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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띵 뮤에유
그날은 유독 짙은 구름이 제네바 일대를 가득 애워쌌다. 저택 내에선 성대한 파티가 한창이었고, 화려하고 분주한 실내와는 달리 창문 너머에선 을씨년스러운 칠흑빛이 끝없이 펼쳐졌다. 매드헤스턴은 그 풍경이 마치 앞으로의 미래를 예지해주는 것만 같았다.
요근래의 파비안 저택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길거리 괴담같은 것들이 떠돌았다. 저택 경비병의 시체 한 구가 발견된 것을 기점으로 시체의 팔이 비이상적으로 꺾였다느니 뼈가 으스러졌다느니, 또다시 저주가 저택을 집어삼킨 것이라는 둥 이것은 전조에 불과하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올 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결혼식을 앞둔 남녀가 이러한 소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매드헤스턴 파비안은 과도할 정도로 이것들에 집착했다. 처음 경비병의 시체를 맞닥뜨렸을 때엔 몸을 떨며 분노하는가하면 사람들의 허무맹랑한 소리가 하나둘 달라붙어 실속없이 부풀려진 소문을 직면할 즈음엔 의자 팔걸이를 움켜쥔 손이 잘게 떨렸다. 매드헤스턴 파비안은 매일같이 불안에 시달렸다. 악몽을 꾸고, 식사를 거르고, 도통 업무에 집중하질 못했다. 사랑스러운 약혼녀의 손길마저 그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있는지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그는 소문의 괴물을 알았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었다. 제 손으로 처음 생명을 불어넣은 피조물을. 그리운 얼굴을 단 채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몇번이고 피를 뒤집어 쓴 괴물을. 평생의 악몽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3년 전 제네바에서 캘시의 인두겁을 쓰고 괴물로 나 이젠 내 모든 것을 앗아갈 저주로 이곳에 돌아왔다.
괴물은 ‘그 날’ 어깨 위에 걸쳐주었던 코트를 입은 채 조용히 침실을 침범했다. 매드헤스턴의 품 안으로는 괴물을 마주하고 실신해버린 신부가 새파랗게 질린 채 늘어져있었고, 매드헤스턴은 제 안의 여인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사나운 눈빛으로 괴물을 쏘아보았다.
“ 매드헤스턴 파비안, 나의 오만한 창조주. 그동안 잘 지내신 거 같네요. ”
낮게 갈라지는 음성 하나하나를 들을 때마다 몸 안의 전율이 일었다. 머리만큼은 그의 것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눈 앞의 이가 담는 자신의 이름은 기억 속의 온기와 달랐다. 차갑고 날카로운…. 그리운 음성 너머로 사뭇 다른 분위기가 괴리감의 격차만을 벌릴 뿐이었다.
“ … 그게 지금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경비병의 죽음, 네가 꾸민 짓인 걸 알아. 왜 돌아온 거야. 이제 와 날 저주하기라도 할 셈인가? ”
“ 오랜만에 만났는데 처음 묻는 것이 왜 돌아왔냐… 차라리 이런 걸 더 궁금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살았으며 말은 누구에게 배웠으며 어떤 능력을 터득했는지, 여지껏 뭘 먹고, 자고, 누가 돌봐주기라도 했는지… ”
“캘시….” “그건 제 이름이 아니에요.” 잠짓 비소 섞인 대답 뒤로 괴물은 발걸음을 짓누르며 매드헤스턴, 자신의 창조주에게로 다가갔다.
“ 기억 안 나요? 제가 태어났을 때 당신은 제게 이름 하나 지어주지 않았잖아요. 저를 캘시라고 부르면, 그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기라도 하나요? ”
… 오지 마. 남자는 괴물이 조금씩 자신에게로 다가올 때마다 껴안은 여자의 조그마한 머리통 위로 가픈 숨을 몰아쉬며 뒤꿈치로 바닥을 밀어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두려움 섞인 숨소리가 그의 말을 헤집어놓았다. 발 아래로 새하얀 드레스가 밟혀 몇 번이고 미끄러졌지만, 괴물을 목전에 두고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차가운 벽이 매드헤스턴의 등에 닿는 순간, 창 밖으로 밝은 빛이 번쩍였다. 그러자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코트 곳곳에 비쩍 말라붙은 핏자국이…
“ 전 북극으로 갈 거예요, 창조주. 저를 죽이고 싶으시거든, 지독한 저주를 끝맺고 싶으시거든 북극의 제일 높은 곳으로 오세요. ”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한 마디를 남기며 괴물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침실 밖은 피바다가 되어있으리라는 매드헤스턴의 짐작과는 달리 모두 괴물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였고, 괴물이 남긴 흔적이란 깨진 유리창과 휘어진 철창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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