 귀에 피가 나도록 만들고 코를 때렸다는 사실을 듣고 찾아온 사오리의 말에 더듬더듬 같은 문장의 사과만을 반복하고 (이는 교장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사과하는 중에 웃기까지 한다. 오히려 지나치게 비인간적인 모습이라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비춰지며 인간성을 논의하지도 못할 정도의 수준 낮은, 비사회적인 인간으로 보여서 주제인 '인간성'에 걸맞지 않는다. 이는 2막인 호리 선생의 시점으로 가면서 왜 그가 인간성이 아닌 '이해와 오해'를 맡고 있는 지 보여준다.

2막에서, 영화는 호리 선생의 시점으로해서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호리 선생은 주변에서 걸스바에 다니는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소문도 있다.) 여자친구에게서 웃는 얼굴이 무섭다, 취미인 '책에서 오타를 찾아서 출판사에 보내는 취미'가 소름끼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부분까지는 호리 선생이 아직은 미친놈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호리 선생이 끔찍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명실하게 확인된다. 호리 선생은 평범하게 아이들을 잘 지도하려 하는 선생이고 등굣길에서 아이들과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학교에 오르다 신발이 벗겨진 미나토와 동급생인 호시카와 요리(이하 요리)의 가방을 주워주는 등 평범한 면모를 보인다.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심지어는 호리 선생이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고 미나토가 동급생 요리를 괴롭힌 것처럼 연출되며 사건의 진상은 점점 더 흐려지기만 한다.

3막. 미나토의 시점. 미나토는 동급생이자 학급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요리를 신경쓰고 있다. 요리는 괴롭힘에도 늘 무덤덤하게 반응한다. 마치 마음이 없는 것만 같다. 요리의 아빠도 요리에게 '너의 뇌는 돼지의 뇌'라고 말하며 요리를 가스라이팅한다. 요리는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자신이 이상한 것도 다 자신의 뇌가 돼지의 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명백한 아동학대이지만 도대체 왜 그 아이에게 '돼지의 뇌'라는 이상한 수식어를 붙였을까 의문이 들기 마련일 것이다. 그 이유는 사실 호리 선생의 결백이나 엄마인 사오리의 오해처럼 명료하게 드러나 나오지는 않는다. 아직은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하고 마음이 자라는 중인 어린 아이들의 시점이기 때문일 것 같다.

요리는 아빠에게 "네 뇌는 돼지의 뇌와 바뀌었다."고 가스라이팅 당하고 그 말은 어느 순간 미나토에게로 옮겨 간다. 미나토는 "내 뇌는 돼지의 뇌와 바뀌었다. 괴물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돼지의 뇌'가 시사하는 바가 밝혀진다. 미나토는 교장 선생과 우연히 마주쳤다가 교장 선생과 대화를 하게 된다. 미나토는 자신이 호리 선생이 자신을 때리고 괴롭혔다고 거짓말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좋아하는 아이가 있지만 그걸 말할 수도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미나토는 동성의 학급 친구인 요리를 좋아한다. 나는 미나토는 아마 그 사실이 터부시 되는 것과 요리의 아빠가 말한 '돼지의 뇌'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돼지의 뇌'를 가졌다는 것은, 동성애자라는 말과 동일하게 읽힌다.

이 부분이 더욱 뚜렷해지는 장면은 여럿 나오지만 그 중에서 한 장면을 꼽자면 이거다.

미나토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며 요리를 밀어내다 결국 요리의 집으로 찾아간다. 요리는 요리의 아빠와 함께 현관으로 나와 미나토에게 인사하며 일전 전학 가기로 했던 곳의 여자아이를 좋아한다고 대뜸 고백한다. 요리의 아빠는 요리의 병(돼지의 뇌)이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 다음 바로 이어지는 대사다. 요리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가 다시 벌컥 현관문을 열고 나와 말한다. "거짓말이야."

이 대사는 미나토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기 시작했던, 산 속 버려진 기차에서 요리가 전학 갈 것이라고 말한 후 그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다시 사과하며 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한 거짓말이었다고 한 대사와 이어진다.

요리가 말하는 "거짓말"은 단순히 자신이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리의 "거짓말"은 괴롭힘 앞에서 덤덤하게 반응하고 마치 마음이 없는 것처럼 한 모든 행동을 부정한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고, 상처 받아왔다고. 그래서 이 장면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따돌림에도 지나칠 정도로 밝고 어른스럽게 행동해서 오히려 '인간성' 없는 아이처럼, 마음이 없는 아이처럼 보였던 요리에게도 상처 받을 마음이 있다는 것이 슬펐다. 차라리 정말 '돼지의 뇌'를 가져서 상처도 받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인간성과 마음, 이해와 오해, 사랑과 순수를 3막에 거쳐서 보여주며 어른들의 시선으로 본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세상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폭풍우가 치는 밤, 두 아이는 둘만의 기지인 산속의 버려진 기차로 숨어들고 아이들의 마음을 뒤늦게 깨달은 엄마와 호리 선생이 아이들을 찾으러 산으로 들어간다. 엄마와 호리 선생은 버려진 기차를 발견해 위의 뚜껑을 열어 어두컴컴한 내부에 대고 아이들의 이름을 연신 부르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마지막, 폭풍우가 지나고 아이들은 햇살이 쨍쨍하게 비치는 산으로 다시 나온다. 아이들은 영화 내내 던져졌던 질문인 "죽으면 무엇이 될까?"의 답을 보여준다. 변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그대로일 뿐.

아이들은 철창으로 막혀있던 곳이 이제는 뻥 뚫어져 탁 트인 벌판을 달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밝고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엄마와 호리 선생과 같은 장소에서 엇갈린 두 아이는 아마 죽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른의 시선으로 본 세상이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이들의 죽음이 아닌 그 아이들이 가졌던 순수와 사랑뿐이다.

+

영화 내내 여러가지 장치가 영화를 몰입감 있게 만들었고 덕분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앞서서 내용에 대해 길게 늘여 썼지만 개인적인 감상만을 말하자면, 후반의 아이들의 시점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앞의 어른들의 뒤숭숭한 이야기는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후처럼 지워져버린 것 같이 느꼈다.

음악 감독으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함께 했는데 그의 작고를 슬퍼할 따름이다. 중간중간 삽입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들 덕분에 영화가 더욱 아름다워진 것 같다. 

초반 엄마 역할의 안도 사쿠라의 분노하는 연기가 정말 멋졌다. 교장 선생 역할의 다카노 유코의 무감정하게 마음이 죽어버린 사람의 얼굴도 이 영화를 이루는 큰 축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이번 영화가 역대 영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의 섬세한 마음, 그로 인해 치밀한 장치들마저 무시되고 마는 핍진성을 주목할만하다.

굳이 영화의 교훈을 따지자면 한 가지 측면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정도가 되겠지만 구태여 교훈 씩이나 붙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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