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경성은 데카당스하다면서요 마담

2023.02.23.

유령 (이해영 영화)

모더니티로 치장한 식민 도시 경성은 양가적인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경성이 사업과 사치와 향락이라면 동시에 누군가에겐 피와 총과 폭약일 것이다. 한국 영화 속 경성이 특히 그렇다. (1930-40년대 항일 투쟁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더더욱.) 일본인과 조선인, 매국과 애국, 번영과 상실…. 경성은 그러한 가치와 방식들이 뒤섞이는 공간이며, 사람들이 저마다 그곳을 달리 인식하는 건 모습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썩고 곪아서, 혼란스러운 도시. 단순히 공간적 배경의 제시만으로도 그러한 분위기가 그려진다.

내게도 경성 이미지는 파편으로만 존재한다. 옥윤과 미츠코의 경성, 주란과 연덕의 경성, 히데코와 숙희의 경성(배경이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경성 이미지 도식에 가까우니 경성으로 퉁치기로 한다). 이러한 경성 이미지들은 클래식이 모던이던 시절을 소개한다. 심미적으로 훌륭한 미장센은 불안과 염세를 동반하고, 나른한 한편 퇴폐적이기도 하다. 〈유령〉에서도 이런 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작중의 인물들은 대부분 웃지 않지만, 웃는다고 해서 그 특유의 멜랑콜리를 모조리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또한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기에 관객은 그들 개인의 인생과 시시콜콜한 사연을 궁금해하게 된다. 마침내 차경과 강옥의 경성도 내 안에 품기로 한다.

클로즈드 서클 | 파도치는 절벽 위 고딕풍 저택에서의 고립. 고전 미스터리 장르로부터 시작되어 온갖 이야기들에서 주야장천 등장해왔던 고립계의 도식이다. 외부의 개입이 금지된 공간은 인물들로 하여금 서로만을 의식하게 만든다. 특히나 인물들을 모아놓은 흑막으로부터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식의 요구를 받는다면 긴장은 더욱 확대된다. 그것은 처음에 황당하기만 한 발언으로 치부되지만, 생존자들은 점차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겪으며 점차 그것을 현실의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적응의 과정에 인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는 것은 늘 새롭고 매력적이다.

〈유령〉에서 인물들을 고립시키는 것은 일제의 권력이다.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는 총독부에 소속된 의심 인물들을 끌고 와 그들 중에서 '유령'을 찾아내려 한다. 그의 태도는 정중하지만 종종 가학적인 면모를 내비친다. 관객은 차경이 유령임을 이미 알고 있고 그를 초점 인물로 받아들였기에 정체의 발각 그 자체를 경계한다. 또한 다른 '유령'의 존재를 알아내려 촉각을 기울인다. 이쪽의 정체를 먼저 밝히는 건 위험하므로, 차경의 안전을 위해선 상대에 대한 강한 의심이 요구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유령 찾기'보다 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게 되는 흐름이다.

행동 원리는 사랑 | 차경의 애국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고귀하고 숭고한 나라 사랑은 아니고 그저 한 여자를 사랑해서. 로맨스 서사에선 발에 챌 정도로 흔한 사정이지만 항일 투쟁을 셀링 포인트로 삼은 이야기에선 다소 독특함을 가진다. 원래부터 각자 애국하던 이들이 함께 싸우기 시작하면서 점차 사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차경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총을 등 뒤로 비스듬히 매고 시대와 싸우길 선택했다. 이하늬 배우는 웃는 표정이 참 매력적인데(그 케이크 화보는 전설이었다), 그가 연기한 차경은 사연 있어 보이는 건조한 표정이 디폴트였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금방 흩어져 버리는 쌉싸름한 담배 연기가 떠오른다. (차경은 과연 금연을 했을까?) 말수와 웃음기가 적은 차경이 사랑을 이유로 불길처럼 살아간다는 점은 그의 캐릭터가 가진 의외의 매력이다. 처음엔 잉?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설정이다. 그 여자가 가족 때문에, 또는 그저 애국심 때문에 항일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려 어색할 정도다.

한편 천은호는 시대에 저항하지 않고 다만 적응한 인물이다. 그의 모든 이유와 동기는 반려묘를 향한 사랑이다. 그가 고립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신의 고양이인 하나쨩(…)에게 밥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항일 결사를 향해 보이는 적대감이 특별히 악독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사소한 이기심은 '보통 사람'이 가질 만한 태도다. 옳지 않다고 해도 그걸 비난할 자격은 내게 있지 않다. 같은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 극한 상황 속 '보통 사람'의 존재는 나를 심란하게 만든다. 마음 편히 응원하기도 미워하기도 힘들다.

하남자는 말이 많다 | 여자들이 담담하고 과묵한 반면 남자들은 참 시끄러웠다. 말을 많이 하는 건 일종의 방어적인 태도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위해. 그들은 매 순간 입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긴다. 또한 그들은 각자의 사정에 매몰되어 여전히 과거를 살아가고, 그들의 과거를 타인의 현재로 자꾸만 끌고 온다.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어차피 이젠 다 죽어서 혓바닥도 전처럼 유연하진 못할 테지만).

강옥과 유리코 | 나는 '골 빈 년'(이 표현을 정말, 정말, 정말로 싫어하지만 이것만큼 빠르고 적확한 다른 설명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캐릭터 조형을 사랑한다! 특히 고립계 미스터리에서는 그런 캐릭터의 진가가 드러난다. 타인과의 협력이 익숙하지 않아 매사에 비협조적으로 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공공의 이득을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기도 하고, 현재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여태껏 누려온 특권과 사치가 여전히 적용되리라 착각하는 인물들. 공포 앞에서도 특유의 고집을 부려 언제까지나 오만을 고수하는 이들. 응석은 불가하다. 그들은 억지와 명령과 요구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요소들은 여성 캐릭터에게 부여될 때 끝내준다고 생각한다. 남성 캐릭터들은 같은 짓을 해도 어쩐지 꼴 보기 싫은 데다가, 주인공의 행보에 방해가 되니 얼른 죽어서 퇴장하기만을 바라게 된다.) 마요네즈 위 청양고추와도 같은 그들은, 와가마마와 히스테릭으로 "나대지 말 것"이라는 미스터리 장르의 암묵적 규칙을 뒤흔들며 아무렇지 않게 나댄다. 그러다가 분위기 조성을 위해 살해당하거나, 그게 아니면 운 좋게도 최생 중 하나가 된다. 그들은 결코 어중간한 삶을 살지 않는다.

그래서 요시나가 유리코에게 시선이 갔다. 화려한 옷을 걸치고, 총독의 비서(더 나아가 애첩)라는 지위를 내세우며 고압적으로 굴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아 흑막의 입장에선 가소롭기만 한 어린 여자. 그러나 그런 유리코의 이면에는 강옥이라는 사람이 있다. 어쩐지 박소담 배우의 연기가 한국어를 말할 때와 일본어를 말할 때 많은 차이를 보인다 싶더니. 유리코와 강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면 납득이 간다. 유리코가 타협을 모르는 정도 그 이상으로, 많은 걸 포기한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무덤덤함이 강옥에겐 있다. 빠른 결단을 내릴 줄 알기에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는 유리코를 사랑하는 만큼 강옥을 사랑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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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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