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크블레] ●●을 다시 ●는 ●● ●●의 ●● (미완)

무농약 by ㅁㄴ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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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날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와 그 아이만 빼고.

“블레이크.”

잔뜩 찌푸려진 눈썹과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 하며 내리깐 눈, 그 아래 그의 눈동자 만큼이나 붉어진 두 뺨과 우물거리는 입술... 사랑 고백이었다. 최후의 최후에도 나를 싫어할 거라 생각했던 단 한 명의.

“내가 너를…”

그러나 내가 그 말을 채 다 듣기도 전에, 세계는 무너져내렸다.


가제: 세계 멸망을 막아라

주인공: 블레이크

“헉...”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항상 보는 내 방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왜 집에서 자고 있던 건지,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신을 잃기 직전에는 분명 대낮이었고, 버서크를 만났다가 갑작스럽게 온 세상이 무너져내렸다는 것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비유적인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는 말이다. 나까지도...

나는 곧 내 몸을 더듬어보았다. 이상하게도 어디 한 군데 상한 곳 없이 멀쩡한 듯 했다. 그러나 식은땀으로 잠옷이 축축했다. 서늘한 느낌과 함께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브레이커가 방문을 열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블레이크~ 헉, 블레이크, 괜찮아? 안색이 창백해.”

브레이커는 내 옆에 와 앉아서 내 이마를 짚고 열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상하게 익숙한 상황이었다. 브레이커가 들고 있던 종이뭉치까지도.

“괜찮아. 그런데 그건 뭐야?”

“뭐긴, 학교 숙제잖아. 어제 같이 했던 거 프린트 해왔어. 오늘까지니까.”

“학교 숙제...?”

“그래. 하룻밤 사이에 까먹은 거야? 국어 숙젠데, 조별로 주제 정해서 조사하고 보고서 써서 내고 발표하는 거.”

“그건… 저번주에 끝났잖아?”

“아냐~ 오늘 제출이라서 어제 같이 했잖아. 베쉬한테도 물어보고 올게. 베쉬~!”

그 순간 나는 이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의 정체가 짐작이 되었다. 그렇지만 설마...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휴대폰을 찾아들었다. 잠금화면에 표시되는 날짜는 4월 15일. 내가 오늘일 거라고 생각했던 날짜의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말도 안 돼. 무언가 잘못된 거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충분히 납득가는 일들이 있었다. 브레이커의 반응도 그렇고, 휴대폰도 그렇고. 게다가 시간 역행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건 이미 예전에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나는 곧장 이불을 박차고 방 밖으로 나갔다.

“브레이커! 베쉬!”

“어. 블레이크. 브레이커 말대로 이거 제출 마감은 4월 15일이고 그게 오늘이야.”

“오늘 4월 15일 확실해?”

“휴대폰 봐.”

“네 걸로 한 번 봐봐.”

“네 건 어쩌고... 맞잖아, 4월 15일.”

이걸로 확실해진 것이겠지.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나는 진지하게 얘길 꺼냈다.

“베쉬, 나 미래에서 왔어. 일주일 뒤의 미래에서...”

“잠 덜 깼어?”

“진짜야!”

“알았어. 우선 가서 씻고 옷 갈아입고 와. 학교 가야지.”

*

“…일주일 뒤에 우리 세계가 완전히 붕괴된다고... 그리고 너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났더니 일주일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알 것도 같아. 공간이 붕괴되는데 그 영향권 밖으로 튕겨져 나가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타임머신을 뺀질나게 쓰고 다녔던 너일 거야.”

“아냐, 난 그때 타임머신 안 갖고 있었어.”

“그때 갖고 있었는지는 별로 상관없어. 타임머신은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장치니까.”

“어... 그런 거야?”

내 얘기를 들은 베쉬는 무덤덤했다. 그럴 만도 하다는 듯이. 반대로 브레이커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일주일 뒤면 세계가 멸망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괜찮아! 앞으로 일주일 남았잖아.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최대한 조사해보자.”

“그래! 그럼 뭐부터 할까?”

“등교.”

“아.”

베쉬의 대답에 우리는 일제히 가방을 챙겨 매고 학교로 향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은 일주일... 아무래도 짧게 느껴지는 기간이었다. 지금은 단서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잠 자는 시간에 학교 가는 시간, 숙제나 수행평가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도 빼면 남는 시간은 많이 쳐줘서 하루에 반나절 정도일까. 평일에 그런 걸 다 끝낸다면 주말에는 일정이 딱히 없지만 일요일 오후가 되면 끝이라고 봐야하니까 그리 여유로울 것 같진 않았다.

“그럼 블레이크,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을지도 다 알고 있겠네?”

“음... 말하려고 하니까 잘 기억이 안 나네. 특별한 일은 없었던 거 같은데. 생각나면 말해줄게.”

“아하하. 하긴, 나도 일주일 전에 뭐했는지 기억 안 나.”

“블레이크, 세계멸망의 원인에 대해 뭐 짐작 가는 건 없어?”

“하나도 없어. 그리고 밖에서 세계멸망 같은 말 하지 마. 괜히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조사하는 데 방해돼.”

“흠. 그럼 너 정신을 잃기 직전에는 뭐하고 있었어?”

“그건 왜?”

“그 일이랑 관련된 일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

“에이, 아냐... 그런 일은...”

그런 일이 세계 멸망이랑 관련이 있을 리가. 나는 말끝을 흐리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굳이 숨기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고, 베쉬랑 브레이커가 동시에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넘어가기엔 이미 늦은 듯 했다.

“그게… 나 고백 받고 있었거든.”

“진짜!? 누구한테서?”

“누구냐면... 그게~ 밖에서 말하기는 좀.”

“에이~ 그러지 말고 말해봐. 응? 블레이크~”

어떻게 말을 할까…그 상대가 버서크라고.

“평소에 고백 받았을 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더니, 상대가 무진장 마음에 안 들었나봐.”

“하긴, 우리한테 말할 땐 항상 사귀기로 한 뒤에 말해줬으니까.”

“그런 거 아냐. 그냥 좀, 조심스러워서 그래. 버서크였거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는 표정. 나는 더 이상의 반응을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아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헛소리 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안 그래도 세계멸망 같은 믿기 힘든 얘기까지 해뒀으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전부 거짓으로 본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내가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곧장 브레이커의 손길이 정신 차리라는 듯이 내 팔뚝에 닿아서 고개를 들어보자 브레이커가 상상도 못 한 발언을 했다.

“블레이크, 혹시 세계… 그 일이 일어난 이유가, 버서크 때문 아냐?”

“…어?”

“아니, 버서크가 고백하는 중에 세계가… 그렇게 됐다고 하니까, 버서크가 고백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잖아.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서.”

“어. 하하. 말도 안 되긴 하지. 그렇긴 한데...”

“그럼, 그런 말도 안 되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 게 완전히 우연이라고?”

“베쉬, 너까지 왜 이래.”

“둘 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면 모를까.”

“진짜야, 정말...”

“네가 미래를 알고 왔다는 건 지금부터 증명하면 되는 일이잖아.”

“윽. 그래, 내가 오늘 하루 전부 예측해낼 테니까 두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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