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오비] 변칙적 애착 궤도와 범우주적 살별 프로토콜_11
새하얀 스케치북 같은 눈 밭에 람다 왕복선이 유려하게 착지했다. 아나킨의 비행 실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지만, 지금의 벤은 그의 비행 실력에 무어라 말을 얹을 기분이 아니었다. 벤은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람다왕복선의 출입문에 다가섰다. 출입문과 조금 떨어진 벽면에 붙은 수많은 버튼 중 가장 큰 버튼을 포스로 누르자 쉬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러자 차갑고 건조한 일룸 특유의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부에 들이쳤다. 일룸에 도착하기 전, 화물칸에서 이러저러한 방한 용품을 찾아 둘둘 둘러준 아나킨 덕분에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벤은 선뜻 바깥으로 나서지 못했다.
멍하니 함선 내부에 서서 문 모양대로 잘린 일룸의 풍경을 바라보는 벤을 보다 못한 R2가 다가와 삐릭 울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몸을 떨었다. 벤은 R2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어느 덧 땅과 함선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된 문에 발을 뻗었다. 그의 심란한 걸음을 따라 텅텅, 거리는 울림이 뒤따랐다. 뺨이 에일 정도로 시린 바람이 얼굴을 훑었다. 두텁게 쌓여 있던 눈은 무게가 실리자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냈다. 벤은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 다섯 개를 남기곤 우뚝 그 자리에 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각난 호수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벤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일룸은 제다이들의 주요 지역 중 하나로, 이 행성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은하계에서 오로지 제다이만이 알고 있었다. 이 행성의 진가를 알 리가 없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골디락스 존에서 한참 벗어나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개발이 어려운 행성에 불과했다. 게다가 혹독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행성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사람들이 꺼려하는 미탐사지역에 위치한 덕에 은하계 곳곳에서 영향을 주고 있는 문명의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않았다. 기껏해야 제다이가 세운 구식 사원이 이 행성에 있는 문명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제국이 세워지기 이전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였지만.
하이퍼스페이스를 빠져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일룸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참해서 검술 대련으로 만들어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얼음장으로 만들었다. 행성을 길게 가로지르는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와 문명의 이기가 들어서지 않았던 행성 곳곳에는 착굴용 기계와 채광용 장비를 든 수많은 제국 드로이드가 땅을 파고 있었다.
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소모해가며 제국이 파내고 있는 것은 일룸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카이버 크리스탈이었다. 그렇게 캐내어진 카이버 크리스탈은 제국의 마크가 그려진 컨테이너 박스에 담겨 제국 함선에 실린 채 어딘가로 유출되고 있었다. 제국에 의해 유린당하고 자원을 착취당하는 꼴은 흡사 노예와 같았다. 아니 이건 노예였다. 제다이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행성의 노예화를 두 눈으로 보게 된 벤이 착잡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제다이 기사단이 몰락하고 시스가 은하계를 통치하게 된 지금, 광선검의 주 재료인 카이버 크리스탈의 최대 생산지인 일룸이 멀쩡하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가장 치욕스러운 방법으로 제다이 사원을 제국 기지로 마개조한 뒤, 제국이 키우고 있는 인퀴지터들의 카이버 크리스탈 수급을 보다 원활하게 조절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보다 참혹한 제국의 만행을 두 눈으로 확인하니, 벤은 자신의 상상력이 안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설마 지하 깊숙한 곳에 매장되어 있는 크리스탈까지 필요 이상으로 캐내며 이 행성에 크고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벤은 이제 착잡함을 느끼더라도, 좌절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나아가지 않는 이상, 나아지는 일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마스터, 선크림은 꼼꼼하게 발랐어요?”
벤의 등 뒤로 아나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역시 일룸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제법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아나킨은 벤처럼 방한 용품을 둘둘 두른 채로 선크림 튜브를 들고 벤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미 크림을 바른 모양인지 얼굴이 살짝 번들거렸다.
“타투인에 있을 때도 바른 적이 없었는데 여기라고 별반 다르겠니?”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가 비명을 지르는 게 안 느껴지세요? 벌써 이마가 빨개졌다고요.”
“내가 무슨….”
“이런 눈밭은 햇볕을 반사해서 더 탄대요. 마스터가 알려주셨어요.”
아나킨은 자신의 손에 하얀 크림을 듬뿍 짜낸 뒤, 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의 턱을 잡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에 꼼꼼하게 선크림을 발라 댔다. 꼭 크림을 바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손길에 항복한 벤은 눈을 꾹 감으며 제자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나킨은 하얀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벤의 피부가 보다 쉽게 크림을 흡수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치 아이의 여린 피부를 다루는 것처럼 무척이나 부드럽고 꼼꼼하고 능숙해 보이는 손길에 아나킨이 누군가에게 크림을 발라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그래도 사원 근처는 변한 게 거의 없어서 다행이에요.”
아나킨의 말에 동조하듯 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국이 일룸을 건드린다면 당연히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원 또한 코러산트의 제다이 사원처럼 제국 기지로 마개조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가? 혹은 어떤 치욕적인 방법으로 훼손하거나. 겉은 무사해도 안은 제국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심장이 뛰었다.
오랜만에 들어온 일룸의 제다이 사원은 이곳저곳이 변해 있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벤의 걱정처럼 제국이 사원을 개조하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저 치울 사람이 없어서 두텁게 쌓인 눈과 마찬가지로 관리할 이가 없어 이곳저곳이 문드러진 제다이의 석상이 이리저리 널려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을 뿐이었다. 벤이 으스러지고 있는 제다이의 유산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을 무렵, 아나킨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사원의 트릭을 풀기 시작했다.
제다이들은 일룸의 귀중한 자원이 허튼 이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포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트릭을 만들었다. 생명체가 살기 힘든 이 행성에 굳이 사원을 세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니 카이버 크리스탈을 필요로 하는 제다이인 이상 사원의 트릭을 푸는 방법은 제다이들에게 있어서 아주 기초적인 소양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열어 햇빛을 들이고, 기계 장치를 조작하던 아나킨이 마지막으로 줄을 잡아당기자 천장에 대롱거리던 수정체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이동했다. 수정체가 향하는 곳은 바로 창문으로 들어온 빛줄기였다. 둥근 원을 그리며 벽을 비추고 있는 햇발에 수정체가 닿자 곧바로 굴절되었다. 올곧게 나아가던 방향이 틀어진 따스한 빛자리는 바로 아래에 있는 얼음벽에 닿아 그 두꺼운 벽을 서서히 녹여 나갔다. 스으으, 거리는 소리와 수중기가 피어났다.
“마스터.”
천천히 녹아내리는 벽이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고 이윽고 빙판이 되는 모습을 바라보던 벤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나킨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다소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에 벤이 먼저 물었다.
“뭐, 물어볼 거라도 있니?”
“음, 질문은 아니고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가 이리 공손하게 나오니 무슨 부탁을 할 지 벌써부터 무섭구나.”
“별건 아니에요. 아이들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죠.”
아나킨은 ‘당신에게 아무런 해도 되지 않을 거예요.’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벤은 이미 노련한 눈썰미로 그가 풍기고 있는 불온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필시 낯뜨거운 부탁이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사방에서 찔러오는 탓에 절로 뒷걸음질 치고 싶어하는 다리를 애써 붙잡았다. 아나킨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가 내뱉을 말을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마치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고 느리게 흘러갔다.
“제가 카이버 크리스탈을 무사히 갖고 온다면, 포옹해주세요. 꼬옥 끌어안아서.”
“아나킨, 내가 네 나이를 짚어주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알아요. 어엿하게 예비 아버지가 된 나이죠. 하지만 여기까지 오니 옛 추억에 잠길 수밖에 없는 제자를 이해해주시면 안 될까요? 혹시 아나요, 당신이 제 동기가 됨으로써 제가 더 잘하게 될 지.”
“난 내 아나킨에게도….”
“아, 혹시 불륜하는 거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면 악수로 만족해볼게요.”
“너,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럼 바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아나킨에 벤은 제 얼굴을 쓸었다. 그의 표정은 눈 앞의 남자를 어떻게 이해시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답은 빠르게 나왔다.
“애초에 나와 아나킨은 그런 단어를 쓸 사이도 아니란다. 그저…. 옛 사제 관계가 남긴 부스러기만 겨우 남은 사이지.”
“그럼 포옹이 문제될 건 없겠네요. 여긴 추우니까 함선에 가서 기다리세요.”
뭐, 벤이 아무리 머리 싸매고 고안한 방법이라 한들 아나킨에게 무조건 통한다는 법은 없었다. 아나킨은 벤이 사막에서 건내 주었던 ‘아나킨’의 광선검을 되돌려주고는 어느 새 모습을 드러낸 동굴로 향하려던 그때, 벤이 말했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천천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미안하구나. 빨리 갔다오렴.”
“물론이죠. 애초에 그 녀석도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크리스탈이 망가진 제다이가 향할 곳은 한 곳뿐이니까요. 금방 끝내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말을 마친 아나킨은 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곤 동굴 안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크리스탈의 시련은 제다이 스스로가 이겨내야 한다. 때문에 자신이 따라가봤자 도움은 커녕 집중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기에 아나킨의 뒤를 굳이 따르진 않았다.
아나킨의 발소리까지 완전히 사라지자 가슴 깊은 곳이 은은하게 따가움을 호소했다. 처음엔 아나킨이 걱정되어서 이러나 싶었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걱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오랜만에 맛본 타인의 온기가 식어가면 식어갈수록 가슴 한구석을 아릿하게 만드는 고통 또한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왕복선에 통신기가 없었다는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있다면 목소리라도 들어볼 수 있을 텐데. 일시적이지만 다시 혼자가 된 벤은 거대한 입구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사원을 둘러보았다. 원래로 을씨년스럽지만 한 사람의 부재가 더해지자 그 스산한 분위기가 한층 더 깊어 졌다. 자리에 앉아 명상이라도 하며 그를 기다릴까 했지만, 아까부터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분위기에 벤은 함선으로 돌아가 R2-D2와 함께 있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풀어진 실타래를 되감듯 들어온 길에서 반대로 나아가자 아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 다시금 벤을 맞이했다. 제다이 사원의 입구는 산의 중턱에 있었기에 일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서있는 설백산은 언제 보아도 그 우직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고, 제국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깊고 거대한 협곡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그 짙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간 벤은 기억의 첫 순간부터 굳건한 문명과 그 문명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이기 속에서 살아왔지만, 도시의 화려한 네온 사인과 크고 높은 건물보다는 장엄한 자연을 볼 때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내뱉었다. 아무리 문명이 그 휘황찬란함을 뽐낸다 한들 끝에 끝에서 자연의 수수한 위대함에 더 감탄하는 이유는, 우리 또한 그 위대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리라.
벤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각막에 아로새길 기세로 바라보았다. 자연이 일궈낸 아름다운 예술품을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번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벤의 가슴 한구석을 찌르르 울리는 산맥과 협곡은 가까운 시일내로 제국의 손에 허물어질 예정이었고, 벤에게는 그들을 막을 힘이 없었다. 벤에게 있는 건 광선검 두 자루였고, 제국군에게는 벤따위는 금세 재로 만들어버릴 무기들이 즐비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게 될 일룸의 풍경을 영정사진 마냥 눈에 새기고 있던 벤의 귀에 쐐액, 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주체를 떠올릴 수 있는 벤은 파드득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먼 상공에는 제국의 상징 마크가 그려진 왕복선 한 대와 그를 에워싼 타이 스타파이터가 보였다.
마치 시체를 노리고 몰려오는 까마귀 떼 같은 모습에 벤은 재빨리 그늘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벤을 보지 못한 건지 공격을 하진 않았으나, 제국의 함선들은 조각난 호수에 착지했다. 아무래도 근처에 볼일이 있는 듯했고, 반으로 쪼개질 듯한 일룸의 모습을 본 이상 그들의 목적은 카이버 크리스탈 채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땅에 착지한 함선에서는 열 명정도 되는 스톰트루퍼와 다섯 대의 드로이들이 나왔고, 그만큼의 채굴용 장비도 나왔다. 벤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자신들의 왕복선을 바라보았다. 구석진 곳에 착지한 덕에 스톰트루퍼들은 제다이에게 빼앗긴 왕복선이 엄한 곳에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지만, 그들이 왕복선을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껏 긴장한 탓에 갈라질 것 같은 목에 침 한번 삼킨 벤은 스톰트루퍼들의 동태를 살폈다.
각종 채굴용 장비가 쏟아졌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채굴 작업보단 그를 위한 사전답사인 듯했다. 채굴 같은 방대한 작업을 하기엔 스톰트루퍼와 드로이드의 수가 적었고, 보고서를 뒤적이며 서로 말을 주고받거나, 땅에 말뚝을 박을 뿐 다이너마이트로 땅을 헤집지도 않았다. 수도 적고, 가지고 있는 무기 허접 해서 저 정도는 벤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심금을 울리는 풍경을 조금 더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벤의 처지는 도망자 신분에 불과했다. 설령 베이더가 벤과 아나킨이 일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해도 그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소동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일룸을 빠져나가고, 그저 조용히 아나킨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그 다음에는? 아나킨을 원래 세상으로 보낸 다음에는? 갑자기 밀려온 질문에 벤은 고개를 흔들며 떨쳐냈다.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벤은 제국군을 곁눈질하며 빌었다. 대충 답사하고 돌아가길. 하지만 벤의 바람과는 반대로 제국군은 조각난 호수에서 벗어나 점점 사원으로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사원으로 돌아가 아나킨에게 알릴까 싶었지만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지라 곧바로 접었다. 그와 합류해봤자 나아지는 건 없었다. 아나킨의 시련에 방해만 될 뿐이고, 그저 제국군과 맞닥뜨릴 시간을 몇 십분 뒤로 미루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 언젠가는 마주해야 한다. 도망친다고 해봤자, 은하계는 이미 제국의 손아귀에 있고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완전히 도망치는 게 불가능 하다면 전 마주 할래요, 마스터.’
한편으론 익숙하고 한편으론 그리운 쾌활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벤은 품 속에 있는 광선검을 쥐었다. 그래.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명확했다. 아나킨이 시련을 통과하고 무사히 크리스탈을 얻어올 때까지 저들을 막아내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겸사겸사 가슴 저릿하게 만드는 일룸의 풍경 또한 지킬 수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선택지가 어디 있겠는가?
벤은 고개를 내려 제국군들을 바라보았다. 한껏 긴장한 탓에 광선검을 쥔 손에서 땀이 흘렀다.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더라면 광선검을 놓칠 정도였다. 벤이 서있는 절벽 바로 아래에 제국군이 다가오자 그는 망설임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일은 단숨에 벌어졌다. 타투인보다 무거운 일룸의 중력으로 인해 빠르게 내려온 벤은 자신의 착지 지점에 있던 제국군의 등을 찔렀다. 새까맣게 탄 부분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제, 제다이!”
한 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진 제다이가 제 동료를 고깃덩이로 만드는 모습에 주변에 있던 제국군들은 바로 블라스터를 들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긴 스톰트루퍼는 세 명정도였고, 그 마저도 제다이가 휘두른 광선검에 튕겨 나가 가슴으로 되돌려 받았다. 네 명이 쓰러지자 나머지 제국군은 주춤하는 낌새를 보였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벤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광선검을 잡은 뒤로 쭉 블라스터의 플라즈마 총알을 튕기면서 지내온 노련한 장군이었던 벤에게 이 정도쯤 이야 고난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제 하나 남아 있는 제국군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으려던 찰나,
“베이더님의 말씀이 맞았군. 정말로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누군가의 낮은 음성이 들렸다. 곧이어 느껴지는 살기에 바로 광선검으로 방어하자마자 새빨간 광선검이 벤의 광선검과 맞부딪혔다. 새하얀 얼굴과 이마와 눈가에 새겨진 붉은 문신이 새겨진 남자였다. 벤은 본의 아니게 이 남자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베이더는 자신의 옛 스승을 납치해온 뒤로 그가 방 밖으로 나가게 두지 않았다. 자신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스승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 탓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언제나 인격을 지닌 인간이 아닌 프로그램이 탑재된 드로이드에게 옛 스승을 맡긴 탓에 베이더의 옛 스승은 베이더의 궁전에 있으면서 사람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탈출했을 때 마주친 약간 명이 다였다.
때문에 눈 앞에 있는 남자의 존재는 벤이 타투인에 정착한 이후에 알게 되었다.
가끔 식재료를 사기 위해 들렸던 모스 아이슬리의 상점에 있는 TV는 항상 제국 선전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상점 주인이 제국의 열렬한 신봉자이기 때문이었다. 제국 선전 방송은 매일 오후 7시부터 시작했는데, 본 방송이 끝나면 모든 방송사에서는 악랄할 정도로 재방송을 했다. 예를 들면 A방송사에서 재방송이 끝나면 B방송사에서 재방송을 시작했고, 그게 끝나면 C방송사가 재방송을 송출해대는 식이었다. 마치 이어달리기 마냥 바톤을 넘겨가며 재방송을 하는 모양새였기에 시간대만 잘 맞춘다면 모스 아이슬리의 상점 주인처럼 24시간 내내 제국 선전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온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저녁을 먹을 황금시간 대에 편성된 제국 선전 방송은 2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제국을 찬양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제국과 황제를 칭송하고, 제국의 2인자이자 황태자처럼 추앙하는 다스 베이더는 물론 고위급 인사와 제국군의 반인륜적인 행보를 긍정적으로 포장하여 방송했다. 뿐만 아니라 군입대를 장려하기 위해 제국군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복지와 혜택, 그리고 위엄을 강하게 강조했기에 바깥에서 볼 때면 제국군은 완벽한 꿈의 직장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가뜩이나 2시간이 넘는 프로그램인데 수도 없이 방송국끼리 이어달리기처럼 재방송을 반복하니 어른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코찔찔이 아이들도 제국의 함선 이름과 고위급 인사의 이름을 꿰고 있을 정도였다. 또한 방송에서 보여지는 제국군의 화려한 거짓말에 속은 몇몇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군에 입대하겠다는 소리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벤은 제국이 군대를 얼마나 소모품처럼 취급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고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도망자 제다이 벤의 눈에는 그저 대규모 집단 세뇌 현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송에서 항상 베이더의 옆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던 이가 바로 지금, 벤과 광선검을 맞대고 있는 남자였다.
“베이더도 많이 초조한가보군. 이런 곳에 인퀴지터리우스의 리더를 보낼 줄은 몰랐어.”
그랜드 인퀴지터. 다스 베이더가 직접 창군한 인퀴지터리우스의 리더이자 모든 인퀴지터리우스들이 으레 그렇듯 한때는 제다이였던 남자였다. 그 중에서도 그는, 제다이 사원을 지키는 가드였다.
벤은 그랜드 인퀴지터의 노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베이더의 것과 마찬가지로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똑같이 시스로 변절 됐다는 증거임에도 벤은 그 눈이 두렵지 않았다. 베이더의 황금빛 눈에는 쉽게 무기력해지는 주제에. 그제야 자신이 베이더의 황금빛 눈만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작 몰락한 제다이의 사원을 지키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다니. 미련에 젖어 사리분별이 안 되나보지? 사원따위가 목숨보다 소중할 줄은 몰랐군.”
“제다이로서 사원을 지켜야 하는 건 의무지. 설령 몰락했다고 해도.”
자신의 말이 한때 제다이 사원의 가드로 있었던 그의 심기를 거스른 건지 그랜드 인퀴지터의 미간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었다거나 혹은 벤이 좀 둔했다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변화였다. 벤은 그 흐트러짐을 보자마자 검을 튕겨낸 뒤 인퀴지터의 다리를 노렸다. 뒤늦게 알아차린 그가 가볍게 뒤로 도약하며 피한 탓의 벤의 공격은 그의 바짓단을 조금 그을리는 정도에 그쳤다.
만일 그랜드 인퀴지터가 조금만 늦게 움직였다면 그 다리에 깊은 상처라도 남겨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기동성을 잃게 된다면 조금 더 빨리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 그에 벤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베이더가 제법 잘 가르치긴 했나 보군. 뭐, 전혀 기쁘진 않지만.”
“마치 베이더 경의 스승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는군. 어쨌든, 베이더님이 당신을 원하니 순순히 따라오는 걸 추천하지.”
“글쎄, 그렇게 쉬운 남자는 아니라서 말이다.”
파란 색과 붉은 색의 광선검이 눈이 아릴 정도로 눈부신 빛을 내며 부딪힐 무렵, 그 현장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하얀 투구를 쓴 스톰트루퍼가 다급하게 타고 온 왕복선으로 달려갔다. 유일한 장애물인 제다이를 그랜드 인퀴지터가 상대하고 있는 덕에 그는 어떠한 방해 없이 왕복선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바로 통신 장치로 향한 그는 버튼을 누르려고 손을 뻗었으나 동료들이 으스러져 나가는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본 탓에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탓에 그리 크지도 않는 버튼 하나 누르는 것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통신 장치를 조작한 스톰트루퍼는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보고했다.
그들의 상사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하가 얼마나 죽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했는가와 그렇지 않은가만 따졌다.
“말씀하신 제다이가 일룸 사원에서 그랜드 인퀴지터와 접전 중입니다.”
[……그래, 무운을 빌도록 하지.]
상대의 목소리가 낮고 스산하게 깔렸다.
여름이라 피곤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여름이 참 싫어요.
왜냐하면 더위에 축 늘어져 글을 읽기도, 쓰기도 싫어하기 때문이죠.
덕분에 글 쓰는 게 버거워진 요즘... 일룸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딱 걸려서 기분이 좋긴 합니당~ 일룸에 대한 배경지식은 마찬가지로 오더의 몰락에서 가져왔는데 오더의 몰락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행성이 바로 일룸이라 한 서른 번은 왕복 했던 거 같아요. 소설에 꼭 한번은 넣고 싶었던 장소에요~
아무튼 처서가 되면 좀 선선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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