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쥰] 뱀파이어가 되~

에쿠님 생일 축전

숨이 거칠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옷은 붉은 액체로 젖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스자키 쥰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비루한 삶도 여기서 끝일 거라고.

그래, 어차피 남을 좀 먹는 인생 따위는 사라지는 게 나을 지도 몰라. 비참한 삶이었잖아.

은총알은 관통되지도 못하고 심장을 찔러댔다. 차라리 곧 바로 죽는 편이 나았을 텐데.


쥰은 마지막을 생각하며 로브의 후드부분을 벗었다. 눈앞에는 흰 들꽃이 빼곡하다. 희고 푸른 빛 속에서 오로지 쥰만 이질적이었다. 이런 곳에서의 마지막도 나쁘지 않을 지 몰라.

천천히 꽃 위로 몸을 뉘었다. 뱀파이어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거지?


또 다른 뱀파이어는 만나본 적 없다. 어렸을 적 보육원에서 모두를 죽이고, 그 이후 도망만 치던 삶을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잠도 오지 않고, 음식에 대한 식욕도 잃었다. 다만 몇년에 한 번씩 강하게 드는 흡혈 충동에 도망치기를 반복할 뿐.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쥰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 사람을 죽인다니…,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 않게 자라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서일까. 회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이 인정할 수는 없다.


눈을 감고 다른 감각에 집중하자 자꾸 옛 기억이 떠올랐다. 도망을 치다가 우연히 한 성당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뱀파이어를 죽이고자 하던 이들이 성당을 습격했을 때, 쥰은 무작정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장 안쪽에는 기도를 위한 것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방이 있었는데, 그곳 테이블 아래에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짙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한 신부님과 눈이 마주쳤다. 당장 소리를 질러 사람을 모을까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쥰을 숨겨주었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쥰에게 성당에 머무르라고 해주었다.

이유를 묻자 그저 ‘너와 같은 존재를 본 적 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서툴렀지만 즐거웠다. 성당의 다른 아이들보다도 청소가 서툴고, 밀가루가 든 마대를 전부 쏟아버려 수녀님에게 혼이 났을 때도….


그런 사랑스러운 날들은 어쩜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지.


그날의 밤은 그랬다. 갈증이 멈추지 않아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목을 축이고 싶었다. 잠 기운에 비틀비틀 걷다가 어느순간 괜찮아졌다. 주방으로 가서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는.


자신을 거두어 준 선량한 은사님을 해한 괴물.


비명소리와 함께 누군가 총을 겨누었다.




그렇게 또 다시 도망친 끝이 지금이다. 



꼭 감은 두 눈동자에서 액체가 흘러내렸다. 괴로워. 그만둘래. 더 이상은,

못하겠어. 졸립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눈을 깜빡거리자 서서히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검은 곱슬머리의 사내. 그는 쥰의 뺨을 물에 적신 천으로 부드럽게 닦아주며 극진히 간호하고 있었다.


“괜…, 찮아요?”


쥰은 남자가 천으로 자신의 눈가를 닦아주자 그제서야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흡, 흐…, 흐읍….”


남자는 쥰의 등을 두드려주며 울음이 그칠 때까지 다독여주었다. 그 손길이 마치 살아도 된다는 말 같아서 쥰의 울음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꽃밭에 쓰러져 있는 걸 보고 데리고 왔어요. 피 칠겁을 했는데 상처 같은 건 없어서….”


남자의 말처럼 쥰의 가슴은 멀쩡했다. 분명 은총알을 맞고 죽음 직전까지 갔음에도. 신기한 일이었다. 남자는 쥰이 나쁜 일을 겪었다 생각했는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응답했다.


남자의 이름은 쿠로카와 토모루였다. 우연히도 쥰과 나이가 같았기에 내친 김에 말까지 편하게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방금까지 존댓말을 썼던 이와 갑자기 말을 트는 게 조금 어려웠지만 쥰은 속으로 토모루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보았다.


소매를 두세번 접은, 어깨선이 맞지 않는 셔츠. 벨트를 있는 힘껏 조인 바지.

발 뒤가 한참 남는, 벗겨질 것 같은 구두. 토모루의 옷가지를 빌려 입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쥰은 개울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몇번 비추어보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심장에 분명 은총알이 박혔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죽지 않았다. 아니, 토모루가 없었다면 죽었겠지만.


끔찍하게 사람들을 죽인 괴물이면서도 자신은 살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


가슴 안쪽이 욱씬거렸다. 쥰은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토모루였다.


“왜 거기에 그러고 있어?”


자신에게 내미는 손을 잡자 있는 힘껏 당겨져 자리에서 일으켜졌다.


“토모루.”

“응.”

“나, 비밀이 있어. 토모루한테 말해야하는데…, 말해야 하는데….”

“...”

“못하겠어…. 토모루가 날 미워하게 될까봐….”

“그렇다면 천천히 해도 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고향친구라며 마을사람들에게도 소개 시켜주고, 일을 돕게 했다. -사실은 쥰이 실수한 것을 토모루가 수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쓰였다-

평화로운 날의 반복이었다. 싸우거나 다투는 날도 없이 맛있는 걸 먹고 조금 일을 하다가 잠드는….

다만, 침대가 하나 뿐이라 서로 침대를 쓰라며 언쟁이 있기는 했다.


이 상태가 편안해지니까 쥰은 더욱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떠나야한다는 생각과 여기에 더 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던 날에 고통은 다시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세탁한 빨랫감을 바구니에 옮겨 안으로 들고 오던 쥰은 극심한 통증에 바닥에 구르듯 넘어져버렸다.


타드는 듯한 작열감, 입가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액체는 붉은 빛이다. 왜 갑자기 지금일까.


아니, 왜 그동안 유예를 줬던 걸까. 신음도 겨우 낼 수 있을 정도로 또 다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마지막이라면 토모루를 보고 싶어.

하지만 이런 모습 따위는 보여줄 수 없다. 끔찍한 괴물이란 걸 들키는 순간에 도망가 버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로 마지막이 최악이 되어버릴 테니까….


천천히 눈을 감는데, 누군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아, 시원한 느낌. 점점 호흡이 가벼워졌다. 죽는 건 이런 걸까. 쥰이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이 있었다. 분명 토모루가 맞는데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다.


“깨어났는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피를 쥐어짜내고 있던 손을 거두고 대충 천으로 피 얼룩을 문질러 닦았다. 축축한 턱을 손등으로 쓱 닦은 쥰은 붉고 끈적한 액체에 놀라 뒷걸음질쳤다.


“무얼 놀라고 있는 거지? 너도 뱀파이어면서.”

“...”


정체를 들켰다는 생각보다도 눈앞의 존재에 위화감이 앞섰다.



“어떻게 된거야…?”

“나의 이름은 라이트. 반쪽짜리 뱀파이어 담피르다. 하지만 여태껏 억눌러져 있었지. 네가 알던 그자는 이제 없어. 존재가 소실되었다. 그래, 쉽게 말하자면 죽은 거야.”

“말도 안돼! 토모루는….”

“토모루라고 하던가? 그자는 나를 가둬두고 인간으로 살기를 선택했으면서 결국엔 멍청한 짓을 해버리더군. 고작 다 죽어가는 뱀파이어 하나를 살리겠다고.”


코웃음을 치며 비웃는 라이트를 보며 쥰은 절망감에 주저앉아버렸다.


괴로워. 미칠 것 같은 괴로움 속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엉켰다. 마구잡이로 피를 마시고 싶어.


“하, 날 잡아먹으려고?”


무작정 라이트에게 달려든 쥰의 눈동자는 탁하고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맑던 눈동자가 무언가로 더럽혀진 것처럼….


라이트가 쥰을 밀쳐 넘어뜨리고 한손으로 목을 조였다. 발버둥치며 몸에 잔 상처가 났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점점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둘 다 그만하도록.”


그 말에 라이트는 손에 힘을 풀었고 쥰은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폐하.”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린 라이트의 앞에 금발의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남성이 나타났다. 생긋 웃으며 쥰에게 다가간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드문 일이군. 이런 경우는.”


이성을 찾지 못하고 날뛰는 쥰을 손짓 한 번에 제압한 그는 펠릭스, 흡혈귀의 군주였다. 모든 흡혈귀를 태어나게 하는 자. 모든 흡혈귀의 위에 서있는 자.


“이름은 잭이 좋겠군. 라이트.”

“예.”

“인격이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그러니 네가 관리하도록.”

“알겠습니다. 폐하.”


펠릭스가 사라지자 마자 라이트는 잭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순식간에 발버둥이 사라지고 몸이 축 늘어졌다. 옷 뒷깃을 잡아 바닥에 끌리도록 질질 끌어당겨 마계의 입구로 다가갔다.


“토… 모루….”


아주 작은 그 목소리에 라이트는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얼굴을 구기며 혀를 찼다. 이상하다. 아무리 갇혀있었다고 해도 폐하의 오른팔인 그가 막 태어난, 그것도 자아를 억제할 줄도 모르는 저런 천한 것의 말에 압도당해서 움직임을 멈추다니….


이상하게도 불쾌한 어둡고 어두운 밤이었다. 





에쿠님에게 드리는 내년도 생일선물입니다

로판 토모쥰을 결국 찾지 못해서! 즉흥적으로 써버린 뱀파이어 토모쥰

아타시 밤빠이야!

원래는? 이런 결말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내 심장을 줄게. 그러면 쥰은 살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건.”

“쥰이 살아간다면 나는 행복하니까.”


  ↑

이런 대사를 쓰려고 한 것 같은데? 며칠 텀두고 썼더니 내용을 까먹어서 또 즉흥적으로 쓰고 나서 밑을 쭉 내리니 이런 대사가??? 


휴- 드린다고 햇던 토모쥰 다 드렷으니 이제 저는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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