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6] 고구마님 연교 서비스

한껏 끌어안은 어둠은 너무나도 따스했다.

발더스3 by 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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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보금자리는 아스타리온에게 있어 안성맞춤이기 짝이 없었다. 나약한 뱀파이어 스폰에게 볕 한점 들지 않는 집이란 얼마나 달콤한 안식처인가! 피부가 타오르는 통증 없이 눈을 뜬 아스타리온은 제 연인을 뒤에서부터 가볍게 껴안으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구태여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 캄마는 찻잎을 우리기 시작했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홍차의 향이 좁은 거실 안에 가득 찼다. 호밀빵과 워터딥 치즈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홍차와 함께 식탁에 놓으니 남부럽지 않은 아침상이 차려진다.

“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아침 먹어야지. ”

“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래. ”

웬일로 답지 않게 응석을 부리는 아스타리온의 모습에 캄마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러고 보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이렇게 쉬어본 기억은 많지 않으니까. 기껏 내린 차의 온기가 서서히 식어가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연기가 꺼진다. 상관없었다. 찻잔에 담긴 음료가 식어갈 때마다 반대로 캄마와 아스타리온 사이의 온기는 더욱 따스해져만 갔다.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인용구가 아닐까. 눈을 감은 캄마는 침대에서 일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채 마음에도 없는 말을 농담 삼아 던졌다.

“ 홍차, 식어버리겠네. ”

“ 괜찮아. 원래부터 다른 게 마시고 싶었어. ”

목가에 느껴지는 아릿한 기분에 캄마의 눈이 떠졌다. 뱀파이어 특유의 날이 선 송곳니가 캄마의 목가에 닿아 있었다. 아주 조금이면, 금세 엄니가 파고들어 따뜻한 선혈을 탐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아스타리온은 장난기 어린 눈짓을 하며 캄마를 바라보면서 히죽이고 있었다.

“ 한동안 안 그러는 것 같더니. ”

“ 나름대로 달링을 위해 참은 거라고 생각해 줘. ”

“ 안 참아도 되는데. ”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체내에 서릿발이 돋아나는 것만 같은 서늘한 감각이 엄습한다. 부드럽지만, 서서히 몸의 생기가 빠져나가는 생경한 느낌. 이는 여럿 경험해도 익숙해질 턱이 없었다. 진정하고 가만히 있으려 해도 제 의지와 관계없이 손이 미약하게 떨려왔다. 아스타리온은 그 떨림을 보고는 이빨을 물렸다.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조절할 수 있는 최적의 선을 스스로 찾은 듯했다. 간만에의 흡혈로 말끔했던 목가에 다시금 이빨 모양의 상처가 생겨났다. 아스타리온은 그 상처 주변을 손가락으로 쓸어주며 속삭였다.

“ 아침은 이걸로 해야겠네. ”

“ 어련하겠어. ”

간만에의 포식으로 윤기가 흐르는 아스타리온과는 달리 캄마는 점점 찾아오는 빈혈기에 잠시간 이마를 짚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쥔 잔에 든 홍차는 이미 온기를 잃어 쓰고 텁텁한 향만이 남은 지 오래였다. 으, 이건 버리고 새로 내려야겠다. 그 모습을 본 아스타리온은 캄마의 손에서 잔을 가져갔다.

“ 차는 내가 다시 준비할게. 일어나지 말고 쉬고 있어. ”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뻗대기에는 너무 어지러웠다. 언젠가 주워들은 말에 의하면, 빈혈이 찾아올 때는 몸을 일으키지 말고 한동안은 앉거나 누워있으라고 했던가. 아스타리온 역시 뱀파이어와 살아가는 연인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모두 섭렵했다. 캄마는 말없이 웃으며 침대에 풀썩 누워 아스타리온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에 오페라와 파티를 즐기던 양식이 몸에 배어있는 영향인지 차를 우리는 것도 익숙한 듯했다. 뱀파이어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 모습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었을까.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달링? ”

“ 네 생각. ”

“ 오, 예상은 했지만 이리 간단히 맞출 줄은. ”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맞춘 뒤 천천히 떨어졌다. 캄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몸 구석구석에 온기가 퍼져 나가는 듯한 느낌에 기분 좋게 미소를 짓기도 했던가. 아스타리온이 제 얼굴을 보곤 뭐가 그리 좋냐고 묻기도 했던 것 같다.

“ 그런 게 있어.”

“ 내게도 안 알려줄 거야? ”

“ 네가 알려달라고 한 거다. ”

캄마는 나지막이 속닥이며 아스타리온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따뜻해서. 눈을 감으면 저를 감싸 안는 이 포근한 어둠이, 너무나도 따스해서. 너와 함께하는 모든 게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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