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in New York

Villain in New York 20

총과 칼 (12)

Words Fail by 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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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일로 접속시 새로고침을 한 번 해주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문단이 중간중간 통째로 사라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다행히 흘린 피에 비해 상처는 깊지 않았다. 꿰맬 필요도 없고, 흉터도 옅게 남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로베르토와 몇몇 솔져들-치치가 아폴로니아로 가는 걸 본-은 계속 까맣게 죽거나 허옇게 뜬 낯이었다. 특히나 로베르토는 정도가 더 심했다. 그는 정말로 툭 치면 기절할 것처럼 보였는데, 자신이 치치가 시한부라고 소문낸 장본인임을 고백할 때보다 더 그랬다. 그는 아폴로니아에서 돌아온 후 치치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마 치료 내내 아무 말 없이-산타 루치아에서 이미 한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치치만을 바라보던 써니보이에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치치는 오자마자 자신이 그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해명부터 했지만 별로 도움이 안된 거 같았다. 처치가 끝나자 치치는 로베르토와 롸코, 써니보이만 남겨두고 모두 내보냈다. 치치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흉터도 안 남는 대잖아.”

로베르토는 이제 울먹이기 시작했다. 롸코가 거의 한숨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무모하셨습니다.” 다행히 그는 치치가 왜 그랬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서지 말고 쏠 걸 그랬나.” 

“그러셨어야죠.” 

로베르토가 겨우 말했다. 이렇게까지 호들갑 떨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싶었지만 욱신거리는 뺨이 그건 아니라고 계속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는 테이프가 붙은 피부가 간질거려 괜히 그곳을 긁다가 조금 억울해졌다. 써니보이가 취객을 놀라게 하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치는 써니보이가 이 일에 끼어들어있다는 사실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가 끼어있으면 더 복잡해질 게 뻔했다. 말하지 마. 치치는 아폴로니아에서 써니보이에게 그렇게 말했고, 써니보이는 정말로 그 말을 잘 지키고 있었다.

“파파한테는 절대 알리지 마. 내가 말할 테니까.” 

롸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몇 솔져들이 아폴로니아에 있었다. 소란 자체는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거기서 보체티의 이름이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숨 돌린 치치는 써니보이를 쳐다보았다. 써니보이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 분명했으므로, 치치는 침묵이 더 길어지기 전에 아무 말이나 내뱉기로 했다. 하필이면 그때 써니보이의 수척한 얼굴이 들어온 것도 있었다.

“저녁은?”

“……파파가 일이 있으시대서.”

써니보이는 요새 계속 저녁을 거른다고 했다. 애초에 입이 짧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바빠서 그런 게 더 큰 듯했다. 때문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음식을 찾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했다. “나도 안 먹었어.” 입맛은 진작에 달아났지만, 얠 먹이려면 먹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눈치 빠른 롸코는 치치가 그쪽으로 눈짓도 하기 전에 이미 로베르토를 데리고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자 방은 더욱 고요해졌다. 괜히 내보냈나, 한 명은 남으라고 그랬나 생각하던 찰나 잔뜩 갈라진 써니보이의 목소리가 귀에 꽂혀 들었다.

“치치.” 여전히 써니보이는 분노하고 있었다. 

“어.” 

“왜 그랬어?”

치치가 고개를 들어 써니보이를 쳐다보았다. “그냥…….” 빌어먹을 푸른 눈동자. 네 생각이 나서. 하지만 치치는 그 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써니보이가 치치에게 왜 자신이 그때 아폴로니아에 있었는지, 그 취객에게 와인병을 던져버렸는지 설명하지 않을 것처럼.

“시끄러웠잖아.”

치치는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내렸다. “당연히 주인장이 끼어들 줄 알았지.”

설령 끼어들지 않았어도 취객을 향해서 쏘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곳에서 죽으면 귀찮아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까. 아니, 어쩌면 차라리 쏘는 게 나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곧바로 루치아노를 독대할 수 있을 것이고, 적당히 이유를 붙여가면서 그가 마침내 해야 했어야 하는 일을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열세 살 그 밤, 써니보이가 루치아노에게 이날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처럼. 왜 그랬어? 치치는 물었고 써니보이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써니보이는 묵묵히 있었다. 치치는 그를 슬쩍 눈동자만 굴려 훔쳐보았다. 그는 여전히 치치처럼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사실 거의 처음인 것같았다. 간질거리는 뺨을 무의식적으로 긁지 않으려고 하며 치치는 그가 갖고 있는 질문 중 하나를 떠올렸다. 써니보이 보체티는 대체 왜 치치 보체티를 지키려고 하는가.

그때 롸코와 로베르토가 돌아왔다. 핫초콜릿 두 잔과 여러 종류의 빵이었다. 여전히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써니보이 대신 치치는 적당히 빵 서너 개를 고르고 나머지는 그대로 다시 들려 밖으로 내보냈다. 그중에 세 개를 써니보이에게 밀어주고, 치치는 하나만을 집어들었다. 정말로 쟤가 날 지켜주려고 한다면 하나는 먹겠지. 빵에서는 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써니보이는 천천히, 그러나 그것들을 전부 먹었다. 정작 치치는 빵을 집었다 내려놓다를 반복하면서 핫초콜릿만 두어 번 홀짝인 게 전부였다. 

“왜 안 먹어?”

마지막 한 입을 삼키고 써니보이가 물었다. 치치는 괜히 입에 잔을 한 번 가져다대고 말했다.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갑작스런 농담조에 써니보이는 잠깐 말문이 막힌듯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핫초콜릿으로 시선을 내려버렸다. 걱정, 그래, 걱정할 수 있지. 걱정은 할 수 있었다. 리차드가 준 손수건이 안주머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질문이 틀렸다. 써니보이가 치치를 지키고 싶을 순 있었다. 치치가 모든 것을 포기했듯이. 질문은 이것이어야만 했다. 써니보이 보체티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치치 보체티를 지키려고 하는가? 

“니 솔져나 할까.”

써니보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파파가… 허락하지 않으실 텐데.” 

“당연히 그러시겠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치치는 잠깐이겠지만 써니보이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린 것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핫초콜릿을 한모금 더 들이켰다. 

*

치치는 꼿꼿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겨우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도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써니보이에게는 죽어도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부랑자를 쫓아간 써니보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주저앉아있던 것, 써니보이가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은 것, 끝내 길을 모른다며 앞장서라고 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쪽팔렸다. 솔직히 써니보이가 솔져 형들에게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그가 죽을 때까지 이날을 입에 담고 치치를 놀려대도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입에 담고 놀려대고. 제 실수를 곱씹던 치치가 문득 멈춰 섰다. 그는 내 형제를 건들면 죽여버린다, 라고 말한 것이 그가 처음 들은 써니보이의 목소리임을 깨달았다. 

“너 말 할 줄 알았냐?”

써니보이도 우뚝 멈춰 섰다. 그는 그 자리에서 몸을 돌려 치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가 희미하게나마 있는 가로등 빛을 등지고 있는 바람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던 거 같았는데도 써니보이는 말이 없었다. 치치는 더욱 민망해졌다. 그래서 최대한 멀쩡한 걸음걸이로 가만히 서 있는 써니보이를 지나쳤다. 한참 간 거 같은데도 그는 치치를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치치는 다시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 써니보이에게 한 마디를 하려고 했다. 등 뒤에서 소리만 들려오지 않았다면.

“네……”

오래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잔뜩 갈라진 목소리였다. 가로등 빛만큼이나 희미했지만 치치는 분명히 그것이 써니보이의 목소리임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치치는 저도 모르게 휙 소리가 날 만큼 빠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써니보이의 표정이 선명했다.

“네 솔져가 될게.”

그게 써니보이가 치치에게 두 번째로 한 말이었다. 분명히 목소리에는 잔뜩 금이 갔는데도, 그 표정이 너무나 단단했기 때문에 치치는 앞으로 그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써니보이의 목소리는 멀쩡했을지도 모른다. 갈라진 건 오로지 치치 보체티 혼자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뺨에 상처를 단 채 나타난 치치를 본 토니의 얼굴이 빠르게 하얘졌다. 써니보이가 아프다고-루치아노가 쓰러지고- 한 뒤로 처음, 그것도 급한 사정이 생겨 조금 쉬겠다고 말해놓고 이렇게 나타나면 놀라긴 하겠지. 당연히 예상한 것이었기 때문에 치치는 준비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자전거를 타다가 거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한쪽 뺨이 갈려버렸다고, 멀쩡한 팔도-물론 옷으로 가려놓았다- 몇 번 문질렀다. 다쳐서 그렇다면 미리 말해주지 그랬냐며 토니는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치치는 하하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 변명을 생각하는 데에는 며칠이나 걸렸다. 루치아노가 쓰러진 날처럼 대충 넘겨버릴 수도 있었으나 이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처럼 모든 질문에 맞는 답을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토니는 써니보이가 아프다고 말했던 저번과는 달리 진짜로 그의 말을 믿은 것 같았다. 그는 어쩌다 넘어졌냐먄 듣고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몇 번 더 이유를 말하고, 책을 나르려던 치치가 몇 번 제지 당하고 심지어 꾸중까지 듣자-심지어 손님에게도 혼이 났다!- 그는 정말로 멀쩡한 팔이 쓰리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걱정 섞인 꾸중 속에서 아폴로니아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그가 보체티임을 알고 있는 몇몇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입단속이 된 거 같긴 한 모양이었다. 치치가 그 일 이후 산타 루치아 근처에도 가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치치가 갈 시간이 되자 토니가 간단한 간식을 몇 개 들고 다가왔다. 로베르토가 책에 열중하는 것을 힐끗 본 토니가 간식을 치치에게 쥐여주며 말했다.

“오늘 안 나왔어도 괜찮았는데, 역시 궁금하긴 했나 보구나.”

“예?”

“그때 내가 하려던 말 말이야.”

기억을 더듬어 치치는 루치아노가 쓰러진 날 토니가 하려던 말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솔직히 치치는 완전히 까먹은 상태였지만, 그렇게 말하는 토니가 뭔가 기대감에 차 있었기 때문에 그렇노라고 대답했다. 비장하게 숨을 뱉은 토니가 조금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미스터 보체티가 여기에 직접 오셨었어.”

북소리. 아주 전형적인 방식이다. 주변인들을 인질로 잡는 것.

“파…… 아버지가요.”

어쩌면 루치아노는 어떤 결심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생의 그처럼, 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틀림없다고 말하며 치치에게서 이것들을 뺏어가려고 다시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산타 루치아는 실수였다. 치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게 눈에 보였는지 토니가 손을 휘저으며 급한 어투로 말했다. 

“네가 서점을 직접 운영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시던데.”

뜻밖이었다. 전혀, 치치가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아무래도 여기는 좀 작은 편이긴 하지. 물론 주인도 네가 아니고…… 네 가게를 내주고 싶어 하시는 거 같았어.” 

루치아노는 치치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궁금한 듯했다. 분명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치치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는 대체 누구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루치아노가 살아있을 때 그를 보체티 밖으로 쫓아내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산타 루치아를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열여섯 생일에 줬던 서재 같은 것? 

치치는 자신이 그 무엇도,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놀랐다. 

그렇다면 치치 보체티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 “토니, 그냥 전…….”

“훌륭한 직원이 떠나는 건 아쉽지만 중요한 건 네 의사라고 말씀드렸어.” 

토니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토니를 볼 때마다 치치는 어떤 누군가를 생각했다. 좋은 이들이 곁에 함께하는 인생에 대해. 그러니까, 토니를 부모로 둔 아이-물론 그는 미혼이었지만-라던가, 혹은 워싱턴에 있다는 토니의 동생, 토니의 부모들, 토니의 동료들, 대쉬우드의 손님들……. 주변의 사람을 인질로 잡을 수 있는 삶들. 그 인질들을 위해 기꺼이 제 목숨을 내버릴 수 있는 삶을. 

“네 생각이 궁금하긴 하지만…… 네가 직접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 같구나.”

나중에 나한테도 말해주는 거 잊지 말고. 치치는 차마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저택에 돌아왔다. 그를 맞이한 롸코가 루치아노가 오늘부터 저녁식사에 함께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치치는 속이 꽉 막히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오늘 루치아노가 그를 부를 것이다. 아마 루치아노는 그가 대쉬우드에 다녀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토니가 분명히 이런 말을 할 것을 알고서.

루치아노 보체티는 여전히 상처가 선명한 치치의 얼굴을 힐끗 보고서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 써니보이는 늘 그랬듯 조용히 루치아노의 이야기를 듣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치치는 늘 그랬듯, 조용히 음식이나 퍼먹었다. 체할 것 같았다. 분명히 체할 것이다. 

“치치.”

루치아노가 그를 불렀다. 치치는 티 나게 움찔거렸음을 자책하며 답했다. 

“네, 파파.”

“끝나고 따라오거라.”

드디어.

드디어 치치가 오랫동안 바라던 때가 왔다. 이르게 식기를 내려놓은 치치는 루치아노가 식사를 끝마칠 때까지 음식이 여기저기 묻어 지저분한 접시 한가운데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야 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산타 루치아를 포기할 수 있는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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