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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오비] 들꽃 눈꽃 낯꽃

아나오비 전력 60분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있었다.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었구나.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 달빛에 넋을 잠시 빼앗겼던 아나킨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신음에 정신을 차렸다. 품에 안은 마른 장작을 꼭 끌어안은 그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식사 시간은 훨씬 지났지만 아궁이에는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에 제가 안고 온 장작을 넣자 다시금 불길이 타올랐다.

아나킨은 거친 불길을 바라보며 이마 위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냈다. 다행히 오늘은 밖에 나가면 일각도 안 되어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운 날씨라 이렇게 불을 피워도 괜찮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물론 이 열기를 직통으로 받고 있을, 집 안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겠지만.

“흐읏. 애, 니….”

다시금 흐릿한 신음이 들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아나킨은 온돌이고 아궁이고 뭐고 지금 당장 저 창호문을 부수고 안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고 싶었다. 절절 끓는 몸을 품에 안고, 한층 붉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고, 열기에 푹 익은 피부를 더듬고 싶다는 욕망이 주제도 모르고 튀어나왔다. 하지만 다시금 그 욕망을 제 마음에 있는 뒤주에 집어넣고 걸쇠를 잠그는 것은 자신의 소망이자 결심을 이렇게 허무하게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리라.

아궁이에 장작을 몇 개 더 집어넣은 아나킨은 부엌을 나와 대청마루 쪽으로 향했다. 안방을 힐긋보니 자신이 붙여둔 부적들이 아까와 다름없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평소라면 지금 저 방에서 신음을 내며 싸우고 있을 스승과 함께 잤을테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평소 잘 쓰지 않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부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안방만큼은 아니지만 작은 방 역시 절절 끓고 있었다.

겨울용 버선이라 무척이나 두꺼운데도 발바닥이 뜨끈뜨끈했다. 결국 창문을 살짝 열어둔 아나킨은 미리 깔아둔 이부자리에 누웠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와 풀잎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아나킨의 귀가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옆방에 있는 제 스승의 신음이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아나킨은 눈을 꾹 감으며 요근래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강원도 소이산 산기슭에 있는 벽막골은 워낙 작은 마을이었기에 행상인도 잘 오지 않았다. 때문에 조금 멀지만 큰 마을인 강연에 장이 서면 무조건 가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비해야 했다.

문제의 그 날 역시 강연골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작년보다 더욱 매서워진 겨울에 사야 할 물건 목록이 평소보다 배는 많았다. 곶감과 육포 같은 마른 음식은 물론 목화 솜옷과 털옷, 지난 주에 아나킨이 찢어먹은 버선 등이 그 예시였다. 다른 계절과 달리 사야 할 물건의 부피가 두 배는 더 부풀었기에 혼자서 들고 오기엔 버거울 정도였다. 그렇기에 아나킨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비완은 완강한 자세로 그를 책상 앞에 앉혔다.

만약 오비완이 떠날 채비를 하던 중 이틀 전 그가 서책과 함께 베껴 쓰라고 줬던 닥종이가 깨끗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나킨은 장에서 파는 맛있는 음식은 물론 오비완의 살내음 또한 맡고 있었을 것이다. 집 안에 홀로 남아 먹물 냄새처럼 재미없는 냄새가 아니라.

한참 동안 까만 것은 먹물이요 흰 것은 종이요, 붓 끝에서 적혀지는 한자는 어그러지고 훈민정음은 일그러지고 있을 무렵 대문 쪽에서 큰 소리가 났다. 걸어오는 소리가 딱봐도 제 스승이라는 것을 알아챈 아나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예상대로 마당에는 짐을 한 가득 들고 있는 오비완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오세요?”

“그래. 봤으면 짐 좀 들어 주렴.”

“그러길래 저를 데리고 갔으면 얼마나 좋아요? 못 다한 숙제는 나중에 하면 되는데.”

“네가 말하는 나중에는 선녀의 치마자락에 바위가 닳아 사라지는 영겁이니까 그렇지.”

오비완은 양손 가득 들려 있는 짐을 아나킨에게 넘기고는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평상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무도 없을 때에도 몸가짐에 신경 썼던 그가 제자의 앞에서 이렇게나 풀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경우였다. 어깨에 지고 있던 지게까지 내려 놓은 오비완이 어깨를 주물렀다.

하지만 힘이 빠진 손으로 목과 어깨를 꾹꾹 눌러봤자 시원하긴 커녕 간지럽지도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본 아나킨은 오비완이 들고 온 모든 짐을 집 안에 들여놓은 다음, 오비완의 뒤에 자리를 잡고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뻣뻣했던 어깨가 손바닥 아래에서 점차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한결 편해진 오비완이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제자 키운 보람이 있구나.”

“말이 좀 이상하네요. 평소에도 보람을 느끼셔야죠.”

“조금만 치켜세워줘도 이렇게 기고만장 해지는데 자주 보람을 느끼면 얼마나 엇나갈지 궁금하구나.”

“에이 제가 기고만장해지면 얼마나 기고만장 해진다고.”

“이 이야기는 이쯤하고 그보다 네가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들어보겠니?”

오비완은 장난기 섞인 표정을 지으며 아나킨을 바라보았다. 대게 이런 표정을 지으며 말해주는 오비완의 말은 정말로 아나킨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말이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옆마을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 말에 아나킨의 시선은 마당 한 켠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에 닿았다. 그 나무는 두 사람이 벽막골에 자리를 잡았을 때 심었던 매실나무였다. 3월과 4월이 되면 녹빛을 띄는 청매화를 흐드러지게 피우는 나무는 겨울철에 들어선 나무 답게 앙상한 가지만 남아 동장군의 매서운 기세를 견디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1월. 꽃이 피기엔 너무 매섭고 추운 날씨였다. 게다가 어젯밤 한 바탕 내린 눈은 아직도 하얀 눈이 기와와 담장에 쌓여 있었다. 낮에는 해가 비추는 덕에 그나마 나았지만 그래도 눈이 녹을 정도의 따뜻함은 아니라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핀 꽃은 진달래, 개나리, 철쭉, 민들레, 벚꽃…. 대다수가 봄에 피는 꽃이라고 하더구나.”

“한 겨울에 꽃을 피우는 요마는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오비완이 주신 책에도 없었고요.”

“다행히 베껴 쓰긴 했나보구나. 뭐, 다른 계열의 요마일 수도 있으니 잘 알아봐야지.”

“도시락 준비할까요? 해결하기 전에 꽃놀이라도 하면 좋을 거 같은데.”

“꽃놀이는 봄에 하자꾸나. 겨울에는 겨울이 주는 운치를 즐겨야지.”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을 즐겨야 하는 법이란다. 시간보다 앞서가서도 뒤쳐져서도 안 돼. 오비완이 말했다.


강원도 소이산 산기슭에 있는 벽막골에는 아주 특이한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십여 년 전 작은 아이와 함께 나타난 청년은 마을 구석에 있는 곳에 있는 폐허에 자리를 잡고 마을의 일원이 되었다. 몸가짐이 반듯하고 아는 것이 많은 청년은 자신이 데려온 작은 아이와 함께 마을 아이들을 모아 글과 지식을 전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한양의 양반집 자손인데 죄를 저질러 호적에서 파이고 이런 촌구석에서 지내는 것이 아닐까 하며 추측했으나 청년은 그 소문에도, 제 신분을 묻는 물음에도 입을 다물고 그저 웃기만 했다.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촌구석에 틀어박힌 청년이 사실은 퇴치사라는 사실을.

 벽막골의 옆마을인 황재골은 벽막골처럼 작은 마을이었다. 두 마을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아주 조용하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마을이라는 점이었다. 황재골이 겨울에 꽃이 피우기 전까지.

아나킨은 황재골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꽃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는 눈이 하나도 쌓여 있지 않았다. 길가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푸릇했고, 가지마다 꽃을 피우고 있었으며, 들판에도 봄에 볼 수 있는 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었다. 마을 밖을 나가면 손마디마디가 아릿해질 정도로 추운 겨울날 이건만, 이 마을만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울긋불긋하고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며 아나킨은 좀 더 오비완과 함께 꽃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오비완은 아니었다. 오비완은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주막을 찾아갔다. 주막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며 그렇기에 많은 정보가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밥은 이미 집에서 먹고 왔기에 간단한 다과를 주문했다. 윤기가 흐르는 약과와 쫀뜩한 떡 그리고 진달래로 만든 꽃전-마을 아이들 손마다 쥐어져 있는 진달래꽃전을 본 아나킨이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그리고 곁들어 마실 차까지.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를 내려 놓던 주모를 붙잡은 것은 아나킨이었다. 주모는 그 질문이 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 한두 번 들어본 질문이 아닌 듯했다.

“보나마나 꽃이 언제부터 피기 시작했냐, 겠죠. 설날이에요.”

말을 마친 주모는 휙 몸을 돌려 이제 막 들어오는 손님에게 다가갔다. 꽃이 피기 시작한 뒤로 동네방네에서 갖은 여행객들이 찾아온 덕에 이 마을의 유일한 주막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번 설날에는 눈이 내렸는데 그때부터 꽃이 피었다라, 뭔가 냄새가 나긴 하네요.”

“아마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일단 주막에서 나가면 나는 촌장과 한번 대화를 해봐야겠다. 너는 마을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보렴.”

“외부인에게 털어놓을까요?”

“네가 부드럽게 미소만 짓고 있어도 사람들은 말해줄 거다.”

요컨대, 질문만 하고 입은 다물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주막을 나오자마자 오비완은 조사가 끝나면 마을 어귀에서 만나자는 말만 남긴 채 촌장의 집으로 향했고 아나킨은 길을 거닐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아낙에게 다가가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사람들은 주모와 똑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설날에 꽃이 피었다. 

도대체, 설날에, 뭐가 있길래. 하지만 설날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아도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른다는 말만 덧붙였고, 얼른 이 기이한 상황이 끝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몇 시진 동안이나 마을을 돌아다녀봤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의미 없는 물음은 그만두고 사전에 약속해둔 마을 입구로 돌아가려던 중,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어린 아이와 부딪혔다.

그 덕에 아이가 쥐고 있던 약과가 땅에 떨어져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꼭 쥐고 있던 약과가 흙과 뒤섞인 모습을 본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에 당황한 아나킨은 소매에서 보자기 하나를 꺼냈다. 아까 주막에서 주문하고 남겼던 진달래전이었다. 먹고 싶다고 떼를 쓴 건 아나킨이었지만 배불러서 못 먹고 남긴 것을 싸온 것이다. 아나킨은 보자기에서 진달래전을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약과는 아니지만 이거 받고 울지마. 삼촌이 미리 피해야 했는데 미안해.”

아이는 꽃전을 받아 들고 쪼물락거렸다. 손에 기름이 묻어 미끌거리는 건 상관도 없는 듯 보였다. 곧이어 뒤따라온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저희 애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아이랑 어른이 부딪히면 아이만 아프지요.”

“엄마.”

갑작스러운 말에 아나킨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제 손에 쥐어진 진달래전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 준 거랑 달라….”

그러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물 아래에 숨이 먹혀들어가면서도 아이는 엄마, 엄마 부르는 걸 잊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아나킨은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엄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를 부르며 하염없이 우는 아이의 모습에 아나킨은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너도 어미를 잃었구나. 나처럼.

오비완과 만나기 전의 아나킨은 엄마와 함께 살았다. 엄마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기 전까지. 떡 하나를 달랬나, 장기를 떼어 달랬나, 그도 아니면 네 옆구리에 있는 아이를 달랬나? 하지만 어떤 어미가 자신의 아이를 내어주고 제 목숨줄을 부지하겠는가? 차라리 자신의 살과 피와 뼈를 내어주고 말지. 그렇게 아나킨의 어머니는 기절한 아이를 뒤로 물리고 호랑이에게 잡아 먹혀 죽었다.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혼은 창귀가 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아이에게 창귀가 된 어미가 말했다.

이 어미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면 산군님께 너를 바쳐.

창귀가 된 어미에게 모성애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목소리도 거칠었고 사랑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에겐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어머니를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요.

참으로 갸륵한 효자이지 않은가.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어미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데. 그저 타인을 호랑이에게 바치고 자신은 자유로워지고 싶을 뿐인, 그러 이기적인 창귀만 남아있을 뿐인데. 생전의 기억은 모두 호랑이의 이빨에 찢겼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 귀를 어미라 여겼다. 어미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 것처럼 자신도 어머니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아이의 여린 두개골을 노리는 순간, 부채가 날아와 호랑이의 눈에 박혔다. 은은한 복숭아 냄새가 나는 부채는 단단히 눈알에 박혀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부채의 주인은 아이를 안아들고 허리춤에 찬 검으로 호랑이를 무찔렀다. 그에게 붙어있던 모든 창귀까지. 아이의 어머니까지. 자잘한 반딧불이 같은 혼이 희미해지는 것을 보며 아나킨이 울었다. 엄마, 엄마를 외치며. 그런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는 것은,

“애니(愛柅)”

“스승님.”

뒤를 바라보자 오비완이 복숭아 부채를 든 채 서있었다. 앞에 있던 아이의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제자가 실례되는 행동이라도 했습니까?”

“아뇨, 아닙니다. 실례라면 저희 아이가 했죠. 자, 연아. 고맙다고 인사드려야지?”

어미가 만들어준 거랑은 다르다고 하면서도 아이는 진달래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혹여 바람에 날아갈까, 제 손을 빠져나갈까 걱정됐는지 뭉개질 정도로 꾹 쥐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네, 살펴 가십시오.”

아나킨은 점점 멀어지는 두 부자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감이 저 부자에게 뭔가 있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어렴풋해서 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저는 허탕인데 스승님은 건진 거 있으세요?”

“일단 자리를 옮길까? 오늘은 여기서 묵어야 할 거 같아서 아까 그 주막에 방을 잡아 놨단다.”

“네. 좋아요.”


주모에게 돈을 주어 주막의 부엌을 빌린 아나킨은 바로 둘이서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주모의 음식 솜씨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밖에 나와서도 자신의 요리를 스승에게 먹이고 싶은 것은 아나킨 나름대로의 고집이었다. 저녁을 먹고 뒷처리까지 완료한 두 사람은 자신들이 모은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아나킨은 허탕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비완은 그럴듯한 정보를 물고 들어왔다. 바로 꽃이 만발하기 시작한 곳이 마을 중앙에 있는 오래된 벚나무이자 서낭당이었다. 새끼줄을 쳐놓고 오색천을 둘러 놓은 모습이 척 보기에도 마을사람들이 신성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나킨도 오고 가다 몇 번 봤던 나무였다.

“그럼 축시에 그곳으로 갈건가요? 워낙 귀하게 여기는 신성한 나무라 손대면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살 거 같은데.”

축시에는 북동쪽에 있는 귀문이 열리는 시각이었다. 때문에 귀신들이 길가를 돌아다녔고, 괜히 귀신과 마주치기 싫은 사람들은 축시에는 외출을 꺼렸다.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식물까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니 뭔가를 알아보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었다.

“그래. 그러니 지금은 좀 자두렴.”

“스승님은요?”

“나는 혹시 모르니 부적이나 좀 만들어두려고.”

“그럼 저도 할래요.”

“아서라, 괜히 글자 틀려서 무용지물로 만들지 말렴. 낮에 베껴 쓴 것도 지렁이가 춤추는 줄 알았단다.”

“당신이 옆에서 봐줄 거잖아요?”

당신은 내 스승이니까. 하며 옆에 은근히 붙어오자 오비완은 늘 그렇듯이 아나킨을 밀어내지 못했다. 아나킨은 자신이 어떻게 굴어야 오비완이 밀어내지 못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은근하게 정이 많은 스승은 스승 답게 아나킨이 배움의 열정을 내비추면 밀어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스승이라는 위치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결국 가져온 괴황지의 절반을 아나킨에게 건내 준 오비완은 경면주사 가루를 물에 갠 뒤, 붓에 적셔 하나하나 정성 들여 부적을 써 내려갔다. 붓끝에서 적혀지는 글씨는 오비완의 분위기처럼 단아하고 고상했다. 그에 반해 아나킨의 글씨에는 거침이 없었다. 쭉쭉 나가는 것이 널 닮았다며 같이 부적을 쓰던 오비완이 웃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곧 축시가 됐다. 주모 또한 이미 자러 들어간 지 오래라 조용히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길을 비추는 것은 아나킨의 손에 들린 등불과 보름이 가까워져 점점 차오르는 하늘의 달뿐이었다.

“스승님은 이번 일이 요마의 짓이라고 보세요?”

“글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저는 그렇게 악한 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유는?”

“그저 꽃만 피우게 했으니까요. 물론 휴식기인 겨울에 이렇게나 지력을 소모하는 일은 흉년을 들게 만들 수 있지만, 제가 본 귀신들은 그렇게 인내심이 깊은 편이 아니었거든요.”

오비완은 아나킨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눈이 네 개 달린 작은 쥐 요마을 향해 진언을 외웠다.

“각항저방심미기 두우여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정귀유성장익진”

쥐 요마는 오비완이 외는 진언에 몸부림치다가 도망쳤다. 저렇게 작은 요마도 해코지를 하려고 하는데. 확실히 지금까지 봐온 귀신이나 요마의 짓과 비교해보면 무척이나 허무맹랑했다. 누군가를 죽게 만들거나 누군가를 저주하는 게 아닌 그저 겨울에 꽃을 피우게 만드는, 조용하고 사사로운 일이었다. 서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보니 바로 서낭당이 보였다. 한밤 중에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꽃잎들이 아름다웠다. 벚나무 아래에는 마치 나무를 지키듯 진달래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는데 그 앞에 한 아낙이 진달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나킨은 그 아낙을 보자마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축시였다. 귀문이 열린다는 축시. 잠든 사람들을 대신 하여 귀신이 돌아다니고, 잠든 동물들을 대신하여 요마가 돌아다니는 축시. 그들을 퇴치하는 아나킨과 오비완이야 축시에 다니는 것이 익숙했기에 괜찮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니었다. 점점 가까이에서 보자 아나킨은 눈 앞의 아낙이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는 은은한 생기가 돌았다. 눈 앞에 있는 아낙처럼 썩어 문드러진 피부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눈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이 났다. 눈 앞에 있는 아낙처럼 새까맣게 죽은 눈이 아니라.

“당신이 이곳에 꽃을 피운 장본인입니까?”

오비완이 물었다. 진달래를 바라보던 아낙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오비완을 바라보았다. 눈은 흰자는 하나도 없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아나킨은 혹시 몰라 허리춤에 찬 검에 손잡이를 꾹 쥐었다. 하지만 아낙 귀신은 그저 두 사람을 흘긋 보다가 진달래만 바라보았다. 

“진달래꽃으로 무얼 만들어 먹지? 무엇이 좋을까? 집에 조청이 있던가? 기름이 있던가? 찹쌀가루는?”

귀는 그 말만 반복했다. 진달래꽃으로 무얼 만들어 먹지? 무엇이 좋을까? 집에 조청이 있던가? 기름이 있던가? 찹쌀가루는? 명백한 무시에 아나킨은 성큼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고 했다.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제 3의 인물만 아니었다면.

“참 생긴 대로 노는구나. 참을성이 없긴. 이 아이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내 경을 칠 것이야.”

오만하고 권위적인 태도가 그대로 묻어난 말투였다. 고개를 들자 다리까지 내려오는 긴 저고리와 오방색 줄무늬가 들어간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이었다. 양 볼에 연지를 찍고 봉황 비녀로 머리를 고정한 그는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너희들이 찾는 꽃을 피운 범인은 나니 나랑 대화하자 꾸나. 저 아이는 그냥 내버려둬.”

“귀하는 누구신데 저 귀를 감싸시는 겁니까?”

“그냥 저 나무에 깃든 목령이라고만 알아두렴.”

목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목령은 바로 두 사람을 귀에서 떼어 놓을 심산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목령은 흘긋 귀를 바라보다가 팔짱을 끼며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질문이 있다면 내게 해. 괜히 꽃구경하는 아낙 방해하지 말고.”

“저 귀와는 아는 사이입니까?”

먼저 물어본 것은 오비완이었다. 오비완의 질문에 목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아이지. 결혼식도 내 앞에서 올렸단다.”

“꽃은 왜 피운 겁니까?”

이번엔 아나킨이 물었다. 오비완을 바라보던 표정과는 다르게 아나킨에게는 다소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렇게 물어보면 대답해줄 게 없다. 사실 나도 왜 이런 짓을 한 건지 잘 모르겠거든. 지켜지지 못한 약속과 함께 남아버린 아이를 달래 주고 싶어서 였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봐온 아이의 마지막을 배웅해주기 위해서 였는지. 인간들도 가끔 이럴 때가 있잖니.”

고분고분 말을 듣던 오비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대충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겨울에 꽃을 피우는 건 지력을 너무 소모합니다. 잘못하면 기근이 들 수도 있고요.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길 바라는 건 아니실 텐데요.”

산 자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목령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오비완의 말에 팔 년 전의 기근이 떠오른 탓이었다. 쌀은커녕 보리, 하다못해 잡곡이라도 있으면 감지덕지였다. 그것도 없으면 산에 들어가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 말라 비틀어진 나물이나 버섯을 캐다 독을 먹고 죽은 이들도 허다했다. 하도 굶어서 병에 쉽게 감염됐고 병은 전염되어 사람들을 죽였다. 하늘을 노하게 한 왕을 하늘에 바쳐야 한다며 원성이 들끓었다. 몇 번이나 기우제를 지내고 지내고 또 지냈다. 비를 내려주세요. 이 메마른 땅에 비를. 하늘에 조아리고 조아려 겨우 비를 얻어낸 것이 바로 삼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 일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이를 애도하겠다는 이유로 지력을 소모하는 건 그 기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못할 짓이었다.

“원래도 오래 못 살 운명이었단다. 아이를 낳고 몸이 더 심약해졌거든. 근데 어리석게도 겨울이 오기도 전에 아이랑 봄에 진달래꽃전을 만들어 먹자고 약속한 거야. 정작 자신은 까치 설날에 죽어버렸으면서. 새해도 맞지 못했으면서. 죽어서도 그 약속을 잊지 못해 저승에 가지도 못하고 진달래꽃만 찾아다니면서 돌아다니는 게 안쓰럽더구나 그래서 은혜 아닌 은혜를 좀 베풀었을 뿐이란다.” 

“진달래꽃전?”

아나킨은 이 대화 속에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엄마, 아이, 아빠, 진달래꽃전. 어미가 만들어준 거랑은 다르다고 하면서도 꾹 손에 쥔 채 놓지 않았던 아이. 마을 아이들 손에는 진달래꽃전이 쥐어져 있건만, 유일하게 약과를 들고 있던 아이. 자신이 쥐어준 진달래꽃전을 보며 어미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며 울음을 터트린 아이. 그럼에도 전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아이. 낮에 봤던 부자가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비단 아나킨이 그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 아이 이름이 연, 입니까?”

목령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낮에 봤거든요.”

“그렇구나. 표정은 좀 어떻든?”

“진달래꽃전만 봐도 울어버립니다.”

“그래….”

표독스러웠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씁쓸한 표정만이 목령의 얼굴에 남았다.

“괜한 짓을 했어. 괜히 지력만 소모한 거지. 괜히 쓸데없이 정을 붙여서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을 즐겨야 하는 법인데…. 목령은 오비완과 똑같은 말을 하며 뺨을 쓸었다.

“뭐 걱정마라. 어차피 내일이면 다 질 거니까. 지력도 지금부터 회복하면 풍년은 아니더라도 굶어 죽는 이는 나오지 않겠지.”

목령은 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아나킨과 오비완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귀는 하염없이 아까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진달래꽃으로 무얼 만들어 먹지? 무엇이 좋을까? 집에 조청이 있던가? 기름이 있던가? 찹쌀가루는? 원래는 이런 마음 따위 가져서는 안 되는데. 아무리 한 많은 귀신이라도 불쌍히 여겨서는 안 되는데.

산 자는 이승으로, 죽은 자는 저승으로.

그것이 세상의 순리이다. 그 순리를 거스르는 이에게 동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죽어서도 남겨질 자식을 잊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하는 어미의 마음이, 창귀를 어미라 여기며 그를 해방 시키고자 자신을 바치고자 했던 아나킨의 마음을 울렸다.

“아, 저…. 저기.”

“…저 귀와 대화를 해봐도 될까요, 목령님.”

아나킨이 제 할말을 고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 오비완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 목령은 의아하다는 듯이 오비완을 바라보더니 곧 마음대로 하렴, 이라고 했다. 오비완은 목령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아나킨을 끌고 귀에게 다가갔다. 아나킨의 키는 이미 오비완의 키를 훌쩍 넘었지만 질질 끌려갔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진달래꽃으로 무얼 만들어 먹지? 무엇이 좋을까? 집에 조청이 있던가? 기름이 있던가? 찹쌀가루는?”

귀는 여전히 둘을 무시했다. 죽으면 생전에 인상 깊었던 것에 집착을 하게된다. 이 귀의 집착은 자식과 함께 만들어 먹었던 진달래꽃전이었다. 철저하게 무시당했음에도, 오비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달래꽃전은 어떻게 만듭니까?”

“진달래꽃으로 무얼 만들어,…. 어머?”

그제야 귀가 둘을 돌아보았다.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진달래꽃을 바라보던 귀의 얼굴에 드디어 다른 표정이 떠올랐다.

“제 제자가 진달래꽃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혹시, 아시나 해서 말입니다.”

“어머 어머 잘 알지요. 우리 아이는 제가 만들어준 진달래전을 아주 좋아했거든요. 봄이 오면 항상 만들어줬답니다. 먼저, 찹쌀가루를….”

오비완은 아나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에 정신을 차린 아나킨은 허둥지둥 하며 종이와 붓을 꺼내 귀가 말해주는 것을 적었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목령이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아나킨은 날이 밝자마자 바로 주모에게 돈을 좀 주고 부엌을 빌렸다. 두번이나 부엌을 빌려주게 된 주모는 조금 떨떠름 했다. 내 요리가 마음에 안 들었나? 하지만 그도 잠시 아나킨이 살며시 웃자 못 이긴 척 넘어가기로 했다.

부엌에 들어온 아나킨은 바로 손을 깨끗하게 씻은 뒤, 찹쌀가루를 꺼내 물을 섞어 반죽했다. 꾹꾹 반죽을 눌러 계속 반죽하자 적당하게 찰기가 생겼다.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펴낸 뒤 가운데에 앙금을 넣어 위 아래로 한번, 좌우로 한번 집어주었다. 하얀 떡 사이로 팥앙금이 살짝 보이는 것이 제법 보기 좋았다.

팥을 넣은 찹쌀반죽이 한가득 쌓여갈 무렵 부엌 문이 열렸다. 오비완이었다. 그는 옆구리에 광주리를 끼고 있었는데 위에 덮힌 보자기를 들추자 물에 한번 씻은 덕에 물기를 잔뜩 머금은 진달래 꽃이 한 아름 담겨 있었다.

“아직은 싱싱해서 다행이네요.”

“목령님이 자비를 베풀어준 덕분이겠지.”

“소개는 목령이라고 했지만 역시 두두리겠죠? 신라때 믿었다던.”

“서라벌에서 살다가 신라가 망한 뒤,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긴 이들도 많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구나.”

오비완은 아나킨의 물음에 답하며 찹쌀반죽 위에 진달래꽃을 얹었다. 보라색이 섞인 분홍빛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간 봤던 진달래꽃전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었다.

“편식하는 아이를 위해 이런 수고를 하는 게 부모라는 걸까”

반죽 위에 꽃을 한 송이씩 올려놓던 오비완은 마지막 남은 한 송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반죽이 하나 적어 꽃이 남은 탓이었다. 이걸 어찌할까 고민하던 그때 구석에서 번철을 꺼내던 아나킨이 잡혔다. 오비완은 빙그레 웃고는 손에 쥐고 있는 한 송이를 청년의 귀 뒤에 꽂아주었다. 아나킨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오비완은 퍽 유쾌한 웃음과 함께 절경이로군, 하며 부엌을 나갔다.

번철을 꺼내다 말고 갑자기 훅 들어온 오비완의 장난에 아나킨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저 사람은 내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데 아직도 이런 장난질이야! 속으로 부끄러움을 터트렸지만, 그 메아리는 아나킨의 마음에 고일 뿐이었고, 그 고인 마음은 얼굴을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손끝, 따뜻했어.”

아나킨은 오비완의 손 끝이 닿은 귓바퀴를 매만지다가 꽂힌 진달래를 빼서 조심스럽게 옷 안쪽에 넣었다. 돌아가면 바로 서책에 넣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아이의 집을 찾는 것은 쉬웠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으니 자그만 초가집이 나왔다. 따뜻한 봄날이라 작은 마당에 있는 마루에 앉아 두릅을 손질하는 아비와 담장 아래에서 마른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큼큼,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는 사이 아나킨을 눈치챈 아이가 빠르게 문 쪽으로 다가와 아나킨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아, 어? 아 그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뽀얀 얼굴이 쑥 들이밀어지자 아나킨이 답지 않게 당황했다. 그런 아나킨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려주자 겨우 제정신을 차린 아나킨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전을 좀 만들어왔는데 둘이서 먹기엔 좀 많아서. 혹시 같이 먹으면 어떨까 해서 말이야.”

“전?”

전이라는 말에 아이가 고개를 들며 눈을 빛냈다. 원래도 전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어미와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지. 뭐 어떤 이유든 흥미를 이끌었으니 된건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아나킨은 광주리에 얹어두었던 천을 걷어내며 아이에게 내밀었다. 팥앙금이 보이는 진달래전을 보자마자 아이의 눈이 아나킨을 향했다.

“팥, 좋아하면 좋겠다.”

“…좋아해요.”

고사리 같은 손을 옷에 문질러 닦은 아이는 손을 뻗어 전을 쥐었다. 시간이 지나 열기가 가신 전은 아이가 쥐어도 따뜻하다고 느낄 온도였다. 전을 한 입 베어 문 아이는 곧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손에 쥔 전을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한 입까지 먹은 아이를 향해 아나킨이 물었다.

“괜찮아?”

“……엄마가 해준 거랑 똑같아요.”

아이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 일반 진달래전을 보았을 때는 엉엉 울기만 하던 것이 어머니가 만들어준 진달래전과 똑같은 전을 보자 의젓하게 굴었다.

“연아? 거기서 뭐하니?”

“아빠.”

두릅 손질에 열중하던 남자가 아이를 불렀다. 이름을 불린 아이가 아버지를 돌아보자 아나킨 또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남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본 남자가 칼을 내려놓고 문 쪽으로 다가왔다.

“아, 어제 뵈었던 선비님들 아니십니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나킨은 인상 좋아 보이는 웃음을 얼굴에 걸치며 말했다.

“간밤 잘 보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어제 그렇게 보낸 것도 마음에 걸리고 마침 진달래전도 많이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나누려고 왔습니다.”

“진달래전이요?”

아이의 아비는 아이가 진달래전을 보고 우는 것을 바로 앞에서 보았던 남자가 굳이 진달래전을 가져왔다는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아이의 손이 아버지의 바지 자락을 잡아당겼다. 남자가 고개를 내리자 아이의 손에는 진달래전을 꼭 쥔 채 아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부었지만 눈물 한 방울 맺히지 않은 눈으로.

“아버지. 이분들이 엄마가 만들어준 거랑 똑같은 전 가져왔어요.”

아이는 제 손에 들고 있던 전을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전을 받은 아비는 멍하니 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너무 빤히 바라보는 바람에 아나킨은 약간 우물쭈물 거렸다. 귀가 말해준 대로 만들었고, 아이 또한 똑같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눈에 보기에는 뭔가 좀 다른가? 결국 못 참은 아나킨이 물었다.

“혹시 뭔가 다릅니까?”

“아뇨. 그냥…. 부끄럽지만 저는 아내의 진달래 전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가 같이 먹자고 가져오면 모두 아이에게 줬죠. 세상 어느 아비가 아이의 몫을 나누겠습니까? 그러다 아이 어미가 죽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한번 먹어볼 걸. 아니면 아내가 만들 때 반죽이라도 할걸. 밭을 가꾸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냥, 한번은 가족들이랑 음식을 만들고 같이 먹는 시간을 보내면. 그랬다면 이 아이가 어미를 그나마 덜 그리워 했을텐데.”

그렇게 말한 아비는 무릎을 꿇고 아이를 끌어안았다. 소리 죽여 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전 만드는 법, 가르쳐주지 않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아나킨은 요리법을 적은 종이를 남자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반죽을 얼마나 해야하는지, 반죽에 소를 넣고 어떻게 마무리 해야하는지 등등을 재잘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비완은 흘긋 아이의 옆을 바라보았다. 지난 밤에 보았던 귀가 아이와 남자를 빤히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행이야.”

짧게 읊조린 그 말과 함께 찬 바람이 불어왔다. 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오고 있었다.


혼이 성불했다. 만들어둔 진달래꽃전은 아이가 아나킨의 손에 쥐어 준 몇 개를 제외하면 전부 아이에게 줘버렸다. 마을 어귀로 뻗은 길에 꽃잎들이 휘날렸다. 점점 사나워지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꺾은 꽃들 때문이었다. 차가운 바람에 섞인 꽃냄새를 맡으며 아나킨은 전을 베어 물었다. 팥의 은은한 단맛과 찹쌀의 쫄깃함이 잘 어우러졌고 무엇보다 끝에서 살짝 스치는 진달래의 향이 좋았다. 이러면 조청은 필요 없겠는걸?

“꽃놀이는 봄에 하자고 하셨죠? 이거랑 똑 같은 거 만들어드릴게요.”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똑같이 전을 우물거리고 있는 오비완이 빙긋이 웃었다. 그 오순도순한 사제의 모습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목령이 지켜보고 있었다. 꽃잎이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목령은 제가 깃든 나무에서 벚꽃 한 송이를 꺾었다.

들판에서 피어난 꽃은 들꽃, 겨울철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눈꽃,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면 낯꽃, 그럼 몸에 피어나면 열꽃인가?

“내 바보 같은 짓을 바로잡아주었으니 나도 너희의 바보 같은 짓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수지에 맞겠지.”

손에 든 꽃을 향해 후, 숨결을 불어넣었다. 붉은 빛이 깃든 벚꽃이 하늘하늘 날아가 오비완의 목에 달라붙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에 손을 뻗어 목을 긁적거렸으나 걸리는 것은 없었다. 오비완의 손이 닿기도 전에 꽃이 몸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별일 아니란다. 어서 가자꾸나.”

인간들은 왜 저렇게 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까? 자존심인지 자신의 위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이런 경우엔 살짝 자극만 주면 알아서 진행되기 마련이었다. 목령은 벚나무 위에 앉아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제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습을 해야 할 차례였다.

-

아나킨과 오비완이 집에 도착한 것은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그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오비완이 열병과 함께 아나킨의 품 속으로 쓰러졌다.


그저 조선 퇴마사 AU 아나오비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원래 성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 근데 아나오비 첫만남도 쓰고 싶다 -> 창귀 넣어야지 / 아 근데 나 물림 진언도 넣고 싶다 -> 이십팔수 사방신 진언 / 아 근데 신라 요소도 넣고 싶다 -> 목령 두두리~ / 아 근데 창귀를 어떻게 넣지 -> 아나킨처럼 어미잃은 가족~ / 아 근데 부적 아나오비 , 아 근데 아나킨이 요리도 해야지 , 아 근데 기근 이야기도 좀 넣어야지 하다가 약간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느낌... 약간 구멍이 숭숭 뚫린 느낌.

다음은, 성인물로 가져오기로 과거의 나와 약속햇으니까 기다려 주세요, 제목도 정해놓음 열꽃. 근데 꽃이 게슈탈트 붕괴 현상 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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