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테아

02. 눈 내음이 나는 여자

안테아

“괜찮아요, 내 고향에선 모두가 이렇게 입거든요.”

어딘가 낯선 울림이 이미르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렇군요.”

“나는 안테아예요. 당신은 이곳에 오래 있었나요?”

안테아가 혹여나 그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긴장하는 마음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내뱉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그녀는 오래 살아온 세월이 있었던 만큼 왠만한 일에 사소하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설산을 떠난 이후 처음 마주한 비에라-그것도 그녀보다 훨씬 오래 이곳에 살아왔을- 를 마주하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는 것이었다. 올드 샬레이안과 림사 로민사, 그리다니아를 거쳐 커르다스까지 오면서 배운 공용어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종종 단어나 문법을 이상하게 사용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커르다스엔 어떻게 온 겁니까?”

“검은장막 숲에서부터 걸어왔어요. 눈이 내리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니 여길 알려주더군요.”

태어나던 순간부터 설산을 떠나던 순간까지 그녀의 삶에는 항상 눈이 내렸다. 건조한 공기가 칼바람이 되어 흐르고 때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잿빛 눈발이 몰아치는, 흙 대신 딱딱한 바위 위로 흰 눈이 흩어지는 스카테이 산맥. 안테아는 보통 사람이라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르고 숨이 얼어붙을 정도의 척박한 날씨를 가진 곳에서 태어났다. 항상 밟히는 것들이 두껍게 깔린 눈이었으니, 그 아래서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위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날씨가 그나마 따스해지는 계절에도 잿빛 돌산을 덮은 눈은 절대 녹아내리지 않았고, 그것들은 희다 못해 푸르고 검게 빛났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 아니 수천, 수만 년을 쌓인 눈이 녹은 적 없이 바위 위에 얼어붙어 있었으니까. 아주 멀리서 스카테이 산맥을 바라보면 산 꼭대기에 하얀 베일이 덮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간의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만년설이라 불렀다.

평생을 설산에서 자란 탓에 얼어붙지 않은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70세가 지난 이후였으니 오히려 눈이 내리지 않는 싱그럽고 푸르른 숲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래서 고향을 뒤로하고 떠난 뒤에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무작정 눈이 내리는 땅을 찾았고, 마침 용시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조금은 풀어진 커르다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머니는 알지만 아버지는 몰랐고, 낳아 준 어머니보다도 다른 이들의 손을 더 많이 타며 자랐기에 혈육에 대한 유대감보다도 함께 자란 친구들에 대한 유대감이 더욱 깊었다. 물론 함께 자랐다고 해서 모두가 함께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마을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하고, 몇 살이 많아 빨리 성인이 된 아이들 중 남자아이들은 예외 없이 마을을 떠났다. 안테아가 성인이 될 즈음, 함께 자란 아이들의 반 정도가 이미 곁에 없었다.

여자아이들이라고 마을에 별 일 없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을 지키고 종족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고 키워야 했고, 침입자를 대비하여 자신과 마을을 싸워 지킬 힘 역시 필요했다. 함께 자란 친구들 중 몇은 마을 밖에서 찾아온 남자들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안테아를 포함한 몇몇은 돌산의 정상까지 올라 혹독한 날씨를 이기고 훈련을 받았다. 얼핏 보아서는 마을에 남은 이들이 훨씬 쉬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누구의 삶이 더 고되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실타래처럼 이어져 자신의 일을 해야만 마을의 생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훈련을 받고 산을 타는 쪽이 죽음과 더욱 가까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일도 있었고, 열외되어 상처를 회복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어지는 훈련은 혹독한 날씨만큼이나 견뎌내기 힘들었다. 마을 밖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움막도, 때가 되면 창고에서 꺼내 오는 식량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을 에는 날씨에도 얼어붙은 돌 틈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야 했고, 산을 타다 다친 상처를 치료할 약초 역시 찾아내야 했다. 단순히 집을 떠나 훈련을 받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었다.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낙오자들이었다.

훈련에서 도태되는 이들은 운좋게 훈련이 끝나는 시점까지 살아남는다면 함께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틈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었다. 함께 자라온 이들은 안테아에게 혈육보다도 더욱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죽음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을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죽는 것은 영예로 여겨졌고, 자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그리워하거나 슬퍼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원망스러웠다. 부족을 유지하기 위한 역할이 다 무어냐고, 텅 빈 바위산에 외치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었지만 더러 살아서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고, 그들 역시 마을에서 다른 역할로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들을, 마을을 보호하는 사람 역시 언제나 필요했기 때문에 안테아는 그들을 보호하는 이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십 년을 살다 보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났다.

가장 먼저 잊혀진 것은 다친 채로 버티다 얼어죽은 친구의 얼굴이었다. 테아, 나 너무 추워. 짧은 두 마디를 남기고 서서히 빛이 꺼져가던 눈을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어느 날부터 친구의 얼굴이, 눈빛이 기억나지 않았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비명도 지르지 못하던 친구, 큰 짐승의 발톱에 찢겨 죽은 친구……. 그 후에 잊혀진 것들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안테아가 점점 마을의 일부로 사는 데 익숙해지던 중, 뜻밖의 손님이 마을로 찾아왔다.

어머니가 이 마을 출신이라던 ‘조달꾼’이었다. 마을에 새로운 얼굴이 보이는 것은 몇 십 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말까 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쉬쉬하면서도 바깥의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조달꾼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눈밭에서만 자라는 화초의 표본을 채집하러 왔다는 그녀는 금방 사람들과 친해졌고, 그녀에게 호기심을 보이던 어린 수호자 한 명이 그녀의 안내역을 자처하고 길을 나섰다. 덕분에 그녀는 원하던 화초를 일 주일 반만에 찾아서는 금새 떠날 채비를 했다. 두 사람은 다소 아쉬워 보였지만 언젠가 살아 있다면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제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비보가 들려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찰을 나갔던 그 아이가 실족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했다. 그 아이는 제 할 일을 다했고, 선조들과 같이 설산 어딘가에서 얼고, 녹고, 사라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테아는 뜻밖의 광경을 맞이했다. 조달꾼이 설산에 누운 그 아이 앞에서 제 옷을 한 겹 벗어 태우고 있는 것이었다.

“돌산에서 불을 피우면 안 돼요. 건조해서 금새 불이 번질 수 있어요.”

형식적인 이야기를 하며 조달꾼을 불러세운 안테아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바깥 세상에서 온 어른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가 너무도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안테아는 한참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조달꾼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 그 사이에 그녀가 태우던 옷은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버리고, 여기서 무언가를 태우면 안 된다- 따위의 말을 더 늘어놓기에도 늦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의문이 마음 속에서 싹트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슬퍼하고 있는 걸까? 일주일하고 반이라면 그녀와 자신의 삶에서 아주 작은 부분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더욱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참 그녀를 내려다보던 안테아는 그녀의 울음이, 슬픔이 잦아들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고 있나요?”

“그 애가 죽었잖아요. 겨우 마흔을 넘겼어요. 아직 너무 어린 아이라구요.”

“옷은 왜 태운 건가요? 이 산에서 내려갈려면 그 옷이 필요할 텐데.”

“가는 길에 따뜻한 옷이라도 입혀 보내고 싶었어요.”

이미 죽은 사람에게 무슨 옷을 입혀 보내겠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애는 그저 제 할 일을 하다 생을 마감했을 뿐이 아닌가? 안테아는 제딴에 위로를 해 보겠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자기 할 일을 하다 죽은 거예요.”

“제 할 일을 하다 죽었다 해도 어떻게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녀의 울음 섞인 한 마디가 순간 뒤통수를 아주 세게 치는 것만 같았다. 지금껏 죽음을 슬퍼해서도, 오래 기억해서도 안 된다고만 생각해왔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제 일을 하다 생을 마감해도 아무렇지 않게 교체되고 잊혀진 이들이 자꾸만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안테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래, 나는 아마도 그 사람들이 사라져서 아주 슬펐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그들이 너무도 그리웠는지도…….

이번에는 조달꾼이 안테아가 슬픔을 쏟아내는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안테아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눈물이 멎을 때쯤 안테아를 끌어안고는 토닥였다. 조금은 세게.

“난 내일 아침이면 이 마을을 떠날 거예요. 살아 있다면 또 만나요.”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운 안테아는 한참을 생각했다. 자신이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한, 이 슬픔은 반복되고 반복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해받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돌산을 내려가면 어딘가에는 분명 그 슬픔을 이해하는 세계가 있고, 상실에 슬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있을 것이다. 이 감정을 이해받는 세상으로 가고 싶다. 상실이 익숙하고 죽음에 초연한 삶 대신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할 줄 알고, 누군가를 그리워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스카테이 산맥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자. 그리고 피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함께 자란 자매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들 몫까지…….

밤을 꼬박 지새운 안테아는 해가 뜰 무렵 움막에서 나오는 조달꾼을 마주했다.

“산을 내려가는 데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요?”

조달꾼은 그녀를 보고 다소 놀란 듯했으나 이내 놀라움을 거두고 미소를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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