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를 해 보자!(上)

with 서울코믹월드

헴프혁명 by 삼
7
0
0

나랑 조금이라도 대화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오타쿠다. 나는 내가 일반인이라기엔 너무 멀리 왔고 오타쿠라기엔 모자란 그 정도 인간이라 생각하는데 사람들 눈엔 결국 씹덕이니까 그냥 오타쿠 하기로 했다. 오타쿠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피규어를 사서 모으고 다키마쿠라*를 껴안은 채 애니를 정주행할까? 이런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오타쿠들도 나름대로 각자 자기 분야(?)가 있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창작물을 책으로 만들어 관련 행사에서 팔기도 하는데 이를 동인지라고 부르며 창작하는 행위는 연성이라고 부른다. 남덕보다는 여덕 문화이며 이들은 주로 BL, GL을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HL(NL)** 은 마이너한 감이 있다. 남덕들은 두 캐릭터를 커플로 엮는 연성보다는 자신이 이입할 수 있게 1인칭 시점으로 캐릭터를 그리는 연성을 많이 한다. 남성향 장르와 여성향 장르의 차이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재밌으니 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그 외에는 자기 목소리로 더빙을 하거나 애니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직접 작곡해서 부르거나 보컬로이드***를 이용해 자신이 만든 곡으로 조교하기도 한다. 하츠네 미쿠라는 보컬로이드로 이 짓거리하다 자기 앨범 내고 떡상한 인간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일반인들도 Lemon, KICK BACK이라는 노래로 익숙하게 알고 있는 요네즈 켄시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코스튬 플레이어(이하 코스프레)는 익히 알고 있을 테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캐릭터가 그려진 바디필로우 베개

** Hetero Love(Normal Love), 이성 간 사랑

*** 일본의 기업 야마하에서 개발한 음성 합성 엔진 소프트웨어. 성우의 음성을 따서 만든 TTS로 제품마다 캐릭터를 만들어 상품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크립톤 퓨처 미디어 사의 하츠네 미쿠.


나는 처음 입덕할 때에는 그림을 그리는 오타쿠였다. 좋아하는 두 캐릭터를 연인 관계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성별은 크게 신경 안 썼던 것 같다. 뭐가 됐든 맛있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음침하게 그림이나 그리고 지내다가 난 성인이 되고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그 때 피규어에 눈을 떠버렸다. 배우자 감으로 최악의 취미 중 하나인 그 피규어 말이다. (그래서인가 난 남편 플스 욕조에 담근 여자들 보면 걍 싸이코패스 같다. 보는 내가 고통스럽다…)그래도 스스로 나름의 선을 정했는데 1~2만 원 대의 저렴한 피규어 위주로 구매를 하고 고가의 피규어는 중고로 최대한 싼 매물을 찾아 10만 원 대 중반을 넘지 않는 선에서만 1년에 2~3개 정도 구매한다. 피규어에 대한 이야기 또한 나중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여하튼 나의 씹덕 여정은 연성, 피규어를 지나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게 코스프레였다. 코스어들의 활동도 제법 다양하다. 캐릭터 코스튬을 입고 집, 야외,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거나 관련 행사에 참가하여 코스프레한 채로 돌아다니는 게 제일 보편적이고 그중 외모가 좀 출중한 사람들은 자신의 코스프레 사진으로 엽서나 사진집을 만들어 행사에서 팔기도 한다. 난 사진 팔아 돈 벌 정도로 예쁘지 않았고 집에서 코스프레 했다간 가족으로부터 경멸 받을 게 뻔했기 때문에 행사장에 가서 돌아다니는 것을 택했다.

나는 코스프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23년 10월이었으니 오늘 기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왜 스물다섯이나 처먹고 나서야 시작했냐 묻는다면 마땅한 이유는 없긴 한데 그냥 막연하게 ‘명색이 씹덕이면 코스프레 한 번은 해 봐야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진짜 해야겠다 하는 강렬한 끌림이 저 때 찾아왔을 뿐. 첫 코스프레는 <마왕성에서 잘 자요>라는 만화의 스야리스 공주였다. 긴 팔에 긴 치마 의상을 입는 캐릭터여서 살이 붙은 몸매여도 부담스럽지 않게 코스프레할 수 있었다. 의상은 집이 아닌 직장으로 시켜서 탈의실 캐비닛 안에 숨겼고 행사 전 날 백팩에 은밀하게 담아서 챙겨왔다. 코스어는 크게 중부권과 남부권으로 나뉘는데 중부권 코스어들은 서울코믹월드(이하 서코), 남부권 코스어들은 부산코믹월드(이하 부코)에 참가한다. 나는 중부권에 거주하기 때문에 서코에 참가했다. 코믹월드 행사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그래서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데 메이크업, 의상 환복, 가발 세팅까지 하려면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그래서 행사장 근처에 모텔을 잡아 전날 미리 그 지역에 가서 하루 묵는 경우가 많고 서울의 경우에는 그 근처 숙박업소가 한두 달 전부터 전부 예약이 마감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다. 그리고 서코는 서울코믹월드라는 이름과는 달리 의외로 서울에서만 열리는 행사가 아니다. 서울 외 수도권 도시에서도 열리며 현재 서코는 서울, 수원, 고양 세 군데에서 번갈아 열린다. 나의 첫 코스프레 참가 행사는 수원에서 열리는 서코였다. 그렇다. 나는 마계수원에 처음으로 발을 딛게 된 것이었다…

중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이 시간에 만나용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