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게이트 너머에

자격미달 히어로 에필로그

다루 by 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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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빈즈를 데리고 게이트를 넘었다. 게이트 너머는 언젠가의 빈즈가 이끌어주었던것과는 다르게 새카만 공간임과 동시에 어떤 가능성들의 세계의.편린들이 이반의 망막에 비추었다가 사라졌다.

이반은 쓰러진 빈즈를 끌어안고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행복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세계는 빈즈와 함께 정보요원으로 일하는 세계가 있었고, 어느 세계는 SCA에서 H시로 들어가는 일 없이 빈즈와 일반 요원으로 계속 구르는 일도 있었다. 또 어떤 세계는 히어로인 이반과 사이드킥인 빈즈의 모습도 이반에게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어떤 세계든 이반은 빈즈와 함께였고 빈즈는 이반을 보며 미소지었다. 어느세계든 이반에겐 현재 지금의 자신의 상황보다는 행복한 세계였기에 이반은 그걸 들여다보는 것을 멈출수없었다.

98번째 세계, 99번째 세계…

이반은 전투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라운지에서 결혼반지가 될 약혼 반지를 나누어 끼는 자신과 빈즈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그걸 들여다보던 이반은 눈물로 자신의 뺨이 젖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만약 자신이 저 세계를 선택하면, 이반은 지금의 자신으로 대체되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빈즈와 평생의 행복을 약속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이반을 기다리다 바깥으로 나가게되었지만 끝내 그 손에 죽음을 맞게된 빈즈는?

이반은 어떤 행복한 세계를 골라도 지금의 자신은 빈즈를 지키지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다른 세계를 택한다해도 또다시 실패할 자신이 두려웠다. 이 적막하고 고요하며 괴로운 공간이 지금의 자신에게 제일 잘어울려보였다. 적어도 지금은 이미 실패해버렸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반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빈즈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빈즈가 그를 끌어안아줄 일은 없었지만 이반은 아무소리도 들리지않는 빈즈의 심장 위에 귀를 가져다대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곱씹었다. 우울과 불안은 그의 천성이었다. 이반이 행복하다 느끼면 제 곁을 떠난 우울과 불안이 배고픈 사냥꾼같이 이반의 뒤를 뒤쫓았고 그것들이 곁에있을때는 맞지않는 옷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한없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빈즈군…”

이반은 자신이 끝내버리고만 불안의 형태를 바라보았다. 이반에게 누구보다 큰 불안과 고통을 가져다 준 상대는 생각보다 반듯한 얼굴 위에 가지런한 속눈썹을 가진채로 제 할 일을 다한 인형처럼 눈을 감고있었다.

“나는 그저… 빈즈군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어.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걸까.”

조용히 중얼거리는 이반은 눈을 감았다. 새까만 어둠이 시야를 뒤덮는걸 느끼며 이반은 생각했다. 빈즈군은 이런 어둠속에서 날 기다렸던거구나.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며… 약속만을 믿고.

약속.

이반은 천천히 눈을 떴다. 빈즈가 그의 새끼 손가락에 약속을 남겼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반이 자신의 손가락을 보면 붉은 실이 빈즈와 이어져있었다. 빈즈와 연결된 것. 어쩌면 이전에 빈즈에게 힘을 주어 끝내 빈즈가 세계를 개변시킨것처럼, 이반도 빈즈의 세계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 두려워. 이번에도, 잘못되면 어쩌나해서…”

이반은 빈즈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이반의 손을 타고 일기 시작한 푸른 스파크는 붉은 실을 타고 빈즈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약속했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게.

…나는… 빈즈군의 히어로니까.”

파직-.

짧은 소음을 시작으로 푸른 섬광이 새까만 어둠을 갈랐다.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공간속에서 이반은 자신의 새끼 손가락에 얇은 실같은 화상자국이 남았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손 위를 감싸는 누군가의 손을 보며 그 어느때보다 울 것같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보고싶었어, 빈즈군.”

요근래 세계는 시끄러웠다. H시에서 일어난 일이 전투 조직에 의한 일로 밝혀져 국가에서 진상조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관련된 지휘관과 간부들은 실종되었기때문에 피해를 누구에게 물어야하는지 모두가 혼란스러웠다.

이반은 그런 라디오 방송을 앉아서 멍하니 듣다가 날아온 갈매기에 의해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빼앗겼다.

“아앗!”

끼룩- 끼룩-.

나약한자는 먹지도 말라는 갈매기의 경고를 뼈아프게 되새기며 이반이 울상을 짓고 있다보면, 옆에 서 있던 누군가가 이반에게 자신이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이거 먹어요.”

“에? 하지만…”

“이반씨 표정이 웃겨서 전 안먹어도 될거같아요.”

“헥?!“

밀짚모자 아래서 하늘빛을 띄고 있는 옥색 눈동자가 웃음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반은 다시 바보같이 헤실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좀 있다가 빈즈군은 2개 사줄게.”

“그만큼 안먹어요. 오히려 그 아이스크림, 제가 먹던건데 괜찮아요?”

“응.”

빈즈의 뒤로 에메랄드빛의 바다위로 흰 모래사장이 펼쳐져있었지만 이반은 그 황홀한 풍경보다 빈즈의 눈동자를들여다보는 일이 더 즐거웠다.

“이반씨.”

“응?”

“후회하지않아요?”

맥락없이 튀어나온 말이았지만 이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제가 세계를 멸망시킬뻔했던거 치고는 지나치게 좋은 결말이네요.”

“빈즈군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로 고생했으니까. 그리고 난 지금 결말이 마음에 들어. 정말 정말로 모든 원인을 따지자면 그 수장이 제일 원인이잖아?”

빈즈가 이반 곁에 풀썩 앉았다. 초여름의 설익은 바람이 둘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이반씨. 아이스크림 맛있어요?”

“앗… 먹고싶어? 지금이라도 줄까?”

“아뇨, 그것보단…”

잠깐의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이반이 쥐고있던 아이스크림이 철퍽하고 모래사장 위를 굴렀지만 둘다 아이스크림에는 고개도 돌아보지 않았다.

“…못먹게됐네요, 아이스크림.”

“괜, 괜찮아~… 안먹어도.”

한참 뒤에야 빈즈가 가까이했던 몸을 뒤로 물리며 형체도없이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보았고, 이반은 모래사장보다 더 달궈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호텔로 돌아갈까요? …이반씨랑 하고 싶은게 많아요.”

“…응.”

이반이 먼저 빈즈의 손을 깍지껴 꼭 쥐었다. 이반과 빈즈의 손가락에는 흐린 화상 자국이 남아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반지가 서로의 약지에 끼워져있었다. 이반에게는 게이트 너머에서 보지 못한 세계였다. 그러나 이반은 자신이 선택한, 알지 못하는 미래로 빈즈와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히어로는 자신이 지켜낼 사람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이므로.

그는 언제까지나 계속 빈즈의 히어로일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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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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