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 질투

인기 많은 청연이 보고 싶다

* 고증 거의 신경 쓰지 않음

* 시간대는 三. 저물어 가는 나라의 그림자 쯤.

“말 걸어볼까……?”

“아서라. 우리 같은 사람한테 시선 하나라도 주겠니? 그냥 근처에 있을 때 구경이라도 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저런 헌양한 미남자랑 말 섞어볼 기회가 또 언제 오겠어?”

“듣고 보니 그러네. 말이라도 걸어 봐?”

여인들이 모여 쑥덕거렸다. 입으로는 바쁘게 대화를 나누면서 눈길은 모두 한곳을 향해 있었다. 저잣거리 입구에 삐딱하게 서서 낮부터 술병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였다.

아무 사내였다면 낮술이나 하는 볼품없는 한량 취급을 받았겠으나, 그는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빼앗는 미남이었다.

햇볕 밑에서 쟁기질 한 번 해본 적 없는지 피부가 눈처럼 희고 매끄럽다. 비취색 같기도 하고, 푸른 하늘 같기도 한 눈동자는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전체적으로 곱상한 인상이었으나 선이 얇은 건 아니었다.

체구는 평균보다 훌쩍 커서, 6척은 다 되어 보였다. 몸은 언뜻 보면 늘씬해도 헐렁하게 걸친 상의 내로 잔근육이 슬쩍슬쩍 들여다보였다. 가슴팍이나 허리 근육이 단단한 것이 절대 허투루 봐서는 안 될 인간 같았다.

“색목인인가 본데, 그럼 곧 돌아갈 거 아냐.”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미남은 술만 마셔도 잘생겼구나…….”

시원스레 꿀꺽꿀꺽 술을 넘기는 목울대가 유혹적일 정도다. 그가 술을 마시다 말고 술병을 들었다. 아마도 계속 마셔댔으니 슬슬 술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술병을 완전히 기울여 탈탈 털자, 몇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몇 방울은 혀로 안착했으나 다 그러진 않았다. 턱에 떨어진 방울은 목덜미를 타고 주륵 흐른다.

말을 걸어 보겠다 어쩐다고 하던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만 지켜보았다. 그저 수려한 미남이 좀 젖었을 뿐인데 어찌 이리 자극적으로 보이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뭐야. 왜 이리 안 와.”

청연이 투덜거리며 빈 술병을 허리춤에 걸었다. 그 말을 듣고 주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까 떠들던 여인 무리만이 아니라 지나가던 다른 이들 역시 그 모습에 시선이 팔려 멈춰 있던 차였다.

역시 저 정도 되는 미남자에게 상대가 없을 리 없나……. 몇 명은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재촉했으나, 다 그런 건 아니었다. 한번 말도 못 걸어보고 이대로 물러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이런 훤칠한 미남을 만날 기회가 또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리는 동안 말동무라도 해주겠다고 하자!’

구경꾼이 다짐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또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저 남자가 기다리는 상대가 정인이 아니라, 가족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일 때문에 만나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누가 술을 마시면서 공적인 상대를 기다리나 싶지만 그런 생각은 자기합리화로 깨끗이 사라졌다. 그가 용기를 내며 청연에게 걸어갈 때였다.

“…….”

그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맹수에 잡아먹히는 환각을 보았다. 이곳은 사람이 북적이는 저잣거리 한복판인데도, 거대한 호랑이에 짓눌리는 환상을 느꼈다. 거대한 앞발에 짓밟히고, 살벌한 아가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 와작와작 씹히는 듯했다. 실제가 아닌데도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정신을 차리자 새빨간 눈의 사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크다고 생각했던 미남자보다 훨씬 큰 남자였다. 목을 꺾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올려다봐야 하는 장대한 체격의 남자.

밉보이면 정말로 호랑이에게 물려 죽듯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길 듯한 사내였다.

“아, 그…….”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변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더듬더듬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무어라 사죄해야 할지 몰랐을뿐더러, 그 기세에 억눌려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횡설수설하는 동안 호랑이 같은 남자는 지나쳐서 가버렸다. 강인한 보폭으로 저벅저벅 걸어 미남자에게 다가갔다.

방금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는 환각을 본 모두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아, 남자가 있었구나.

그것도 접근하는 인간은 하나도 살려둘 것 같지 않은 살벌한 정인이. 목숨이 아까운 이들이 후다닥 흩어졌다. 호도 청연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너 늦었다?”

“죄송합니다. 벌을 주십시오.”

호가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청연이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예.”

“다 보는데?”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됐으니까 일어나라.”

호가 명령대로 몸을 일으켰다.

목숨보다 호기심이 조금 더 귀중한 사람 몇은 그 일련의 모습을 보고는 기겁했다. 웬만한 인간은 한 손으로 멱을 따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호랑이 같은 사내도 놀랍고, 그런 사내를 말로 쥐락펴락하는 저 미남자도 대단했다.

평범한 인간이 범접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맛있는 거나 사.”

“안주가 될만한 걸로 준비할까요.”

“옳지.”

청연이 손을 뻗자, 호가 고개를 숙인다. 얌전히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받는 그는 마치 길든 맹수 같았다. 주인만을 물지 않는, 잘 교육받은 짐승.

“술도 더 사고.”

“예.”

“새로운 술이 마시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호는 명료하게 대답하긴 했으나 청연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저잣거리를 걸었다.

무슨 변덕으로 인간 모습을 취한 건지 모르겠다. 늦게 온 것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걸까. 차라리 허공에 말을 거는 이상한 사람이 될지라도 안 보이는 상태인 게 낫다. 모습이 보이면 호의 신은 너무나 시선을 끈다. 상인도, 손님도 모두가 청연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의 불길이 부글부글 끓는다. 답답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주제넘게…….’

감히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이니까. 자신이 뭐라고, 그를 독점하고 싶어 할까.

인간 주제에, 무슨 욕심으로 신을 홀로 탐하고 싶어 하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청연을 만족시켜, 그의 총애가 유지되길 바라는 것뿐.

그러려면 일단 그가 좋아할 만한 술과 안주부터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리라.

호는 들끓는 질투를 억눌렀다. 그럼에도, 자신은 신을 바라봐야만 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미약한 우월감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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