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별의 부재, 항해
만약 이것이 이야기가 된다면, 내가 작은 미니어처인 너를 만난 것은 복선이 될지 몰라.
“그렇구나. 마음에나 걸릴 뿐 다들 모르는 걸까….”
느리고 완만한 시선이 네게 향하면, 확고한 의지를 가진 듯 보이는 짙은 눈썹 아래의 커다랗고 둥근 검은 눈. 가만히 오래 들여보다 잠시 입을 달싹이고, 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야 네게 말을 건다.
“…모두가 그래? 다들 지도가 없이 헤매는 건가.”
너도 그렇고? 하는 물음은, 네게 닿을까.
“나는 늘…, 길잡이 별을 쥐고 있었어서.”
가야할 길과 해야할 일이 늘 명확한 나날. 그러니 늘 바쁘고, 당연하게 부지런했던 날들.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건 굉장한 축복이나 기적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그러니까, 네가 가족들을 도와 일을 하고 와서는 긴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서 늘어져 잠들어 있던 어릴 때. 나는 내가 헤매게 될 날을 단 하루도 상상해 본 적 없었어. 그리고 너도. 계절마다 당연하게 할 일이 있던 네가 지도 없는 항해를 하는 중이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지.
“..그게 가려진 뒤로는 뭘 쫓아가야할지 모른다는 게, 너무 무서웠어.”
다만 이제 와서 생각한다. 모든 선택과 결정, 막연한 미래로 나가기 전의 플란타. 이곳에서 우리는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좋았겠다고. 밀린 잠을 자는 것 같다던 네가, 땅을 쉬게 하는 법을 알고, 논과 밭과 나무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지켜볼 줄 알았던 너는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나는 좀 더 유심히 볼 필요가 있었겠다고.
지금 내 방황은 그러니, 밭을 돌보거나 쉬게 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를 쉬게 둔 적이, 어쩌면 내내 없던 까닭이려나.
끝으로 갈수록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 그러나 새까만 시선을 향하면, 너는 방향을 잃은 적 없는 것 같은 눈으로, 삶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라는 말을, 위로가 아니라 정언처럼 건넨다. 그런 너라서, 대답은 자연히 흐른다.
“나는…."
대답을 건네며, 언젠가, 좋아하는 과일을 말할 때를 떠올리는 기시감에 잠시 웃음이 나왔고.
“…사실, 책을 읽는 건 좋아. 더는 책에서 뭘 배우지 않고 싶어했지만…….”
정확히는, 책에서는 아무 것도 더 배우지 않는 사람인 척 하려고 들었던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그냥, 수많은 지혜와 지식이 담긴 책에 빠져있던 어린 날을 원망이라도 하고 싶어서, 책을 대신 미워하는 척 하고 싶었을까. 고민해본 적 없으니 앞으로도 모를 일일 것 같지만.
하지만, 미르.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버티는 일은, 사실 불가능했어. 너와 나누는 대화의 한 단락에서만도 나는, 수많은 것을 배우고 마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인정하는 것은 조금 쉬운 일이 되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일은….
“소설이나 동화를 읽고, 일기 대신...주제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낙서처럼 쓰곤 해.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읽고 쓸 때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것도, 너를 마주보는 지금이니 고백하자면,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싫지 않다고만 말하고 싶던 시절과는 다른,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조차 분명하게 확언할 수 없는 지금의 내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진솔할 대답.
네 글에서 투명한 요정이 어쩌다, 우엉우엉 울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하지만 그런 것도 재미있지 않겠어? 나는, 왜 투명한 요정이 우는지 궁금할 것 같은데. 이야기를 읽고 쓰기를 좋아하게 된 나는, 네 이야기를 궁금해질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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