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레온] 레온이 귀 뚫는 이야기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보는 레온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조금은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딱딱한 표정. 그런 표정을 지은 채 몇 번이고 제 오른쪽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거울로 그것을 살펴보던 레온은, 한 손에 들고 있던 매직 펜으로 귓불에 작게 점을 찍었다.

“…하아.”

세면대 옆의 선반에는 소독용 거즈와 피어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레온은, 오늘 귀를 뚫을 생각이었다.

귀를 뚫는 이유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켄타가 ‘이번 라이브 의상에는 귀걸이를 하는 게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꺼냈기 때문. 라이브에서 하는 것이라면 피어싱이 아닌 자석형이나 클립형 귀걸이는 연주 중 자칫 떨어질 수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귀를 뚫어 볼까 싶었을 뿐이었다.

켄타는 다른 액세서리를 조합하면 되니 굳이 이걸 위해 귀를 뚫을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어차피 밴드 라이브를 하다 보면 패션에도 여러모로 변화를 주는 것이 관객은 즐거워하지 않나. 물론 겉모습보다는 기타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만, 딱히 귀를 뚫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패션까지도 무대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걸 페스에 참가한 다른 밴드들을 보며 느꼈으니까. 이런 간단한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하겠다고 답했더랬다.

…그렇지만, 귀를 뚫는다는 게 레온이 생각한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굳이 병원까지 가서 귀를 뚫을 생각은 없었기에 근처 드럭 스토어에서 셀프 피어서를 사기는 했지만. 막상 귀를 뚫으려 하니 어쩐지 긴장되어 피어서에 쉬이 손이 가질 않았다.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쉰 레온은, 소독용 거즈를 들어 귓불을 닦았다. 알코올이 휘발되며 귓불에 시원한 느낌이 들자, 정말로 귀를 뚫는다는 게 실감이 나는 것만 같아 심장은 더 소란스럽게 울렁거렸다. 료나 미유키에게 ‘별로 아프지 않다,’는 말은 들었지만. 료의 말은 도무지 믿기가 어렵고. …미유키의 말도, 딱히 신뢰할만한 정보는 아니다. 미유키는 제 외모를 가꾸는 것에 꽤 정성을 들이는 편이니까. 그런 만큼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통증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지.

역시, 귀걸이는 안 한다고 할까. 그런 생각도 잠깐 머릿속을 스쳤지만, 고작 귀 뚫는 게 무서워서 했던 말을 번복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 피어서도 이미 사버렸고. 레온은 하아, 하고 또다시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에야 각오를 다진 것인지 피어서의 포장을 벗겼다. 그리고 짧게 심호흡을 하는 사이,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어이, 뭐 하는 거냐.”

“우왓!? ……하아, 뭐야, 나유타냐…….”

긴장하고 있었던 탓에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레온은, 뒤를 돌아보자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얼굴에 이제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젠장, 바로 끝날 줄 알고 화장실 문을 안 닫은 게 패착이었다. 이 녀석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이야.

“뭘 꾸물대는 거야.”

“꾸물댄 적 없거든. 신경 꺼.”

“우물쭈물대고 있는 게 눈에 거슬린다고.”

“……하아, 신경 끄라니까.”

나유타의 태도에, 긴장보다 짜증이 머릿속을 덮었다. 긴장이 사라진 레온이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고 말지, 싶어 다시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차에, 나유타가 제게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뭔데.”

“비켜.”

레온이 당황해 말을 더듬었지만, 나유타는 그런 레온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쏴아, 쏟아지는 물소리가, 찰박거리며 나유타가 손을 씻는 소리가, 이상하게도 레온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가 서 있는데. 굳이 지금, 여기서 손을 씻을 필요가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유타의 뒤통수만 마냥 노려보고 있자니, 수도꼭지를 다시 잠근 나유타가 레온을 돌아보았다.

“그거, 내놔.”

“…왜.”

“……쯧.”

나유타의 말에, 레온이 당황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손을 씻은 게, …이 이유였냐고.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제 손에 들린 것을 나유타에게 넘기는 것은 영 내키질 않았다. 그냥 혼자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데. 레온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유타가 레온의 손에 들린 피어서를 낚아챘다.

“…어이,”

“가만히 있어. 잘못 박아도 난 모른다.”

“아아, 진짜……”

다시 낚아채고 싶어도, 잘못 건드렸다가 바늘에 찔릴지도 모를 일이니. 한숨을 푹 내쉰 레온은 이내 반항을 포기하고 나유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황황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제 귀를 빤히 쳐다보자 왠지 시선을 똑바로 하기가 힘든 기분. 그렇다고 해서 시선을 피하는 것도 나유타에게 지는 기분이 들어 흔들리려는 시선을 어떻게든 고정하고 있자니, 나유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읏,”

“하, 아직 대지도 않았는데 쫀 거냐.”

“쫄, 기는 누가……! 네가 빨리 안 하니까……!”

나유타의 말에 버럭 소리는 내질렀지만, 그 목소리에 박력은 없었다. 나유타의 얼굴이 가까워진 탓에, 괜히 심장이 뛰는 기분. 나유타의 손이 제 귀에 닿자, 레온의 몸이 저도 모르게 흠칫 떨렸다. 소독한 탓에 서늘했던 귀에 닿는 따뜻한 손가락이, 이상하게도 가슴을 간질이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움직이지 말라고.”

“………….”

레온의 몸이 흠칫 떨리는 움직임에, 귓불을 바라보며 내리깔고 있던 나유타의 눈이 레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한층 더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빛이, 도무지, 견디기가 힘들어서. 어쩐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

이기니 지니 하는 것 이전에, 이래선 도무지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겠는데. 그런 생각에 결국 레온이 시선을 돌리자, 나유타는 작게 코웃음을 치고는 피어서를 잡은 손을 들어 올렸다.

시선을 피한 레온의 눈에도 그 움직임은 선명히 들어왔고, 나유타를 향한 짜증 탓에 사라졌던 긴장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유타에게 약한 소리를 하는 것만큼은 죽어도 싫어. 그런 생각에, 레온은 손끝에 힘을 주며 주먹을 꽉 쥐었다.

피어서를 들어 올린 나유타가 레온이 점을 찍어두었던 위치에 그것을 가져다 대자, 심장의 고동은 최고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귀에 닿은 날카로운 피어스의 바늘도 그렇지만. 가까이 붙어 제 귀를 잡은 나유타의 손가락이, 얼굴에 스치듯 닿는 나유타의 숨이. 나유타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져서.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가 나유타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귀를 뚫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런 걱정이 앞서려 할 즈음,

탁.

귓가에서 피어서의 스프링이 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린 뒤에야 귓불에서 서서히 퍼지는 은근한 통증.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됐지.”

“어, 응………….”

어쩐지, 이상한 기분. 거울을 힐긋 보면, 오른쪽 귀에 피어스가 달린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발갛게 상기된 제 얼굴과, 그걸, 보는 나유타의 모습이. 귀를 뚫으며 닿은 충격에 발갛게 달아오른 귓불보다도, 더 빨갛게만 보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제 모습에 레온이 당황하는 사이, 나유타는 선반 위에 피어서를 올려두고 자리를 떴다.

거울에서 나유타의 모습이 사라지자, 레온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귀에 뚫린 구멍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가슴 속으로 무언가가 들어차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감정의 화살표가 향하는 곳은 분명 나유타일 테지.

갑자기 머리를 채운 감정의 열꽃은 귀가 아물 때쯤은 가라앉을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금은, 그저 은근하게 퍼지는 열기와 통증 속에서 발버둥 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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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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