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이팔님(@epal) - 모브도 짝사랑을 해

카시아X타로

디떱 by 디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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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님(@epal)의 모브도 짝사랑을 해 커미션

카시아(드림주)를 짝사랑하는 모브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이란 걸 통계로 나타냈을 때, 당신의 첫사랑은 카시아다. 아직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럴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이란 건 변하지 않는 존재니까. 물론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에 이미 첫사랑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당신 생각에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시절의 사랑은 정확하게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당신과 카시아는 그저 ‘아는 사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카데미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 적당히 안부를 묻는다거나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의 주변에서 존재감 없이 지내는, 마치 병풍 같은 사람. 당신은 그런 인간이다. 카시아의 시야에는 당신이 조금도 없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를 좋아한다.

당신이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오래된 일이다. 아카데미의 입학실 날, 길어지는 교장의 연설에 심심했던 당신은 노트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기억에 따르면 포켓몬들을 그렸던 것 같은데, 조금 우스운 실력이었다. 그때, 카시아가 나타나 흥미를 가졌다.

“꾸왁스야?”

“아, 아니? 파라꼬인데?”

“뭐?”

카시아는 웃음이 터져 쿡쿡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렇게 이상하냐는 눈치를 주자, 그는 더욱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진짜 꾸왁스처럼 보이나. 멀리서 보니 약간 그런 것도 같아 당신은 절망했다. 그러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당신도 금방 표정을 풀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당신의 그림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중엔 지금보다 훨씬 잘 그릴 수 있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당신은 망설임 없이 노트를 찢어 그림이 그려진 장을 건네주었다. 그가 말하길, 우울해지면 이 그림을 보고 웃고 싶다나.

이 이후로 카시아와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대도 괜찮다. 이미 당신의 사고방식은 온전히 그에게 향해 있었으니까. 당신은 그림을 보며 웃는 그 모습에 마음을 홀랑 빼앗겨 버렸다. 눈동자가 그렇게까지 빛날 수 있는 존재였던가. 별을 박아 놓은 듯한 그 눈동자에서 당신은 눈을 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시아 자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며 함께 성장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는 모습도, 지적이고 다정한 모습도, 전부 빠짐없이 사랑했다. 어쩌면 이건 사랑보다 동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가끔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건 확실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동경과 사랑 사이를 헷갈려봤자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얼굴부터 화끈거렸으니.

어느 날, 당신은 카시아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평소처럼 손만 흔들고 복도의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왠지 지금 말을 걸지 않으면 영원히 이 정도 관계에 그쳐버릴 것 같았다.

“안녕? 얘기하는 거 오랜만이네.”

당신은 다급했는지, 이제까지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들을 뱉어버렸다. 왜 인사만 하고 홀랑 떠나버렸는지, 말을 먼저 걸어주지 않았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물론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저 할 일이 많아 서둘렀을 뿐이니 상처받았다면 미안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당신은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처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다정한 말로 넘겨버리다니,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주눅 들어 보였다. 카시아는 눈앞에 놓인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없이 내려간 시선과 물어 뜯긴 손톱이 눈에 띄었다.

“너는 이런 일로 상처받을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란 거 알아.”

나름 위로라고 던진 말이었다. 당신에게는 돌을 던진 셈이었지만. 말을 끝낸 카시아는 다시 일이 있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당신은 같은 자리에 한참을 남아 그가 있던 곳을 시선으로 쓸어 넘겼다. 이유 없이 그가 미웠다. 약한 사람이 아닌 걸 안다니, 우리가 언제 그렇게 친했다고. 그가 남긴 말 한마디에 당신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 말을 남기던 모습마저도 따뜻해서 눈물은 서서히 들어갔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기본적으로 배려가 깔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기대한다.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된다.

‘근거 없는 기대’

그것이 짝사랑의 존재 의미다. 짝사랑하는 사람들은 딱 봐도 불가능한 일에 희망을 건다. 평소라면 철저히 거절하고 외면했을 일에 바람을 불어 넣는다. 실패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아서 그런 거다. 힘 없이 쓰러져서 패배할 것 같으니까. 아마 신이란 게 있다면, 씁쓸함을 설명하기 위해 짝사랑을 창조했을 것이다. 끝없는 감정이 보답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인간에게 가르치기 위해 창조한 것이 분명하다.

그 이후로 당신은 카시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 감정에 대한 보상이 없더라도 괜찮았다. 당신은 카시아에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고, 타이밍을 맞췄다. 그토록 길었던 병풍 신세에서 탈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카시아라면 행동의 의미를 알아챘을까. 아니, 눈치가 없는 어떤 누구래도 알아챘을 것이다. 그정도로 당신은 카시아를 좇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당신에게 있어 일종의 목표였다. 닿는걸로도 모자라, 그 곁에 나란히 서서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성적과 재능이 뛰어난 걸로도 모자라 재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당신은 할 수 있는 걸 했다. 그가 좋아해줬던 그림에 몰두했다. 포켓몬들을 그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따금 부정적인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와는 이어질 수 없다고. 같은 위치에서 이야기하기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고. 어쩌면 그때부터 자신을 너무 몰아붙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수면시간을 점점 줄여갔다. 오전에는 그림을 그리고, 늦은 새벽 시간엔 공부를 했다. 무언가를 학습하고 있지 않을 때는 카시아와의 미래에 대한 망상에 빠져 있었다. 당신은 그에게 집착했다. 당신은 이미 완벽한 우등생이었다. 그렇대도 모범생은 되지 못했다. 당신은 하루가 멀다하고 잠과 식사를 걸렀다. 이런 모습을 모범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노력의 목적이 카시아의 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노력한다 해도 사랑을 쟁취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별일 없이 2년이 지났다. 당신은 아직도 학업과 그림에 몰두해있었다. 그러다보니 아직도 카시아와의 관계는 진전이 없었다. 멍청하게도 가장 중요한 일은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앞에 타로라는 소녀가 나타났다. 처음엔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다른 학년이기도 하고, 딱히 관심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카시아와 함께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신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저 위치에 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힘이 풀린 당신의 눈동자가 방황한다. 한참을 그 상태로 굳어있었다. 당신은 힘들 때마다 카시아의 미소를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 미소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고 있다니. 좌절에 가득 찬 다리가 저절로 주저앉았다. 그날 당신은 그나마 남아있던 자존감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믿을 수가 없다. 언제부터 둘이 친해진거지? 최근에 아카데미 내에서 붙어있는 건 보지 못했는데? 당신은 정신을 차리고 근본적인 질문부터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질문은 멍청한 대답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이건 그가 너무 다정하기 때문이야, 라는 바보같은 대답. 당신의 판단은 언제나 빗나갔다. 거기에 더해 소심하고, 어눌하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카시아의 옆에 있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다. 타로가 카시아와 함께 있다. 당신은 벽 뒤에 숨어 그들을 바라본다. 그녀가 카시아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지만, 그는 환하게 웃어 보인다.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예전에 당신이 봤던 그 눈동자다. 당신은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녀에게 어떤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에 무슨 자격을 따지고 싶은 건지. 당신은 끝도 없이 추해진다. 타로에게 쓸모없는 조건들을 갖다 붙이기 시작한다.

‘나보다 그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밤을 새우느라 갈라진 입술을 깨문다. 그 사이로 새빨간 피가 맺힌다. 당신은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저 카시아의 옆에서 그녀가 멀어지기만을 기다린다. 물론 그런 건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것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인간이 당신이다. 그에게 빠진 당신은 우등생이자 열등생이다.

당신은 고민에 빠진다. 과연 그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공부를 한 건 잘한 일이었을까. 이제까지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로라는 새로운 정답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녀는 사천왕 중 하나이자 당신과 다르게 밝고 활기차며, 어둠 따위는 전혀 모른다. 당신은 괜한 열등감을 가진다. 만약 그녀처럼 모나지 않은 성격이었다면 카시아의 곁에 있을 수 있었겠지, 라며 스스로에게 변명한다. 그 변명은 몸속 깊이 차오른다. 마치 액체와도 같다. 언젠가는 흘러버릴 게 뻔하지만, 둘 곳이 없어 부어놓기만 한다. 완전히 방치한다.

당신은 언제가 타로의 배틀을 보게 되었다. 누리레느와 교류하며 상대와 싸우는 모습이 진심으로 사랑스러웠다. 페어리 포켓몬들보다 훨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귀여움은 전부 독차지한 듯이. 그럼에도 그녀는 강하기까지 했다. 매일같이 나약해지는 당신과 달리 그녀는 굳건했다. 타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단 하나도 없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귀엽다 정도? 아마 당신이 모르는 대단한 것들이 꼭꼭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이사는 그것을 알아챈 것이겠지.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자신의 안에도 별 하나쯤은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었다.

‘좋아, 아직 나아갈 수 있어. 내일은 카시아에게 말을 걸어보자.’

어느 날, 저 먼 곳의 카시아와 타로를 바라본다. 그들은 약하지 않다. 약하지 않음에도 청춘을 알고, 설렘을 알고, 아마 사랑까지도 안다. 당신은 타로의 미소가 부럽다. 자신은 지을 수 없는, 그림자 지지 않은 환한 미소를 빼앗고 싶다. 그 옆의 카시아도 함께.

당신은 그곳으로 용기있게 다가간다. 당신도 타로처럼 카시아와 나란히 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발걸음을 빠르게 굴린다. 이내 달리기 시작한다. 점차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시아 씨, 머리가 흐트러졌어요.”

“앗, 네가 정리해줄래?”

“아이참, 그럼 고개를 살짝 숙여주셔야죠!”

타로의 손이 카시아의 분홍빛 앞머리를 살짝 쓸어낸다. 카시아의 볼 또한 같은 색으로 물든다. 그의 눈동자를 본 건 얼마만이지? 당신을 봤을 때의 눈동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더욱 환하게 빛나고, 유일무이한 감정이 담겨있다. 당신은 그 눈빛을 안다. 당신이 카시아를 보는 눈빛과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깊고 순수하다. 정말 카시아답다고 할 수 있는 고결한 모습. 당신은 조용히 자리를 뜬다. 그 모습은 당신이 이제껏 바라던 것이다. 그렇지만 타로, 그 소녀가 아닌 이상 당신은 그런 카시아를 가질 수 없다. 당신은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본다.

‘끼어들 수 없다는 건 정말 아픈거구나.’

그림 노트가 눈물로 젖어들어간다. 예전보다 더 잘 그리게 되었는데도, 카시아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당신은 숨죽여 운다. 노트의 마지막 장을 갈기갈기 찢는다. 평생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이곳에 카시아가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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