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빈즈

바보탐정과 똑똑이 조수

이빈이다.

다루 by 다루
6
0
0

삐이이익, 쿵.

이반은 나무문을 열어제꼈다. 경첩이 녹슬어 사람의 신경을 긁는 소리가 났으나 런던 도심에서의 월세를 생각하면 이정도는 충분히 감내할만한 소리였다. 탐정사무소의 문패를 OPEN이라 바꾸고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키고 전등의 불도 켰지만… 낡아 빠진 안락의자에 앉아도 의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지만 곧 있으면 월세를 낼 기한이 점점 다가왔기에 이반은 절로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했다.

‘요번에 들어왔던 염탐 관련 일이라도 들어두는게 좋았을까?’

암청색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괴로워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방안에서 작게 울려퍼졌다.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떠돌다가 결국 여기까지 온 의처증을 가진 의뢰인의 사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외도를 알아내달라는 그런 일 따위는 영 내키지 않았다. 용병 일을 하던 스승님 아래에서 일을 배웠던 이반에게도, 호기롭게 독립해 탐정 사무소를 차린만큼 아주 일거리는 없지않았다. 다만 사람 하나를 처리해달라던지, 아니면 라이벌 상대를 적당히 손 좀 봐주라던지, 혹은 뒷골목에 어슬렁거리는 불량배들을 혼쭐내달라던지. 모조리 힘으로 해결하는 일뿐이었다.

“내가 그런 일을 할거였으면 용병 일을 계속 했지~~!”

나이에 맞지 않게 울상지으며 이반이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스승님에게서 이것저것 배운만큼 일처리를 할 수 있다 자신했으나 아예 아무 일거리도 들어오지 않는건 예상 외의 일이었다. 이반은 책상 위에 얼굴이 눌려 짜부러진채로 생각했다.

‘내게 부족한게 뭘까?’

스승님은 그래도 일처리가 끊임없이 들어오던데, 나는 뭐가 부족해서? 나도 스승님 아래에서 배웠는데… 스승님과 나… 그러니까 두 사람이….

‘두 사람!’

그나마 단서가 보인 이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탐정에게는 조수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없고! 일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필시 그 원인도 한 몫할 거라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쥔 이반은 다시 한번 기운빠진 모습으로 자리에 풀썩 앉았다.

‘조수는 어떻게 구하지…?’

‘어디선가 의뢰도 받아오고, 의뢰인에게서 에누리 당하는 일 없이 돈도 잘 받아내주고, 업무 보조도 잘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월급도 너무 많이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입밖으로 꺼냈으면 많은 노동자들의 아우성을 샀을 생각을 하며 하루 세끼 벌어먹기도 힘든 탐정은 비스듬히 낡은 안락의자에 파묻히다가 느지막히 몸을 일으켰다.

밑져야본전, 들어오지 않는 의뢰가 있으면 직접 발로 찾아가는 편이 그나마 의뢰를 받아낼 확률이 높았다.


늦은 밤거리에는 부연 가스등이 주위로 나방이나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며 유리등에 부딪혔다가 다시 날아들기를 반복했다. 공기도 탁해 희뿌연 빛무리가 밤하늘로 은은히 흩뿌려졌다. 이반은 뒷골목에 깔린 보도블럭을 따라 걸으며 눈으로 간판들을 훑었다.

저그드 암이라 적힌 펍의 이름이 눈에 걸린건 우연이었다. 이반은 어둑한 불빛아래 왁자지껄하게 술에 취해 떠드는 술집의 내부로 들어섰다. 술은 마시는 취미는 없었지만 정보를 얻기에는 이런 술집이 적당했다. 취기가 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불명확하지만 그나마 귀기울일만한 정보를 던져주는 일도 있었고, 진상을 부리면 진정시킬 기술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담배 연기로 인해 자욱해진 술집에서 겨우 구석진 곳 자리를 잡아보려한 이반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술이 저번보다 8온스가 더 적다고~! 이것들이 단골로 맨날 오니 사기치냐?”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손님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그럴리가 없을텐데요. 술을 재포장 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바텐더로 보이는 붉은 머리색의 사람이 벽옥색 눈을 날카롭게 뜨며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해? 이게 눈을 똑바로 뜨고….”

여기까지는 흔한 주점의 풍경일지도 몰랐지만, 손님이 바텐더의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며 술집의 분위기는 험악해져버렸다.

“너 아일랜드 출신이지? 런던에 왔으면 런던 법을 따르라고! 붉은 머리 주제에 재수없게! 네가 술 빼돌린거 아냐?”

이반이 이 소란을 보다가 쩔쩔매는 사이 머리를 잡힌 바텐더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은 손님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우와악! 이게 막 손님을 치네?”

“머리카락을 쥐고 계시니까 그렇죠?”

우당탕. 술잔들이 바닥에 깨져 나동그라지고 당장이라도 한판 싸울듯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가게의 주인이 나와 빈즈를 보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빈즈, 한번만 더 사고치면 일을 주지 않겠다고 했을텐데.”

“…손님이 먼저 제 머리카락을 잡았습니다.”

이를 악물듯 말하는 바텐더를 보며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넌 유도리가 항상 부족해. 이 이상 매번 소란을 피우면 우리도 곤란하다. 미안하지만 일은 오늘까지만 해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빈즈라 불린 바텐더는 바닥을 뚫어질듯이 보다가 유니폼을 벗으며 가지런히 업무용 책상에 두고 가죽 트렁크를 한 손에 쥔채로 펍의 바깥으로 훌쩍 나가버렸다. 이반은 그 모습을 보다 저도 모르게 펍 바깥을 따라 나와 바깥을 두리번거렸다. 희뿌연 가스등 아래에서도 붉은 머리를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근처의 가로등에 기댄채로 바닥만 쳐다보던 빈즈는 다가온 이반의 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시죠?”

모자 사이로도 보이는 눈썹 위의 흉터와 그 아래 모든걸 뚫어볼 듯 날카롭고 맑은 벽옥색 눈동자. 이반은 저도 모르게 긴장되어 침을 꼴깍 삼키고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나랑 일해보지 않을래?”

카테고리
#오리지널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