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젬에메

[아젬에메] 안하던 짓을 하면 사람이 명계에 갈 때라던데

매일 5천자 이상 작업하기 셀프 챌린지

* 파이널판타지14 확장팩인 효월의 종언과 8인 레이드 판데모니움, 그리고 작성자의 개인 해석과 설정을 덧붙힌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공식 비화나 인게임 스토리 등 여기저기서 다 가져와 보고 싶은 내용으로 버무렸으므로 열람시 주의를 요합니다.

* 아젬의 외모 묘사가 없으나,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남중휴 '메테오'를 베이스로 삼고 있습니다.

* 분열 전 고대세계를 배경으로 아젬 X 에메트셀크 BL이 보고 싶어서 쓴 가벼운 내용입니다.

* 매일 5천자 이상 작업하기 셀프 챌린지를 시작했습니다만 저는 몇 편까지 쓸 수 있을까요...? 아젬에메야 내게 힘을 줘...


안 하던 짓을 하면 사람이 명계에 갈 때라던데.

에메트셀크의 눈이 샐쭉하게 떠진 채로 성실하게 일 하는 아젬을 훑었다. 무언가 잔소리를 해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습관적으로 내뱉던 말이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아젬과 눈이 마주치면 매일같이, 아니 매시간 매분, 때때로 정말 많이 '일이나 해!'하고 소리를 쳤던 게 이제는 습관으로 굳어질 만큼, 아젬이 '성실하게' 일을 했던 적이 드물었으므로, 이런 아젬은 낯설다 못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14인 위원회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서, 마지막 14번째 자리인 아젬의 이름을 이어받은 자로서, 별을 위해 살아가며 별을 위해 공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터였다. 각자가 품고 있는 신념과 사명 또한 별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행동하는 건 붉은 가면을 가진 자의 의무였고 무게였을 텐데도, 매 사 호기심이 앞서는 저 녀석이 이렇게 성실하게 일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냐 하면 오랜 친우이자 이제는 연인 - 이라고 부르면 정색하긴 하지만 - 이라고 불리는 에메트셀크는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을 터였다.

성---실? 저 녀석에게서 빠진 조각이 있다면 그건 성실함일 거다!

언젠가 에메트셀크가 그렇게 소리를 쳤던 것 같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아젬은 성실한 타입의 인간이었다.

그 성실함이, 아모로트의 명예로운 시민들과는 다른 양상이어서 문제였지.

아젬좌를 '고민을 들어주는 자리' 라고는 표현하지만, 그 고민을 듣기 위해서는 직접 두 발로 뛰어다녀야 할 때가 많았으므로 필연적으로 아모로트를 떠나 있는 날이 잦은 자리었다. 수도 아모로트에 대의사당이 있으므로, 편의를 위해서라도 가급적이면 아모로트 내에서 거주하며 생활하는 14인 위원회중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아젬이였다. 그건 지금의 아젬뿐만 아니라, 지금은 자리에서 내려와 흰 로브를 입은 베네스도 그랬고 베네스 이전의 아젬과 그 이전의 아젬들까지도 그러했다.

아젬은 아모로트 바깥에서 문제가 생기면, 재깍 귀환해서 토론을 벌였고 그것이 별에 도움이 되는지 열띤 토론을 하였으며, 토론으로도 해결이 안 될 땐 조정자인 엘리디부스를 초청하여 안건에 대해 조정받았으며 결과에 따라 행동하곤 했었다. 그 일련의 과정 중에 아젬 본인의 사견이 섞이는 일이 적지 않았으나, 그런데도 아젬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들어주는 자'라고 일컬었던 거였고.

……아마 초대 아젬이 베네스였다면 아젬은 들어주는 자가 아니라 '해결하는 자'라고 내려오지 않았을까.

베네스는 기존의 아젬들과는 다른 아젬이었다. 듣는 자를 넘어 사실상 사건 해결사에 가까운 행동을 하였고 대규모 대책이 필요한 일이라면 아모로트에 가지고 왔지만, 가져오는 것보다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 더 많았다. 산을 걸어 다니고 바다를 헤엄치며, 직접 두 발로 뛰고 눈에 담아가며 살아있는 모든 인간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아젬이 듣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한 것부터 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까지도 모두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고, 힘을 드러내길 꺼리며 부끄러운 짓으로 여기는 기본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많은 무기를 익혔고 많은 기술을 배웠었다.

그런 스승에게서 배웠고, 자리를 넘겨받았으니 지금의 아젬도 똑같은 성향인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겠지만.

워낙 바깥을 나돌아다니고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통에 라하브레아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누누이 말하는데도 들어 처먹지를 않으니 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바깥에서 일 처리를 하는 것까지는 좋게 봐 줄 수 있었다. 사소한 일이 정례회의까지 올라가면 회의 시간만 길어지고, 처리해야 할 서류나 맡아야 할 일만 늘어나니까, 어쩌면 아젬이 바깥에서 휘젓고 다니는 통에 모두의 일이 줄어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여야지. 워낙 밖에서 처리하는 일이 많다 보니, 그가 없는 사무실에는 보고서가 잔뜩 쌓이다 못해 천장에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정작 14인 위원회에 보고해야할 아젬은 없지, 일거리는 쌓여가지, 대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를 피슝 쾅 따위의 말로 적혀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지……. 아젬이 소환진으로 불러낸 탓에 일처리를 함께 했으니 그 녀석의 일거리라도 좀 줄여줄까 싶어 보고서에 손을 댔던 자신마저도 혀를 차고 내려놓았는데, 아모로트에 있으며 상황을 듣도 보도 못한 아젬원 소속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터였다.

제발 아젬님 좀 말려달라고 제게 - 대체 왜 자신에게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 그러는 걸 보면, 아젬 녀석도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여행이 좋은건지.

머릿속에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하아, 하고 에메트셀크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여행하는 거까진 좋다 이거야. 그럼, 일도 좀 성실하게 하던가. 매번 엉망진창으로 써 둔 보고서를 아젬원으로 보내버리니까, 그걸 붙잡고 그때 어땠더라? 어떻게 처리했더라? 하면서 한참을 끙끙대고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쓴다던가, 그 자리에 다시 날아가서 에테르에 남은 기억을 해석해서 보고서를 써온다든가 하며 일을 두 번, 세 번 하고 있으니까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있잖아. 에메트셀크. 혼을 반으로 쪼개서 나를 둘로 나누면…. 하나는 서류 처리를 하고 하나는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친 소리 작작 하고 서류 처리나 해! 더 밀렸다간 라하브레아가 도끼눈을 뜨고 쫓아올 거다. 의장이 벼르고 있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반년에 한 번이라도 아모로트로 돌아오라고 했잖아!'

'으응? 나라면 셋으로 나누겠는걸. 그럼 하나는 서류를, 하나는 여행을, 하나는 친구들하고 놀 수 있잖아!'

'역시, 날 이해해주는 건 휘틀로다이우스밖에 없다니까!'

'어이쿠, 골이야……. 이딴 것들이 어떻게 국장이고 어떻게 아젬이야!'

그러면서 저따위 망발이나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정말 혼을 반으로 찢기라도 한 거야 뭐야.

에메트셀크는, 일부러 초점을 흐리게 해서 에테르가 잘 보이게 한 뒤에 아젬을 살펴봤다. 타인의 허락 없이, 아니 허락이 있더라도 에테르를 살피는 건 벗은 몸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예의 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이미 몇백 번이나 서로의 알몸을 보아왔던 관계기에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먼저 이상하게 행동한 것은 아젬이기도 했고, 의외인 점에서 고집불통인 녀석이라 이렇게 살피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제법 많았어서 에메트셀크에게 있어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진 행동이기도 했다.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서 아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자 그의 기운을 닮은 태양 빛의 에테르가 그의 육체 안에 가득 들어차 부드럽게 일렁거리는 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갈 만큼 찬란하게 느껴져서, 에메트셀크는 눈을 느리게 깜빡여 초점을 되돌렸다.

그래, 혼이 나뉘었을 리가 없지.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말이야 혼을 나눈다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찢어 존재를 하나 새롭게 창조하는 일과 다름없지 않나.

명계를 들여다보는 자인 '에메트셀크'로서, 에테르를 넘어 혼의 색을 구분할 수 있는 특별한 눈의 소유자로서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최근 이상했던 라하브레아 덕분인지 자꾸만 아젬의 말이 신경이 쓰이고 만다.

라하브레아처럼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간이라면 신중하게 고민하고 고려해서 그것이 최선의 결과이니 행동한 것이겠지만, 저 아젬 녀석이라면 정말로 서류 처리를 하기 싫어서 스스로를 쪼갤 녀석이니까!

"에메트셀크, 그렇게 쳐다보면 나 일하기 싫어져."

"내 핑계 대지 마."

에메트셀크가 쳐다보고 있는 걸 느꼈는지, 아젬이 손을 움직이던 것을 멈추지 않고 칭얼대듯 말했지만, 에메트셀크는 단번에 쳐내고 미간을 좁혔다. 그러니까, 일을 아젬원에서 하면 내가 쳐다볼 일도 없었는데 굳이, 왜, 하필이면, 왜 내 집에서 서류 처리를 하고 있는 건데? 네 집도 아니고, 아젬원의 집무실도 아니고, 왜 굳이 내 집이어야 했냐고. 왜 그 많은 서류를 내 집에까지 기어코 들고 와서는, 남의 책상에 잔뜩 늘어놓고 징징대는 소리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느냔 말이야.

에메트셀크의 목 끝까지 그런 말이 부글부글 끓었다가, 오래간만에 성실하게 일 하는 아젬의 의욕이 꺾일 것 같아 꾹꾹 눌러 삼켰다. 지금 의욕이 꺾이면 또 언제 살아날지 모르는 데다, 에메트셀크의 앞에서 손바닥을 싹싹 비벼가며 '제발' 부탁한다고 울던 아젬원의 가련한 직원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일하는 애인을 보는 게 굉장히 설레는 일이라던데."

"……설마, 너. 고작 '그딴' 이유로 내 집에서 서류 처리를 하고 있는 거냐?"

입술을 댓 발은 내밀고 투덜대는 아젬의 목소리는 작디작았지만, 여기가 어디던가. 물속에 잠긴 것처럼 고요하고 조용한, 수도 아모로트에서도 중심에 가까운 에메트셀크의 집이었다. 소음이라곤 아젬이 쓰고 있는 펜촉 소리와 서류 넘기는 소리밖에 없는 곳에서 아젬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고, 그 속뜻에 에메트셀크의 눈썹이 삐죽 솟아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이지 너는 구제 불능이다! 14인 위원회로서의 일을 중요시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이 멍청이가! 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이마가 뜨끈할 지경이었다. 절대로, 지금 일하고 있는 아젬을 훔쳐보고 내심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들켜서가 아니라.

"칫."

"칫, 은 무슨 칫이야! 그런 불성실한 태도로 서류 처리를 하고 있으니 줄어들지 않는 거잖아. 나가!"

에메트셀크가 버럭 소리치고는 손가락을 튕겨 아젬의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서류를 치워버렸다. 서류만 치웠을까, 그가 이데아 표본으로 제출하려던 이름 모를 식물들과 과일도 치워버리고, 방금까지 아젬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깃펜과 잉크도 치워버렸으며, 참고 문헌으로 애니드라스에서 빌려온 것들까지도 모조리 치워버리느라 손가락이 여러 번 튕겼다. 언제 어지러웠냐 싶을 정도로 서재가 깨끗하게 정돈되고, 환기 마법까지 썼는지 낡은 종이의 냄새가 가득하던 공간이 산뜻하게 변해가는 걸 느끼며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신경질적으로 마법을 쓰고 있는 에메트셀크를 빤히 바라보던 아젬이 느릿하게 눈을 꿈뻑거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에메트셀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제 치울 건 다 치워버렸고 한 번만 더 손을 튕기면 아젬까지 집 밖으로 치워버릴 기회였으나,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아젬이라 에메트셀크가 손가락을 튕기지 못하게 그의 손에 깍지를 껴 잡으며 그의 귓가에 이름을 속삭였다. 하데스, 나 일하고 있었잖아.

"읏……!"

귓가에 닿는 열이 자글자글했다. 한숨 같기도, 혹은 색정적이기도 한 낮은 목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저도 모르게 며칠 전의 밤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목소리라 에메트셀크의 뺨이 빠르게 붉어졌다가 하얗게 질려갔다. 이런다고 내가 봐줄 것 같아? 날이 선 에메트셀크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아젬은 에메트셀크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 익숙하게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고, 버둥대는 육체만큼이나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혀를 요령껏 붙잡아 쭙쭙 빨았다. 헐떡대며 어쩔 줄 모르는 입술을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깨물고, 입천장을 혀끝으로 부드럽게 문지르자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이미 몇백 번을 맛봤음에도, 늘 한결같이 어색해하고 민망해하는 입술을 삼키고, 녹진녹진할 만큼 물고 빨자 깍지 낀 손에 빳빳하게 들어갔던 힘이 풀리고 부드럽게 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달큰한 콧소리를 흘리는 게 귀여웠다.

입술만 열면 못된 소리를 하긴 하지만.

"성실하게 일했으니까, 상을 줘."

"…상은, 무슨 상이야. 네가 원래 해야만 하는 일이잖아."

투덜대면서도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기색에 아젬이 빙긋 웃으면서 또다시 입술을 겹쳤다. 으응, 응. 하면서 움찔대고, 입을 벌린 채 얌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오물오물 제 입술을 빨아먹는 게 자꾸만 다른 생각을 들게 해 아젬은 눈을 가늘게 떴다. 키스에 열중하느라 눈을 꼭 감고 있는 것도, 조금 풀어진 얼굴도……. 상이라면 상이겠지만.

아모로트에 돌아오자마자 에메트셀크를 붙잡고 모자란 에테르며 모자란 에메트셀크까지 채웠더니 잔소리도 그런 잔소리가 없었다. 하도 울어서 발갛게 짓무른 눈을 하고서도 훌쩍대며 아젬원 사람들 생각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고, 네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은 나로 모자랐느냐며, 그들이 나한테까지 '부탁'을 해 댄다며 히끅대고 몸을 비틀면서도 웅얼대는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서류를 붙잡고 끙끙댔더니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든가 해야지, 아모로트에 있는 귀한 시간을 이상한 곳에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본래 자기 일이라곤 하지만, 사랑을 꽃피우는 것도 별을 위한 일 아니겠는가.

아젬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에메트셀크의 로브 사이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

"역시 서류 처리보다 너랑 붙어있는 게 좋아."

일하는 내내 제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샛노란 달빛의 눈동자를 외면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역시, 아모로트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당분간은 일 처리보다는 에메트셀크와 있는 게 좋겠다.

인간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명계에 간다잖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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