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레온] 나의 앞, 너의 뒤

*이 글은 소설 「目醒めの王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目醒めの王者」 2화 이후에서 앨범 「SCATTER」 보이스 드라마 사이의 시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시기 및 설정 등에 날조가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레온, 너, 나유타랑 같이 밴드 한다며?”

“진짜야?”

6교시 전 쉬는 시간, 레온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같은 반이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동급생 두 명이었다. GYROAXIA에 관심이 있어서 말을 걸어온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흥미 본위의 질문일 테지.

이런 식의 시선은 썩 달갑지 않은데. 레온은 자리를 피할까,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어차피 상대는 같은 반 동급생. 기껏해야 친구끼리 나누는 가벼운 대화일 뿐이었다. 불편하긴 해도 굳이 예민하게 대할 수준도 아니었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던 레온은, 그렇게 결론 내리고는 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와-, 진짜냐. 안 힘드냐? 그 녀석, 성격 더럽잖아.”

“……뭐어.”

나유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결코 부정하지 못할 말이었다. 레온 역시 나유타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매번 휘둘려왔던 만큼, 굳이 그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제 고충을 털어놓을 만큼 친한 사이인 것도 아닌 터라, 이번에도 굳이 무어라 말을 얹지는 않은 채 그저 고개만 가볍게 끄덕일 뿐이었다.

물론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이런 흐름의 대화가 오가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나유타의 뒷담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 녀석한테 불만이 있는 거라면 본인한테 가서 말했으면 싶은데. 레온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동급생들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녀석, 성적도 좋잖아? 장학금 받고 있댔지?”

“으와-, 얼굴도 잘생겼으면서 말이지. 재수 없게-.”

“그러면 뭐하냐, 성격이 그 모양인데.”

“…….”

키득대며 말하는 목소리가 거북하다. 나유타와 대화 한번 제대로 한 적 없을 녀석들이 멋대로 떠드는 것이. 그 녀석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을 녀석들이 내리는 평가가. 불편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녀석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는 걸까. 무슨 반응을 바라는 걸까. 같이 욕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굳은 표정으로 아무 대꾸 없이 쳐다만 보고 있자, 동급생들은 키득대며 여전히 가벼운 어조로 말을 던졌다.

“뭐야, 그렇게 진지한 표정 짓고.”

“같은 밴드라고 해도, 어차피 나유타 녀석 성격이면 너도 걔가 시키는 대로 질질 끌려갈 뿐이지 않냐? 힘들 것 같은데.”

…분명 나유타의 억지에 끌려다니기야 하지만. 역시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사히 나유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이, 나유타 본인이 앞에 있다면 아무 말도 못 했을 녀석들이. 제 앞에서 입만 살아 떠들어대는 것이 불쾌했다. 나유타의 성격이라면 녀석에게 반발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그 녀석을 향한 불평을 내가 듣고 맞장구쳐줘야 하냔 말이다.

게다가, 나유타는 분명 제멋대로에다가 항상 지적만 해대고, 제대로 연주를 해내더라도 칭찬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 짜증 나는 녀석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유타는 GYROAXIA의 보컬이며, 밴드의 중심으로 군림할 만한 실력의 소유자. 나유타의 방식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큼은 쟈이로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레온 역시 그러했기에, 나유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그의 곁에 남아있기를 택한 것이었다. 나유타의 옆은 지치고 힘든 곳이지만, 이곳이라면 분명 정상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나유타의 실력은, 그런 생각에 분명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쟈이로의 라이브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나유타의 노래가 가진 힘을 알 텐데. 이런 식으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단순하게 평가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나유타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을 녀석들이 멋대로 떠들어대는 것이, 짜증이 났다.

역시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은 성미에 맞질 않아. 레온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반박의 말을 입에 담으려 했다. 그렇지만 입을 열려던 찰나,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어수선하던 교실을 가득 채웠다.

“종 쳤네. 갈게.”

“아, ……그래.”

동급생들은 다가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가볍게 툭 말을 내뱉고는 유유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유 모를 분함이 치밀어올랐다. 어쩌면, 나유타가 제 기타 소리를 듣고 잡음이니 뭐니 하고 핀잔을 줄 때보다도 더.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거지. 레온은 분명 나유타의 행동과 태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유타의 태도는 남의 미움을 살만했고, 레온 역시 연습할 때마다 그런 나유타에게 시끄럽게 불평을 내뱉었더랬다. 레온이 보는 나유타는 확실히 저 녀석들이 말한 대로 제멋대로에 짜증 나는 녀석이었다. 아마 쟈이로 내에서 나유타를 향한 불만이 가장 큰 것 역시 레온일 터. 그런 만큼, 같은 밴드의 멤버를 향한 외부인의 뒷담이 불쾌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제 기분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나유타에게 두 번 다시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을 정도로 나유타의 억지에 휘둘려온 레온이었으니. 욕하는 소리에 신나서 맞장구를 치고 싶어질 만도 할 텐데. 심지어 미유키와는 종종 같이 투정을 부리기도 했는데도. 왜, 저 녀석들한테는 오히려 화가 난 거지.

레온의 고민은 수업이 시작된 후에도 이어졌다. 머릿속이 복잡해 수업을 들을 여유조차 없었다. 교사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며 교과서 구석에 제 생각을 아무렇게나 끄적였다가 지우개로 벅벅 지우기를 반복할 뿐. 그렇지만, 교과서 한 귀퉁이가 연필 자국으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해도 이렇다 할 답은 떠오르질 않았다.

단순히 좋냐, 싫냐를 묻는다면 싫은 녀석이지만, 나유타는 ‘싫다,’는 말 한마디로 정의 내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배배 꼬이고 뒤틀린 성격은 최악이지만, 나유타의 노래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것이니까. 그런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녀석이기에,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레온에게 나유타는 언젠가 따라잡고 싶은 상대였다.

따라잡고 싶고, 나를 돌아봐 주었으면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이기고 싶은 상대. 그것은 곧, 나유타가 자기보다 앞을 달리고 있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나유타를 부정하는 그들의 말에 나유타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제가 부정당한 기분이 들어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인가. …아니, 이것도 아니었다. 저 녀석들은 애초에 나유타의 가치를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나유타가 밴드에서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나유타가 다른 사람과 밴드를 결성했다는 것 자체가 가십 거리인 녀석들이니. 그저 그 사실이 신기해서 물어보았을 뿐이라는 것쯤은 레온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젠장. 역시 모르겠어. 레온은 교과서에 나유타의 이름을 끼적이다가, 울컥하는 기분에 인상을 쓰며 그 위를 펜으로 벅벅 덧칠해 덮어버렸다. 나유타 본인이 한 말도 아니고, 다른 녀석이 꺼낸 나유타에 관한 이야기 때문에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생각하기를 포기한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며 펜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수업 종료종이 울렸다. 학생들의 인사를 받은 교사가 ‘복습 잘하고.’라는 말을 던지고 교실을 나섰지만, 수업 내내 생각에 빠져있었던 레온이 수업 진도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어영부영 오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이제 남은 것은 종례뿐. 레온은 책상을 정리하며 펼쳐두었던 교과서를 덮으려다, 펜의 새까만 흔적을 잠시 눈에 담았다. 몇 번이고 낙서하다 지우기를 반복해 너덜너덜해진 교과서 페이지와, 아사히 나유타, 그의 이름을 덮은 볼펜 잉크. 그것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어, 급히 교과서를 덮어 가방에 필통과 함께 쑤셔 넣고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하아.”

오늘은 쟈이로의 합동 연습이 있으니, 종례가 끝나면 바로 스튜디오에 가야 했다. 스튜디오에 가면, 좋든 싫든 나유타를 만날 수밖에 없을 테지. …이 기분으로, 그 녀석을?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유타의 뒷담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부채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유타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다는 패배감, 그리고 나유타의 뒷담을 들은 불쾌함과, 왜 이렇게까지 불쾌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 이런 마음을 안은 채 나유타를 만나는 것은 역시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랐을 종례가, 오늘은 끝나지 않았으면 싶을 정도로.

물론,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따라 종례는 금세 끝이 나버렸고, 청소 당번 외에는 하나둘씩 교실을 빠져나갔다. 물론, 이 상황에서 스튜디오에 가고 싶지 않다고 계속 교실에서 버티고 있어봤자 청소의 방해만 될 뿐. 나유타를 만나는 것을 미룬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이렇게 미적거려봤자 연습 시간이 줄어들 뿐이었다. 더구나 대학생 조는 이미 스튜디오에 모여 나유타와 레온을 기다리고 있을 터. 짧게 생각에 잠겼던 레온은, 이내 한숨을 작게 내쉬며 기타 케이스와 가방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왔다.

“……아.”

그리고 교실 문 앞에서 맞닥뜨린 것은, 아까까지 레온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남자. 아사히 나유타. 당황한 레온이 작게 소리를 냈지만, 나유타는 레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발을 옮겼다. 역시 나유타의 저런 태도는 언제 봐도 짜증 날 뿐. 하지만, 오늘은 합동 연습이 있으니. 이렇게 저 녀석을 보내봤자, 어차피 목적지가 같으니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금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연습을 해봤자 기타 소리에서 티가 나겠지. 다른 사람은 속여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나유타에게는 들킬 게 뻔했다. 이런 상태로 치는 기타는 나유타에게 잡음 취급밖에 받지 못할 터. 쓸모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스튜디오에 도착하기 전까지 생각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감정을 좀 더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짧은 시간에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대상인 나유타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빠른 수단일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태로 나유타와 같이 있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것보다도 나유타에게 혼나는 것이 더 싫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레온은, 나유타의 뒤를 쫓아가며 말을 걸었다.

“잠깐, 나유타. 너도 바로 스튜디오 갈 거잖아. 같이 가.”

“…흥. 마음대로 하던가.”

레온의 목소리에도, 나유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렇게 한 마디를 툭 내뱉고는 발을 옮길 뿐이었다. 그런 나유타의 태도에 레온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유타의 뒤통수를 노려보았지만, 그뿐. 지금은 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까. 레온은 감정을 따라 화를 내는 대신, 나유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택했다.

물론 같이 가자고 말은 했지만, 사이 좋은 친구처럼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사이도 아니고, 나유타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탓에 아무런 대화도 없이 학교 현관에 도착한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찢어져 각자의 신발장으로 향했다.

레온은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어 신발을 갈아신는 데에 시간이 조금 소요될 수밖에 없는 처지. 먼저 신발을 갈아신은 나유타는, 그 탓에 아직 신을 갈아신고 있는 레온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학교 현관을 빠져나갔다.

“…아, 저 녀석 정말……!”

그리고, 신발장 문을 닫고 나서야 나유타가 아무 말도 없이 먼저 나갔음을 깨달은 레온은 짜증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그 뒤를 쫓아 발을 옮겼다. 저를 기다려주지 않을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녀석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짜증은 나기 마련. 레온이 이를 악물고 간격을 좁히는 사이에도, 나유타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야, 나유타……! 같이 가자고 했잖……,”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 같이 간다고 한 적은 없을 텐데.”

“큿……,”

겨우 나유타를 따라잡은 레온이 불평을 말하려 했지만, 나유타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툭, 말을 내뱉었다. 이런 태도라면 짜증이 날 수밖에. 그렇지만, 항상 나유타에게 마구잡이로 화를 내던 스튜디오와는 사정이 달랐다. 하교 시간인 만큼 주변에는 나유타와 레온 외에도 학생들이 많이 있었고, 고작 이런 일로 군중 속에서 화를 내는 것은 아무리 레온이라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탓에 입술을 짓씹으며 화를 삭인 레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고 있는 나유타의 뒤를 따라 발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짜증 나, 짜증 나, 짜증 나. 아사히 나유타의 행동, 말투, 생각. 모든 것이 짜증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유타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 상황은 더욱 짜증이 났다.

나유타와 함께 있으면 항상 이랬다. 나유타는 제멋대로 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제 할 일을 하고, 레온 혼자 그런 나유타의 태도에 열이 올라 화를 내곤 했다. 레온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비효율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나유타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은. 오로지 이 녀석이 만들어내는, 이 녀석이 부르는 노래 때문. 오직 그것뿐이었다.

아사히 나유타의 노래는 분명 대단하고, 그렇기에 그의 곁에 남아있는 것이지만. 레온에게 있어서 아사히 나유타라는 존재는, 그의 노래를 몰랐더라면 이렇게 같이 하교를 하기는커녕 말을 걸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나유타에게 음악이 없었더라면,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을 최악의 상대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 우리 사이는 그런 관계일 텐데. 그런데, 왜. 나유타에 대해 멋대로 말해대는 녀석들에게 화가 났던 걸까. 누가 봐도 나유타와 레온은 사이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즐겁게 웃으며 서로를 북돋워 주는 사이 좋은 밴드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관계였다. 물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제게는 이게 옳은 방법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과 나유타의 짜증 나는 성격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지만, 나유타는 틀림없는 음악의 천재였다. 나유타의 노래를 알아버린 이상, 그의 노래를 모른다는 상황의 가정 따위는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관객을 압도하는 목소리, 단시간에 쟈이로를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작사, 작곡 실력. 그런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인 주제에, 노력까지 게을리하지 않는 천부적인 음악의 신.

켄타처럼 나유타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따를 생각은 없지만. 나유타가 대단하다는 것은, 쟈이로에 없어선 안 될 존재라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나유타만큼 대단한 녀석이 또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만약 있다 하더라도, 나는 분명 나유타의 곁에서……,

…잠깐. 왜, 이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지. 나유타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나유타를 인정하고 있기에, 레온은 그를 따라잡고 싶고, 뛰어넘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유타보다 대단한 사람이 있다면. 항상 말싸움하느라 지칠 뿐인 나유타의 곁에 남는 것보다는 그 사람과 함께 음악을 하면서 나유타를 뛰어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왜, 나는…….

갑작스레 머리를 쾅 치듯이 스친 생각에 멍해진 레온의 발걸음이 느려진 사이, 나유타가 갑자기 발을 틀었다. 갑작스러운 나유타의 움직임에 놀란 레온이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온 것은 스튜디오 인근의 편의점. 저 녀석이 웬일로 편의점엘. …아니, 그것보다.

“뭐야, 편의점 들를 거면 말하라고.”

“네가 멋대로 따라오는 거잖아.”

“너 정말…, …….”

레온이 나유타의 뒤를 따라 편의점으로 들어가며 따져댔지만, 나유타는 아까와 같은 말을 툭 내뱉고는 편의점 복사기 앞에서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나유타가 꺼내든 물건을 눈에 담은 레온은, 불만을 말하려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번 라이브에서 하기로 했던 곡의 악보. 각 파트별로 수정할 부분과 지시 사항이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악보에 수정할 부분이 있는 경우에는 보통 컴퓨터로 작업한 음원을 저장해오거나 작업 파일을 인쇄해왔었는데, 웬일로.

아, 설마. 학교에서 쓴 건가. 내가 반 애들이랑 시답잖은 얘기나 하는 사이, 이 녀석은…….

나유타는, 매번 레온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조차 앞서나가고 있었다. 이 녀석은 이미 한참 먼 곳을 달리고 있는데. 이래선 따라잡기는커녕, 뒤쫓을 수나 있을까. 가슴을 파고들려는 괜한 패배감을 억누르려 기타 케이스의 어깨끈만 꽉 움켜쥐고 있자니, 나유타가 아무 말 없이 복사가 끝난 악보 한 뭉치를 레온에게 건네왔다.

“…….”

어깨끈에서 손을 떼고 악보를 받아들면, 얼핏 보기에도 원래보다 한참은 어려워진 어레인지와 지시 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말도 안 돼. 라이브까지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나유타, 이게 무슨……,”

“뭘 머뭇거리고 서 있어. 나갈 거니까 비켜.”

“큿……,”

레온이 무어라 따지려 했지만, 나유타는 인쇄된 나머지 악보를 가방에 챙겨 넣고는 레온의 말을 뚝 잘랐다. 이런 악보를 받은 것만으로도 당황스러운데, 심지어는 이런 태도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편의점 안에서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레온은 소리를 내지르지 못하는 대신 나유타를 노려보며 몸을 물렸고, 나유타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편의점을 나섰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나와 스튜디오로 가는 짧은 길. 나유타의 뒤를 따라가며 악보를 대충 훑어보면, 역시 라이브까지의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내에 완벽하게 형태를 만들어내기에는 너무 난도가 높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이 녀석이 라이브가 언제인지를 잊었을 리는 없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좋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이 무자비한 연주를 어떻게 해낼지에 대한 걱정과 짜증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나유타와 함께 스튜디오로 가려 했던 원래 이유는 레온의 머릿속에서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나유타, 너 정말 뭐 하자는 거야?”

“시끄러워.”

학교에서부터 누르고 누른 짜증은, 스튜디오의 연습실에 도착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자마자 폭발해버렸다. 평소였다면 이렇게까지 성질을 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학교에서 들었던 말 때문에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레온이었다. 그 탓에 나유타의 제멋대로인 태도가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 테지. 그렇지만, 그런 레온의 짜증에도 나유타는 귀찮다는 듯 시끄럽다는 말만 툭 던지고 연습 준비를 시작할 뿐. 그 모습에 레온이 다시 한번 소리를 높이려 하자, 미유키가 달려와 레온을 진정시켰다.

“왜 그래, 레온 군. 웬일로 둘이 같이 오나 했더니.”

“저 녀석이 너무 멋대로 굴잖아요!”

“아하하, 나유타가 그러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아. 진정하고, 우선 연습 준비부터 하자. 도와줄게.”

레온의 말에 미유키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레온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그 손길에 조금은 진정한 레온이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니, 신발장에서 저를 두고 간 일이라던가, 아무 말도 없이 편의점에 들어가 버렸던 일 같은 건 인제 와서 화를 내는 게 오히려 우스워지는 것만 같았다. 악보 수정 건은, 무어라 말해봤자 분명 ‘못 할 거면 나가라.’는 소리만 듣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유타의 앞에서 못 한다는 말만큼은 죽어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레온은 잠깐 나유타를 노려보다가, 이미 먼저와 준비를 끝낸 료와 미유키, 켄타의 자리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사이. 먼저 준비를 끝낸 나유타가 편의점에서 복사해온 악보 뭉치를 켄타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살펴본 켄타가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유타를 보자, 나유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툭, 말을 내뱉었다.

“이번 라이브에서 할 거다.”

“…흠. 꽤 어려운 기술이 많이 들어가는군. 라이브 전까지 해내려면 연습 일정을 좀 더 늘려야겠어. 그나저나, 악보 복사 같은 건 나한테 시켜도 되는데.”

“고작 복사 같은 일 때문에 연습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어이, 미소노. 준비는 아직이냐.”

“이제 막 도착했잖아! 너랑은 다르게 기타는 준비에 시간이 걸리……,”

“떠들 시간이 있으면 손이나 움직여.”

“아, 정말……!”

“레온, 그렇게 화내면 행복이 달아나 버려~.”

갑자기 저에게 튄 불똥에 레온이 말을 받아치려 했지만, 나유타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을 뚝 잘랐다. 그런 나유타의 태도에, 머릿속을 채운 것은 속이 끓는 듯한 분노. 옆에서 료가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나유타 앞으로 튀어가서 잔뜩 성질을 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자중해야 할 때였다. 나유타가 수정해온 무지막지한 어레인지를 완성하려면 연습 시간 1분 1초도 아까우니까. …이것도 다 나유타가 갑자기 제멋대로 악보를 수정해온 탓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해낼 수만 있다면, 최고의 라이브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이거. 제대로 해내면, 라이브를 본 지구인들, 다들 행복해지겠지. 열심히 할게.”

“윽……, 악보만 봐도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악보를 가볍게 살펴본 료는, 의욕이 생긴 것인지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꼭 쥐고 활짝 웃었다. 그에 비해 료의 손에 들린 악보를 힐긋 본 미유키는 인상을 쓰며 무지막지한 난도에 우는소리를 했지만, 그 이상의 불평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나유타가 ‘한다,’고 말한 이상 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무지막지한 난도인 만큼 미친 듯이 연습해야겠지만, 이렇게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진다면 가장 고생하는 건 나유타였다.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 이상의 불평은 내뱉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레온. 세팅이 끝난 기타를 들자,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학교에서의 고민이 뒤늦게 스멀스멀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래,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짜증과 불안은 분명 나유타의 억지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조금 다른 것이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답을 찾을 유예는 이미 끝나버린 후. 레온이 감정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나유타의 연습 시작 선언이 떨어졌고, 미유키의 카운트와 함께 연습이 시작되어버렸다.

 

“…멈춰.”

“읏……,”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말.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유타는 레온을 노려보았다. 아직 수정한 구절이 손에 익지 않은 만큼 머릿속을 뒤덮은 방황이 더욱 적나라하게 연주로 나타난 탓이었다. 물론, 그것을 나유타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미소노, 라이브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고 있는 거냐.”

“네가 갑자기 수정안을 가져와서……!”

“하, 그래서 못 하겠다고?”

“…….”

나유타의 말에, 그를 노려보던 레온은 입술을 꽉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저 뒤에 나올 말쯤이야 듣지 않아도 뻔했다. ‘불만이 있다면 나가라,’일 테지. 나유타의 방식은 항상 이랬다. 무언가를 툭 던져놓고는, 못 할 거면 나가라고. 그렇지만, 레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쟈이로에서 나갈 생각만큼은 없었다. 이미 한 번 쫓겨난 기억이 있는 만큼, 두 번 다시는 내팽개쳐지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이곳에, GYROAXIA에 들러붙어서 나유타의 뒤를 바짝 따라갈 생각이었다. 천재가 아닌 제가 천재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분명 험난한 길일 테지만. 그 험한 길을 나아가는 것이 나유타에게 내팽개쳐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다면, 악을 써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라도 따라가 주겠어.

“할 거야.”

“그럼 불평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고.”

쯧, 혀를 찬 나유타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처음부터 다시.’ 그 한마디에 미유키의 카운트가 시작되고, 카운트가 끝남과 동시에 악기의 강렬한 울림이 스튜디오를 채웠다.

나유타를 따라잡겠다. 뒤처질 생각 따윈 없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생각만으로 고민이 말끔히 사라질 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레온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나유타를 향한 짜증, 지금까지 쌓여왔던 분노.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나유타의 곁에 남아있고 싶다는 마음. 두 번 다시는 내쳐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 흔들림 없는 마음이 동요하고 있는 레온의 정신을 붙들었다. 아직 고민은 해결되지 않은 채였지만, 그런 이유로 꺾일 결의가 아니었다. 방황하며 흔들리던 레온의 눈동자에 뚜렷한 금빛이 반짝였다.

레온의 기타 소리에는 아직 작은 흔들림이 남아있었지만, 분명한 결의가, 그 올곧음이 담겨있었다. 그 덕인지, 이번에는 나유타의 멈추라는 말 대신 기타 소리를 타고 뻗어 나가는 노랫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렸다.

거친 듯 섬세한 나유타의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것만으로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곳이 바로 GYROAXIA의 공간, 이것이 바로 아사히 나유타라는 왕자(王者)가 지배하는 군단. 나유타의 노랫소리는, 머릿속을 채우던 사념조차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목소리를 지탱하고 있는 거구나. 라이벌 의식이니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라이브 날의 걱정이니 하는 것 이전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수백 번, 수천 번은 들어온 목소리였지만, 나유타의 목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매번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 이런 나유타니까. 나유타의 옆에 있고 싶은 거였다. 이 녀석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으니까. 이 녀석의 노래를 연주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이 녀석에게 이기고 싶으니까. 그런 만큼, 지금 레온이 할 수 있는 것은 제 귀에 때려 박히는 노랫소리를 좇으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흔들리던 기타 소리는, 이내 정확한 멜로디를 새기며 나유타의 목소리에 부딪히듯 화음을 쌓아 올렸다.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도 스튜디오 마감 시간까지 대실을 연장한 탓에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해진 후였다. 그런데도 나유타는 아직 부족하다며 늦은 시간까지 빌릴 수 있는 스튜디오로 향했고, 켄타도 그 뒤를 따라간 탓에 레온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은 미유키와 료뿐이었다.

“레온, 오늘은 평소보다 얌전했지.”

“…무슨 소리야?”

하늘을 올려다보며 둘을 따라가던 료가 툭 던진 말에, 레온은 눈을 멀뚱히 뜨며 료를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레온뿐이었는지, 미유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말을 내뱉었다.

“조금 알 것 같아. 평소라면 나유타한테 몇 번이고 소리 질렀을 텐데. 오늘은 들어오자마자 화낸 거 말고는 딱히 그런 모습은 안 보였고.”

“그치~?”

“아니, 나라고 맨날 화내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말에 레온은 반박의 말을 내뱉었지만, 자기도 찔리는 점이 있는지 말끝을 어물거렸다. 그런 레온의 모습에, 미유키는 픽 웃으며 레온을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뭐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이 형님이 들어줄게.”

“형님은 무슨…….”

미유키의 말에, 레온은 필요 없다는 듯 제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쳐냈다. 오늘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 불쾌함과 분노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쟈이로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나서는 연습은 수월하게 진행되기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온의 마음속에서 동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탓에 평소라면 몇 번이고 나유타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을 터인 레온이 유독 소리를 높이는 일이 적었던 것. 그렇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나유타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은 도무지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있지, 레온.”

“…응?”

레온이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이려 하던 차에, 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면, 료는 여전히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을 뿐. 저러다 어디 부딪히면 어쩌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료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하늘을 올려다보던 료의 시선이 천천히 레온을 향했다.

“레온은, 나유타가 싫어?”

“…엄청나게.”

료의 말에, 레온은 단번에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잘생긴 얼굴이 망가지잖아.’ 하고 미유키가 건넨 농담조의 말에 미간에 준 힘은 풀었지만, 여전히 썩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 레온을 가만히 바라보던 료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질문을 건네왔다.

“…으응. 그럼, 왜 나유타랑 같이 음악을 하려고 하는 거야?”

“그야, 나유타와 같이 있으면. 분명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높은 곳으로 가는 건, 나유타의 옆이 아니면 안 되는 거야?”

“그 녀석은 짜증 나지만. …노래는 최고잖아.”

레온의 대답에, 료는 ‘흐응.’ 하고 가볍게 흘려넘기듯 반응하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본 걸까, 싶었지만. 료는 원래 이런 느낌이었으니.

레온이 왜 그런 걸 묻냐는 질문을 하는 대신 료를 따라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별은 많지 않았다. 스스키노는 유독 밤의 네온사인이 밝은 곳이니, 어지간히 밝은 별이 아니라면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테지. …딱히 별이 많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계속 보고 있었던 걸까. 그런 의문을 품고 있자니, 료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양 다시 말을 건네왔다.

“주변이 이렇게나 밝은데도 보이는 별이 있다니. 신기하지 않아?”

“…그런가.”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별들도 분명 빛나고 있어. 하지만 우리에게 보이는 건 밝은 별들뿐이지.”

또 우주인 토크가 시작되는 건가. 조금 질린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내리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줄 알았던 료와 눈이 마주쳤다.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가벼운 듯 깊은 보랏빛이었다.

“일등성이 보이더라도, 다른 별들이 보이지 않으면 성좌를 그릴 수 없어.”

“…….”

료는, 분명 나유타를 일등성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별은. 내 얘기인 걸까.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건가. 괜히 짜증 나는 기분에 아무 말 없이 료에게서 등을 돌린 레온이 다시 발을 옮기자, 료가 그 뒤를 따라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있지.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별이 밝지 않은 건 아니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지구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태양도, 사실은 밝은 별에 속하진 않거든. 지구와 가까우니까, 그렇게 밝게 보이는 거지.”

“…….”

료의 말은 항상 그 흐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 내용은 과학 시간에 이미 배운 상식인데. 이 말을 지금 꺼내는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거리가 어떻고 하는 얘기를 해봤자, 가까이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쟈이로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나유타라는 것은 변함없을 텐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도 몰라 마냥 입을 다문 채 발을 옮기고 있자니, 갑자기 그 적막을 깨뜨리는 각기 다른 착신음이 귀를 울렸다. 셋 모두의 휴대전화에서 소리가 난 것을 보아, 아마 쟈이로 그룹 메신저에 온 연락일 테지. 셋은 다시 발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고, 그 내용에 대해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미유키였다.

“아, 이 녀석. 진짜 짜증 난다니까.”

“어쩔 수 없잖아, 미유키 군. 라이브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

메시지의 발신인은 켄타. 내일부터 매일 합동 연습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장소와 시간까지 작성되어있는 것을 보아, 나유타와 스튜디오에서 조율을 끝내고 보낸 것이겠지. ‘남의 사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냐고.’ 하며 미유키가 계속 투덜댔지만, 은근히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이니, 라이브까지의 일정은 이미 비어있을 터였다. 문제는 개인 연습을 할 시간이 줄어든 것뿐. 수정된 부분을 맞추려면 우선은 개인 역량을 키운 후에 합동 연습에 임해야 하는 만큼, 레온으로서는 곤란할 뿐이었다.

 

결국, 그날은 얼마 자지도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료의 말까지 더해져 머릿속은 엉망진창. 더구나 라이브 전까지 매일 합동 연습을 하겠다는 켄타의 연락까지 받은 시점에서 제대로 잠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던 레온은, 결국 침대에 엎드린 채 악보만 몇 번이고 뒤적이며 수정 사항을 눈에 담는 것을 택했다.

악보를 보면 볼수록, 나유타의 대단함이 느껴졌다. 이전의 어레인지도 분명 나쁘지 않았지만, 이 수정안을 보고 나니 이전의 악보로는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불평할 수도 없잖아.

나유타의 방식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매번 불만을 표하지 못한 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나유타가 추구하는 음악이 레온을 이끌었기에 그것에 불만을 느낄 수가 없었다. 레온이 원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정점에 올라서는 것. 그리고, 아사히 나유타라는 존재가 옆에 있다면 더 성장할 수 있기에. 더욱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기에. 레온에게 음악이란, 기타를 치는 의의란 곧 아사히 나유타의 곁에 서는 것과 직결되어있었다.

다른 사람의 노래 따위 레온에게는 의미 없는 것이었다. 이미 아사히 나유타라는 사람의 노래를 알아버린 이상, 레온에게 중요한 것은 나유타의 노래, 그뿐이었다. 나유타보다 대단한 사람 따위 있을 리가 없어. 나유타의 곁을 떠나봤자 후회할 뿐이라는 것을, 이 악보가 증명하고 있었다.

삐비비빅, 알람이 울리고. 침대 위에 엎드려 악보를 보던 자세 그대로 잠들어버린 탓에, 욱신거리는 어깨의 통증에 살짝 인상을 쓰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온은, 찌뿌둥한 몸을 가볍게 움직여 근육을 풀어준 후, 이제는 완전히 머릿속에 들어온 내용을 다시 확인이라도 하듯 악보를 팔락이며 살펴보았다. 다시 보아도, 짜증 날 정도로 멋진 곡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일. 악보를 몇 번 팔락거린 레온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것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하아. 연습 시간이 부족한데.”

수정된 내용은 합동 연습을 늘리는 것만으로 어떻게 될 수준이 아니었다. 개인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합동 연습은 그저 시간 낭비. 그렇지만 오늘부터 매일 쟈이로의 합동 연습이 잡혀버렸고, 집에 돌아온 후는 늦은 시간인 만큼 마음 편히 연습할 수가 없었다. 남은 건, 학교 점심시간. 학교에서 기타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라면. 음악실이나 빈 교실은 동아리 애들이 쓸 테고, 그나마 옥상이려나. …아무리 그래도 옥상은 영 내키질 않는데. 레온은 머리를 긁적이며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체면이니 뭐니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오늘 합동 연습전까지 어느 정도는 형태를 만들어야 했다. 대학생들은 저보다 연습할 시간이 많을 터였고, 나유타는. 분명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잘할 테지. 어제도 몇 번이나 나유타의 멈추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오늘도 저 때문에 연습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영 반가운 일이 아니니, 또 그런 꼴을 보지 않으려면 수정된 악보를 어떻게든 연습해야만 했다.

레온의 머릿속은 악보와 료가 제게 말했던 내용, 그리고 어제의 채 풀리지 않은 감정이 뒤섞여 무어라 표현하기도 힘든 상태. 아침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등교한 후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몇 번이고 교사에게 주의를 받아 허둥대며 교과서를 팔락거려도, 이미 머릿속을 가득 채운 감정은 해결되질 않았다.

4교시는 어제의 6교시와 같은 과목.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펼치자 어제 끄적였던 낙서의 흔적과 새까맣게 덧칠한 볼펜 잉크가 눈에 들어왔다. 나유타의 이름을 덮은 그것. 그걸 보고 있자니, 불현듯 어제 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등성이 보이더라도, 다른 별들이 보이지 않으면, 성좌를 그릴 수가 없어.’

일등성. 아사히 나유타는 분명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별이다. 주변이 제아무리 밝더라도 그 빛을 발하여 만인의 눈에 들어올 별. 세계의 모든 빛을 집어삼킬 것만 같이 번득이며 빛나는 붉은빛의 별. 그렇기에 나유타는 쟈이로의 왕자(王者)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세계의 왕좌를 거머쥔 이는 아니었다. 세계는커녕 학교에서조차도 아직 나유타의 빛을 모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떠올리자, 괜한 부채감이 레온을 엄습했다. …아. 어쩐지, 어제 느꼈던 그 답답함, 짜증. 그것과 닮은 느낌이었다. 제 가슴에 턱 얹히는 익숙하고도 답답한 무게감에, 레온은 이제야 복잡하던 머릿속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어제 화가 났던 이유는 나유타의 뒷담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유타의, GYROAXIA의 노래가 아직 닿지 않은 이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던 걸까. 나유타에게는 분명 세계로 뻗어갈 재능이 있다. 그래야 마땅할 실력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녀석이 속한 밴드인데도 제 주변에조차 아직 쟈이로를 모르는 이가 있다는 것은 아마 제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 나유타의 이름을 새까맣게 뒤덮은 볼펜 잉크. 아마, 자신은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이 레온의 머릿속을 온통 채웠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유타는 분명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이름을 덮은 볼펜 잉크는 지울 수 없지만. 나유타라면, 고작 이름 하나가 가려졌다 해서 그 빛이 어두워질 리가 없었다. 제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모두 걷어차고 앞으로 나아갈 녀석이니까.

나유타가 아직 만인의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분명, 아직 그가 속한 성좌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터. 그렇다면, GYROAXIA라는 성좌에 속한 제가 좀 더 빛난다면. 나유타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빛을 발한다면. 성좌 쟈이로는, 그 성좌의 일등성인 나유타는 더 많은 이들의 눈에 띌 터.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터. 그리고, 그것이 레온에게도 정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길이 될 것이었다. 그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별이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빛을 발하며, 더 갈고닦으면. 분명.

복잡하던 머릿속이 한순간에 개이고, 이제야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오히려 이제야 시작점에 섰다고 말하는 게 옳을 테지. 우선 지금은 수정된 악보부터 완벽하게 칠 수 있게 연습해야 했다. 평소의 배는 난도가 올라간 만큼 분명 힘든 과정일 테지만, 나유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언젠가 나유타에게 이기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고비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었다.

나유타는 ‘어떤 벽이라도 뛰어넘을’ 녀석이니까. 나유타가 그러하다면. 레온 역시 질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 벽쯤은 단숨에 뛰어넘어주겠어. 그 의지는 그 누구도, 그것이 나유타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을 강한 것이었다.

좋아, 우선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옥상에 가자. 그렇게 다짐하며 고개를 번쩍 들자,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레온을 질책하듯 빤히 바라보고 있던 교사와 눈이 마주쳤다. …젠장. 역시 나유타랑 관련되면 되는 일이 없다니까. 애꿎은 나유타를 탓하며 급히 고개를 떨군 레온은, 다시 눈에 들어온 잉크 자국을 잠깐 눈에 담았다가 픽 웃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 이후로도 도무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교사에게 지적을 받고 말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당장 기타 연습을 하고 싶어 좀이 쑤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냉큼 올라온 학교 옥상은, 생각과는 달리 다른 학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학교 설비가 나쁜 것도 아니니 굳이 옥상까지 올라와 밥을 먹을 필요는 없을 테지. 가끔 즐기기에는 특별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신학기도 아니니 그런 신선함도 이제는 크게 줄었을 터. 레온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레온은 점심 도시락을 옆에 두고,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 들었다. 지금은 점심 식사보다는 당장 기타를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가볍게 기타 세팅을 마친 레온은, 밤새 머릿속에 쑤셔 넣은 악보를 떠올리며 연주를 시작했다.

바람 소리를 가르며, 옥상에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옥상 연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합동 연습 동안 나유타에게 계속 지적받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아직은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연주였던 만큼 지적받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수정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전날처럼 레온만 지적을 받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라이브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합동 연습과 옥상에서의 개인 연습을 반복하며 수정된 악보를 몸에 익혀가는 와중. 이날도 레온은 어김없이 옥상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밴 일과. 첫 연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고 나서는 전날 지적받은 부분이나 연주가 매끄럽게 되지 않는 부분들을 다듬어나갔다. 이번엔 나유타에게 혹평을 들었던 소절을 연습할 생각.

“…으음. 여기에 좀 더 강약을 넣어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미니 앰프로 눌러 고정한 악보 위로 개선안을 적은 후 다시 기타를 잡았다. 그리고 메모한 부분을 연주하려는 순간, 끼익, 하고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껏 누가 옥상에 올라온 적은 없었는데. 의아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문 쪽을 쳐다보면,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겍. 나유타?”

“미소노냐.”

힐긋, 레온을 쳐다본 나유타는, 그렇게 한 마디만을 내던지고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레온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 말을 걸면 목소리는 들릴 테지만, 대화를 하기에는 조금 먼 위치였다. 보통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보면 옆에 와서 말이라도 걸지 않나. 뭐, 나유타답기야 하지만.

물론, 나유타가 지켜보는 앞에서 개인 연습을 하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잘되지 않는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몸에 익혀야 하는데. 이기고 싶은 상대에게 어설픈 모습을 보이고 싶을 리가.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지금 연습을 하지 못하면 스튜디오에서 또 대차게 혼날 테니까. 귀중한 연습 시간을 나유타가 신경 쓰여 날려버리는 것 역시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나유타를 애써 무시한 채 기타를 잡은 레온은, 메모한 내용을 떠올리며 기타를 연주했다. 아까보다는 훨씬 괜찮아진 느낌. 나유타가 요구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몇 번 반복하면 분명……,

“맨 처음부터 다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그 부분을 치려 하자, 갑자기 나유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반항하듯 노려보며 소리를 냈지만, 나유타는 그런 레온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고 했던 말을 반복했다.

“처음부터 치라고.”

“너 말이지……. 지금은 합동 연습 시간이 아니라고. 혼자 연습할 거니까 내버려 둬.”

“하. 그런 형편없는 연주로 연습이라고.”

“…….”

그 말에 나유타를 노려보는 눈에 힘을 실었지만, 나유타가 미간을 찌푸리자 레온은 결국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기타를 잡았다. 점심시간은 짧으니까. 이런 곳에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뭘 어쩔 셈인 거야, 저 녀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레온은 나유타의 시선 속에서 첫 소절부터 연주를 시작했다. 무대에 서는 처지이니,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에는 익숙했다. 그 시선이 같은 밴드의 보컬이라는 것은 새로운 느낌이었지만.

나유타의 시선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기타를 치고 있자, 도입부가 끝나고 A멜로에 도입하는 순간 나유타의 목소리가 기타 소리에 실렸다. 그렇게 나유타의 노랫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순식간에 공기를 확 휘어잡는 듯한 묵직한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기타를 치며 힐긋 나유타를 보면, 앉은 자세에서도 무대에서와 다를 바 없는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절대 왕자. 폭군. 제왕.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위압감, 존재감. 그렇지만, 지금은 레온의 소중한 연습 시간이었다. 나유타에게 위압 당한 채로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레온이 빛날 시간이었다.

나유타의 존재감을 삼킬 듯이, 나유타에게 싸움이라도 거는 듯한 도전적인 기타. 기타 소리에 날이 서며 노랫소리와 부딪혔다. 완급이 실려 리듬감이 느껴지지만, 보컬을 지탱하는 것이 아닌 정면으로 싸움을 거는 듯한 강렬한 사운드. 그 도발에 나유타는 하, 하고 코웃음을 치는가 싶더니, 싸움을 받아들이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강렬하고 선명하면서도 섬세한 보컬이 레온의 기타 소리를 집어삼킬 듯 울리고, 나유타의 소리가 강렬해질수록 레온 역시 그 소리와 열기에 취한 듯 점점 날을 세워갔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소리에 벼려진 날카로운 창날이 맞부딪히며 열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

악곡의 끝. 나유타의 입이 닫히고, 레온의 손이 멈췄다. 고작 한 곡, 그것도 앉아서 쳤을 뿐인데도 열기에 땀이 흐르는 기분. 채 가시지 않은 고양감과 곡이 끝나버린 것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을 삼키며 작게 숨을 고르고 있자니, 나유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하, 얼마든지.”

나유타의 말에, 숨을 고르던 레온이 기타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다시 옥상에 울리는 리듬 기타 파트의 선율. 그 위에 올라타는 나유타의 보컬. 이번에는 처음부터 불 튀듯 날카로운 소리가 맞붙었다. 방패 없는 창끼리의 대결. 연습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살벌한 풍경이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소리가 쌓이고, 날 선 강렬한 사운드가 옥상을 울렸다. 그렇게 서로의 음을 듣고, 공격하듯 연주하고 부르다 보니 어느새 B멜로. 분명 선선한 날씨임에도, 레온은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질까 보냐. 레온은 흐려지려는 집중력을 다잡고 고개를 들어 나유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강렬한 빨강. 일등성처럼 반짝이는 새빨간 눈동자. 햇빛을 받아 눈 아래로 드리운 긴 속눈썹의 그림자. 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얇은 머리카락. 그리고, 압도적인 노래를 내뱉고 있는 입.

…이런 노랫소리에, 작곡 실력, 거기에 비주얼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성격은, 뭐. 심각하지만. 그 부분은 분명 켄타 상이 잘 처리할 테지. 이런 녀석이라면, 틀림없이 뜰 텐데. 음악에 관심이 없는 녀석들조차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아티스트가 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유타를 계속 바라보고 있자, 시선을 느낀 나유타가 노래는 멈추지 않은 채 레온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 등. 익숙한 거리감이었다. …아. 맞아. 이 거리. 무대에서 나유타와의 거리구나. 아까까지는 저를 마주 보고 앉아있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무대에서, 스튜디오에서 항상 보던 그 뒷모습과 같았다. 그걸 깨닫자, 왠지 더욱 달아오르는 느낌.

이 풍경, 이 느낌, 이 거리감마저도. 왠지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연주하고 있는 곡은 전혀 청춘 영화다운 운율도, 가사도 아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나유타의 그런 면이, 좋았다.

…잠깐. 뭐? 갑자기 제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당황한 탓인지, 레온의 손에서 피크가 삐끗하며 미끄러졌다. 그와 함께 기타 소리가 멈추고, 나유타의 노랫소리도 뚝 끊겼다.

“하아.”

손을 멈춘 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레온을 잠깐 돌아본 나유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간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문 쪽으로 걸어가는 나유타. 뭐야, 저 녀석. 대체 뭐하러 온 거야. 그 모습을 보니 혼란스러움보다 의문과 짜증이 앞서, 레온이 나유타에게 따지듯 말을 걸었다.

“…넌 결국 뭐 하러 옥상에 왔던 거야?”

“복도까지 허접한 기타 소리가 들려서, 뭐 하는 녀석인가 보러 왔다.”

“무, 뭣……,”

소리는 적당히 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껏 연습하던 게 전부 아래층까지 들렸단 소린가. 화악, 얼굴에 열이 오른 레온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나유타를 노려볼 뿐. 나유타는, 그런 레온의 시선은 무시한 채 옥상을 빠져나갔다.

젠장, 이렇게 된 거, 완벽하게 연주해서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어 주겠어. 이제는 닫힌 옥상 문을 노려보며 이를 악문 레온은 다시 기타 연습에 몰두했다. 물론, 앰프 소리는 조금 더 줄이고.

 

레온은 제 머릿속을 집어삼키려 하는 감정을 무시하려는 듯, 점심시간 내내 몇 번이고 기타만 쳐댔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왠지 나유타와 세션을 하기 전보다 연주가 수월해진 느낌. …그러고 보니. 나유타, 아까는 아무런 지적도 안 했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면 분명 그 특유의 짜증 나는 말투로 무어라 했을 텐데. 그렇다면, 아까의 연주는 나유타가 원하는 소리라는 의미였다. 그 감각을 제대로 붙잡는다면, 분명 라이브 당일도 문제없이 해낼 수 있을 터.

이렇게 조금만 더 갈고 닦는다면 라이브는 문제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유타의 뒷담을 하던 녀석들이 신경 쓰였다. 실력을 더 키운다면, 그렇게 라이브를 반복해 쟈이로의 이름이 더 알려진다면, 그 녀석들의 귀에도 쟈이로의 대단함이 들어갈 테지만. 당장 레온의 기분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라이브 자리. 아직 자리 있으려나.”

그런 상황에서 퍼뜩 생각난 것이, 녀석들에게 라이브를 보여주는 것. 어차피 쟈이로에서 라이브에 사람을 부를 만한 건 미유키 정도니 관계자 티켓은 남아있겠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로 켄타에게 이에 관해 물어보자, 오늘 스튜디오에서 티켓을 전해주겠다는 켄타의 답장이 도착함과 함께 예비종이 울렸다. 레온은 품에 안고 있던 기타를 정리해 케이스에 갈무리하고, 나유타가 앉아있었던 자리를 잠깐 눈에 담았다.

저만큼이, 나유타와의 거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왠지 조금은 애타는 기분이 드는 거리였다.

 

그 뒤로 켄타에게 티켓을 받아 녀석들에게 전해주고, 매일같이 옥상에서, 스튜디오에서 연습을 하고. 그렇게 찾아온 라이브 당일. 오늘 연주할 악곡의 난도는 평소의 배였던 만큼 대기실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딱딱한 공기 속에서, 라이브 하우스 스태프와 마지막 조정을 하던 켄타가 대기실에 돌아와 레온에게 다가갔다.

“레온, 네가 초대한 두 사람. 입장했다는군.”

“…그런가요.”

티켓을 전해줄 때 애매한 반응을 보여서 조금 걱정했는데. 녀석들이 왔다면 더욱 어중간한 연주는 할 수 없겠지. 그런 생각으로 기타 튜닝에 집중하는 레온에게, 미유키가 의아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에, 뭐야. 레온 군. 누구 초대한 거야?”

“아니, 뭐……. 그냥. 반 친구들이야.”

“하. 쓸데없긴. 소꿉놀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다른 곳에서 해.”

“읏……,”

나유타의 말에, ‘이게 다 널 위해서……!’ 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킨 레온은 신경질적으로 튜닝에 열을 올렸다. 굳이 나유타에게 일의 경위를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유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사실은 자기만족 때문이었으니까.

나유타는. 대단한 녀석이다. 평가받아야 마땅한 녀석이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짜증 나는 녀석. 그런데도 나유타의 곁에 남아있는 것은, 나유타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유타가 만드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은 분명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재능의 소유자. 그리고, 나는 나유타의 한 발 뒤에서, 나유타에게 맞붙는 도전자. 자신이 결코 나유타에게 끌려다니며 굴복할 뿐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쟈이로가 나유타의 억지로만 굴러가는 밴드가 아니라는 것을, 쟈이로의 빛을, 보여주고 싶었다.

“GYROAXIA 여러분, 스탠바이 해 주세요!”

레온이 튜닝을 끝낼 즈음,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멋지게 해보자고. 레온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녀석들에게도, 나유타에게도. 멋지게 한 방 먹여줄 각오를 하고.

 

강렬한 미유키의 비트, 심장까지 깊게 울리는 료의 베이스. 정확한 멜로디를 새기는 켄타의 리드 기타. 무대 위의 공기는 뜨거웠다. 자칫하면 연주자인 제가 말려들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유타의, GYROAXIA의 곡은, 그런 곡이었다. 사람을 열광하게 만드는 존재. 그것은 비단 관객뿐만이 아니라, 무대 위의 연주자마저 통째로 집어삼키는 열기였다. 이런 연주라면, 분명 보러 온 그 녀석들도 쟈이로의 진가를 알아챘을 테지. 그런 생각을 얼핏 했지만, 무대에 선 이상, 이런 연주를 본 이상 이제 그런 녀석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저 이 열기에 흠뻑 빠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잔뜩 달아오른 연주를 타고, 나유타의 노랫소리가 분위기를 장악했다. 이 목소리는, 이 노래는. 나유타를 고스란히 담은 것. 아사히 나유타라는 존재 그 자체. 그리고 이 기타는, 그런 목소리를, 나유타를 세상에 뻗어 나가게 하고 있었다. 레온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나유타의 저 목소리와 제 기타가 같은 무대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 자리가, 미소노 레온이 서 있을 곳. 여기가, 나유타에게 도전할 곳.

눈앞이 반짝거렸다. 무대 조명보다도, 그것보다도 나유타의 모습이 환하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넋 놓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고 기타를 치는 손을 움직였다. 압도적인 재능. 그것에 마냥 무릎 꿇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나유타를 떠받칠 뿐인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늘 이 자리.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 내일이 안된다면 또 그다음 날. 몇 번이고 이 자리에서, 쟈이로에서 나유타에게 도전할 심산이었다. 같은 무대에 서서, 저 뒤통수에 강하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그런 연주를 하고야 말겠어.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으며. 레온은 옥상에서의 세션 이상으로 나유타에게 전력으로 맞부딪혔다.

그런 레온을 비웃듯 나유타는 노랫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고,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팔을 흔들며 그 열기에 흠뻑 빠진 관객, 불붙은 나유타와의 전투. 이 순간이, 미칠 듯이 즐거웠다. 열기에 삼켜져 머릿속은 어찔거렸지만, 그보다 더한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덮쳐 연주는 극에 달했다. 저보다 한 발 앞에 선 나유타의 뒷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도 높고 거대한 벽이었지만, 그만큼 언젠가 뛰어넘고 싶은 존재.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가 속한 쟈이로라는 성좌를 이끄는 단 하나의 일등성이었다.

나유타의 음악은, 나유타의 노래는 아사히 나유타 그 자체. 아사히 나유타라는 사람이, 그의 삶을 향한 태도가 통째로 담긴 것. 그런 나유타의 음악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도 좋다는 이 마음은, 언제까지고 따라가고 싶다는 이 마음은. 분명.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 테지.

그래. 이런 나유타라서. 제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나유타라서, 좋았다. 그날 옥상에서 그 감정을 깨달은 이후로 줄곧 고민해왔지만. 분명, 나유타의 노래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 역시 나유타를 좋아하기에. 그렇기에 생긴 마음이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뜨겁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까지 이기고 싶은 것은 나유타뿐이었다. 이렇게 짜증 나게 만드는 것도, 이렇게 흥분하게 만드는 것도. 레온의 모든 격정적인 감정이 향하는 상대는, 매번 나유타였다.

정말 끔찍하게 싫은 녀석이지만, 그만큼, 정말 좋아. 그 모순된 감정을, 레온은 기타 소리에 전력으로 실었다. 나유타의 등이, 조금은 가깝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라이브가 끝난 후의 대기실은 아직도 무대 위에서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 후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나유타는 짐을 정리하고 나서도 달아오른 열기가 식질 않는지, 제 셔츠를 펄럭이다가는 ‘바람 좀 쐬고 온다.’ 한 마디만을 툭 던지고는 누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라이브가 끝나고도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해가 떨어져 쌀쌀할 시간. 달아오른 몸으로 찬바람을 그대로 맞는 것은 좋지 않을 터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유타가 나간 문을 잠깐 바라보던 켄타는, 레온에게 나유타의 재킷을 건네며 말했다.

“…레온, 나유타한테 겉옷 좀 전해주고 올래? 나는 라이브 하우스 측이랑 얘기할 게 있어서.”

“……하아. 다녀올게요.”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유타에게 전할 말도 있었으니. 짧게 한숨을 내쉰 레온은 재킷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라이브 하우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면,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이제는 완전히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유타가 눈에 들어왔다. 색소가 연한 나유타의 피부가, 밝은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감기 걸려. 옷부터 입어.”

“……쯧.”

나유타가 선 위치, 그 한 발자국 뒤까지 다가온 레온이 건넨 재킷에, 나유타는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옷을 받아 챙겨입었다. 뭐, 보컬로서의 의식만큼은 높은 녀석이니까. 감기에 걸리는 것은 달갑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유타를 잠깐 바라보던 레온은, 시선을 하늘로 옮기며 입을 열었다.

“나유타, 너. 옥상에 올라왔던 날. 일부러 도와주러 왔던 거지.”

“하아?”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목소리.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유타가 그날 보인 행동은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복도까지 기타 소리가 들려서 누군지 보러 왔다.’ 그 말을 들은 당시에는 당황한 탓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지만. 기타 소리가 들렸다면, 그 곡을 작곡한 본인이 기타를 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기타 소리가 들린 것이든, 그게 아닌 다른 이유든. 분명 레온이 옥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올라온 것일 테지.

그렇지만, 나유타가 그 사실을 부정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굳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꺼낸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그날의 진상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유타가 저를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으니.

그리고, 지금은 이런 것보다 더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옥상에서 세션을 한 그날부터 오늘 라이브를 시작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고민하고 망설였던 말. 하지만, 오늘의 라이브로 확신했다. 이것이 한순간의 감정이 아님을. 거짓된 감정이 아님을.

“나유타, …나, 너 좋아해.”

툭, 던진 말은 지독하게도 뜬금없고,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제 감정을 이 이상 어찌 꾸며야 할지 몰랐다. 고백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심지어 그 대상이 줄곧 짜증 난다고 외쳐대던 상대라면, 저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용기가 가상하다고 느껴질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돌아온 답변은 너무나도 담백한 한 마디.

”그러냐.“

간단하다 못해, 레온의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조차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답변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동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짜증이 일었다.

“……어이, 잠깐. 그거뿐이야?”

“뭐가 더 필요한데?”

“너, 정말……. 사람이 고백을 했으면, 받아준다거나, 싫다거나, 그 정도는…….”

“그러면, 뭐가 바뀌는데.”

“뭣…….”

어이가 없어 버럭 소리를 내지르려던 레온은, 불타는 붉은빛이 저를 돌아보는 시선에 목 끝까지 올라왔던 불평을 그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유타의 말은, 거절의 의사도. 제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나유타와 레온의 관계에서는, 이 답이 최선이었다. 지금 둘의 관계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사랑의 고백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의 격돌. 설령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속삭임이 아닌 부딪힘이었다.

…그리고, 나유타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사귀는 관계가 된다고 한들, 데이트를 한다거나, 나유타와 커플 같은 짓을 하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유타에게 차인다고 하더라도. 레온은 쟈이로에 남아있을 셈이었다. 나유타의 답이 무엇이든, 둘의 사이에 바뀌는 것은 없었다. 무언가 바뀌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나유타와 레온의 거리가 변한 후. 나유타와의 거리가 좁혀진다면. 나유타를, 따라잡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

“할 말 끝났으면, 난 돌아간다.”

“……젠장, 같이 가.”

레온은 앞서 걸어가는 나유타의 뒤를 쫓았다. 언제나, 내가 보는 것은 저 등. 내 앞을 달려가는 먼 뒷모습. 아직은, 이것이 나유타와 레온 사이의 거리였다.

나의 앞, 너의 뒤. 이 사이의 간격은 분명 조금씩 좁혀지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진 끝에 네 옆에 나란히 서게 되면. 네 눈동자가 나를 온전히 담게 되면. 그때,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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