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벅/벅블로] 오천원 주면 키스해주는 그놈
* 이 글은 팬픽이며 오천원 주면 키스해준다는 이 글의 주요 소재는 원작이 따로 있는 소재임을 미리 밝힙니다.
* 다소 피폐한 K-현패-하이틴-학원물AU의 블로섬과 벅 씨피 연성...이지만!! 둘은 정말로 키스만 합니다.
* 이 글에서 나오는 교육과정과 교육환경 등은 현재와 다를 수 있지만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봄,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는 계절.
그러나 학기 중이건 방학 중이건 공부에 찌들어있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산뜻함이라고는 티끌 만큼도 없이 자극적인 주제만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얘기 들었어?”
“키스 팔이 하는 애 얘기지? 개학하자마자 장사 개시한다는 얘기 들었어~”
“궁금한데 나도 가볼까?”
“뭐? 하하하, 미쳤나봐~!”
그 중 제일은 오천원을 주면 키스를 해준다는 어떤 남학생이었다.
이름은 벅. 18살로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그는 180cm를 훌쩍 넘는 훤칠한 키와 단정하고도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한 마디로 키 크고 잘생긴 그가 키스를 팔고 다니는데, 심지어 키스를 잘해서 매번 여학생들을 줄 세운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소문은 옆 동네까지 파다했으나 고객(?)으로는 같은 학교의 여학생만 받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와 같은 학교의 전교 1등 모범생 블로섬도 예외가 아니었다.
“걔 안 봐도 뻔해. 완전 양아치일 거야.”
“그렇겠지?”
“그런 애랑 그렇게 엮여서 좋을 거 하나도 없잖아. 그리고...”
딩동~
“…공부해야지.”
본의 아니게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된 블로섬은 덩달아 그놈의 소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듣는 소문은 아니었다. 그놈은 작년에도 같은 학교였으니까. 잊을 만하면 자극적인 소식이 들려오는 바람에 공부에 방해가 되었다는 이유로 블로섬은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놈에게 은근한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물론 블로섬 스스로도 그놈의 소문에 관심이 생겼던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공부하기만 해도 바빴다. 아침 7시 50분까지 등교해서 아침자습부터 7교시의 수업, 점심과 석식시간을 갖고 야간자습까지 마친 뒤 밤 9시 50분 하교하는 루틴을 모범생 컨셉 답게 1학년 내내 돌았고 2학년 때도 마찬가지일 예정이었다. 하물며 내신 성적 비중이 더 높아지는 2학년 아니던가. 공부를 덜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아무리 자극적인 소문이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지. 블로섬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딴 생각에 열중하고 있던 블로섬도 바로 알아챌 정도로 소란스러웠던 반의 공기가 한 순간에 얼어붙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신 건가 하고 앞을 봤더니, 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교실 앞문 쪽에서 걸어들어오는 사람은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학생이었다. 복장과 달리 아주 훤칠하고 날티나게 생긴 남학생이...
설마.
“…혹시 쟤야?”
“글쎄... 우리 학교에 키 크고 잘생긴 애가 또 있다는 얘긴 못 들어봤는데.”
아니겠지... 블로섬은 다른 아이들의 긴가민가 하는 반응을 확인하면서도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곧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출석을 부르면서 그 학생의 정체는 확실해졌다. 벅. 오천원 주면 키스를 해준다는 그놈이, 지금 같은 반이 된 것이었다.
벅은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키가 크니 학생들 틈에 서 있어도 단번에 보이고, 깎아놓은 듯이 잘생겼으니 주변에 다른 학생들이 몰리고, 심지어 그럴 여지가 없는 수업 시간에도 그놈은 눈에 띄었다. 그놈이 블로섬의 자리에서 교탁 방향 대각선 앞쪽 자리에 앉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놈은 놀랍게도 수업 시간에 필기를 열심히 하고 선생님과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심지어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다.
물론 블로섬은 전교 1등이었고 성적이 좋은 축에 낀다는 정도로는 블로섬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하지만 이미 블로섬은 충분히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 애가 공부를 잘한다는 게 충격인 건지, 자리 배치가 이 모양이 된 게 충격인 건지, 그냥 소문의 그놈과 같은 반이 됐다는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충격이 큰지 농담 조금 보태서 문과로 전과할 생각도 잠깐은 해볼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소문으로 들을 때는 괜히 신경쓰인다며 원망하기도 하고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교복도 단정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아닌가.
그렇다고는 해도, 왁스라도 바른 듯이 뒤로 넘긴 머리를 하거나 껄렁해보이는 자세를 하는 등의 모습에서 사실은 양아치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키스 장사를 한다는 발상이 비상식적이지 않나? 대체 왜 그런 걸 하려고 한 걸까? 그리고…
저런 애랑 키스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블로섬은 이미 스스로에게 체념하고 있었다. 그놈을 보면 저절로 키스에 대한 것도 생각하게 되는데 그놈은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가. 그러다보니 이제는 시시때때로 어디에서나 그놈의 키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이를 18개씩이나 먹어놓고 이제 막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사춘기 애처럼 말이다.
지금도 그놈은 블로섬이 눈알만 살짝 굴리면 보이는 대각선 앞자리에 있었다. 점심 시간, 수업 종이 울리기까지 십여 분이 남은 시점.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실에 없고, 손에 꼽을 만큼의 학생들이 귀를 막고 조용히 공부하고 있고, 나머지는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고, 벅은 제 자리에서 그런 학생 무리에 끼어있었다.
정확히는 자리에서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다른 반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다른 반 애들이 교실에 들어오게 두는 것부터 말이다. 그렇지만 또 엄청 시끄럽지도 않으니 그냥 그대로 둘 뿐이었다.
그놈은 평소에 친구들과 몰려다기보단 혼자 다니는 모양이었다. 지금처럼 종종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이기만 하면서. 언뜻 보기엔 여친 만들기에만 지대한 관심이 있는 남학생 같은 모습이었지만 어렴풋이 들리는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대화하는 모양새가 추근대는 게 아니었다.
언제는, 이런 식으로 쳐다보고 있다가 뒤를 돌아본 벅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왜 쳐다보냐는 등의 말은 듣지 않았으니 다행이었지만 블로섬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었고 그 이후로 블로섬은 의식적으로 그놈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물론 그럴 수 없는 시간도 있었다.
벅은 미적분 시간에 어느 때보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미적분은 시간표 상 매일 있는 시간이었다.
듣기로는 수학을 가장 잘한다는 모양이었다. 여러 과목 중에 수학 성적이 가장 좋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 수학을 가장 잘하는 학생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 비교군에는 전교 1등인 블로섬이 예외가 아니었다.
미적분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의 생기부를 위해 교실 앞으로 나와서 칠판에 직접 문제 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셨다. 자진하는 학생들은 문제 수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손을 들면 한 번 걸러 한 번은 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매번 손을 드는,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 벅이었다. 외모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는 시원시원한 걸음걸이 하며 문제를 막힘없이 풀어내는 목소리 하며 사투리 억양이 섞인 말투까지...
블로섬은 그냥 고개를 숙여버리고 싶었지만 벅이 수학을 잘하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 태도 점수도 문제지만 블로섬은 수학에 비교적, 아주 조금, 약했다.
블로섬과 달리 다른 아이들의 반응은 전체적으로 미적지근한 듯 했다. 1학기에 배우는 것은 미적분1으로 이과 학생으로서 수학 가형을 선택한다면 수능에서 보지 않는 과목이었고, 2학기에 배울 미적분2를 선행학습했다면 1은 쉽게 느껴지니까. 그리고 그 정도는 방학 중에 선행학습을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벅도 했을까? 수학을 잘한다면 대체 얼마나 잘하는 걸까? 모의고사를 보든 지필평가를 보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과목별 석차뿐이니 궁금하다면 본인에게 얘길 들어야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말을 걸면 이상하겠지. 그런 건 친구들끼리도 잘 안 하는 얘기 아닌가.
블로섬은, 벅과 친해지고 싶냐면 그건 아니었다. 지금 그놈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친해지기 싫은 것은 아니고 바쁘니까. 친구는 반에 같이 밥을 먹을 친구 정도만 있으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블로섬은 같은 반에 말 안 섞어본 친구가 없는 편이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뭔가 해보기에는 시기가 이미 늦었다. 수행평가의 계절이 시작된 참이었다.
교실 앞 게시판에는 각 과목별로 수행평가 내용을 공지하는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었다. 학생들은 각자 그것을 휴대폰으로 찍어가든지 해서 수행평가를 준비해야 했다. 블로섬도 안내문을 휴대폰으로 찍어 저장한 뒤에 읽어보고 있었다.
아니, 읽으려고 했다.
같은 반의 오천원 주면 키스를 해준다는 그놈 때문에... 당장 눈앞의 수행평가 공지사항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절은 계속 바뀌고 있었지만 자리는 바뀌지 않았고 그놈에 대해서라면 궁금한 점을 간직하기만 한 채 해소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자리에서 친구들과 시시콜콜 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놈의 목소리가 블로섬의 귀에 꽂혔다. 그놈은 자신의 얘길 꺼내기보단 친구의 이야기에 말을 얹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그놈은 학교 안에서는 얌전했다. 소문의 발랑 까진 양아치 같은 언행을 하지 않을 뿐더러 키스의 ㅋ도 입에 담지 않았다. 오직 소문만 무성했다.
소문만 듣고 호기심을 가진 상태에서 접근하는 건 예의도 아니겠지. 고개만 조금 들면, 눈만 조금 돌리면 그놈이 실제로 앞에 있는 게 보이는데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자리는 앞으로 몇 번이고 바뀔 것이며 호기심은 일시적인 것이다.
블로섬은 그렇게 생각하며, 당장 대책을 강구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로 며칠 뒤에 수치로 드러났다.
“어…?”
그제 본 수행평가의 점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문제 형식은 간단한 빈칸 채워넣기 문제로 서술형도 아니고 수업 시간에 보는 유인물 수준의 개념 문제였다.
“왜 그래?”
“아, X됐다. 아까 9반 애들이 난리길래 뭔가 했더니 나도 빈 칸 다 안 씀.”
“뭔 소리야? 엥?”
“여기, 표에 괄호 안 쳐진 칸도 다 채워야 하는 거래.”
“이거 말이야? 헐. 나도 안 채웠는데.”
뒷자리 아이들의 대화를 들은 블로섬은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점수 확인을 위해 블로섬이 돌려받은 문제지에도 빈 칸이었는 줄 몰랐던 빈 칸 몇 개와 딱 그 개수만큼 깎여나간 점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야, 이거 채운 사람이 있긴 해?”
“몰라 X바...”
블로섬은 처음 겪는 일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공부를 부족하게 한 것도 아니었으며 실제로 모르는 내용도 아니었다. 빈 칸 몇 개를 못 보고 넘어가는 바람에 그냥 오답 처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다른 애들 중에서도 같은 실수를 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웅성거리는 규모로 보아 절대다수였다. 곧 그러한 학생들의 점수를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성적에 반영될 점수 계산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지만 그것도 그렇게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블로섬의 점수는 확실히 만점이 아닐 예정이었다.
블로섬은 충격을 받았다. 괜찮아. 침착해. 속으로 그런 말을 되뇌었지만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겨우 탐구 과목 수행평가 하나에서 1, 2점 정도 깎인다고…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최근 스트레스가 심했다. 안 그래도 2학년으로 올라오면서 문이과가 나뉘는 바람에 각 과목별 등급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교생 수가 반으로 줄어서 100명 중 4명에 들면 받을 수 있던 1등급이 이제는 50명 중에 겨우 2명이 된 꼴이라 불안한데 점수가 깎여도 어려운 시험이 아닌 이렇게 단순한 개념 문제를 풀 때 깎인 것도 모자라 그 이유가…….
그 날 야간 자습시간, 블로섬은 잠시 책이며 필기도구를 펼쳐놓은 그대로 두고 조용히 자습실을 나왔다.
달리 움직일 수도 없이 자리에 앉아서 여러 가지로 생각만 하다보니 어느 순간 블로섬은 머리가 맑아지며 할 일이 뚜렷해지는 듯 했다. (그 사이 석식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먹었다.) 결국 블로섬 자신이 학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이 마음을 당장에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블로섬은 지금 오천원 주면 키스를 해준다는 그놈이 장사를 하는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마침 지갑에 오천원 정도는 있었다. 요즘 공기가 안 좋으니 마스크도 갖고 있었고, 옷도 후드집업을 입고 있었으니 후드를 덮어써서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야자가 강제인 건 아니라 도망치는 학생을 잡으려는 선생님은 없지만 말이다…
블로섬은 자연스레 언젠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수업 시간이었는지 쉬는 시간이었는지 주변이 소란스러웠고 어떤 선생님이 조용히 벅을 불러 얘길 꺼냈다. 네가 키스 장사 같은 걸 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벅은, 누가 그런 이야길 하냐며 헛소문이라고 태연하게 부정했다. 선생님은 안심하시는 듯 했다. 처음엔 블로섬도 그 선생님처럼 그게 헛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에는 블로섬과 같은 반에 그 키스를 몇 번이나 받았다는 애가 있었다. 그러니 그때 그놈이 한 말은 거짓말이 맞았다. 아마 그게 학교에서 떳떳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그놈도 알고 있다는 얘기겠지.
학교 건물에서 빠져나온 블로섬은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그놈이 장사하는 곳은 학교 내부가 아니었다. 고객으로는 같은 학교의 여학생만 받는다고 선을 그었다지만 말이다.
이 일이 떳떳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수록 블로섬은 심박수가 오르는, 불안감인지 고양감인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 수록, 이렇게 버거울 정도로 울렁거리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학교에서 여기까지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었다. 저 앞에 여학생들을 줄 세운 그놈이 보였다. 블로섬은 줄의 맨 뒤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섰다.
오천원 주고 키스 한 번 받고 깔끔하게 털어낼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줄을 선 블로섬은 그놈이 실제로 어느 여학생과 키스하는 장면을 직관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키스 한 번이라고 가볍게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두 사람의 몸은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얽혀있었다. 서로가 손을 서로의 몸 위에 대고 있고 계속, 움직이는… 충격적인 광경에 눈을 감자 이제는 블로섬의 귀에 질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블로섬은 땀을 쥐게 된 손으로 자신의 후드의 목부분을 꽉 움켜쥐었다. 저런 걸… 한다고? 아니, 왜 가벼울 거라고 생각했을까? 안일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발이 떨어지진 않아서 블로섬은 학교로 되돌아가지도 줄어드는 줄을 따라 앞으로 가지도 못 하고 있었다.
키스를 하던 두 사람이 떨어진 것은 3분 후였다. 말도 안 돼. 블로섬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의심했다. 아주 잠깐. 저 앞에서 타이머 소리 같은 게 울렸으니 아마 3분을 재는 모양이었다. 저쪽의 벤치 위에는 타이머 말고도 책가방이 몇 개 놓여있었고, 가글액이 있었다. 저 애들이 뭘 하나 했더니 가글을 하는 거였구나… 위생적이라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블로섬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시간이 늦은 데다 구석진 곳이라 그런지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고, 블로섬의 뒤에 선 학생도 없었고, 블로섬의 앞에는 방금 키스를 받은 학생과 그놈까지 총 여섯 명의 학생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게 더 큰일이겠지. 차라리 사람이 많았으면 적당히 묻어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먼저 키스를 받은 학생이 가방 챙겨서 집에 가긴커녕 옆에서 다음 차례의 학생이 키스 받는 걸 보면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대체 왜? 블로섬은 그런 애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보통 그렇지 않잖아? 다른 사람이 키스하는 걸 구경하고… 물론 이 상황 자체가 심하게 이상하긴 하지만…!
하지만, 사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블로섬의 체감보다 빠르게 앞에 선 애들이 줄어들고 블로섬의 차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전히 발은 떨어지지 않아서 결국 블로섬은 앞의 줄이 다 없어지도록 앞으로 가지 않고 이제는 먼발치라고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래, 이대로 그냥 돌아가자. 다른 애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만… 역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당연히, 그놈의 키스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아직 그대로니까.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정한다고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진 않았다.
그러다가 블로섬이 정신을 차렸을 땐 블로섬의 존재를 인지한 벅이 이미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다.
“야, 저, 친구야. 안 오고 뭐하노? 니도 줄 서 있던 거 아이가? 응?”
가까이에서 본 벅은 키가 정말 컸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얼굴선이 진하며 로우앵글인데도 굴욕이 전혀 없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은은하게 어떤 향기까지 흘리고 있었다. 향수인가…? 블로섬은 그 향기에 홀렸다가 이내 뭐라 대답을 해야하나 싶어 눈을 갈팡질팡 하며 어디 먼 곳을 봤다가 벅을 봤다가 뒤쪽의 여학생들 무리를 봤다가 했다.
“그게, 난, 좀...”
“엉? 아아, 야. 얘들아. 내 장사 마저 하게 집에 좀 가줘라.”
벅이 뭔가 눈치 챈 듯 그런 말을 하자 이내 다른 애들은 벅에게 다음에 또 보자는 등의 인사를 건네고 전부 가버렸다. 순식간이었다. 허무감에 블로섬이 잠깐 넋을 놓은 동안 벅은 말을 이었다.
“니 블로섬 맞제? 내하고 같은 반이고.”
“어? 날 알아?”
“전교 1등 아이가. 다 알지.”
“아...”
“그래서, 니도 줄 서 있던 거 맞나?”
“맞긴 한데, 난 그냥 조금 궁금해서 온 거라. 아까 하는 거 봤는데, 그런 건 좀…….”
“찐한 게 싫으면 가볍게 할 수도 있다. 그 정도는 해달라는 대로 다 맞추지. 이리 와 봐라.”
벅은 블로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게 뭐라고, 어쩐지 낯간지럽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블로섬은 저도 모르게 벅이 내민 손을 잡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서 벤치에 앉았다.
그 옆에 걸터앉아서 블로섬을 마주본 벅은 블로섬 쪽으로 몸을 숙였다. 동시에 은은했던 그의 향수 냄새가 확 짙어졌다. 이어서 벅은 천천히 블로섬이 덮어쓰고 있던 후드와 마스크를 벗겨냈다. 그런 다음 블로섬의 턱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다.
얼마나 가까운지, 그의 진한 속눈썹 한 올 한 올과 선명한 색의 홍채와 그 동공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까지 블로섬은 볼 수 있었다. 이미 이렇게나 가까운데 여기에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가 좀 싫으면 말할라카지 말고 확 때려라. 그럼 그만할 테니까. 알았지?”
“응...”
“그럼, 눈 감아줘라.”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은 블로섬은 그대로 그렇게나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키스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입술이 포개어왔다. 촉촉하고 따듯했다. 이내 그 입술이 벌어지더니 그 사이에서 훨씬 더한 자극을 주는, 축축하고 뜨거운 혀가 밀고 들어오려했다. 순간 흠칫 놀라서 블로섬은 입에 힘을 주고 꾸욱 다물었다. 그랬더니 그놈의 혀는 블로섬의 입가를 아래에서 위로 햝는 것이었다.
강아지야 뭐야... 어쨌든 이러면 안 되겠지. 블로섬은 경계를 조금 풀었고 입에서도 힘을 뺐다. 그 힘은 전부 주먹으로 가는 듯 했다. 여차하면 바로 주먹을 날리고 말겟단 생각으로 쥐엇지만 사실은 그 모습은 영락없이 첫키스에 긴장했을 뿐인 모습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벅도 알 수 있었다. 블로섬은 이게 첫키스인 것이 분명했다. 전교1등 범생이라니까 설마설마 했지만 진짜 이렇게까지 긴장할 줄은. 스스로 돈을 챙겨서 제 발로 여기까지 걸어왔으면서 말이다. 첫키스가 나 같은 놈인 건 좀 미안하지만 본인 선택이니 벅은 그냥 평소대로 하기로 했다.
입술과 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도톰하고 촉촉하고 뜨겁고 거기에 움직이기까지 하는 살덩어리는 달리 어떻게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얌전히 입 안에 수납되어있던 블로섬의 혀를 간지럽히려는 듯이 닿아왔다. 실제로 블로섬은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몸과 더불어 맘속까지도... 이어서 그의 혀가 구강을 슥슥 훑어대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탐색받는 느낌에 블로섬은 흠칫했다. 주먹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벅의 손이 블로섬의 잔뜩 움츠러든 어께를 감쌌다. 그러나 그것은 역효과인 듯 했다. 그의 손은 크고 묵직하고 온도가 높았으므로 블로섬에게는 자극적이기만 했다. 본인도 그걸 알았는지 이내 한 손으로 블로섬의 뒤통수만 잡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 눈 뜬 거 아냐? 블로섬은 살짝 눈을 떠봤다. 벅의 눈이 말 그대로 코앞에 있었다. 이렇게 그의 감은 눈을 가까이에서 보니 눈두덩이에 화장기가 있는 것이 보였다. 고등학생인데다 남잔데 화장도 하고? 향수도 뿌리고? 방과 후에는 여자애들 다수를 상대로 돈 받고 키스…? 블로섬은 어쩐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잠깐이었다. 왜냐하면 키스하는 느낌은 생생했으니까…
그의 혀는 어느새 강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거칠게 블로섬의 구강을 휘저어댔다. 덩달아 블로섬의 머릿속도 휘저어지는 듯 했다. 그 움직임은 불규칙적이었고 묵직하면서도 빨라서 끌려다니기만도 벅찼다. 숨이 가빠졌고 뭐라 소리도 냈는데 블로섬은 그게 아마 자신이 낸 소리일 거라 짐작하기만 할 뿐이었다. 오감에 자극이 몰아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이었다.
이내 더 이상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진 블로섬은 되는 대로 벅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그를 밀어냈다.
쪽
…이 아니라 츄웃 하는 질척한 소리와 함께 타액이 블로섬의 턱에 질질 흘렀다. 으아... 이게 키스? 블로섬은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냅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벤치 뒤쪽에 입안의 타액을 퉤 뱉었다. 턱에 흐른 타액은 되는 대로 옷소매에 닦아냈다. 그러자 곧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그 정도로 별로였나?”
별로였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묵은 궁금증이 해소되었으니 좋다고 해야할까.
“아니... 그래도 두 번은 안 할 거야.”
“별로는 아니었는데 두 번은 하기 싫나? 와?”
그런 생각을 하던 블로섬의 흥미는 이제 벅 개인에게로 향했다.
“왜는, 내가 묻고 싶어. 너는… 왜 이런 걸 해? 키스가 하고 싶으면 연애를 하면 되는 거 아냐?”
블로섬이 말을 마치자 벅은 잠깐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더니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 블로섬은 벅이 저렇게도 웃는구나 싶어 또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왜 웃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는 그거라 안 된다. 돈미새.”
“돈…이 필요한 거야?”
“자세한 건 내 사적인 일이라 말하기 힘든데, 다음에 또 오면 생각해볼게.”
“우리 같은 반인데?”
“학교에서는 이런 얘기 눈치 보인다 아이가. 안 그래도 이래저래 잔소리를 많이 들어가 피곤하거든. 니도 안 글나? 공부만 하기도 피곤하제.”
“그렇긴 하지.”
“그래~ 그럼 학교에서는 이 얘기 안 하기다. 내도 니 얘기 안 할게. 자, 약속.”
벅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런 건 유치원 다닐 때나 하는 거잖아. 그런 말이 입 안을 맴돌았지만 블로섬은 그냥 하자는 대로 해주었다. 그때, 벅이 손가락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약속 조항(?)을 하나 더 읊었다.
“그럼 내일 야자 시간에 여기서 또 보자.”
자연스럽게 그런 약속을 하게 만들어 고객 유치(?)를 성사시킬 계획이었지만, 블로섬은 벅이 손을 빼기 전에 움켜잡았다.
“바빠서 안 돼. 수행평가 기간이기도 하고.”
“아... 맞나.”
“맞지, 그럼. 너도 마찬가지잖아? 가방 안 갖고 있는 걸 보면 지금도 학교로 돌아가서 야자 할 것 같은데.”
“와, 맞다. 예리하네. 역시 전교 1등… 어? 그럼 니도 인제 학교로 돌아가나?”
“어… 응.”
“카면 같이 가자.”
“어? 그…럴까?”
그렇게 얼떨결에 블로섬은 벅과 동행했다. 아까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설렘에 괜히 긴장하기도 했다. 잠깐이었다.
벅은 의외로 신나보였다. 블로섬은 이제서야 깨달은 사실이었지만 벅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입장이고 블로섬은 전교 1등이었으니, 궁금한 점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과목별로 공부는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부터 대입 준비 방법까지도. 블로섬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단한 비결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이다. 내는 이런 얘기 할 친구는 하나도 없어서 니가 뭔 얘길 해도 새롭다.”
“그럼 다행이고.”
“저… 학교에서도 니한테 이렇게 말 걸어도 되나?”
“당연하지...? 다들 나랑 안 친해도 뭐 물어보긴 많이 해.”
“아하하, 맞나. 역시 전교 1등은 다르네.”
“그러고 보니까 너도 1등 하지 않았어? 작년 1학기에 수1에서.”
“헉, 맞다. 우예 알았노 내 그 얘기 암한테도 안 했는데.”
“내가 그때 수1만 2등이었거든... 아, 이런 얘기 좀 재수 없지?”
“아이~ 재수다.”
벅은 블로섬에게는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대답을 하며 웃어보였다. 그렇지만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블로섬은 안심이 되었다. 방긋방긋 잘 웃기도 하네. 개학 후로 매일 지켜봤는데도 몰랐던 부분이었다. 이 밤공기 만큼이나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 마음이 통하는 새 친구가 생긴 느낌은 그러했다.
그 이후 블로섬의 학교생활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벅은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하는 편이었다. 수업 시간에 눈이 마주쳐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윙크 같은 걸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꽤 자주 말을 걸어왔다. 둘은 주로 학업과 관련된 주제로 대화했다. 블로섬이 벅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오천원 주면 키스해주는 친구가 신경 쓰여서 블로섬이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일은 한동안 발생하지 않았다.
끝
후기
우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연성에 일일이 후기 안 다는 컨셉으로 밀고 나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해설(?) 달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안 되겠습니다.
우선... 타운스빌 쪽 캐릭터가 들어가는 씨피는 글연성 올리는 게 처음이더라구요 ㅋㅋ... 그런데 이렇게 피폐세계관에 냅다 가둬서 번아웃 오게 만든 상태로 보여드리게 되어 ㅈㅅ합니다... 네... 이 글에서 블로섬은 번아웃이 와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것이 K-학원물이니까요.(?)
그 부분 관련해서 쓸 얘기가 더 있기도 했는데(짱친들이랑 반도 다 떨어지고 같이 놀지도 못했다등가... 주말에 학원 다닌다든가...) 그냥 줄였습니다.
그리고 벅떤남성... 역시 현패 갈기면 날티를 숨길 생각이 없는 브레이커 정도의 성격이 될 거란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돈미새고 수학을 잘 한다는 정도...?ㅋㅋ
글을 짧게 쓰고 싶어서 이것저것 줄였는데 아예 삭제해버린 사건(?)도 있어요. 블로섬이 수행평가 공지 뜬 거 사진 찍고 뒤돌았는데 바로 뒤에 벅이 있어서 놀라는 씬이라든가... 블로섬이 자리 바꾸면 좋겠다고 (이때 이유는 앞자리에 앉고 싶다는 것이라고 둘러댐) 반장한테 말해뒀는데 이후 교탁 바로 앞자리에 벅이랑 나란히 같이 앉게 된 시츄라든가... 친해진 이후에 둘이 서로 이번 학기 (미적분1) 1등은 놓치지 않겠다며 암살 드립 치는 상황이라든가 ㅋㅋ 생각을 했네요...
마지막으로... 벅이 재수라고 한 건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재수입니다. 그러니까...
‘Lucky다’
라고 한 거예요. 아아... Buck이 Lucky라고 하는 건가... 라임 지리네요...(??) 어쨌든... 제가 이 녀석의 말투를 쌍도사투리로 쓰고 있는데 쌍도인들은 재수라는 말 이런 식으로 쓰더라구요.
후기는 이상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의미로 저의 하트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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