𖤐𖤐𖤐의 일기

그 건물에선, 모두가 내 지휘 아래 움직였다. 이곳 마계상원의 존재 이유는 단 한 가지, 죄인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옆에서 일을 돕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 사람들을 배심관이라 했던가. 보통은 죄인들을 데려오고 재판관을 돕는 역할에 그치지만 난 재능 있는 손재주로 재판에 오를 도구에 직접 손을 대기도 했다.

내 대부분의 마력은 갖가지 고문 기계를 형상화하는데 쓰였다. 소모품이 아니라면 한시간이 지난 후 사라지지만, 이 시간은 눈요기를 채워주기엔 충분하다.

단기간만에 난 재판관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든의 공이 컸지. 그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진 못했다.

재판관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재판을 입맛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임은 너무 시시했어.

재판관의 자리는 경치가 좋다. 배심관들은 재판장 안까지 들어오진 못한다. 항상 카메라로 송출되는 영상만 뜨문뜨문 보다, 모든 걸 직접 두 눈으로 내려볼 수 있는 재판관의 의자에 앉을 땐 정말 짜릿했었지.

내 마력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기계들에 고통받으며 몸사리치는 인간들을 보며, 처음엔 내가 하는 행동이 정의롭다 생각했다.

살점이 뜯겨나가는 걸 보며 폭소를 터뜨린적도 있다.

케르베로스가 깔끔히 사람들의 잔해를 먹어 치워주는걸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준적도 있었다.

잔혹한 죄를 지은 자, 죄인들은 벌을 받는게 당연하니까.

죄인이 재판장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혀를 잘라내는 거였다. 벌레 녀석들의 말을 굳이 듣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할까.

허나 어느날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혀를 잘라내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를 뱉을까..

죄인의 발언을 그때 처음 들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무고한 사람들입니다..!! 저흰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죄인들이 하는 변명이라 생각했으니.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도 꽤 볼만해 그 이후로는 혀를 베어내지 않고 재판에 들이기로 했다.

후로 재판을 10번정도 더 했을때쯤이었다.

그 날 재판에 들어온 사람은 인간이 아닌, 마계상원에 종사하는 내 비서 중 한명이었다. 이든. 이곳에 일하며 날 유독 옆에서 도와주던 그 자.

죄인이 아닌 내 관계자가 그곳에 있는 걸 보고 의아해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에 쿡쿡대며 웃던 남자가, 그런 얼굴을 하는 건 처음 보았다.

“속독 잘하지? 말로 하기엔 길어.“

내 눈앞에 팔랑거리는 종이 한장과 문서더미를 집고, 그의 필체로 쓰인 맨 첫장을 빠르게 읽었다.

하데스, 모든 사람들이 널 속이고 있어.

이게 그 종이의 첫 문장이었다. 모든 걸 읽는 순간 생각했다. 들어오던 죄인들이 자신의 무죄를 말하는 것들을. 죄인들이 나에게 발언했던 모든 말들이.. 말하지 못하는 자들도 외치고 싶었겠지.

저희는 죄인이 아닙니다.

순간 케르베로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며 모든 불이 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없고 까마귀떼들만 가득했다.

왜 그제야 알았을까, 재판장에 있는 카메라는 보안을 위해서가 아닌 송출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라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단지 배심관들에게만 보여주기 위함인줄만 알았다.

죄인의 처벌이 아닌, 단지 살육의 현장을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이곳. 내가 만들어왔던 게, 나 또한 즐겁게 바라본 그 재판들이 짊어질 수 없을 정도로 큰 죄책감이 되었다.

난 그저 그들에게 열렬한 배우였고, 내가 서 있는 곳은 재판장이 아닌 무대 위였다.

그때 처음으로 총이라는 무기를 만들어봤다. 여태껏 한 번에 즉사시킬 수 있던 총은 재미가 없어서 만들지도 않았는데.

재판장의 모든 카메라를 총으로 부셔버렸다.

누군가에 의해 목줄이 풀린 케르베로스가 온 건물을 헤집을 때, 나 또한 멈추지 않는 총질을 하며 이곳의 관계자들을 모두 사살했다.

맨 꼭대기층인 재판장부터 수감자들이 있는 지하까지. 피비린내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끝내 지하의 감옥 문을 열어주자마자 사람들은 허겁지겁 도망가기 바빴다.

그중 어린 여자 한 명이 벌벌 떨면서 다리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손을 내밀고 싶어도, 이미 피로 더럽혀진 손을 차마 내어줄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자격조차 없었겠지.

나는 그녀에게 내 마력이 담긴 흰 장미를 손에 만들어주었다. 이걸 쥐고 있을 때만큼은 정신을 온전히 붙잡을 수 있을 테니.

난 다시 한 층씩 올라가며 모든 자들의 시체를 다시 확인했다. 케르베로스의 목줄은 분명 이든이 풀었을거다. 중간층쯤 올라갔을 땐, 시체들이 전부 사라져있었다. 내 개가 꼭대기 층부터 만찬을 즐긴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야수의 세 머리가 게걸스럽게 시체를 먹고 있었다.

이전부터 케르베로스가 먹은건.. 명백하게 평범한 인간들이었겠지만.

죽일 수밖에 없다. 만약에 이 개를 남겨둔다면 후에 마계에서 내 냄새를 기억한 케르베로스를 이용해 날 찾아낼 수도 있으니.

두발의 탄환에 두머리가 터져나갔다.

마지막으로 가운데에 있는 머리만.

...

잘라내면 됐었는데..

가운데 머리는 날 잘 따랐다. 크기는 거대했지만, 정말로 반려견을 키운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정이라도 들어버린건지.

...

배신자들. 마계상원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런 짓거리를 할 이유가 없는데.

고민하던 찰나에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때 가운데 머리가 큰 혀로 내 얼굴 전체를 핥아냈다.

... 축축했다..

난 검으로 가운데 머리를 깔끔하게 베어내었다.

단면에선 피가 흐르지 않고 머리에 담긴 눈은 어떻게 된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꿈뻑거렸다.

난 케르의 단면을 들고 상원을 떠났다.

내가 이 손으로 내가 창조해낸 기계덩어리로 얼마나 많은 살점을 도려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 손으로 행한 건, 정의라는 탈을 쓴 살육에 불과했다.

..나의 정의가 틀린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