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그램] 그들의 성찬식
캐릭터 붕괴 요소 있음. 한창 영픽 볼 때 써서 번역투 심함.
윌은 앞에 놓인 음식을 무심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합리적인 도살을 마치고 얻어낸 싱싱한 고기는 누군가의 살과 내장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버리지 못한 윤리의식은 고개를 들고 끊임없이 윌을 괴롭혔다. 이젠 아무 소용 없음을 알면서도, '더 일찍 밝힐 수 있었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었더라면.' 따위의 생각을 했다. 윌은 언젠가 한니발이 적어 내리던 시간을 되돌리는 공식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쿠바에 도착한 후에는 모두 바뀔 것이라 여겼다. 한니발의 비밀스럽고 공적이던 상담실과 집도 윌의 한때 평화롭던 안전가옥도-한니발에 의해 안전한 장소라는 개념은 깨진 지 오래였다- 바랄 수 없었다. 바닷가에 정박한 부서진 배와 그곳에서 기어 나온 상처 입은 외국인을 처음부터 곱게 보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윌은 귀 언저리의 뜨뜻한 물과 찰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굳은 피를 바닷물로 닦아내고 주변을 살펴 몸을 숨길만 한 곳을 살폈다. 윌은 그늘과 수풀에 앉아 쉬다가 죽은 듯 늘어져 있던 한니발을 끌어놓아 두고 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그늘은 시원하지 않았지만, 잠시 기댈 곳은 되었다. 죽은 듯이 창백한 얼굴로 일어나자마자 윌을 찾는 모습은 윌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니발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절벽에서 몸을 넘기던 순간 제 몸을 단단히 끌어안고 등으로 떨어지던 한니발은 너무나 미련했고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스러웠다.
한니발은 몸을 급히 일으켰다가 얼굴을 찡그리고는 고통을 호소했다. 곧 윌을 보고는 여느 때와 같이 평이한 어조로 인사를 건내었지만 윌은 그 모양새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짧은 감상을 마친 후 한니발의 표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자신은 더욱더 싫었다.
"이제 둘 뿐이니 가면을 치워요, 한니발."
"당신에게만큼은 늘 진실로 대하려 했음을 알텐데요, 윌."
얼굴이 마주치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을 보고 윌은 이를 악 물었다가 그와 같이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꼈다. 평소에 부러 느긋한 얼굴을 하던 것 같이 감정을 숨기려 않고 가감없이 드러내자 윌은 밀려오는 모든 감정에 나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절망스럽게도 윌은 한니발에게 망가진 마음을 바쳤다. 그 또한 부서진 심장을 바쳤고 그래서 그를 용서하면서도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져가는 체스 게임의 말이었다. 비록 그 중의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 일지라도.
윌은 접시 위에 놓인 소시지와 달걀을 포크로 건드렸다. 곧 노른자가 터져나와 접시 가득 퍼졌지만 윌은 칼집이 들어간 소시지의 단면에 노른자가 스며드는 것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내내 윌의 상태를 살피던 한니발이 그의 텅 빈 눈에 크게 반응했다. 그는 당장 앞에 있는 것을 담아내기보다는 그것을 위하여 더 많은 것을 보는, 이제서야 겨우 눈앞에 잡아둔 사람이었다.
"윌,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들은 겨우 쿠바에 정착했다. 한니발은 완벽하게 에스파냐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그들은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로 어렵지 않게 침투하여 괜찮게 살 수 있었다. 애초에, 한니발이라는 사람은 빈곤함과 공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윌은 '알레한드로'라는 이름의 뱃사람으로 가장하여 이웃의 배를 봐주었고, 한니발은 '안토니오'라는 이름으로 의사 행세를 하였다. 그들은 머지않아 그럭저럭 살 만큼의 돈을 모았고 도심과 적당히 먼 괜찮은 집을 찾아 바로 계약하며 새로이 약속했다.
"내가 있는 이상, 의미 없는 살인은 안 돼요. 당신이 죽일 수 있는 건 살 가치가 없는 인간뿐이니까."
그 말을 꺼낸 순간, 윌은 한니발과 약속한다는 사실에 온몸이 긴장시켰고, 같이 살아갈 곳을 정해두고 처음으로 말을 나누는 것이 저질러왔던 죄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 윌의 기도를 긁어내렸다. 기대를 버리려고 했으나 닿는 눈빛이 절박하게 긍정을 바라고 있어서, 한니발은 만족스럽게 약속에 응했다.
"약속하죠, 윌. 이 약속을 깨기 위해서는 당신만이 필요할 거에요."
윌은 끔찍하게 단 말을 삼키기 위해 목울대를 꿀렁거렸고, 이내 눈을 떴다.
"윌?"
한니발은 윌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긴 테이블의 가운데에 앉아있었고 따뜻했던 달걀과 소시지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입맛이 없네요."
한니발은 걱정스러운듯 윌에게 무어라고 더 말하고싶은듯 했지만 윌의 다문 입이 단호하게 거부를 말했기 때문에 미묘한 표정으로 접시를 들어 치웠다. 윌은 한니발의 긴 팔에 요령있게 얹어진 세 접시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윌은 용서라는 말을 꺼렸다. 내뱉는 것도 삼키는 것도 어려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앉은 남자가 용서하는 방식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용서는 항상 피를 불렀다. 사람을 도륙내고 요리하고 섭취해 몸의 일부분이 되어 함께하는 것으로 용서를 베풀었다. 윌은 그 같은 짓을 하고싶지 않았다. 그와 동일한 존재, 동등한 존재가 되고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누르기 어려웠지만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을 도살해 삼키는 취미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윌은 '용서'라는 모든 행위를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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