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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 Silent 3

목소리를 잃은 힐데 이야기

[카힐] Silent

W. 분점주


알고 있었어야 했어.

내가 혼자 남겨질 거라는 걸.

언어 전달기기가 내뱉은 단어에 일순 랩실의 모든 시선이 내게로 날아와 꽂히는 것을 느꼈다. 피부가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눈치를 보는데,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던 과학자들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일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지만 꼭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아 무섭기도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나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 서있었는데, 기계는 또 다시 나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었다.

[무서워.]

기계의 음성은 다시 들어도 내 목소리와 꽤 비슷했었다. 이런 것까지 구현할  필요는 없었는데. 애꿎은 윤을 원망하면서 어디다가 시선을 둬야할지 헤매였다.

근데 이건 왜 이따위 단어만 골라서 내보내는 거지.

덕분에 리카르도의 눈이 양껏 좁아져 있는 걸 봤다.진짜 지릴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들떠있던 아미는 상처받은 얼굴로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고, 예현도 속 모를 얼굴로 굳어있었다.

두 사람 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어떤 말도 찾지 못하길 빌었다. 내 속내를 필터링 하나 없이 그대로 노출 당한 것도 서러운데 예현이나 아미가 말을 얹으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마음을 알게 될 것 같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윤이었다.

사수는 워낙에 표정 변화가 적은 사람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마음이 쓰이진 않았다. 단지 지금처럼 미동도 없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면 무서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기질을 연상시키는 파충류같은 사수는 스윽, 팔짱을 낀 채 나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죄 모르는 척 했다. 웃어야지 할지, 울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러다가 카이로스와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내 이야기를 아는 존재. 그 존재만이 슬픈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일별했다.

나는 아마 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 터였다.

'그의 얼굴을 보지 말걸.'이라는 생각을. 실제로도 나는 사역사의 눈을 본 것을 깊이 후회했다. 슬픔에 물든 주홍빛 눈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이 빠르게 떠올랐다.

내 손으로 숨을 거둬야 했던 연인에 관한 기억이었다. 제국에서의 좋았던 기억들 말이다.

[카일.]

그를 추억하려 침잠하려는데 기계는 또 다시 내 생각을 대변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 손으로 부착해두었던 작은 센서들을 떼어냈다. 이 이상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만해도 내가 그를 매일 매일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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