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 단편 연성

RAIN

비아포AU

Be My Escape by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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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tvN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의 설정 일부를 차용하여 만든 팬 창작물로, 원작과는 무관하며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 창작물의 등장인물들은 해당 출연진들과 다른 인물임과 작중 설정은 현실의 것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 이 글은 댙알출님의 비아포 만화 RAIN의 특정 루트를 글로 각색하는 걸 허락받고, 날조를 한 숟갈 더해 완성한 3차 연성입니다. RAIN에 대한 대형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안 보셨다면 만화부터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posty.pe/k3jko7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밤새 매섭게 쏟아지던 비는 새벽이 되자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 대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짙은 안개가 도시를 가득 메웠다. 여느 때 같으면 안도했을 것이다. 시야에 제한이 생기긴 했어도, 이미 대폭우기를 대비해 거처를 옮기고 충분한 식량까지 미리 구해놨으니 굳이 아지트를 나서서 무리하게 주변을 수색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안개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석고상을 잘 경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건이 연달아 터지기 전까지는.

“종민이 형!”

희뿌연 도심을 헤매며 형의 이름을 외친다. 상대를 부르려 숨을 크게 들이실 때마다 유난히 묵직하게 느껴지는 수증기가 기도(氣道)에 들러붙는 것 같다. 허파 깊은 곳을 간지럽히는듯한 감각.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호동이 형에 이어 종민이 형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조바심에, 더욱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제 목소리 들리면 대답 좀 해봐요!”

바삐 움직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하늘을 힐끗힐끗 올려다보게 된다. 언제 비가 쏟아져도 놀랍지 않은 세상이다. 그리고 비는 재난 그 자체다.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녹여버리는. 살짝 젖기만 해도 화상을 입히고, 그러다 결국 그 부위를 뻣뻣이 마비시키는. 그러다 결국 석고상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가히 최악의 재앙. 만약을 대비해 우비와 우산, 무기 등 외출 시 필수인 물건들을 챙겨온 나와 달리, 종민이 형은 맨몸이다. 게다가 그 형은 이미 얼굴 일부분에 백화가 진행된 상태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맞아서, 우측 눈의 시야를 잃은 지 오래였다. 같은 쪽 귀도 약하게만 들린다. 그러니 더 걱정될 수밖에.

“짧은 사이에 멀리도 갔네….”

어젯밤 종민이 형과 망을 보며 나눴던 얘기가 떠오른다. 갑작스러웠던 맏형의 죽음은 사망원인조차 확실하지 않았기에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조촐한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남겨진 건 슬픔, 그리고 동료를 향한 불안감과 의심뿐. 종민이 형이 한 짓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반대로 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많았다. 호동이 형과 같은 방을 쓰고 있었던 점. 밤중에 거실로 나온 병재가 불러도 대답은커녕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게다가 형 스스로가 요즘 이상하게 컨디션이 안 좋다고 시인한 점. 자꾸만 잠이 온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누적된 피로나 스트레스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종민이 형은 이미 맏형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믿고 있었다. 혼자 떠나야겠다는 얘기까지 꺼낼 정도로,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형이 그랬다는 증거는 없으니 아침에 다시 생각해보자고, 떠나지 말라고 겨우 설득했었는데, 내 목덜미에 난 작은 상처를 보고 그렇게 말릴 새도 없이 뛰쳐나가 버렸다. 따지고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크게 동요하는 형의 모습을 처음 봤다.

“종민이 형!”

이번에도 잘 설득해서 아지트로 데려올 수 있을까?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힘으로라도 끌고 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저 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종민이 형!”

혹시나 안개 속에 놓쳐버릴까 봐 전속력으로 달려가자, 발소리에 놀란 종민이 형이 뒤돌아본다. 

“어, 동현…!”

“형, 진짜 왜! 왜 이러는 건데요 도대체!”

형이 무사한 걸 확인하니 안심이 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하고 싶은 말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온다.

“제가 떠나지 말라고 했잖아요. 목 다친 것도 형 때문 아니에요, 어제 밤까지 새워서 증명했는데…! 변이인지 뭔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병재도 꿈인지 아닌지 모른다고 했잖아요. 안개까지 있는데 형 마음대로 막 나오고….”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았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기침을 입을 막는다. 몇 번 크게 기침하고 나니 왠지 머리가 띵하다. 예기치 못한 어지럼증에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자, 종민이 형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동현아, 미안해! 안개도 비 성분인 것 같으니까 들어가자…!”

종민이 형이 웃으며 팔을 잡아끈다. 

“들어가서 다시 생각하자. 세수도 다시 한번하고… 따갑다, 이거.”

형을 잘 모르는 사람이면 저 미소에 속아 넘어갔겠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저 말은 거짓말이라는걸. 떠날 생각을 완전히 접은 게 아니라, 내 상태가 걱정되어 하는 말이다. 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아지트로 돌아가는 게 중요했다. 형을 잡아두는 건 그다음의 일이었다. 동생들이랑 같이 설득하면 종민이 형이 마음을 바꿀 거라 믿었다. 돌아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을 거라고.

휘리릭, 철썩

“으아아악!”

별안간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얼굴에 달라붙는다. 놀라 소리를 지르며 축축한 물체를 떼어낸다. 손에 들려있는 건 바람에 날아온 종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구겨진 종이를 쳐다보고 있는데,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 형, 그만 웃어요. 난 석고상이 공격한 줄 알고 놀랐는데.”

“아하하핳, 동현이 넌 이럴 때도 여전하구나! 어떻게 그게 석고상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어?”

“그럴 수 있죠! 예를 들면… 그러니까, 날다람쥐나 박쥐 석고상 같은 거였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요! 아 쫌, 그만 웃어요!”

“야, 도시 한가운데에 날다람쥐나 박쥐 석고상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 그리고 진짜 그런 동물 석고상이 널 공격했으면 내가 이렇게 웃고 있겠냐? 아, 애들이 방금 니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부끄러움에 귀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평소처럼 뻔뻔한 변명이 튀어나오는 대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알 수 있다. 방금 형의 그 웃음은 진짜였다는걸. 잠시였지만, 모든 게 평상시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한결 놓인다.

“애들한테 얘기하지 마요, 진짜.”

“흐음, 어떡할까~”

웃으며 장난치고 있는데, 근처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순간 석고상인 줄 알고 잔뜩 긴장했지만, 사람 목소리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인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안심이 되었다. 시력을 잃은 우측이라서 그런지, 종민이 형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듯했다.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비가 그쳤으니 생존 물품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이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아지트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쐐애액―

제일 먼저 알아챈 것은 허공을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 곧이어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매섭게 날아드는 날카로운 쇠붙이가 보인다. 그게 정확히 뭔지 머리가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종민이 형을 끌어안는다.

그다음 느껴진 건, 등에 연달아 가차 없이 박히는 불타오르는듯한 고통. 그리고 형의 충격받은 표정.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간다. 저 사람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등에서부터 빠르게 퍼지는 고통의 정체가 무엇인지. 급속도로 혼미해지는 정신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래도 종민이 형을 구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온세상이 느리게 돌아간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아, 아아… 왜… 우리는 인간이란 말이야….”

믿을 수 없는 충격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진다. 초점이 나간 것처럼 모든 게 흐릿한 세상에서, 동현이의 등에 박혀있는 네댓개의 화살만이 또렷하게 보인다. 벌어진 상처에서 흐르는 비릿한 액체가, 동현이를 끌어안고 있는 내 손을 붉게 물들이는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쿨럭쿨럭

동현이가 붉은 피를 토해낸다. 손에 묻은 것과 같은, 기분 나쁘게 뜨뜻한 액체가 어깨를 축축하게 적신다. 고통스러운 신음이 뒤섞인 동현의 기침 소리에 문득 정신이 돌아온다.

“동현아! 동현아, 정신 차려!”

동현이의 몸에서 급격한 속도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분명 먼저 나를 끌어안은 건 동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동현이를 붙들고 있는 건 나였다. 어떻게든 부축하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우리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뒤늦게 등의 상처를 면밀히 확인해 보지만, 도리어 더 암담해질 뿐이다. 깨끗한 붕대도 없는 데다가, 애초에 등에 군데군데 박힌 화살 때문에 지혈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화살을 뽑자니 출혈이 더 심해질게 불을 보듯 뻔하다. 너무 깊이 박혀있는 것 같아 섣불리 건드려보기조차 두렵다. 어찌할 줄 모르고 허공을 방황하는 손이 덜덜 떨린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 탓이었다. 조금 더 멀리 갔으면, 동현이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무작정 뛰쳐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견디기 힘들었어도 꾹 참고, 괜찮은 척 웃으면서 있다가 애들이 잘 때 몰래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아니, 애초에 이 그룹에 합류하는 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호동이 형도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거다. 모두가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 때문에

“종민이 형.”

동현이의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자책을 끊는다. 말하지 말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다시 입을 연다.

“나 후회 안 해요. 난 형 구한 거 후회 안 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멀쩡한 눈도, 그렇지 않은 다른 쪽 눈도. 그럴 리가 없는데도. 돌처럼 굳어버린 지 오래되어 눈물 같은 건 더 이상 흘릴 수 없을 텐데도.

“미안해, 동현아.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되풀이할 수 없다. 동현이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말없이 나를 힘껏 안아준다. 아프다. 차라리 이대로 품 안에서 바스러지고 싶어질 정도로 몸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무리 꽉 붙들어도 떠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아, 미친, 사람이었네.”

“죽었어? 엥, 한 명이 더 있었네?”

더는 미동하지 않는 동현을 멍하니 붙잡고 있는 사이, 뿌연 안개를 뚫고 다가온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자, 한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석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도록 시위에 끼워진, 동현이의 등에 박힌 것과 같은 화살도.

“저기요? 이 사람 동료예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 동̶̘͇͍̮́̀̆̽̔́͢͞료̵̨͍̯̤̲̄́̌̑̆͛̒̅͠라̵̟̰͙̎̅͐̉̀̃̌͜͝ͅ면̷̖͖̮̮̜̪͕̏͂͑̀̉̌͢͠ 나̸̨̛̦͓̥͍̪̤̉̀̿̇도̵̪̙͕̜͙͎̑̔̓̾̄̒͜͞ͅ 죽̴̢̦̜̖͇̦͔̤҇͂͂̈͛̆̈͑̊이̴̧̤̬̲͉̰͐̀͌͗̓̉͐͂͡게̵̛̲͖̦͖̎̎̀͢?”

조심스럽게, 상처를 건드리지 않게, 동현이를 바닥에 엎드려 눕힌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시선을 남자들에게 고정한 채. 점점 붉어지는 시야를 무시한 채.

“뭐라는 거야. 이봐요, 이 사람 아냐고요.”

한발짝, 남자들에게 다가간다.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한 명이 눈에 띄게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오른쪽 눈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 잠잠해야 할 오른쪽 귀에서 들리는 이명이 점점 더 커진다. 고막을 찢을듯한 삐- 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운다. 

“너҉̲̳̱͖̓͛̃̎̆̆̈̔͜͡ͅ희̸̱̩̪̳̾̀͒͋͌͢͞가̴̛̦̝̬̣̱͎̙̗̾̎̉͢ 이̸̧͓̭̽̏͒͞러̵̳̠̜͖̭͕͓̜҇̓̑̽̐͜고̷̡̰̗͈̮̦̣҇̎̾͆̾͛̓도̷̢̳̮̫͓̯̠́́̍́̉́͐͞ 인̸̛͔̦̆́́͌͜간҉̢͉͎͍̗̱̫͚̒̏́̍̕이̴̝͍͇̣̝̄̆̈̍͆̅͢͝야̸̢͇̘̰̞̠̖̜̏̊͡ͅ?”

“인҉̢̛͈͓̣̱͉̭̒̎͊간̷̯̭͈̝̣͈͎̤̀̋͢͝이̵̜͕̣͈͖͖̠͖͑͗̇̓́͢͝면҈̗͙̞̪̞͕̣͛̍͑͢͝… 인̷̱͇͍͖͋͗̄̇̕͢간҉̨̯̲̪͎̎͊́̇̎͒͊̚͡이̶̡͔͔̦̰͕҇͂̇̉͗̊͆̚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럴̸̧̜͈͗͆̓͞ 수̶̡̭̝̝̟̭҇̃̀̀̎̚̚가̸̡̯͇̠͖̙̫̩̑̐̎͗̓͠ͅ 없̵̘̱͖̠̥̅̅̓̀̽͂̌̚͜͞는҉̖͎̤̰̖̤̞̒̓̒̃͒̓͜͞ 거̶̡̳̲͈҇͛̑잖̵̢̥̟̱͕̝҇̀̈̂́͒̂̊아̶̳̬̜̣̱̬̱҇͊̆̆̆̈̇͌͜.”

“너̶̟͉͔͇͔̭͚̗͔̔͊̉̍̾̿̃͌̐̚̚ͅ희҈̯̘̝̲͎̲̄̉͒͗̄̉̏̌̎̈͂̿ 같҉̝͍͉̦̱͔̰̽͊́͑͌̿은҈̣̘̠̩̥̩̮̤̄̃̒̐̍̈̑̀ͅ 사̷͕͙̪̩͎̌͋̍̈̓̑̀람҉̱̩̞̙̣͋͂͒̑̇들҉̥̥͓̣̪̰̮̒̔̾̄̌̆̏̚이̵̣͎̫̮̜̝̜̅̐̉̇̿͊̊͆̀̃̃̚… 인̶̬̥͎̩̤͈͉̓̍̀̏̈̆̊̈̅̀͐ͅ간̸͕͈̞̠̉̄́̓́일҉̙͖̩͍͇̮͖̬̝̝̝̦̍̄͆̌́̇̀̂͊͆ 리̴̲̮̬̩͉̞̽̊͛̑̍̇̀가҉̙͖͙̙̲͕͚̣͕͊̈̎͒̑ 없̷͕͕͇̞͎͉̟͖͙̖̾̿̊̽̑͐͂잖҈͔̖̣̗̜̟͆͂̀́아̵̙͔̫͚̗͉̟̞̀̒̀͒́́̇͗͂̑̃̇.”

시야가 온통 핏빛으로 물든다.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해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마음에 낀 먹구름을 대변하듯, 하늘은 흐리기만 했다.

동현이를 반쯤 업고, 반쯤 끌다시피 하며 한때는 공원이었던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마침 아침부터 자욱하던 안개가 한결 가실 무렵이어서, 잠시 동현이를 눕히고 거친 호흡을 고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자리를 잡은 곳이 고지대는 아니었지만, 완만한 경사가 있어 비 때문에 침수될 위험은 적어 보였다. 오늘처럼 안개가 끼지 않는다면 주변 풍경을 꽤 멀리까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해가 난다면 볕이 잘 들 것 같기도 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드물게나마 햇빛을 만끽할 수 있는 곳에 동현이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원래는 호동이 형 옆에 묻어줄 생각이었으나, 혹시나 나머지 동생들을 마주칠까 봐, 또다시 이성을 잃어버리고 사람을 공격할까 봐 두려워 발걸음을 돌렸다. 이런 겁쟁이 형을 동현이가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땅을 파는 것은 예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도구 하나 없어서 더 그랬다. 처음엔 무턱대고 맨손으로라도 파려고 했으나 금세 포기했다. 다행히 근처에서 납작한 돌을 발견한 뒤로는 작업이 조금 수월해졌다. 그래도 한세월이 걸리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땅을 깊이 파고들어 갈수록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어찌어찌 충분한 크기와 깊이의 구덩이를 팔 수 있었다.

차마 얼굴을 보면서 마지막 인사는 건네지 못했다. 핏기 없이 창백한 동생의 얼굴이 너무 낯설었고,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동생 위로 흙을 뿌리기는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린 채 흙을 덮었다. 형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지막 가는 길까지 똑바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이렇게 못난 형인 걸 증명하는 거 같아 목이 메었다. 동현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눈앞에 펼쳐져 있던 남자들의 처참한 모습을 본 뒤로는 더더욱.

그러니까, 이게 남은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십자가를 세우며 작업을 마무리한 뒤, 동현이가 지니고 있던 무전기를 집어 든다.

“얘들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아서인지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헛기침을 두어번하고 다시 동생들을 부른다.

“얘들아. 거기 누구 없어?”

약간의 잡음 후에 익숙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다. 질문이 비처럼 쏟아진다.

“종민이 형!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아요? 동현이 형은요? 지금 형들 나간 지 거의 여섯 시간이 지났는데

“병재야.”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내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병재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병재야. 나 찾지 마. 난 안 돌아갈 거야.”

“네? 그게 무슨….”

무전기 특유의 잡음이 섞였어도 병재의 목소리에 깃든 당혹감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앞에 훤히 떠올라서, 견디기 힘들어서 고개를 흔든다. 동생의 얼굴을 흩트려버리며 마음을 굳게 먹는다.

“동현이도 찾지 마. 동현이는… 못 돌아가.”

최대한 담담하게 전하려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목소리가 갈라지고 만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너도, 동이도, 지훈이도.”

“형! 종민이 형, 잠깐

“잘 지내야 해.”

듣기 힘들어 무전기의 소리를 꺼버린다. 계속 듣고 있다간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게 뻔했다.

“동현아.”

무전기를 무덤 옆에 내려놓는다. 이제야 제대로 마주 볼 수 있는 동현이를 보며 쓸쓸하게 웃는다.

“난 이만 가볼게. 그동안 고마웠어. 잘 있어.”

미련 없이 뒤돌아선다. 동현이를 남겨두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멀리, 다신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남은 사람들에게 해를 가할 일이 없도록. 동생들이 나에게서 안전할 수 있게. 멀리, 저 멀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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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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