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하루디

AU

성당은 꽤 어수선했다. 건강하던 신부님이 병상에 누운 지도 벌써 열하루가 넘었다. 성당은 어수선하고, 다들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서로의 눈치만 보며 자리를 지켰다. 


디 신부님께서는 좋은 분이셨다. 성당에 있는 누구보다도 키도 크고, 그만큼 인자하신 분이었다. 빵을 훔쳐서 주인에게 맞아 죽을 뻔한 나를 감싸다가 큰 상처를 입기도 하셨다. 성이 난 주인에게 은화 한 닢을 건내며 나를 성당으로 데리고 오셨다. 그때부터 새 삶을 살기로 했다. 매일 같이 성당을 쓸고 닦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기로. 

오늘 역시 시커먼 먼지로 뒤덮인 창틀을 닦는데,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 윤곽이 보였다. 


온몸이 새까매서 순간적으로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그는 두꺼운 양산을 들고 있었다. 머리가 날개죽지 정도는 덮을 길이 같은데 검정 베일로 쌓여있어 색조차 티가 나지 않았다. 치렁치렁한 소매 끝이 움직일 때마다 팔꿈치까지 드러났는데, 가죽으로 된 장갑이 팔 안쪽까지 길게 피부를 가리고 있었다. 목 위까지 올라온 카라며,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드레스. 철저하게 피부 한 점 노출시키지 않았다.

그의 몸에 걸쳐진 것들은 이제 나이 여덟 먹은 꼬마가 보더라도 상당한 고급품처럼 보였다. 

저렇게 섬세하고 화려한 레이스의 드레스는 이런 시골 마을이 아니라 수도에 가더라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피부병이라도 앓는 귀족부인인가. 예전에 피부 위에 수포가 얼룩진 여성을 본 적 있었다. 그자는 죽는 날까지 매일매일 성당을 찾았다. 어찌됐든, 지금은 기도를 해줄 수 있는 분도 없었다. 말을 전하려고 다가가는데, 뜨거운 태양볕에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은 6월의 한낮이었다. 반팔을 입어도 후덥찌근한 날씨인데 긴팔? 거기다 온통 새까만 색. 아직 디 신부님은 살아있는데, 장례식에 온 객 같아 기분이 묘했다. 아니면 신부님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인지도 몰랐다.


잠깐 생각을 하는 사이,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잘못 봤나? 눈을 몇 번 비비고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오늘치 청소를 끝마치고 빵을 들고 신부님의 방문을 두드리려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주님의 뜻을 전한다는 자가 …를 마음에 품어…

같잖게도 너와의 입맞춤이 기쁘다고….」


눈을 가늘게 뜨고 열쇠구멍 사이로 훔쳐보았다. 신부님의 침상 옆에 있는 누군가. 해가 저물고 있었다. 창틀에서 바람이 들어와 그의 베일을 헤집어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짙은 분홍색. 그는 슬퍼보였다. 울고 있는 걸까.

아주 예전에 신부님께서 고해성사하던 것을 훔쳐들은 적 있었다. 신부님은 할 일이 많았고, 나는 할 일이 없는 어린아이였다. 관심을 받고 싶다는 이유로 테이블 밑에 숨어있었는데, 신부님은 내가 있는 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신부님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죄를 토해냈다.

「저는 인간이 아닌 자를 마음에 품어버렸습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어째서인지 물기가 섞인 느낌이 났다.

그때를 떠올려 깜짝 놀라고 말았고, 빵이 든 쟁반을 떨어트리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홀로 남은 신부님에게 다가가보았더니 아주 살짝 미소 지으며 눈을 감고 계셨다. 지긋이 엄지를 타고 손목에 손가락을 대자 뛰어야 할 것이 사라져 있었다. 고요했다.

신부님의 장례식은 조촐하고 간단하게 이루어졌고,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관을 묻었다.

신부님의 비석 위에는 흰 국화들 사이에는 탐스럽게 피어난 백합 꽃 한 송이가 있었다. 누가 두었는지 알만한, 저물지 않는 꽃 한 송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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