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5] 고구마님 연교

집을 구하는 이야기 / 달링 우린 왜 집 없어..? 그러게..

발더스3 by 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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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스 게이트에는 여러 가지 인간상이 존재한다. 그림을 잘 그려 화가로서 이름을 날린다던가, 요리를 잘해 저명한 레스토랑이나 여관의 셰프가 된다던가.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건 스스로에게 달렸으니 살아가는 방식 또한 제각기 다른 법이다. 캄마의 경우에는 손재주가 남다른 편이었다. 허나 그가 택한 길은 공예품 만들기도, 십자수 놓기도 아니었다. 기척을 죽인 채 조용히 남의 주머니만 조금 건드려도 손쉽게 부를 늘릴 수 있는데, 구태여 귀찮게 무언가 만들어 팔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덕분에 캄마는 아스타리온과의 합이 퍽 잘 맞았다.

주변 동료들은 그 둘을 부부사기단이라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놀려대기도 했더란다. 마냥 빈말도 아니긴 했다. 둘이 함께 지금껏 손장난으로 벌어들인 것의 액수만 쳐도 발더스 게이트에 으리으리한 저택 하나는 지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므로. 허나 캄마는 달리 번듯한 집을 구할 생각을 하지는 않은 듯했다. 제 연인의 곁이면 어느 곳이든 좋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라면 기나긴 여정 도중 야영지 생활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인 걸까. 둘은 묘비 근처 볕이 잘 들지 않는 숲에서 달빛을 조명 삼아 야영하곤 했다.

머릿속의 올챙이가 사라진 이후, 아스타리온은 이전과 같이 햇빛에 취약한 뱀파이어 스폰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이전처럼 편하게 야영하는 것에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캄마와 아스타리온은 어두운 숲과 여관을 전전했다. 허나 발더스 게이트 내 일련의 사건들이 잠잠해진 후로는 여관방을 이용하는 투숙객이 성황을 이루었고, 자연스레 캄마는 이전처럼 엘프송 여관을 제 집처럼 쓰기 어려워졌다. 거의 반강제로 숲에서의 야영을 끝마친 날 아침, 아스타리온은 그늘진 곳에서 하얗게 그을음이 생긴 제 얼굴을 매만지며 캄마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 달링, 우리 집 하나 구할까? ”

“ 그러는 게 좋겠지? ”

“ 응. 햇살에 피부가 타오르는 걸 자명종 삼아 깨어나는 건 이제 사양이거든. ”

슬슬 해 뜨는 시간이 길어질 시기이긴 하지. 캄마는 여행용 궤짝을 열어 대부호들 부럽지 않을 양의 금화가 든 자루를 꺼냈다. 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땀 눈물의 증거인가. 허나 어쩔 수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했거든. 이런 수전노가 발더스 게이트를 구한 영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평판이 순식간에 바닥을 치겠지. 금화 자루를 들어 올리자 묵직한 무게감이 손목에 압박을 주었다. 캄마는 중개 사무소에 있는 주택 매매와 관련된 공고는 모조리 수주했다. 저 혼자라면 모를까, 아스타리온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찾으려면 발품을 깨나 팔아야 했으니까.

첫 번째로 본 집은 인테리어가 아스타리온의 마음에 들지 않아 패스, 두 번째는 남향의 환경인지라 햇볕이 너무 잘 들어 기각, 세 번째는 캄마의 형제가 사는 곳과 너무 멀었던지라 반려했다. 어느새 바닥난 공고문을 보던 캄마는 다음 집이 마지막 후보군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쓸만한 집 한 채가 없어서야. 별다른 기대를 가지지 않고 향한 곳은 바알리스트의 살인 사건 당시 폐가가 되어버린 곳이었다. 조용하고, 음산하리만치 텅 빈 데다가 사망자가 나온 집이라 아무도 선호하지 않아 값도 싼 편이었다. 햇빛도 잘 들지 않고 고풍스러운 나무 가구들이 즐비해 아스타리온의 마음에도 쏙 든 듯했다.

누군가 듣는다면 구태여 비싼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이런 집을 살 이유가 없다고 하겠으나.. 그건 척박한 야영지에서 영양소도 모자란 식사를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캄마와 아스타리온에게는 그저 햇빛을 피하고, 아침이건 밤이건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둘만의 공간이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캄마는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기도 했거니와, 하루라도 빨리 제 연인을 햇볕에 그을릴 걱정 없이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사는 절찬리에 진행되었다. 둘의 취향을 담은 가구를 들이고, 빛이 들어오는 창문은 나무판자로 땜질했다.

채광 한 줌 없는 집이었으나 모자람은 없다. 어두운 집에는 한기만이 감돌지 몰라도 둘 사이에는 따스한 온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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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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