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천가유, ‘내 인생이 다 망하더라도 사랑하고 싶었다.’ 문장연성
당신과 만난 지 20년이 되어간다. 자신을 아는 이들은 축하 인사를 보냈고 당신을 아는 이는 조용히 제 눈치를 본다. 두 행동에 자신은 뜻 없는 손을 휘젓는다. 고맙고, 이제 가라. 똑같은 반응과 대답도 이젠 몇 년인가. 궁금하지 않았지만 쉽게 답이 나온다. 자신이 이곳, 이 장소에 돌아온 햇수와 똑같을 테니. 제 자리에 앉자마자 오는 문자와 부재중 통화들을 훑어본다. 무시할 건 무시하고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한다. 그게 제 생일이라도 별다른 게 없다. 마침 연락 온 이를 본다. 계약 건으로 할 말이 있으니 받는다. 똑같다. 어제와 내일과 비교해도 모든 게 똑같다.
생일이라는 것은 여간 귀찮다. 회사 안에 있기 싫어 기분 전환으로 본 영화는 최악이다. 도착한 영화관에서 제일 가까운 영화로 달라고 했고, 거스름돈인 동전을 받기 싫어 두 자릴 구매했다. 그게 패착이다. 영화관에 들어갈 때 사람에게 치였던 걸 생각한다. 이런 걸 왜 본단 말인가. 더구나 주연들의 연기는 자기 눈에 차지 않는다. 암울해진 영화관에 수감된 자신을 본다. 커다란 스크린은 시선을 피해도 자신에게 장면을 보여준다. 한창 도피로 시작된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던 때, 사랑으로 시작해 당연한 절망. 자신이 수없이 상상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거봐 내가 뭐랬어? 고갤 돌려버린다. 자신이 산 빈자리가 반긴다. 17번째 비슷한 실수를 한다. 유일하게 이날만은 당신의 공백이 보인다.
그다음 영화 내용은 기억나질 않는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수도 없이 자신과 당신으로 했던 상상 중 하나다. 많은 상상 중에서 우리는 살아남은 적이 없다.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망가트린다. 자신과 당신, 우리가 살고 싶어서 아닌 이들까지 범의 아가리에 밀어 넣는다. 그 틈에 당신은 손을 뻗는다. 나아가자며, 두려워하지 말고 더 나은 선택을 해보자며. 그때 자신은 선택 자체가 없는데. 선택이라는 게 죽거나 차후에 죽거나 이 두 개뿐이었는데도도.
그럼에도 제 인생이 다 망하더라도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신의 인생까지 망치기 싫었다. 영화표 두 개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다. 어떤 영화의 제목인지 진작에 잊어버린다. 당신은 말한다. 이대로 있으면 그 끝은 어둠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당신의 말에 증명해 보려 몸을 움직인다. 당신을 죽인지 17년이 넘어가고 있다.
해이원씨가 안나오는 이원가유(망함)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