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마법, 최초의 기억
“하하. 다음에는 같이 만들어보자.”
마법을 곁들이든 아니든, 어느쪽이라도 즐겁겠지. 그리고 네 기억을, 경험을 들으면.
함께 앉은 기숙사의 조리실은 네가 떠나온 집이다가, 집을 떠나 다다른 곳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이곳이 된다.
혹시 알아?
“루는 이럴 때 기적 같은, 누가 무얼 이루어주는 듯한 말을 쓰지 않는 것 같더라. 그게 재미있지만.”
그러니 직접 무언가를 손에 쥘 가능성, 그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축복. 네가 경험한 ‘마법’의 처음은 그러한 것들.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그렇구나. 너는 이미 그 오래 전부터, 무엇이든 네 안에 채워 직접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나.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는데. 나는 처음 새파란 하늘 아래에 선 너를 만났을 때, 그 푸름을 하늘을 닮은 빛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너는 그걸 ‘바다’라고 말하고, 나는 그렇게 너의 바다를 만났지. 바다는 창공과 창해가 만나는 수평선까지 모두를 안은, 푸르고 드넓은 세상이라서.
여전히 물을 쫓아다니는 네가 재미있는 것과, 바다로 이어진 수많은 세계를 누비는 네가 감탄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너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
다만 지금은, 함께 지내면서도 구태여 꺼내고 묻지 않는다면 듣기 어려울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다가 문득, 저도 모르게 입을 열면.
“축복과 가능성...”
입 안에서 느리게 되뇌는 단어들은 그런 것인데.
혹시 너는 알까. 오늘처럼. 네가 가만히 건네는 너의 시간들이, 얼마나 나의 시간을 돌아보고 해석하게 하는지.
“그러게,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나도 그래. 시작은 가능성에 대한 기대. 그리고….
잠시 말을 쉬어가듯, 그러나 여전히 너를 마주하는 채 손으로 판판하고 매끄러운 탁자의 표면을 문지르면, 두 사람 몫의 잔이 앞에 놓인다.
“그때는…, 어설프게 컸잖아, 나는.”
한숨처럼 흐르는 웃음. 해명을 할까, 변명 같겠지만 열다섯이라는 나이는, 그러니까, 조금은 창피해지도록 어렵고 어설퍼.
예민하다면 예민하고, 어른이 된 언젠가를 그리며, 그러면서도 대단한 기대는 하기 어려운 나이. 그런 날이 나의 시작.
그를 떠올리면 말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게 될 지 자주 생각했어.”
정확히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가 속한 나날은 계획하지 않고, 흐르는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삶이라 여겼으므로.
단단한 탁자 위를 가볍고 느리게, 두드리는 손끝. 그때에 그린 날들은 전부 자연스럽고 뻔하고...한계가 많고,
“…그러다보면 상상 속에서 늘, 아주 뻔하고 재미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잠시 멈칫하는 것은, 유독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다니는 지금이 아닌 그때에, 먼 미래를 두고 재미없을 것이라 기대를 포기한 날이 있었던가 하는 이해 때문일까. 살아가느라 바빠서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어른이 될 것을 예감한 그때는, 대단히 고단하고 힘들 일은 없었지. 괴로울 일도. 다만 계절마다 집으로 돌아가고, 학기가 시작하면 학교로 돌아오는 일상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서.
아주 뻔하고 재미없는 어른들을 보고 겪고, 머지않아 저도 그렇게 자라겠지 하던 날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때는, 마법학교에 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그건 너도 나도, 여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이제는 옛일로 담담하게 꺼내는 이야기. 어쩌면 지난, 너의 조각을 자연스레 흘러 나오게 두는 너는 이런 기분일까. 물론 아프고 힘든 시절을 건져 올리는 것은, 내 옛 일상을 꺼내는 것과는 무게도 온도도, 그 시절에 겪은 밤과 새벽조차 같을 수 없겠지만.
작은 웃음과 함께 잔을 들어 기울이면, 커피 한 모금이 입 안을 적신다.
그랬던, 날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여기에 있겠지. 거쳐오기 전에는 알 수 없고, 지나쳐 온 지금이라 말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러니 먼저 진실한 네 물음에 내가 할 답은, 우회나 회피가 아닌, 씁쓸하지만 그윽한 향을 남기는 한 모금만큼의 추억.
먼지가 앉아도 반짝이는, 어느 예전의 일이야.
“나한테 마법은, 미래를 상상할 가능성. 상상해볼 수 있는 미래 중에서 유일하게,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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