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악보와 딸기 파이

아픈 꿈

오로지 고통만이 유대야

곤용(@mincho_gonyong)님의 전사(轉寫)' 를 너무 감명깊게 읽은 나머지 손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래에는 전사의 스포일러가 매우! 다량으로! 존재하고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https://youtu.be/7Y9sJvLI3Po

(작업 BGM 겸 모티브가 된 노래를 함께 게시합니다)

아, 꿈이구나 이거.

금남은 묘하게 평온한 기분이 되어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구나. 처음부터 이렇게 침착했던 것은 아니다. 정신은 깨었는데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은 그 자체로 악몽이었다. 기계장치의 몸이 고장나 의식만 남은 채로 버려지는 꿈은 오랫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고쳐주는 사람이 없다면 정말로 현실이 될 꿈. 허나 이제는 그런 꿈에서 벗어난지 오래였다. 그보다 지독한 것이 그의 발치에 서있기 때문에. 그는 이제 그 얼굴을 보면 제가 꿈을 꾸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한테 왜 그랬어?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너랑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야, 그래도 우리 친구긴 했잖아!

얼굴을 본다는 표현은 조금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꿈 속의 아이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웅크리고 누운 그의 발치에 가만히 서서 가만히 말을 건넬 뿐이다. 얼굴을 보려 아무리 애써도 움직일 수 없는 금남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짙게 음영이 진 하관까지가 한계였다. 다만 머리를 울리는, 눈물에 젖은 그 목소리가 지독하게 익숙했기 때문에 금남은 그저 알 수 밖에 없었다. 아, 양현우가 기어코 내 꿈까지 찾아오는구나. 내 죄를 선고하러 오는구나. 그리고 악몽 속의 현우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한발짝씩 천천히 그에게 다가온다. 짙게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 현우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면,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나를 죽였어

그 순간 금남은 꿈에서 깨어난다. 제가 죽인 친구의 핏방울에 젖은 채로.

윤환은 잠든 금남을 내려다 보았다. 금남은 작은 몸을 한껏 웅크리고, 애원하듯 앓는 소리를 낸다. 악몽 속에서 누굴 만나고 있을까.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매정하게 돌아서려는 발을 붙잡는다. 이 기분도 결국에는 잘 짜인 프로그램에 불과할텐데. 그래서 꿈을 꾸는 법도, 꿈에서 깨어나는 법도 모르는 안드로이드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제 옷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어쩐지 귀에 거슬려 미간을 찌푸리다가, 누가 찾아와도 모르고 잠에 빠진 소년이 얄미워 살짝 뺨을 쓸었다. 이래서야 누가 당신이 ……인 줄 알겠어요. 금남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지 몰라 말을 어물거린다. 우스운 일이다. 깨어있을 때는 얼마든지 그 까불거리는 얼굴에 대고 당신은 사람을 죽이려고 개조한 사이보그라 냉정히 단언할 수 있는데, 정작 잠든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아직 어린 아이라. 그가 오래 원망하고, 그저 원망한 어떤 남자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을 저질렀는지, 어쩔 수 없이 깨닫고 만다. 이제 당신을 나쁜 꿈에서 깨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도 남자는 소년을 동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이곳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도망쳐도 갈 곳 따위 없다는 걸 언젠가 금남도 깨닫을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 가여운 아이도 알겠지. 악몽 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될 거라는 걸. 윤환은 꿈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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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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