依賴 - 李箱 二

"미친⋯. 여학교를 들어간다고?"

금윤은 마시고 있던 커피 잔을 든 손까지 덜덜 떨며 지금 자신이 받은 정보가 확실한지 대여섯번은 더 읽어보았다.

건장한 사내 둘과 여자 하나가 여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금윤은 눈 앞의 정보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고, 전화기를 들어 정보 제공자에게 확실한 정보냐며 물어보기까지 했다.

확실하단다. 이번에 그들이 맡은 사건이 여학교에서 일어났다나 뭐라나.

'아무리 그래도 여학교에 남정네들이 들어간다는 미친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거지?'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그녀는 여학교에 잠입할 준비를 한다.

수많은 학교의 교복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중 진명여학교의 교복을 찾는 것에는 조금 곤혹을 치렀지만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복을 찾아냈고, 허리까지 오는 긴 기장의 머리는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아는 이발사에게 가 눈속임으로만 꾸며놓았다.

* * *

잠시후, 그녀는 진명여학교 앞에 당도했다. 뒤편에 있는 담을 가뿐히 넘어 여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상과 그 조수들은 도착하지 않았나보다.

복도가 텅 빈 것을 보니 상학종이 울린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유유히 학교 안을 돌아다니던 그녀는 '출입 금지' 가 크게 적혀있는 방을 발견했다.

'출입 금지? 지랄하고 앉았네.'

그녀는 문 앞에 문구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고 그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먼지가 가득한 창고같은 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한 여학우의 시신도 보였다.

"켁⋯ 먼지 한번 더럽게 가득하군. 얘는⋯ 이번에 이상이 맡았다는 사건의 피해자인가?"

최대한 시신을 건드리지 않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방에 그녀에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운 채로 방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방에 출입한 것이 발각될까 걱정하여 방에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발을 옮겼다.

"거⋯ 너⋯ 거기서⋯"

잠시후, 멀리서 한 여자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학에 참여하지도 않고 복도를 방황하던 학생이 선생에게 걸렸구나 싶었다.

학교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테니 그녀는 별 생각 없이 넘기고 쉬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잠시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상학종이 울렸다. 여학우들은 한명, 두명하며 천천히 복도로 빠져나왔고, 금윤은 그 무리에 끼어 자연스레 복도를 휘젓고 다녔다.

얼마나 걸어다녔을까, 금윤의 옆으로 아카시아 향을 풍기는 여학우가 지나갔다.

'⋯? 어디서 맡아본 냄새 같은데.'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지만 그 여학우는 사라진지 오래다. 금윤도 어차피 다시 볼 사람이 아니니까 생각하며 그 여학우를 굳이 쫒지는 않았다.

시간이 아주 조금 지난 후, 옆에서 여학우 무리가 웅성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자연스레 그들 사이에 끼어 무슨 일인지 쳐다보았다.

한 여학우의 가발이 벗겨진 듯 싶었다.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반항하는 자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는 금윤이 받은 정보 중 이상의 조수로 표기 된 구보였다.

'이상의 조수가 여기에 있다면 이상도 이곳에 왔을 터, 저자를 쫒으면 그 끝에는 이상이 있겠지.'

구보 뛰기 시작하자 금윤도 그를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복도에는 여학우들이 가득 차 있어서 눈에 띄지 않게 미행이 가능했다.

그때, 뒤에서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윤은 적잖이 당황했다. 어쩌면 이상을 노린 것이 자신 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현재 금윤은 여학교에 온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이상을 암살할 때 사용할 밧줄과 호신용 권총 하나 들고 나온 것이 다였다. 하지만 같은 표적을 가진 살인청부업자들은 서로 중 하나만 살려두는게 상식. 만약 저자 또한 이상을 노린다면, 대치하게 될 것이 뻔했다. 상대적으로 소지한 무기가 적은 금윤이 패배할 것도 뻔했고.

탕–

총성이 울렸다. 아까 장전 소리가 난 방향과는 다른 방향이다. 누구지? 급히 눈알을 굴리니 장전 소리가 난 방향을 권총으로 조준하는 여학우가 보였다. 평범한 여학교에 권총을 들고 다니는 자는 없으니 금윤은 알 수 있었다.

'저자가, 가화로구나.'

금윤이 방심한 사이 이상과 조수들은 계속해서 달리며 어느새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젠장, 절호의 기회였는데.'

뒤늦게 그들을 따라 뛰어가려는데, 그 남자가 그녀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총을 겨눴다.

금윤은 자세를 낮추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권총을 꺼내들까도 고민했지만 자신은 지금 여학교에 잠입한 스파이나 다름 없는 살인청부업자,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만약 그녀가 이 싸움에서 이겨 살아남게 된다면, 뒷수습이 귀찮아질 것은 뻔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 남자는 탄환을 발사하지는 않았다. 금윤의 머릿속에서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돌아가며 재생되고 있었다.

그 남자가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 다른 곳에서 총성이 들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일인가. 남자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고, 금윤을 겨눈 총은 저 멀리 날아가있었다.

남자는 탄환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금윤 또한 남자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구보, 가화, 그리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가 서있었다.

'구보와 가화, 이상의 조수들이군. 저 남자는⋯?'

그 사이, 가화가 금윤에게 총을 겨눈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어디서 보낸 요원이죠? 당신의 생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얼른 물러나시는 것이 좋겠어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니, 방금 자신이 총을 쏜 사람에게 사과라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심성 하나는 곱구나 생각했다.

남자는 겁에 질려 달아났다. 아직도 이게 무슨 상황인가 파악하지 못한 금윤은 멀뚱멀뚱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구보와 가화, 그리고 한명의 남성까지. 셋은 금윤의 쪽으로 다가왔다. 가화는 금윤을 향해 미소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지만, 금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머물러있었다.

'구보, 가화. 그리고 옆에는⋯ 이상.'

금윤은 매서운 눈빛으로 이상을 바라보았다. 이상은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그녀의 눈빛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아차, 너무 티나게 바라봤군.'

급히 살기를 거둔 금윤은 제 앞에 미소지으며 마주 앉은 가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화가 저를 걱정하며 건네는 말에 대충 끄덕이며 그들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금윤은 조금 비틀대며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이상이 있었다.

저자가 이번 의뢰의 주인공, 이상이렸다.

금윤은 주먹을 세게 움켜쥐며 그를 바라보았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