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를 해 보자!(中)
마계수원 탐방기
코믹월드. 이것은 대체 무엇을 하는 행사인가? 간단히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다. 코믹월드는 (주) 코믹월드에서 주최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동인* 행사다. 한국에선 제법 규모가 큰 서브컬쳐** 행사인 편이다. 행사 참가자는 동인지, 각종 팬시 굿즈(키링, 스티커, 족자봉, 엽서 등 다양하다), 코스프레 사진, 직접 제작한 음반이나 게임 등을 판매하는 동아리 부스와 코스프레를 하고 일반 관람객처럼 돌아다니거나 무대행사에서 공연을 하는 코스어, 부스에서 판매하는 굿즈를 사거나 코스어와 함께 사진 찍으러 오는 일반 관람객, 행사장에서 사진사 등록 후 허가를 받아 코스어를 찍는 사진사가 있다. 참고로 DSLR급 이상의 장비로 코스어를 촬영하려면 사전에 사진사 등록을 해야 하는 것이 코믹월드 규정이다. 2013년부터는 기업 전시관이 도입되어 만화, 게임 관련 기업들이 참가한다. 설명이 좀 되었는가? 이제 함께 수원으로 떠나보자.
* 同人, 본래 같은 취미나 뜻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서브컬쳐계에서 주로 창작을 하는 사람 혹은 모임의 개념으로 축소시킨다.
**Subculture, 학술적으로는 ‘부분문화’, ‘하위문화’로 번역되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일본식 오타쿠 문화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수원 서코가 첫 서코는 아니다. 코스어로서 참가하는 것이 처음인 거고 고등학생 때 서울 서코를 동아리 부스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스티커를 만들어 팔았는데 첫 참가라 50장 정도만 만들어 갔었다. 근데 의외로 완판해버려서 10만 원 정도 벌었던 기억이 난다.(더 만들어 갈 걸 그랬다…) 그 당시 서울 서코는 학여울역 세텍(SETEC)에서 열렸었는데 현재는 세텍이 아닌 양재 AT센터에서 열리기 때문에 첫 서코는 이제 추억이 되었다. 그때는 새벽에 출발해서 당일치기로 다녀왔었지만 이번에는 수원에 전날 미리 가서 하루 자는 것을 택했다. 날 찍어줄 사진사 친구도 한 명 섭외했다. 수원 서코는 수원역 근처 수원메쎄(SUWON MESSE)에서 열리기 때문에 수원역 근처로 숙소를 잡아야 했는데 숙소를 잡으려고 야놀자를 뒤져보니 행사 일주일 전이라 그런가 저렴한 숙소는 대부분 예약이 차 있었다. 그래서 예약 가능한 것 중에선 그나마 저렴했던 1박 8만 원짜리 숙소를 잡았는데 이게 분명 야놀자 사진에선 멀쩡했단 말이다… 숙소에 대한 얘기는 조금 뒤에 후술하겠다. 내가 사는 곳에서 수원까지 가려면 전철보다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훨씬 편했기 때문에 고속버스를 예매해서 탔다. 근데 이때부터 걍 존나 불안했다 기사 아저씨가 신경이 많이 과민하신 건지 수원까지 가는 2시간 내내 허공에다 얘기하고 욕하고 짜증을 내셨다. 괜히 맨 앞자리 예매해가지고 가는 동안 불편해 죽는 줄 알았다. 우리는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치듯 내렸고 수원역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는데… 수원은 택시 운전석에 기사님을 보호하는 격벽이 둘러져 있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지나가다 보인 택시는 거의 다 있었다. 비말 차단 용도라기엔 팬데믹도 지나간 시점이었다. 기사님 때리는 새끼가 대체 얼마나 많았던 거냐. 어이어이 무섭잖아.(실제로 경기도에서 택시기사 보호격벽 설치 사업을 추진했었다고 한다. 잘 시행됐는지는 모르겠다만…)
택시를 타고 수원역에 도착을 했다. 수원역 주변은 전체적으로 동네가 상당히 낡아 있다. 중간중간 새로 세워진 신축 건물들이 오히려 이질적이어 보일 지경이었다. 정말 이 동네만 시간이 2000년대 초반에서 멈춘 것 같다. POP 손글씨로 ‘폭탄세일’, ‘SALE 50%~’, ‘1000₩~’ 등의 문구를 적어 붙여 놓고 사람 몸통만 한 스피커로 왁스-오빠, 베이비 복스-나 어떡해, 채연-둘이서 같은 노래들을 틀어놓은 가게들이 많았다. 파는 것도 브랜드 모를 싸구려 색조 화장품들이나 양말, 잠옷, 속옷 이런 물건들이다. 정겹다. 이런 광경 진짜 20년 만에 처음 본다. 수원역에 왔으니 이제 숙소를 찾아가는데 안 쪽으로 들어가면 갈 수록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양지와 점점 단절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소위 양아치라 불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건 둘째 치고 정말 죄다 유흥업소였다. 특히 동남아, 중국인 아가씨가 상주하는 곳이 많았다. 22년, 그러니까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사창가가 있던 곳이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현재는 집창촌 철거 사업 이후로 홍등이 꺼진 거리를 개발하지 않고 방치해 둬서 텅텅 빈 곳이 많다고 한다. 좁은 골목을 하나 두고 외국인 성산업 노동자와 그들의 존재를 지웠을지, 자본을 주고 사려 할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한국인들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모습을 보면 어쩐지 서글퍼지는 곳이다.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싸구려 모텔이 1박에 8만 원 받는 주제에 체크인 시간도 밤 10시였다. 방 키를 받고 딱 들어서는데… 자신이 치르는 뜨거운 정사를 3인칭 시점에서 관음해 보라는 건지 참 친절하게도 천장과 벽마다 거울이 있고 벽지는 금박으로 꽃무늬 그려진 체리색에 욕실은 통유리였다. 여기까진 그렇다 쳐도 방 냄새가 정말 끝내줬다. 옛날 노래방 냄새 아는가? 요즘은 코노가 많아지고 실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맡기 힘들어진 냄새인데 옛날 노래방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있다. 지하에 있어서 습한 곰팡이 냄새+냅킨에 소독약 냄새나는 물 적셔 놓은 재떨이와 소파 시트에 깊숙히 스며든 니코틴 냄새+마이크랑 탬버린에서 나는 쇠 냄새+바닥에 쏟은 각종 주류 냄새가 합쳐져서 나는 그 오묘한 냄새 말이다. 그 냄새가 시발 사람 잠자는 방에서 났다. 창밖에선 불빛이 번쩍거리고 밤새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너무 좆같아서 숙박비 내가 내고도 친구한테 눈치 보였다. 난 이 모텔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냉장고에 초록매실, 옥수수수염차, 물, 망고주스 다 처먹고 나왔다. 약간 양심 없었나… 싶기는 개뿔 지금도 그에 대해 미안함과 후회는 없다. 어차피 먹으라고 놓은 거잖아. 나는 이 방의 짙은 타락의 냄새를 애써 무시한 채 새벽이 되도록 행사 때 쓸 가발을 빗고 친구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한참을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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