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생애

로그 by 커무러
14
0
0



바람이 조금 쌀쌀한 날이었다. 올해가 몇년도인지도 잘 기억 나지 않는 하루였다, 언제 나왔더라. 하고 날짜를 곰곰히 계산하던 백발의 곱슬머리를 가진 누군가 손가락을 접으며 수를 세다 편지지를 두 장 꺼내었다. 빌린 작은 숙소 안에서는 싸구려 라디오가 끊기는 목소리로 아무 방송이나 읊조리고 있었다. 방 안의 창문이 폭풍우에 덜그럭거렸다.  누구한테 보내는 편지인지도 제 스스로 모르는 양 옅게 스스로를 비웃었다.


..마법사라면 누구든 보시길.


이 편지는 끝까지 보거든 꼭 태워주길 간곡히 청하고 싶다.

누가 이 글을 볼 진 몰라도 보시거든 합당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하려고 하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또는 증오에 가득 찬 마음으로, 또는 호기심을 가지고 양귀비 인장이 달린 이 편지를 뜯어보셨으리라 믿는다.



햇수로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 축축하고 습한 요크셔험버의 아폴론이 마차를 끌고 나를 강렬히 치고갔다. 평지가 많은데도 굳이 숲에 집을 마련한 발렌슈타인의 미적 감각에 비탄만이 가득한 여름이었다. 습한 공기는 파도같았고, 이 어두운 숲속의 양귀비 정원만이 나를 가두고 있었다. -진짜 양귀비가 아니라 우리 가문의 인장을 은유한 것이다.-

제르네우스와의 마지막 임상 실험이 있는 날이었던가, 폭풍이 부는 집안에서 가볍게 짐을 싸고, 아처가에 다녀오고는 했던 것 같다. 그날은 분명 나의 것인 물약 또한 제조 했었다.


늘 상 말해왔지만 나는 스트레스에 굉장히 예민했다, 조모를 닮아. 강단있는 부모님과 달리 발렌슈타인의 절벽에서 사자를 떨어트리는 교육을 감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아이에겐 미안하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 동생을 이용했었다.

많이들 나의 동생에 대한 소식을 궁금해들 했다.

..

나는 1월 18일. 9시 34분에, 단 1분 차이로 태어난 슈테른 발렌슈타인이라는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

한 배에서 태어나, 같은 옷과, 생각. 우리는 도플갱어나 다름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자 영원한 하나였다. 운명이 엇갈린 날을 기억한다. 정확히 내가 5살이 되던해, 우리 부모님은 우리의 마법적 능력을 시험했다. 그날은 눈이 살이 에일정도로 내렸고, 집안의 벽난로가 마른 장작을 찌르며 타닥, 타닥, 소리를 내는 날이었다. 우리는 좋은 실크 잠옷을 입고, 어머니의 무릎에 둘 다 훌륭한 마법사가 될 것 이라며 작은 머리를 기대어 있다가 인생 처음으로 어머니의 지팡이를 쥐어 본 날이었다.


예상들 하겠지만 나에게는 강렬히도 반응했다, 어머님의 지팡이는 주인이 아니고는 절대로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독종이었다. 오만곳에 쏘기마법으로 잔뜩 더러워진 연회장에, 흡족해하는 아버지와 어머님의 표정이 눈에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나의 동생의 손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약간의 마법적 재능이라도 있었더라면, 내 동생에게도 필시 그리 반응했을것이라 반증할 수 있으리라, 정적의 순간이었다. 어머님은 지팡이를 내 동생에게서 가져오더니, 우리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이때부터였다, 내 동생은 반항적이고, 운동을 잘했으며. 내가 가지지 않은 활발함과 친밀감. 기품스러운 도련님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었다. 난 소심했으며, 동생이 마법사였다면 발렌슈타인의 대를 잇는 것은 나의 동생이었을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이 성격은 집안에 반발하는데 사용되었다.


우리 집안은 사회에 만연한 이 생존권 전쟁의 축소판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발푸르기스 기사단이며 자신의 자신을 영국에서 내쫒고 싶어하는 나의 부모님과 이곳에서 살겠다고 이를 악 물고 자신의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부모님과 싸운 나의 동생.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그 누구도 지지할 수 없는 나의 싸움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더 이상 지금보다 심한 수준의 정신적 고통을 받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크게 의지했던 동생을 흉내내면서, 반항아인척 했다.

분명히 이게 화근 이었으리라.

졸업식 직후 돌아온 나의 방은

두개의 침대가 아니라 한개의 침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게 사상과 직업을 강요하는 부모님을 동생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내가 20살이었던 해, 나는 제 앞길을 스스로 진척하는 나의 오랜 모르모트를 보면서 내가 자극받지 않을 수 없었다, 충동적으로 나와서 동생을 찾아다니리라 결심했던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난 우리 부모님을 속이고 나오는 건 자신이 없었다, 그 애처럼.. 그렇게 대담한 수법을 쓸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마셨다.

내가 마셔서 그날 새벽 스큅인 척 발렌슈타인의 보호막이 날 감지하지 못하도록 양귀비가 만개한 숲을 조용히 떠났다.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무너져갔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어찌 나와 닮은 내 반쪽 하나를 찾을 수 있겠는가? 사막에서 바늘찾기나 다름 없었다. 나의 수첩이 비행기 표와, 어떤곳을 다녔는지 눈과 비로, 또는 거친 흙으로 발꿈치가 닳아서 피가 날 만큼 걸어, 빼곡하게 채워 더 이상 쓸 곳이 남지 않았을 때 쯤엔..


난 나와 슈테른을 구분 할 수 없었다.


콕스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고되고 힘들면 남을 흉내내어 자리를 피하고, 나 자신을 속여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지옥같은 나날이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았냐며 찾아다니는 동안 목이 쉬고 눈물로 얼굴이 닳고, 그럴때마다 나의 동생을 흉내내었다. 더이상 술과 담배 없이는 나 자신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는.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니라 슈테른이 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슈테른이 내게 말을 건다 느꼈고. 비난어린 목소리가 전부 나의 것이라 생각되었다.


난 더 이상 거울을 볼 수 없다. 나의 얼굴은 그 얘의 얼굴이며, 나의 시선은 그 애의 시선이고. 내가 입는 옷은 그 애가 입는 옷이나 다름 없다고 느껴진다. -이 편지마저도 압생트와 진을 몇 잔이나 마시고 쓰는지 모른다. 양해 부탁한다. 제정신인 나를 기대하지 말아라.-

찾아다니기를 더이상 포기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다. 나는 나의 동생이 제 발로 다시 나에게 돌아올 그날만을 간곡히 꿈꾸며, 가장 순수한 것을 버리고, 누군가의 삶의 투쟁에 참여하리라.


..별은 스스로를 터트린다, 나의 마지막 폭발은 26살이 되리라..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