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팔레트 by 알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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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드는 항상 자기 상사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언제나 같은 무표정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눈썹의 각도, 손끝의 방향, 시선이 향하는 장소 등으로 그녀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보아 왔던 칼리드인 만큼, 그는 그녀가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그녀의 다정한 행동과 부드러운 시선, 종종 긴장이 풀리는 말투를 통해 그녀가 자신에게 사람으로서, 동료로서 호감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 번쯤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가 아니겠는가? 비록 동료로서 하는 말이겠지만 칼리드는 어떤 마음이든 좋으니,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며 그러한 마음을 가진 이유를 듣고 싶었다.

칼리드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녀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시선은 가림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모니터를 향해있었고,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것이 있는지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혹여나 막히는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칼리드는 그녀에게 무언가 막히는 것이 있는지 말을 걸려고 한 순간 고개를 돌린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평소와는 다른 어색함과 정적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하고 말을 걸었겠지만, 시선이 마주치기 직전 머릿속을 채운 쓸데없는 궁금증에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자신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게 설마 자신이 그녀를 계속 바라봐서 그런 것일까?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걱정이었지만, 눈치 빠른 그녀가 자기 생각을 전부 알아차린 건 아닐지 긴장되어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칼리드,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가?”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꽂혔다. 긴장으로 인한 탓인지 더욱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칼리드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냥 평소처럼 얼버무릴까? 어쩌면, 그녀는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으니 생각난 김에 전부 털어버릴까? 만약 이 모든 걸 털어놓아서 그녀와 사이가 멀어지면 어쩌지? 칼리드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이런 질문 정도로 그녀와의 사이가 멀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칼리드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자신의 마음을 꺼냈다.

“저… 제드님은 항상 옆에 저를 데리고 다니시잖아요? 집에 있는 도어락 비밀번호도 알려주시고…. 그러니까, 그… 저를 그렇게까지 신뢰하시고 잘 대해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칼리드는 말을 끝마치고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시의 자기 일을 다급하게 처리했다. 질문을 하기 전보다 더욱 빠르게 뛰는 심장, 굳이 만지지 않아도 붉게 달아올라 화끈거리는 얼굴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드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지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마치 10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긴장되던 순간 그녀의 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정이지?”

“…네?”

대답이 들려오자, 칼리드는 황급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그녀의 시선이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다. 성격이나 취향, 하물며 그저 재밌다거나 활용성이 높다는 이유여도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라는 그녀의 대답은 그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이라면 그저 그녀의 옆에 오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자신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그런 취급은 받을 수가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 조금이라도 특별한 존재로 남아있고 싶었다. 자신의 기대와 예상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대답에 칼리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분명히 웃는 얼굴이지만 그의 뺨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그의 미간도 찌푸려져 있었다.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보단 그녀에게 애정을 받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정 때문이라고? 그런 건 내가 당신에게 비호감을 사는 행동을 하여도 옆에 있기만 하다면 어떻게든 미운 정으로나마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왜? 대체 왜? 수많은 의문이 그의 뇌를 가득 채우고 울렁거리는 긴장감과 실망감이 마음속을 헤집었다.

그녀는 이러한 그의 감정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제드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말을 하는지 칼리드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다시 한번 착각 속에 빠져있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추잡한 감정을 그녀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칼리드는 그녀의 말을 들을 수밖에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너와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내 옆에는 네가 항상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지. 좀 고쳐야 하는데…. 그런 당연함 때문에 내가 무엇 때문에 너를 좋아하는지, 왜 이렇게 아끼는 것인지 희미해져 갔다. 너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나에게는 당연하니까. 네가 한 질문에는 제대로 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다른 이들이 물어본다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너는 그게 되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네가 알아줬으면 하는 건 네가 사라진다면 너의 빈자리가 나에게는 평생 채울 수 없는 공백으로 남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널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없거든.”

칼리드는 제드의 말에 모든 긴장과 불안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대답이었겠지만, 칼리드에게는 최고의 대답이었다. 평생 자신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는 그녀의 말은 그에게 있어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인정받고, 신뢰를 얻고, 그 무엇도 대체 할 수 없는 유일이 되는 것, 이렇게나 기쁜 대답은 처음이었다.

“…변명뿐인 대답이라 미안하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런 거로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니까… 그럴 듯 한 말도 못해주는구나.”

평소보다 더욱 접힌 눈, 찌푸린 미간, 그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애초에 그는 그녀의 긴 대답에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대답으로 인해,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와중을 진심으로 대하라는 그녀의 말과 진심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표정, 그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반응이었다. 그는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애써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끝말을 흐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 혹시 오늘이 제 생일이었나요….”

"네 생일은 반년도 더 넘게 남았다만….“

“…못 들은 척해주세요. 그냥, 제드님의 대답이 좋아서 그랬어요. 고마워요.”

칼리드는 자신의 헛소리를 무마시키기 위해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미소 지었고 제드도 그런 그의 표정을 바라보다 옅은 미소로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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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댓글 1


  • 감동하는 코알라

    음 간단히 쓰셨다니 어색한 부분은 대강 넘기고 보자면 감정 표현 (표정 묘사) 쪽에 좋은 작문력을 지니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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