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Tale_00

버거팬츠는 오늘 하루의 시작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근래 그의 기분이 좋은 날이란 없었다만, 조금 다른 의미였다. 오늘 내내 이유도 없이 좌불안석인 것이, 이런 날은 꼭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으니까. 제발 별일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심정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으나, 뭐, 애초에 그에겐, 사장에게 시달리는 것만 아니라면 별다른 업무도 없었다.

5분마다 시계를 확인하는 것을 수십 번. 본디 그럴수록 시간은 더욱 안 가는 법이지만, 어찌저찌 시침은 크게 한 바퀴를 돌고, 9를 향해 가고 있었다. 10시가 되면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희소식이었으나, 퇴근 시간에 맞물리는 돌발 사태가 반가운 적은 없었으니 이 또한 고난이라고 해야 좋을까…. 결국 버거팬츠는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공기를 털어내려, 어기적어기적 방을 나섰다.

"…흐악!"

―그러려고 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검은 인영에 비명 지르고 말기 전까진.

"놀랐잖아! 왜 노크를 안 하는 거야……!?"

다행인 점은, 그 인영이 '사장님'인 건 아니라는 것이었고,

"…노크하려던 차에 문을 여셨습니다."

"…그…건 내 잘못이네."

불행인 점은, 부하 직원들을 맞닥뜨리는 것도 그에겐 꽤 골치 아픈 일이라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처져있던 눈썹이 더욱 힘을 잃고, 입 모양도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그런 극적인 표정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상대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버거팬츠는, 별일 없을 것이란 헛된 기대를 접고 무겁게 입을 뗐다.


'…미친 거 아냐……?'

위태롭게 복도를 걷던 버거팬츠는 안 그래도 움츠러들어 있던 몸으로 팔짱을 꼈다. 자기 위안을 꾀하려는 행동이었으나 기분은 그닥 나아지질 않았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게, 근해에서의 난파 사건이라니? 큰 일이 터질 줄은 알았지만, 이만큼 큰일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기껏해야……, 사장님에게 밤새 시달리거나, 사장님이 만든 시체를 치워야 하는 정도일 거라 생각했지. 인지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사건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건물을 벗어나려는 걸음걸이는 반쯤 본능적인 것이었고. …그래, 일단 담배 한 대 태우고 생각해 보자. 그때쯤이면 사장님도 방에 돌아가셨을 테고, 어차피… 늦은 시간이라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사실이 그의 발목을 무겁게 잡아 내렸다. 어느새 바닥만 보면서 미적미적 걷던 버거팬츠는, 꽤나 두툼하고 큰 인영이 부딪힐 듯 가까이 자리한 것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악, 죄송합니, …아, 샌즈, 씨, …헙."

상대의 이름을 불러버리고 나서야 뒤늦게 입을 틀어막는 모습에, '샌즈'라고 불린 이는 가면 너머로 씨익 웃었다.

"야, 여기선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 사이좋게 망하자고?"

"죄, 죄송,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네……."

그리 말하며 주변을 살피듯 눈을 굴리는 버거팬츠를 보고, 샌즈는 별 대수롭지 않단 듯 어깨를 으쓱였다. 들을 만한 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뭐. 넌 늘 좀 그래 보이긴 해, 같은 말로 실없게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짧게나마 근황 따위를 얘기 나누었다. 주로 샌즈가 이야기하는 쪽이었다. 스노우딘은 요즘 어떻다느니, 그릴비가 네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느니……, 이야길 들으며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버거팬츠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여긴 핫랜드잖아. 거기 벽난로 안에 들어와있다고 생각해."

그 말에 다행히도, 버거팬츠의 표정은 비명을 지르고 싶어하는 정도로 나아졌다.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꽤나 매서웠다. 파도 소리까지 귀를 세게 때리는 듯해, 샌즈는 밤바다란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와있느냐……,

그가 휴가를 보내러 스노우딘에 돌아갈 것이라는 걸 안 버거팬츠가, 면목 없어 하면서도 한 부탁.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있었고, 원래라면 푹신한 침대에 뉘어져 있을 몸은 피곤한 채였지만, 어쨌든. …동생에겐 늦을 거라 미리 연락해 두었으니 자고 있을 터다. 바닷바람에 얼굴이 당기는 것 같다고 느끼던 그는, 어서 용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차 트렁크에서 굴러다니던 손전등을 킨 샌즈는, 대충 주변을 비추며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자, 과연 여기까지 떠내려온 운 좋은 사람이 있냐는 것이 관건인데…,

"…허."

얼마 걷지도 않은 그는, 확실히 사람의 모습을 한 어떠한 것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정말 있을 줄은 몰랐는데, 같은 의미가 섞여 있었겠지─ 그 탄식과 같은 숨에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쓰러진 사람을 살펴보니, 아직은 어린아이로 보였다. 그 망할 꼬맹이와 비슷한 나이일까. 젖은 상태로 오래 방치된 탓인지 몸이 꽤 차가웠지만, 숨은 붙어있었다. 그것까지 확인한 샌즈는, 묘하게 뻣뻣했던 몸의 긴장을 한숨과 함께 풀어 내렸다. …뭐……,

"한 사람은 살렸네, 감기는 지독하게 앓겠지만."

이 말을 듣고 안도할 사람은 옆에 없었지만, 홀로 중얼대면서 아이를 자켓으로 감싸안았다. '과학'적인 지름길이 있으니, 귀가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샌즈는 조용한 개집을 지나, 현관을 겨우 열어젖혔다. 한시바삐 이 쫄딱 젖은 꼬맹이를 집 안으로 들여야 했으니, 급한 마음으로 한 행동은 조용하기보단 소란스러운 쪽에 가까웠을 터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듯 부엌 쪽에서 기척이 났는데, 아마 동생이 먼저 잠들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소리로 보건대 졸고 있다가 막 깨어난 것 같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샌즈는 히죽 웃었다.

“샌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늦는…, …세상에!”

카랑한 목소리에 비해 잠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샌즈!! 납치는 나쁜 거야! 범죄에 손을 대다니!”

“아니, 팝. 뼈 빠지게 일하고 온 형한테 너무하네…….”

샌즈는 기운이 빠지는 체하며 눈을 스륵 감았다. 눈썹도 눈매도 살짝 처진 편인 그는, 실망한 표정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후에 한쪽 눈을 다시 떴다. 오해는 오래 묵힐수록 나쁜 법이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니 걱정 마. 해변에 혼자 쓰러져있길래 데리고 온 거야.”

“해변? 거길 갔다 오느라 늦었구나! …그러고 보니, 오늘 마을이 좀 소란스러웠어! 근처에서 배 사고가 있었던 것 같다는데! 거기에 타고 있었던 애일까?!”

“사고? 그거 큰 일인데. …달리 들은 건 없었어?”

구두를 겨우 벗어 던진 샌즈가 슬리퍼에 발을 끼우며 몸을 들이자, 팝, 그러니까 파피루스는 그 뒤를 따르면서 조잘거렸다. 요약하자면 들은 게 없다는 것이었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까지 덧붙이고 있는 참이었다. 그 투덜거림을 들은 샌즈는, 동생을 달래면서, 불어 터진 데다 차가워진 스파게티를 한 입 크게 말아 입에 넣었다. 한 손으로 하기에 버거운 작업이었지만, 이 또한 동생 달래기에는 아주 효과가 좋았으니까. …무엇보다, 이건 자신이 돌아오면 바로 대접하려고 만들어둔 스파게티라는 걸 샌즈는 알았다. 집을 비운 사이에 맛은 훨씬 좋아진 것 같고― 그러니 마다할 이유는 없지.

…그래도 느긋이 식사할 상황은 아니었기에, 샌즈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벽난로 근처의 소파에다 아이를 눕혀놓았다. 젖은 옷은 빨리 벗겨내고 몸을 닦아주는 게 좋겠지만……,

“…팝. 잡화점에 좀 다녀와 줄래?”

“이 시간에?! …뭐가 필요한데?”

“음……, 주인이 필요해.”

“뭐어?! 주인을 사 올 수는 없잖아!”

샌즈는 마음에 드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클클대는 소리를 헛기침으로 무마하고서는 설명을 덧붙여야 했지만.

"여자아이 옷을 우리가 갈아입혀 줄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알지?"

그제서야 아리송했던 얼굴에 전구처럼 빛을 밝힌 파피루스가, ‘다녀올게!‘를 외치며 뛰쳐나갔다. 늦은 시간에 실례인 일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샌즈는 따뜻한 물이라도 미리 받아놓을까 싶어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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