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Days

BETTER DAYS 01

료켄유사♀

쓈's Universe by 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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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요약 - 사건들이 다 끝나고 유사쿠는 료켄과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을 다짐한다.

고심하던 중, 10년 전의 '결혼하자!' '그래!' 약속을 떠올리고 바로 료켄에게 결혼을 청하는데...

"난 너와 결혼해서, 함께 새로운 미래를 잡을거야."

"……"

"후우…"

료켄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한참 대답이 없었다. 그의 눈에 드리어진 옅은 어둠에 비해 유사쿠의 눈은 매우 빛나고 있고 쿠사나기는 뒤에서 그저 바라만 보았다. 조금 거칠어진 목소리로 나온 대답은 역시나였다.

"거절한다."

"…? 어째서……?"

"유사쿠. 어째서가 아니야. 일단 알았다고 하고 물러나자."

쿠사나기는 행여 유사쿠가 상처라도 받을까 걱정되어 돌아가길 바랬다. 하지만 유사쿠의 마음은 굳셌고, 또 너무 순수했다. 한 발 더 내딛자 지는 저녁해의 날카로운 붉은 칼날이 둘의 사이에 놓여졌다. 강렬한 붉은 빛이 둘을 물들여간다.

"그렇지만, 그때 너도 동의한 결혼이고, "

"첫째, 그래. 그땐 동의했어.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때는 둘 다 너무 어렸어. 지금까지 동의가 유지 될 리가.

둘째, 즉 나에겐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거다. 게다가 이건 너의 갑작스러운데다 일방적인 요구야. 내가 거절한다고 해서 이상할게 아니지.

셋째, 정말 너는 그것이 전부인가? 이유가? …아니, 이건 잊어라. 잘못 말했군. 다시 말하자면 너의 이유는 부실하다는 거다."

"그럼…. 내가 제대로 이유를 대서 너를 설득하면 되는건가? …첫째, 나는"

"아니, 듣고싶지 않다. 돌아가."

붉은 빛이 가시고 어둠이 내리앉는 동시에 료켄은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쿠웅! 문은 거칠게 닫혔고 유사쿠는 가만히 서서 당황스러운 머리를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머리보단 가슴이 당황스러운 것이였고 그걸 모르는 유사쿠를 우선 쿠사나기가 데려갔다. 이번엔 순순히 따라오는 유사쿠에 쿠사나기는 우선 안도했다. 아주 쳐들어가서 의지를 관철할 줄 알았기 때문에… '…유사쿠에게 뭐라 말 해줘야 할까...' 위로라도 해줘야 할텐데 생각나지 않았다. 당연히 료켄이 거절할걸 알았지만 의지가 강했던 유사쿠가 직접 맞닥뜨려야 한다고 생각해 저택에 데려온것이 후회되었다. '더 말렸어야 했나.' 료켄을 조금 파악한 쿠사나기는 그렇게까지 매몰찰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유사쿠가 말없이 조수석에 올랐다. 그저 양손에 쥔 꽃다발만 바라보았기에 쿠사나기가 직접 벨트를 채워주었다.

"유사쿠. 미안하다."

"당신이 사과할게 아냐…"

**

쿠사나기와 유사쿠가 아무말 없이 푸드 트럭을 타고 절벽을 내려가는 동안 료켄은 문 뒤에서 혼란스러운 가슴을 가라앉히지 못해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들고있던 작고 예쁜 부케에서 나던 꽃향기가 호흡마다 몸으로 들어오고 '결혼하자.' '너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잡을거야.' 가슴 속에서 굳센 목소리가 반복재생되고있는데다 순수하게 빛나는 에메랄드 눈빛이 눈에 박혀 눈을 감아도 계속 떠올랐다. 그런 와중 머리는 냉정하게 모든 것을 파악했다. 그것이 잠시 미웠다.

"료켄님, 왜 그러고 계십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

"플레이메이커가 와서 대체 뭐라고 말했길래? 우선 들어가셔서 편히 앉으시죠. 많이 혼란스러우신 것 같으니."

내면을 꿰뚫는 눈빛의 충실한 동료, 스펙터의 다정함을 따라 밝은 서재로 들어가 푹신한 소파에 털썩 앉았다. 깊게 앉아 완전히 등받이에 기대 깊은 숨을 내쉬자 반복재생의 볼륨이 줄어들었다. 곧 스펙터가 내온 차의 향에 부케의 향도 약해졌다.

"릴랙스 효과가 있는 허브티입니다."

"고맙군."

신경써주는 그와 이 차가 고맙지만 료켄은 바로 마시지는 않았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찻잔 속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유사쿠의 눈빛을 지우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순수하게 빛나는 눈빛에서 '돌아가'에 상처받은 듯한 눈빛이 떠올랐다. 미간은 도저히 펴질 기미가 없다. 그 모습에 스펙터는 물러나지 않고 료켄의 앞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 혼자 생각에 빠져들게 물러나는게 평소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느꼈다. 뜨거운 차가 완전히 식고, 스펙터가 한 잔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맞춰 료켄은 운을 뗐다.

"…녀석이… 후지키 유사쿠가 결혼하자고 말했다."

"결혼이라, 그런 이야기를… 역시 당돌한 아가씨에요."

"나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붙잡기 위해 결혼하자고, 그랬어…"

"그걸 거절하셨고요?"

"그래."

"당연하죠. 자아, 그럼 무엇때문에 료켄님께서 그리 힘들어하시는 겁니까?"

스펙터는 그 이유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료켄이 스스로 말해야 하기때문에 모른체 했다. 료켄도 그의 마음을 알기에, 또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어린, 유사쿠와 동년배인 그에게 말했다. 힘겹게.

"…기뻤으니까…"

"네에."

앞뒤없이 '결혼하자.'라니 처음 듣자마자는 정말 농담이거나 뭔가 술수라고 생각했다. 곧 진심이라는걸 깨닫고 솔직히 기뻤다. 왜냐하면,

코가미 료켄은 후지키 유사쿠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자는 이유에 화가 났다. '함께'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는건 기쁘지만 그 '함께'에는 순수함과 굳셈만 느껴졌다. 10년 전 자신들의 순진한 약속을 지킬 뿐인건 싫었다. 약속했으니까, 지킨다. 그것이 전부인 프로포즈. 조금만, 조금 더 다른 것이 더해져있었으면…… 그래도 거절했을테지만, 적어도…… 가슴은 기쁨과 슬픔과 안타까움이 마구 뒤섞여 지금까지 료켄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기뻤는데, 그러면서 싫었다. 그탓에 아직도 혼란스럽군."

"네. 그러시군요."

"…… 후지키 유사쿠……"

입 속으로 그 이름을 읊으며 료켄이 다시 찻잔 속으로 눈을 돌리자 아까의 그 순수하게 빛나는 눈과 상처받은 눈이 동시에 떠올랐다. 가슴이 아렸다. 모든걸 파악한 머리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란다걸 직시해라. 그리고 없애라. 그래서는 안되니까.'

료켄은 자신이 후지키 유사쿠를 좋아한다는 것도 겨우 받아들였었는데, 상대의 사랑도 원한다는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냥 사랑도 아니고 유사쿠의 인생을 망친 당사자의 아들이자 그-아버지-의 의지를 이어가는 숙적이 가지기엔 너무 염치 없는 마음이었다. 허나 마음이란게 뜻대로 되는게 아니라 이미 연심을 가져버렸다. 이것을 없애야 한다. 아까처럼 거짓을 말하더라도. 유사쿠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래서 자신이 괴로워도. 서로에게 일말의 여지와 미련은 없어야 한다. 운명으로 강하게 얽힌 둘이지만 이제는 운명에서 떨어져야만 한다. 각자의 길을 위해. 그렇게 결심하자 상처받은 눈이 깜빡이더니 사라졌다. 꽃향기도, 목소리도 사라졌다. 그제야 허브티에 입을 댈 수 있었다. 스펙터가 다시 따라준 따뜻한 차. 그 향긋함과 부드러운 맛이 가슴을 편하게 해 주리라.

"아, 료켄님. 자금처리 보고서는 아직이라고 합니다. 담당자가 최대한 애쓰고는 있다만…"

"괜찮다. 오래 걸릴거라는건 예상하고 있었어. 중요한 일정만 잘 맞추면 돼."

"알겠습니다."

자수하기로 정한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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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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