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칼

Ask a silly question

(and you got a wise answer... or ?)

“저는 정말로 당신에게 가치가 있나요?”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션 오스본... (그러고 보니 이제는 클라크였다.) 이라는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실없는 것이긴 했지만. 이번 질문은 그것들 중에서도 새롭게 상위권을 차지할 자격이 충분했다.

"당연하지."

굳이 보던 논문을 접을 만큼의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나는 태연히 다음 장을 펼쳤다. … 그러므로 술식의 병렬연결에 드는 마력을 저장할수 있는 한정 용량이… …. 결국 논문을 내리게 된건 거슬리는 소리가 가느다란 웃음이 아니라 흐느낌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눈물이 많은 남자는 아니였던것 같은데. 아닌가, 정확히는 내가 작심하고 울리지 않으면 우는 것보단 웃는걸 선호하던 사람이었다. 집사의 본분을 배울때도, 잊고 내게 버릇없이 달라붙을 때도. 날 사랑한다 했을때도, 그것 때문에 귀족의 위선을 배울 때도.

웃음은 좋은 가면이라는 내 예절 교사의 가르침을 션은 나보다 더 잘 활용하곤 했던 것이다. 조금 성급한 추측으로 말하자면, 이 남자를 울릴수 있는 사람은 지금으로선 아마 내가 유일하지 않나 예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방금 션이 울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 나열하자면, 나는 그에게 오늘밤은 같이 자지 않겠노라 선언하지도 않았고, 그의 사정을 (어떤 의미에서든) 돕지 않겠노라 말하지도 않았으며, 또 그와의 아이를 임신하지도 않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다, 고 긍정했을 뿐이다. 자신이 가치가 있나는 그의 말에.

그랬더니 션은 내 티 테이블 옆에서 훌쩍거리고 있다. 위생상으로 좋지 않을거라 판단하여 그에게 티 테이블에서 떨어지라고 명령하니 알겠다면서 무릎을 꿇고 내 다리에 달라붙어왔다.

요즘 너무 쌀쌀맞았나.

“너는 집사로서 훌륭해. 나의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고 있어.”

그가 묻지 않은 근거를 하나하나 제시해주며, 결국 논문을 내려놓곤 내 무릎 위에 놓여진 푸른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너는 내 두 아이의 좋은 아버지고, 가끔은 내 연구 조수로서도 대단히 쓸모가 있지.”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 보는 시선을 가만 맞추었다. 이 이상까진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면 전략상으로 숨기고 싶던 감정까지 다 드러나고 만다. 달빛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광석처럼

“음- 그리고 말이야.”

가치가 있냐니.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다. 나에게 션은 여러가지로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통해 저택의 대소사를 대신 관리하며, 대를 이을 두 아이도 얻었다. 앞으로 내가 희생해야 할 어떠한 정치적 공세나 혹은 우리 가문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내던져야할때, 평민 출신인 그는 참 좋은 제물이 되어줄 터였다.

멍청하게도 웃으면서 그 역할을 자처한 남자니까. 그럴때 쓰라고 가르친 미소가 아님에도.

“너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야.”

그래. 참으로 우둔한 질문이었다. 가치가 있냐니. 나에게 네가, 카롤리나에게 션이, 가치가 있느냐… 라니.

그리고 바보같은 대답이기도 했다.

나는 션이 내 가문이나 나를 위해 희생양이 될때 확실하게 동요하겠지.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며 설득력 없는 근거를 들어 반대하고 말겠지. 내가 가진 것을 다 잃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걸 또 입밖으로 내뱉고 말거야. 나는 이제 너를 잃는걸 상상도 할수 없고, 그런 미래에서 살아갈 자신조차 없으니까.

“너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거든.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나 나는 진심을 다 내보이진 않는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을 본인에게 그대로 내보이는게 옳은 일인지 아직 의뭉스럽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조차 충분히 실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니 그만 내 드레스에 눈물 묻히렴. 더러워졌잖니.”

말해주진 않을거야. 난 네 앞에서는 늘 현명해 보이고 싶거든.

Maybe you got a silly answer

That's as meaningless, silly, and lovely as your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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