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하루] 겁쟁이 히어로의 장송곡

유학길에 오르는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느끼게 될 것은 해방감이리라고 생각했다. 줄곧 떨어지지 않는 시선, 집착, 비교, 평가. 나를 좀먹던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정작 엄습한 것은 불안과 초조였다. 녀석이 뒤따라오지는 않을까. 내가 마음 편히 발 뻗고 쉴 수 있는 곳 따위는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렇기에 현지에 도착해 녀석에게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와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현황을 보고해도 그저 놀리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 녀석이 내가 없는 밴드에 열중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어차피 녀석이라면 금세 이곳까지 또 쫓아올 게 분명하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녀석은 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곳에 오는 게 아니라면, 일본에서 또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일 테지. 내가 귀국하는 날만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녀석은 정말 진지하게 밴드 연습에 임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 니죠 카나타가.

부정하고 있었던 현실을 맞닥뜨린 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어둡고 질척한 감정들이었다. 그 녀석의 독점욕은, 그 녀석의 집착은 고작 그런 것이었나. 거리가 멀어진 것만으로도 쉽게 포기할, 그런. 나의 가치가 녀석에게는 고작 그런 것이었나. 결국, 나라는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박탈감, 절망감, 열등감, 두려움. 온갖 감정이 나를 짓눌렀다. 머릿속에 울리는 것은 오직 강렬한 파열음뿐. 녀석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밴드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밴드의 앞날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상황일 텐데도. 내가 바라왔던 일일 텐데도. 어째서인지 부정적인 감정의 덩어리들이 나를 짓눌렸다.

“불쌍한 형. 역시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귓가에 녀석의 목소리가 울린다. 알고 있다. 지금 여기에 녀석은 없다. 이 목소리는 나의 두려움이, 내 상상이 만들어냈을 뿐인 존재. 그렇지만, 그 목소리의 존재에 모든 감정이 흔들린다.

나는 분명 녀석의 히어로가 될 셈이었다. 심약하고 병약한 동생을 지키는 멋진 형이 될 셈이었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점점 히어로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갔다.

히어로가 필요하기는커녕, 녀석의 히어로였던 나를, 뛰어넘어서.

나를 따라잡고, 뛰어넘은 이후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짜증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짜증 이상으로, 내가 지켰던 그 녀석에게 도리어 모든 것을 빼앗겨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줄곧 나를 짓눌러왔다. 부모의 기대, 사람들의 호평, 베이스, 밴드, 친구. 무엇 하나, 녀석에게 빼앗기지 않은 게 없다고.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녀석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는 말은 과연 옳은 것인가.

분명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녀석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녀석이 내가 쥐고 있던 것들을 앗아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나 스스로 그 무엇도 손에 넣지 않으려 하고, 빼앗기기 전에 손을 놓았다.

내가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빼앗기지 않았을까. 그런 가정은 해봤자 의미가 없는 일. 이미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은 빼앗긴 후고, 그런 가정을 해봤자 사라진 것들이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놓지 않았더라면 녀석에게 찢기고 망가져,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볼품없는 꼴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겁쟁이같이, 덤벼들지도 못한 채 내게 있던 것을 하나둘씩 놓아버린 모습이.

나는 오히려 녀석의 존재를 나의 결핍의 핑계로 삼아왔던 것이 아닐까. 손에 그 무엇도 남지 않은 내가, 남길 용기조차 없는 내가. 나를 제 시선에 담아주는 이 녀석에게 오히려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그 녀석한테?

그 녀석의 존재에, 시선에, 나를 의탁하고 있었다고?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머릿속을 뒤덮었던 진득한 감정 위로 그 이상의 짜증이 자리 잡았다. 그래, 그 녀석은 내가 발버둥쳐서 기어 올라간 절벽을 그저 뜀박질 한 번으로 올라가 버리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향한 열등감을 끌어안는 것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아.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 한들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그 녀석에게 나를 의탁한다고? 기댄다고? 그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다. 웃기지 말라 그래. 한동안 그 녀석의 헛짓을 겪질 못하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지.

문득, 언젠가의 노상 라이브가 떠올랐다. 녀석과 함께했던 그 라이브.

그날, 녀석은 제 것인 마냥 ‘내’ 곡을 노래하고 연주했다. 온전한 나만의 것이라 여겼던 곡을 녀석이 노래하고 연주했을 때 느낀 것은 공포. 두려움, 박탈감. 짜증보다도 앞섰던 그 감정.

그래, 그날 그곳에서 도망치듯 자리를 떴을 때와 도망치듯 유학을 온 지금 상황은 무엇 하나 다를 바가 없다. 무엇 하나 발전한 구석이 없어. 나는 여전히 겁쟁이에,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있을 뿐. 그 녀석조차 바뀌고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그저 웅크려서 벌벌 떨고 있을 뿐이다. 이런 꼴불견인 녀석을 그 누가 히어로라 하겠는가.

세워두었던 기타를 잡아 품에 안았다. 손끝은 익숙한 음을 더듬어 내려갔다. 한숨을 내뱉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날, 그 자리에서 녀석이 불렀던 노래. 내가 만들었던 나의, 나만의 노래.

그렇지만 아무리 연주해도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운다. 머릿속에 울리는 것은 그날 녀석이 연주했던 제멋대로인 베이스의 음. 이제 이 곡은, 베이스가 없어선 완성된 형태라고 볼 수 없을 테지.

젠장.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심지어는 그 녀석마저도.

모든 게 바뀌고 있는데, 나 혼자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멈춰 서 있을 수만은 없을 테지. 지금까지의 나를 죽여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 곡은, 이 연주는. 이 노래는. 이를테면,

 

겁쟁이 히어로의 장송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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