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 추억의 단편선

[GL] 나는 펫 - 1부

봄쌀 by 봄쌀

​* 아주 예전에 썼던 글이라 맞춤법 오류와 큰 공백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나는 펫 



1부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





"아 저 미친...!" 

 

 

 



아주 그냥 초인종아 깨져버려라- 하는 마음인게 분명했다. 남의 집 초인종을 오락기처럼 눌러대는 저 되먹지못한 행동의 주인공은 아마 세아가 집 안에 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끈덕지게 눌러대고 있었다. 세아는 결국 소파 깊숙이 묻었던 몸을 벌떡 일으켜 분노로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감았다. 오늘만큼은 저 못된 습관을 뜯어 고쳐 놓으리라고 다짐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세아는 정말 문에서 "버어어얼컥!!!!"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문을 대차게 열어재꼈다. 이 문 앞에 있는 손님을 가장한 '못된 것'에게 소금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줄 기세였다. 그러나 분노가 가득 담긴 현관문소리가 무색하게, 기다렸다는 듯이 폴짝, 제 앞으로 한 발짝 성큼 다가서는 인기척이 있다. 







고양이다. 아니, 고양이같은 여...아니, 고양이 같은 '년'이다. 

 

 



"안녕♡"







그리고 그 고양이는 사람의 말을 하고,







"마이 세아♡"







직립보행도 하며,







"아잇차암. 빨리 열어주지 않아서 이것 봐아. 스타킹도 안 신구 왔는데에- 다아아- 젖었어요."







팔자눈썹을 하고 조곤조곤 감정어린 말들도 쏟아낼 줄 알 뿐만 아니라,







"당신 나 씻겨줘야겠어요."







샤워도 할...







....뭐?







"혼날래?" 



"응?" 



"너 진짜 신고 당하는 수가 있어."



"정말?"

 

 



이 고양이 '같은 년'은 당최 '신고'라는 말의 의미가 '먹이를 준다'라는 말이라도 되는 양 활짝 웃고 있다. 







"밖에 비도오구 바람도 불고오..."









 

 

 

 

문 밖은 온통 비바람이 몰아치는 온통 회색빛의 풍경이었다. 세아는 그때서야 아침부터 울려대던 핸드폰 주의보 메시지의 주제가 이 태풍임을 깨달았다. 어쩐지 사람들이 어제부터 태풍이란 말을 줄곧 해대더니. 세아는 눈 앞에 흠뻑 젖은 고양이처럼 헝클어진 머리와 물이 뚝뚝 흐르는 외투를 껴입은 가녀린 여자애의 인상착의가 조금 납득이 되었다. 사실 여자애는 누가봐도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다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얄브스름한 입매와 보랏빛 혈관이 비춰보이는 파리한 혈색이 그 모습을 더 부각시켰다. 특히 눈의 앞꼬리와 뒷꼬리까지 하나의 꽃잎처럼 예쁘게 말려 올라간 곡선이, 물기에 젖어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대조되어 묘하게 진짜 소나기맞은 새침한 길고양이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선명하게 쌍겹진 눈매가 빗물을 머금은 속눈썹의 무게에 못이겨 더욱 깊고 크게 보여 약간 잠이 오는 듯 보이게도, 약간 해맑게 보이게도 했다. 게다가 분홍빛의 말간 혀끝이 살짝 보이게 벌어진 입술을 속눈썹처럼 떨고 있는 것이 꼭 세아에겐 정말 태풍을 만나 물웅덩이에 쳐박혔다가 나온 고양이새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세아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갖지 않기로 했다. 모성애를 자극한다는 베이비페이스의 하얀 얼굴, 빨갛고 작게 오물거리는 입술에서 분홍빛 혀를 샐그러뜨리며 웃는 모습들도 세아에겐 전혀, 전혀, 전혀! 어떠한 자극도 되지 않았다. 요컨대 주변에서 자꾸만 귀엽다, 예쁘다, 하며 어르고 찬양해주니까 자기가 진짜 어디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이라도 된 것 마냥 그 얼굴을 빤히 들이밀고 눈을 깜빡이는게 가증스러울 정도였다. 남들에겐 그저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고양이년'의 얼굴이, 세아에게는 그저 평온한 자신의 삶을 태풍처럼 쥐고 흔들어대는 주된 요인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너 진짜 나 한다면 하는 거 알지? 지금 진지하게 무단주거침입죄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어."

 

 

 

그러나 고양이(같은 년)은 말이 없다.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저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비바람이 부니까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치만 비바람이 불면 나는 무서우니까아-"




세아는 대답 없이 그냥 노려보기로 했다.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제 살기어린 얼굴에도 문 앞에 고양이는 그냥 헤실헤실 웃으며 물기에 젖은 앞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안하고 또 저를 빤히 쳐다본다.







그래, 전혀 안쓰럽지도 불쌍하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집에 오니까 기분 좋아요."



"집?"



"집!"



"여기가 어떻게 너네 집이야."



"나 추워요. 여기 보여? 이거 소름이라는 거야. 당신이 가르쳐 줬지. 추워서 이렇게 소름이 소름소름 돋았어. 우와 봐봐. 많이 났어. 제니가 지금 엄청 추운거야. 달달달 몸이 떨려 달달달..."



 

 

 

그러니까 너네집에서 쉬라고, 하는 말을 꾹꾹 눌러담아 하려다 말고 세아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제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눈치였다. 과연, 사람 말을 못 알아 쳐먹는 수준은 진짜 고양이류의 짐승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치원생쯤 되는 아이들이 어디서 신기한 장난감이라도 본 양 친구들에게 과장을 보태 자랑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랬다. 벌써부터 고양이년의 익숙한 행동패턴이 시작되고 있었다. 상대방의 말이라고는 생선처럼 야금야금 갉아먹고는 제 할 말만 야옹야옹 울어대는 것이다. 소름이 소름소름 돋는다니. 그런 어법을 가르친 적은 절대 없다. 게다가 적어도 황금같은 휴식시간에 이렇게 쳐들어오라고 시킨 적도 없었다. 올 때 오더라도 현관문을 열어주면 인사라도 해야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평소처럼 신세 좀 질게요, 항상 고마워요, 따위의 말들을 오천 번 해도 모자랄 이 고양이는 오늘도 같잖은 앙탈로 시작한다.







"너네 집으로 가."



"아이참, 춥다아. 쏘 콜..."







코를 훌쩍이며 푸스스 웃는 고양이년이 눈을 휘어뜨리며 하얗고 가지런힌 치열을 드러내고 웃는다. 또 듣기 싫은 말이 나오면 저렇게 말을 돌려버리는 동시에 때굴때굴 눈동자도 돌려버린다. 정말 춥긴 한 모양인지 금세 붉은 기운이 확 빠진 입술이 더욱 파리해져 있다. 결국 세아는 한숨을 터뜨린다.




 

 

 

"그리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너네 집은 옆.집.이.야."



"열쇠가 없어."



"너네 집 도어락이잖아."



"......."



"거짓말을 하려면 좀 제대로 해줄래?"



"아 춥다."

 

 

 

 





하, 기가 막힌다. 제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제 몸을 스스로 끌어 안으며 덜덜 떠는 제스쳐라니. 아무리 옆집이라도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면 우산이라도 쓰고 오는게 상식 아니니? 하고 쏘아붙이니까 금세 눈웃음을 한껏 휘어뜨리며 웃는다. 결국 세아는 눈을 질끈감으며 들어 와, 하고 몸을 비켜 서 주었다. 말이 끝나자마 현관을 넘어 거실로 쏘옥- 들어오는 모양이 진짜 고양이 같았다. 아주 뻔뻔한 도둑고양이. 







그리고 그 도둑고양이는 바깥의 빗물을 한껏 머금은 후에 집으로 들어오더니 여과없이 그 빗물들을 바닥에 철썩철썩 쏟아내면서 거실을 가로지른다. 







"야!"







아, 불과 어제였다. 세아가 큰맘먹고 거실마루를 스팀으로 청소한 것이. 비싼 마루지만 물에 취약하니까 가끔 마음먹고 특수 스팀으로 관리 받으셔야 할 겁니다, 하는 말을 듣고 정말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모두 청소했었다. 







벌써부터 일거리가 시작되었다.

 

 


 

세아가 희번덕, 눈을 뒤집으며 시선을 위로 주고 하아- 한숨을 터뜨린다. 고양이 같은 년, 고양이 같은 년, 했더니 그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는 못 배우고 지능만 동물수준이 된 것일까. 머리를 쓸어넘기며 현관문을 쾅! 닫으니까 그때서야 고양이가 움찔 하며 제 눈치를 살살 본다.

 

 

 

"어오...오...Sorry...암쏘쏠위.."

 

 



아메리칸 제스쳐로 팔자눈썹을 하며 쏘리쏘리 발음을 굴리는게 아주 얄미워서 미치겠다. 그럼에도 세아는 자연스럽게 걸레를 다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이젠 이 정도는 껌이다. 이 고양이 같은 년의 식모쯤으로 한 일 년을 살다보니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래 식모다, 식모. 주인이 아니라 식모.

 





이건 무슨, 정말이지 길들여지고 있었다.

 

 



이 고양이, 아니다 이제 말을 바로 해야한다. 이 고양이 같은 '여자애'는 이내 "어어..."하고는 제 옷에서 현관바닥으로 흥건히 떨어지는 빗물들에 암쏘쏠위, 할 때는 언제고 금방 다시 철벅철벅 물을 뚝뚝 흘리며 총총 걸어간다. 세아가 퍼뜩 소리를 질렀다. 움직이지마! 너 때문에 더러워지는거 안 보여?









 

 

 

 

"꼼짝말고 여기있어. 걸레 가지고 올 테니까."



"아참, 나 배고파요."



"....그래서?"



"그냥 그렇다구."







 

 

 

 

....고양이같다, 고양이같다...고 하니까 진짜 무슨 주인의 뒤치다꺼리에 앙탈이라도 부리는 상팔자라도 된 줄 아나보다. 저 타고난 싸가지 없는 말투.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고 말을 뱉으라고 누누이 말해도 듣지 않는 동물같은 우둔함. 평생 태어나 동물은 커녕 다마고치도 한 번 키워 본 적 없는 자신이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시금 결심할 수 있게 해준 계집애.









 

 

 

안돼, 오늘은 안돼.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절대로 봐주면 안돼. 세아는 현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가만히 제가 어떻게 나오는지만 눈치보고 있는 여자애를 뒤로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계집애의 버릇을 어떻게 고쳐줘야 할지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 문제는 지난 1년 365일 동안 고민해 보아도 진전이 없었으니까.









 

 

 

세아는 빠르게 욕실로 걸어가 선반에서 전신타올 한 장을 가져와 여자애에게 내밀었다.

 

 

 





 

"지금 먹을 것도 없고. 나 일해야 해. 자, 이거 받아."







고양이는 제가 내민 손을 보더니 무표정으로 빤히 저를 쳐다본다.







"샤워는 너네집에서 해. 자 여기 타올로 대충닦고 우산 줄테니까 냉큼 뛰어가."



"키 없어요."



"도어락이잖아!!"



"......"



"자, 어서."



"아, 춥다. 너무 춥다. 쏘 콜..."









 

 

 

이건 무슨 레퍼토리가 이렇게 한결같을 수가 없다. 이 고양이와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 세아는 진지하게 이 여자애가 한국말을 들어 쳐먹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그저 생떼트집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가 원하는 대로 안되면 몇 번이고 제 할 말만 하는 어린아이같은 이 행동패턴은 그냥 이 고양이년의 습관이었다. 세아는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에 휩쓸리면 안돼. 이 계집애의 뻔뻔한 저 표정을 보니까, 어떻게든 여기에 머물겠다는 뜻이 너무나 뻔히 보인다. 넘어가면 안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쳐 내야해. 제 집으로!

 

 

 

절대로 말리면 안돼!

 

 

 

오늘에야말로 이 고양이에게 자신의 냉정함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아는 몸을 닦진 않고 마지못해 타올만 건네받은 채로 가만히 있던 여자애가, 이내 터덜터덜(물을 흘려대며) 풀이죽은 어깨로 현관에 쭈구려 앉은 뒷모습을 보여주자마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은 저기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







세아는 쭈구려 앉은 여자애의 팔을 익숙하게 다시 끌어올려 현관문을 열었다.

 

 

 







"자, 어서 니네 집으로 가!"



"......"



"어서 가라니...꺅!"



"그러게 문을 왜 열구 그래요."









 

 

 

 

아 이런 씨!

 

 





 

여자애를 밖으로 밀어내던 찰나 문안으로 휘몰아치는 비바람의 힘에 세아는 금세 제 뒤의 여자애와 같은 꼴을 당했다. 태풍이 순간적인 집중호우에 온통 꽁꽁닫힌 주택의 현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활짝 열려진 현관을 찾은 까닭인지도 몰랐다. 방금 머리를 감았던 세아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생각보다 밖은 비바람이 거칠었다. 단숨에 바람의 덩어리가 이 동네를 가득 휘감아 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심드렁하게 뒤에 있던 여자애가 쯧쯧, 혀를 차며 세아를 대신해 문을 다시 닫아주었다. 물이 뚝뚝 흐르는게 느껴진다. 찝찝하게 티셔츠가 금세 행주가 되었다. 아, 진짜 이 계집애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눈을 뒤집어 감으며 파들파들 속눈썹을 떠는데 제 얼굴위로 여자애가 타올을 꾸욱 눌러준다. 방금 제가 건네줬던 그거다.







"자, 이거 닦구 부엌으로 가."







제 말투를 흉내낸다. 이건 무슨...







"아 진짜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




"나 배고파."



"배고프면 뭐라도 꺼내 먹으면 되잖아!"



"아, 진짜? 히?~~"

 

 







 

......?!









 

 

 

세아는 제 말이 끝나자마자 제 집 인양 물이 뚝뚝 흐르는 채로 제 집안으로 뛰어가는 여자애를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발걸음도 가벼웁게 총총총 뛰어가는 뒷모습. 꽁무니에 고양이 꼬리라도 하나 달면 참으로 어울리겠다. 뭐 저런게 다 있어 정말...









결국 오늘도 이런 패턴이다.









아, 하고 세아가 입을 살짝 벌린 채 한숨을 터뜨렸다.















-












 

 

 

 

 

 

사람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르는 거라고 해도, 이토록 한 순간일 줄은 몰랐다.





 

 

 

 

이미 업계에선 제법 굵직한 커리어를 만들어 놓은 세아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도 오히려 "멋있다"라는 말을 듣는 여자들의 축에 속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직장에서 받는 높은 신뢰지수, 어딜가나 예쁘고 아름답다는 칭찬일색을 듣는 외모, 넓고 예쁜 자신의 명의의 집, 그럼에도 적당히 겸손할 줄 아는 센스, 딱히 아둥바둥하지 않아도 끊이지 않는 남자들...




 

 

 

 

타고난 여우, 라는게 저를 진짜 잘 아는 친구들이 생각하는 세아의 이미지였지만 그 속에는 실상 어마어마한 노력이 있었다. 언제나 완벽해야 한다는 게 세아의 원칙이었다. 내세울만한 배경도, 학력도 없는 세아가 '보란듯이' 멋지게 사는 독신주의 여성의 이미지를 구가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노력한 것이 외모였다. 그러다보니 액면가보다 훨씬 많이 나가는 나이에도 사람들은 그것보다 훨씬 어리게 봐주었다. 서른 여섯이에요, 하고 말하면 그렇게 안보여요, 라는 말이 돌아왔다. 화장이 좀 잘 먹으면 2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 세아는 집으로 돌아와 무슨 장르인지 알 수 없는 춤을 추었다. 물론 결혼생활이 행복해 죽겠다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세아는 단 한 번도 결혼 후 가질 행복과 지금 현재 자신이 누리는 행복을 저울질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비교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게 세아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혼자인 자신에 더 없이 자유로움과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세아는 직감했다. 저는 아마, 장담하건대, 결혼생활과는 맞지 않는 성미였다.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혼자 결정하는 걸 좋아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보다 바쁜 시간이 훨씬 많았고, 또 그때그때마다 설레게 하는 연애가 더 좋았다. 기어이 한 사람에게 묶여서 어릴 때부터 악착같이, 정말이지 미친년소리를 들으며 완성한 이 안정되고 행복한 인생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혼자 살기에도 더 없이 넘쳐흐르는 스케쥴들과 주변사람들. 혹시 정말 부처같은 남자(인 동시에 세아가 정해놓은 196여가지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남자)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솔직히 제 성격을 받아줄만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세아가 하는 일은 외국의 어느 유명한 컨트리클럽 뺨치는 회원제 스포츠클럽의 영업실적 1위 팀장이었다. 통칭 실장이라는 직함으로 불리긴 했지만 제 빳빳하게 금박을 입힌 명함의 정중앙에는 프리미엄 전담, 이라는 말과 함께 단 한 줄, 자신의 번호와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윤 세아, 010 - ㅇㅇㅇㅇ - ㅇㅇㅇㅇ>. 명함 한 장 조차도 따로 봉투에 넣어 건네는 직급이었다. 







그러나 이 자랑스러운 자신의 직업이 불상사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걸 그땐 추호도 몰랐다.

 

 

 

시작은 VVIP고객인 '청담동 흑진주'였다. 흑진주 매니아였던 중년의 여성으로 나이는 이미 환갑을 넘었지만 피부만 봤을 때엔 그보다 10년은 젊어보이는 여자였다. 누가봐도 "난 돈으로 이 피부를 만들었소."하는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그냥 봐도 부티가 줄줄 흘러넘쳐서 굳이 VVIP고객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클럽안에 모든 직원들이 알아서 홍해 갈라지듯 양 옆으로 쫘악 서서 인사를 건넬만한 포스를 지닌 여자였다. 과연 그건 실제였다. 알아주는 현금부자라더니 단 한 번도 클럽회원권을 갱신하는 데 카드를 가져온 적이 없는 여자라고 했다. 세아는 처음부터 여자의 얼굴을 보고 대단한 포스를 느꼈다. 골드리프팅 시술이 틀림없는 입매와, 보형물의 흔적이 명명백백히 보이는 턱과 머리선을 가진 전형적인 '돈 많고 기가 셀 뿐만 아니라 타인을 압도하는 나름의 교양을 과시하는 사모님'의 얼굴을 한 여자였다.







회사에서는 가장 신경써야 하는 인물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청담동 흑진주였다. 그래서 세아를 그 전담 매니져로 낙점했다. 뭐, 어쩌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세아가 그 청담동 흑진주 내외를 맡고 난 이후로 그들의 부의 크기와 비슷한 이들이 잇달아 프리미엄 회원권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선 세아에게 인센티브를 던져주었다.

 

 

 





 

"아 이번에 우리 딸들이 귀국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왜요? 안그래도 자제분들 보고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더니..."



"아, 내가 이야기 안했던가? 우리 엇갈렸어. 완전 미스타이밍이라고."



"어머, 왜요?"

 

 

 

 





골프장과 타운하우스를 담당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청담동 흑진주의 일 만큼은 두 팔 뻗고 나서야만 했고, 그게 세아에게 가장 큰 일이었다. 제 직속 상사가 상무이사였으므로 이제 아등바등 승진을 위해 뭐빠지게 일하고 눈치를 보던 시기는 안녕, 하며 자축의 와인파티를 열었던 그 해. 네 개 밖에 없는 팀의 팀장을 꿰찼을 뿐만아니라 그 중에서도 프리미엄 회원들의 전담 매니저까지 되었으니, 이젠 아랫사람이나 잘 부리면서 VVIP들에게 아부나 떨며 호호호, 웃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바빴지만 나름 안정적이던 그 때-







그래, 바로 그 때였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 시기에 모든 것이 벌어졌다.







접대가 생명이므로 고급스럽고 우아한 처세술이나 신경쓰던 세아는 그날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 것이었다.

 

 

 





"학교 마치고 이리로 데려와서 우리 그이 사업이나 가르칠랬더니, 그이가 이번에 싱가폴이랑 말레이시아에서 사업권을 따 왔다는 거야. 아참, 윤 실장. 요즘 거기가 서울보다 더 비싸다? 자기도 투자하려면 그 쪽으로 해. 요즘엔 거기가 노른자인가 봐. 그 쪽 부동산개발권 따 내려고 한국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우리에겐 기회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아, 글쎄. 우리 그이가 말을 좀 잘해야지. 밑밥을 잘 깔아놨더라고. 하여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놈의 요지경은 돈이 최고긴 해. 그래서 이번에 그 쪽으로 가게 되었어."

 

 







 

네, 네, 거참 좋은 소식이십니다-하고 세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심 까다롭기로 유명한 청담동 흑진주를 한동안 보지 않게 될 것만 같아서 기뻤다.







 

 

 

 

"근데 아무래도 스타트업 단계니까 관리를 직접 해야된다더라고. 우리 그이가 이젠 나이가 있어서 나랑 같이 안 가면 안된단 말이야. 그런데 문제가 한 3년 정도 걸릴 것 같다는거야."



"어머, 따님들이랑 같이 가면 안돼요?"



"그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라고. 둘째 애는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예정이고."







청담동 흑진주가 과장되게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깊은 한숨을 내었다.







"게다가 우리 애들이 워낙 더운 걸 못 참아해서 그쪽으론 안 따라가려고 하더라."



"자제분들 나이는 어떻게 돼요?"



"큰 애가 스물 넷, 작은 애가 열 아홉."



"어머, 한창 예쁠 나이네."









 

 

 

 

...는 다 아부였다. 









하물며 일면식도 없는 꼬맹이들 나이가 궁금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으레 비즈니스관계에서 나눌만한 예의상의 문답들. 그러나 청담동 흑진주는 세아의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래서 그 유명한 '두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무슨 속사포 랩이라도 하는 사람마냥 쏟아내기 시작했다.









"윤 실장, 내가 우리 딸들 이야기는 잘 안 했었지?"







청담동 흑진주가 그리 입을 뗐지만 사실 지겹게 들었던 말들이었다. 그러나 세아는 유행가의 후렴구처럼 들었던 <청담동 흑진주의 두 딸들>의 이야기를 마치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굴었다. 실로 놀라운 처세술이었다.







"어렸을 때도 데리고 나가면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쫓아왔었거든. 가수 시킬 생각없냐, 배우 시킬 생각없냐, 하다못해 교복모델이라도 시켜보라면서 건네받은 명함만 한 통이야. 애 아빠가 워낙에 보수적인 성격이라 그런건 절대 안된다고 못을 박아놓지 않았으면 벌써 꽤나 이름 날렸을 거야. 그런데 걔들이 우리 그이는 요만큼도 안 닮았거든. 아마 나중에 한 번 보면 알 거야. 요즘엔 비율이 생명이라며? 우리 딸들이 글쎄, 얼굴이 있지, 얼굴이 아주 그냥, 요-만-하다니까? 미국에서도 인기가 어찌나 많던지. 아 글쎄, 거기 학교엔 1년마다 학교축제에서 제일 핫한 학생들을 뽑는다던데 우리 애가 작년에 뽑혔대. 동양인 최초라나? 평소에도 그렇게 남자들이 쫓아다닌다더라. 코쟁이 남자친구는 절대 안된다며 우리 그이가 골프채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그래서 절대 파티같은 데에는 얼씬도 못하도록 사람을 시킬 정도였어."







청담동 흑진주는 그 부내가 폴폴 나는 카리스마는 잊은 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세아에게 딸 자랑을 해댔다. 









"그런데 말이야 막상 큰 애가 졸업을 하더니 한국에 오겠다는거야. 알고보니 우리 작은 애가 어렸을 때부터 외국생활만 했더니 외로움이 많았나봐. 제 동생 생각해서 한국으로 가자고 자기들끼리 입도 맞춰두고, 엄마 아빠도 보고싶다고 하고. 그치만 그건 또 그거 나름으로 얼마나 걱정거리인 줄 알아? 요즘 얼마나 우리나라가 흉흉해졌어?"







인상을 팍 쓰며 세아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내며 관자놀이에 검지와 중지를 갖다대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청담동 흑진주였다.








 

 

 

 

"그래도 큰 애가 얼마나 의젓해. 제 동생 생각해서 과감히 한국으로 온다니. 게다가 언니역할을 참 잘해. 자기가 엄마같이 작은 애를 잘 돌보더라니까. 관리인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때만 해도 세아에게 청담동 흑진주의 '두 딸'들 중 '큰 애'가







...그 고양이년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다. 







그랬다. 그때까지만해도 '고양이 년'의 이미지는 의젓하고 얌전하며, 그 화려한 가정배경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미덕을 갖춘, 그야말로 재색과 어른스러움까지 겸비한 여자애였다. 모그룹의 막내아들의 혼처를 받았다, 모재벌3세의 첫사랑이다, 라는 말까지 비밀스럽게 자신에게 속삭여주는 청담동 흑진주 덕분에 세아는 그 대단하신 큰 따님이 훗날 자신의 잠재적인 VVIP고객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죠. 걱정 되시는 게 당연하죠.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들끼린데..."

"그렇지, 우리 애들이 보통 애들도 아니고."







세상이 끝난 듯 한숨을 쉬는 청담동 흑진주를 보며, 세아는 그냥 자신의 멋진 처세술을 뽐낼 요량으로 그리 덧붙였을 뿐이다.









"아쉽네요. 여건만 된다면 제가 친언니처럼 돌봐줬을텐데."

 

 

 



너~어~무~ 아쉽네요, 호호호- 하며 세아가 빙긋 웃으며 그 잘 빠진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조금 가증스럽긴 하지만, 이 바닥에서 생활해보니 알게 된 것이었다. ‘가식’도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날 세아는 원없이 가식을 떨기로 결심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청담동 흑진도와도 당분간 바이바이~ 할 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네, 윤 실장이 참 우리한테 잘하는데... 윤 실장같은 언니가 한 명 옆에 붙어있으면 우리도 걱정 없이 떠날텐데 말이야."

"그럼요. 사모님 자제분이시라면 제가 친동생처럼 돌봐드렸겠죠... 가까이만 살았어도..."

"윤 실장 어디사는데?"







그때 세아는 정말 천진하게 대답했다.









"저 봄살동 수목원 쪽에 돌담길 주택단지 있잖아요. 거기 제일 앞 쪽에요."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평화로웠다. 짐짓 나름 알뜰살뜰하게 모은 돈으로 마련한 집 자랑도 할 겸, 미주알고주알 번지수까지 알려주며 제 집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던 세아였다.

 







 

 

"어머, 세상에!"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세아는 시가 백만 원이 넘는 중국전통찻잎으로 우려낸 차를 청담동 흑진주의 빈잔에다 따르다 말고, 흑진주가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치자 불안함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직감 비슷한 것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래도 설마, 설마 그 순간 제가 느끼는 이 직감이 맞아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생긋생긋 웃었다. 그러나...









 

 

 

"우리 딸들도 거기 살기로 했어!"

 

 

 







 

....









 

 

 

....









 

 

 

....









 

 

 

...오 신이시여.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당혹스런 표정을 세아는 마치 감동적인 표정인양 손까지 떨며 "하하...어머, 세상에...하하..." 하고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업계에서 10년이 넘도록 쌓은 경력이 만들어낸 놀라운 처세술이었다.









요컨대 본가의 저택을 비우면서 딸들만 오붓하게 살 '안전'하고 '예쁜' 주택을 물색하다가 정한 것이 바로 자신의 집의 바로 '옆집'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좁다, 좁다 하더니 왜 하필 이런 경우에 좁아터진건지 알 수 없었다.









 

 

 

이튿 날, 청담동 흑진주는 남편인 모 기업의 대표라는 남자와 그 남자의 동행으로 보이는 대한민국 최대 법률회사의 모 변호사와 함께 세아를 찾아왔고, 한창 이야기 중에 제 직계 상사인 하늘같은 상무이사까지 왔다. 무슨 기업인들의 청문회에 불려온 기분이었다.









 

 

 

 

"우리 윤 실장, 필요한 건 뭐든지 말해. 알았지?

 

 

 

상무이사가 친히 세아의 어깨까지 두드려주며 그 느끼한 멘트를 건네기도 했다. 회사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를 만한 공로를 세우는 순간이었다. 청담동 흑진주 내외가 끊어준 프리미언 회원권과 콘도계약권의 규모가 억대 단위라고 했다. 억, 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숨도 억, 하고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버, 법정대리인이요? 제가요?"









 

 

 

갑자기 제게 손가락질을 딱! 하던 청담동 흑진주가 법정보호자니, 대리인이니 하는 말을 할 때에도 세아는 단지 되물었을 뿐 무어라 묻거나 반박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말이라도 억대 단위의 계약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헐. 안돼, 무슨 법정이라는 말까지 나와? 나 아직 30대 중반 창창한 나이라고. 게다가 결혼도 안했고 애도 없고, 그 흔한 애완견하나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한단 말이에요. 게다가 스물 넷이라며, 열 아홉이라며?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큰 딸이 그렇게 잘 한다며! 집에 돈도 무지 많겠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을 부리면서 지낼 수 있겠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법정보호자까지 만들어? 아, 그냥 일 도와주는 사람들이가 갖다 붙이면 되는 것 아니에요? 정 불안하면 아예 경호원을 붙이던지. 아니, 아니야, 혹시 다른 가족 없어? 꼭 이런 짓까지 하고 가야 하는거야?

 

 

 

 

-하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세아는 우아하게 청담동 흑진주가 따라주는 차를 황송한 척 받아마셔야했다. 







청담동 흑진주... 존나 쿨해보이더니 완전 딸바보에 팔불출 엄마였던 것이다. 아 근데 도대체 법정 대리인이니 보호자니 하는게 도대체 뭐야... 오 제발...







 

 

 

 

 

세아는 마치 억지로 보증을 서는 사람처럼 당황스러웠지만 연신 태연하게 웃었다. 입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지만 살짝 손끝으로 호호, 웃음을 가리는 척 했다. 그런 자신의 반응에 청담동 흑진주 내외는 더 없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가식은 실력이다. 그래, 가식은 실력이었으며 때때로 부자들 중에서는 그런 가식을 구분하지 못하고 진심이라고 믿어주는 순수한 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세아의 반응에 감격스러워하는 청담동 흑진주는 정말 코 끝이 찡- 해지는 표정으로 세아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이런저런 개인적인 부탁까지 해왔다. 그 순간 청담동 흑진주내외와, 이런 상황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세아는 마치 쥐가 된 느낌이었다. 달콤한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쥐.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혹시나 만약을 위해서 긴급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 해당 계좌에서 쓰시면 됩니다. 한도는 없으니 어떤 상황이든 편히 쓰십시오."







변호사가 세아에게 호쾌한 미소를 날리며 검은색과 금색으로만 디자인 된 카드를 하나 주었다.







"그리고 혹시나 남자친구나 애인이 생긴 것으로 판단되면, 바로 대표님 내외분께 연락을 취해주시면 됩니다. 아프거나 의료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전담 의료센터와 의사들의 번호가 다음 서류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귓등으로 압정들이 꽂히는 것 같았다.



 

 

"아유, 우리 윤 실장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그치 여보?"

 

 

"윤 실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딸들 걱정은 맡기고 갑니다.“

 



"걱정마세요, 우리 윤 실장이 얼마나 다정한 성격인지 모릅니다. 염려마시고 대표님 내외분은 몸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변호사와 청담동 흑진주, 흑진주의 남편, 그리고 제 직계 상사인 상무이사가 한 마디씩 세아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세아만은 대답없이 그냥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그 자리를 지켜야했다. 이윽고, 세아의 앞으로 법정대리인 동의서, 라는 굵직한 글씨가 쓰인 하얀 종이가 들이밀어졌다. 세아는 거기에 지장을 두 번 찍고, 자신의 신분증과 여권을 모두 변호사에게 맡겼다. 모든 것이 정말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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