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森清慈

1.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메모리 세이지

“세이지,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아.”

그 정도는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재난은 차례차례 친구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집어삼켰고, 꼭 재난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상처 입히곤 한다. 아메모리 세이지의 힘은 어릴 적 생각했던 것보단 많은 이들의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베인 상처는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잘린 부분을 붙일 수는 없다. 독은 몰아낼 수 있다. 그러나 불치병을 무찌를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마음의 상처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변해 갔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숨 쉬기 편해진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더 숨 쉬기 벅찬 환경이 되었다. 눈에 띄게 제 살을 깎아 움직이는 친구들을 말려도 봤지만, 친구라 해도 결국은 타인이었다. 그들의 인생을 자신이 바꿀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는 것은 소용없었다.

* * *

빗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세이지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시야를 확인했다. 쓰러진 동료들이 보였다. 사전에 예측했던 것보다 몇 배는 강력한 '변이' 앞에서 대부분의 전력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 사이에는 동기인 제이비어와 딜리에헤의 얼굴 또한 있었다.

세이지는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모두가 쓰러져 있는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작은 물병을 붙잡고 이것이 자신의 눈물 대신 누군가의 상처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뿐.

빗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빗방울이 머리칼을 적신다.

문득, 몽롱해진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비도…… ‘물’이잖아.’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시야 가득 빗방울이, '물방울'이 보였다. 아리아드네의 힘은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힘은 말의 힘. 말의 힘은, 생각의 힘.

빗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 비가 내 눈물을 대신할 수 있다면…….

아메모리 세이지의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 * *

“어, 드디어 깼어?”

멍한 의식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무심결에 대답이 나갔다.

“……누나……?”

“와, 알아듣는 거 보니까 제정신이네! 다행이다.”

시야에 의무실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방금 들린 건 분명 누나 아메모리 시이카의 목소리. 분명 현장에는 누나가 없었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떠올랐다.

“……아…….”

우와, 말도 안 돼……. 세이지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대체 어디서 그런 터무니없는 발상이……. 어리석음과 무모함에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옆에서 누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래, 쪽팔리지? 세이지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누나…….”

“응.”

“……열쇠들의 폭주는…… 이거보다 더 힘들겠지?”

“뭐, 아무래도?”

시이카는 부정하지 않았다. 세이지는 그 사실에 가슴이 아렸다. 누구보다 자기소모적인 방식으로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누나가 하는 말이니 완전히 잘못된 건 아니리라.

“자, 눈도 떴고 제정신인 것 같으니까 이제 좀 물어보자. 우리 귀여운 동생이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을까?”

“…….”

질문에는 달리 답할 말이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은 ‘내 무력함이 싫어서.’ 그러나 그때, 아니, 이제껏 느껴 온 그 초조함을 그 한마디로 압축해도 되는 걸까.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시이카는 조금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세이지,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아.”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니까 세이지, 너는 앞으로도 엄청나게 많이 울게 될지도 몰라.”

알고 있다.

영웅의 이야기는 눈부시지만, 모두가 영웅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 속도를 따라가거나 앞지르지 못한 친구들은 넘어지기도 했다. 세이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옆에서 가만히 그 친구가 일어나길 기다려 주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울어도 마음의 상처는 치료할 수 없었으니까.

잘린 부분을 붙일 수는 없다. 불치병을 무찌를 수는 없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마음의 상처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능력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 가는 대가를 돌이키지도 못한다.

아마 자신은 지금까지 울었던 만큼, 앞으로도 더 많이 울게 되리라.

“그래도 그만둘 생각은 없는 거지?”

신기하지. 5년 전의 자신이었다면 아마 울면서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싫어, 무서워, 이제 그만할래. 나 더는 할 자신이 없어.

하지만 지금의 세이지에게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응.”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우리에게 친절하지만도 않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여전히 무서운 건 싫고 다치는 건 아프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다친 사람을 그냥 넘어길 수는 없다. 주저앉은 동기의 옆을 태연히 지나칠 수 없다. 자신의 힘을 필요로 하는 부름을,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한 명이라도 더 들여다보자. 잠깐이라도 곁에 앉아 있자.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자.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한은.

“그래, 그래야 내 동생이지.”

시이카가 자랑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세이지는 괜히 폼을 잡은 기분이 들어 애써 시선을 피했다.

의무실 창문 바깥,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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